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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6화 (6/226)

[게이트 오브 서울 6화]

석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잡담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영은 알아서 화제를 돌렸다.

“다음부터는 러시아 군복을 구해서 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정부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 테니까요.”

그럴 바엔 차라리 사복을 입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석민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거 고맙군.”

석민의 시선이 아영의 저격총으로 향했다. SR-25, 미군이 사용하는 반자동 저격총으로 7.62밀리 나토탄을 사용하는 총이었다.

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는 그 저격총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비싸 보이는 독일제 조준경, 두껍고 조금 더 긴 총신, 인체공학적인 손잡이, 소음기 등, 총에 돈을 많이 처발랐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부럽군.’

그가 가진 빈토레즈 역시 나쁜 물건은 아니었지만, 오래됐기도 했고, 탄창의 스프링도 약해져 가끔가다 총탄이 제대로 송탄되지 않아 20발 넣을 수 있음에도 겨우 15발만 넣고 사용하는 중이었다.

정비를 하거나 새로 사야 했지만 구하기도 힘들고 수리할 곳 역시 마땅치 않아서 결국 그냥 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영은 석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앞으로 3시간만 기다리면 됩니다. 뭐 브리핑은 숙지하셨으니 괜찮겠죠?”

“그래.”

석민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목표와 고작 1킬로미터 떨어진 탄천의 갈대숲이었다.

물론 서울과 경기지역은 사태이후 하늘을 뒤덮은 구름 때문에 식물들이 죄다 말라죽어서, 갈대 역시 시커멓게 죽어있는 상태였지만, 석민은 물론이고 아영도 개의치 않았다.

아영은 석민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침묵이 감돌았다. 해도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찾아왔을 쯤이 되어서야 아영이 입을 열었다.

“그 창고는 원래 2차 서울수복작전 때 군수품을 옮기는 중간기지였어요. 저 구름이 낀 뒤, 비가 자주 온 덕분에 탄천의 수위가 꽤 높아져서 보트를 비롯해서 바지선까지 운행이 가능했었으니까요. 그것을 통해서 강남구, 송파구에 군수품을 보급할 예정이었죠. 알다시피 서울의 주로도로는 버려진 차량들 때문에 완전 마비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가만히 있자니 심심한지 목표인 창고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고, 석민도 심심풀이로 그것을 들어 넘겼다.

“처음엔 좋았죠. 탄천은 송파와 강남을 나누는 곳이었고, 양쪽에서 보급을 하기용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비가 오지 않았죠. 그저 구름만 낀 상태로 지금까지 말예요. 결국 탄천의 수위가 줄어들었고, 고무보트조차도 운용하기 힘들어져 보급이 어려워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대규모로 괴수들이 출현했을 때, 박살났었지?”

“예.”

그때 생각이 나는지, 그녀는 인상을 썼다. 30만 명, 한국군 20만 명과 다국적군 10만 명, 2차 서울수복작전에 참가한 병력 30만 명 중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이가 겨우 6만, 부상자가 10만인 대규모 참사를 겪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시신들조차 건지지 못한 채 서울 교외 지역에 급히 방어선을 형성한 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

아영의 눈이 가라앉았다.

“내 대원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겨우 2명이었죠.”

“몇 명 중에?”

“30명이요.”

“저런.”

아영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석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대했다.

“그럼 내가 뭐라 말할까? ‘미안합니다,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할까? 그들 말고도 수천, 수만 명이 죽었어. 당신이나, 나나 살아남은 건 그저 운에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잠시 뭐라 반론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바로 반박이 나오진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죠. 하지만, 우리는 남들보다 운이 좋음과 동시에 특별한 힘을 얻었죠.”

그 말에 최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특별하다고? 어디가?”

아영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설마 아직까지 숨기실 생각이셨습니까? 제가 말했을 텐데요? 당신 말고 적격자가 없다고요. 우리는, 동류입니다.”

석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보았다. 그는 이것이 꿈이라 생각했다. 아니, 자기 같은 사람이 또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택받는 자 씨, 저는 전달하는 자입니다. 지난 몇 년간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전달하는 자가 당신에게 찾아왔습니다 ]

[선택받은 자의 능력이 해금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귀에 쿵하고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그것에 놀라 석민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

석민과 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 귀에만 들린 소리가 머리에 메아리처럼 가득 울렸다. 그 목소리는 누구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뭐야?”

“퀘스트를 받았네요.”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그처럼 시스템창을 보는 것이 분명했다.

[선택받은 자를 인도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선택받은 자를 인도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그녀가 그것을 따라 읽었다. 석민은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말없이 그녀를 내려 보자, 그녀는 석민의 바지를 붙잡았다.

“일단 앉아주세요.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요.”

그녀의 말이 상당히 애절하게 들려왔다.

***

“…너도 사태 때 생긴 거라고?”

대략 20분이 지난 후 그의 물음에 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하게 제2차 서울 수복작전이 시작할 무렵 생겼죠. 최석민 씨는요?”

“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너도 FPS(First Person Shooting)게임처럼 시야가 그렇게 보인단 말이야?”

“예.”

“무기를 쥐면, 장탄수가 오른쪽 하단에 보이고, 컴퓨터 창 같은 게 떠서 무기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그래요.”

그녀는 그와 가진 능력이 같았다. 하지만, 왜? 왜 이 여자만 퀘스트를 받는 것이지?

석민은 그녀처럼 마음속에서 퀘스트창을 불러보았지만 그 어떠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선택받은 자라고?’

그는 마음속으로 상태창을 불렀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 11

지구력: 7

체력: 5

활력: 7

시력: 6

“뭐지?”

이전까지의 상태창에선 그의 이름 옆에 ‘선택받는 자’라는 단어는 없었고, 레벨 같은 것도 있지 않았다. 아까 해금이 이것을 뜻하는 것인가?

그가 부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창뿐이었고, 그 외엔 무기를 짚으면 떠오르는 알림창이 다였다.

‘뭐가 달라진 거지?’

“네 상태창을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볼 순 없었고, 그녀가 말해주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아영, 전달하는 자.]

레벨: 11

지구력: 7

체력: 5

활력: 6

시력: 7

“전달하는 자?”

석민은 그제야 조금 납득을 했다. 아영이 그에게 퀘스트를 전달해 주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도대체 왜지? 그가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최석민 씨도 능력 등급이 더 이상 안 오르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신체등급은 더 이상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오르지 않았다.

아영은 잠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퀘스트를 받은 게 없습니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퀘스트 창 같은 거 뜬 적은 없어. 아까 울리는 목소리는 확실히 들리긴 했지만, 여전히 퀘스트창이 없지. 선택받은 자의 능력이 해금되었다고 했는데, 글자 하나 추가된 거 말고는 없네.”

“그래요? 난 있어요. 정확하게 행하는 자를 찾아라. 그리고 당신을 만나고 성공했죠. 그리고 이젠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는 퀘스트가 생겼어요.”

“역시 네가 전달하는 자로서 나에게 알려주는 것인가 보군. 그럼, 보상을 뭘 받았지?”

아영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녀는 자신의 창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뇨, 없어요.”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런 보상 없이 퀘스트가 있나? 아니지, 그건 그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레 보상이 당연하다 여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문득 그는 다시 의문이 들었다.

“우리에게 이런 힘을 대체 누가, 왜 주었지?”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우리는 선택받았어요. 그리고 게임 시스템의 퀘스트 창 같은 것으로 우리의 임무를 주는 것이겠죠.”

“아니, 아니. 잠깐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왜지? 왜 내가? 애초에 왜 내가 그걸 해야 하지? 내가 왜? 너 같으면 어느 날 갑자기 와가지고 사명이 있으니 같이 퀘스트 하자고 하면 하겠어?”

그는 평소와 다르게 잔뜩 흥분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솔직히 저도 몇 년간 고민했어요. 누가, 왜 우리에게 이런 힘을 주고, 왜 우리에게 퀘스트를 줄까? 처음엔 퀘스트 따위 하지 않았죠. 전 군인이었고 제가 해야 할 의무는 따로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퀘스트 따윈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늘어나는 제 능력을 보며 만족하고 있었을 뿐이었죠.”

그녀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두 번째 수복작전 실패하고, 저만 겨우 살아남은 후 고민해 보았어요. 서울 왕십리 부근에 열린 그 거대한 태풍의 눈 같은 것, 천국의 문 교단이 주장하는 천국의 문에서 나오는 용과 같은 괴수들, 그리고 제게 생긴 힘까지.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이미 그러한 일은 벌어졌고, 이 비상식적인 사태를 막으려면 비상식적인 힘을 가진 내가, 혹은 나와 같은 또 다른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 말에 석민은 반론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확하게 이 사명이라는 것의 끝은 알 수 없어요. 이 힘을 준 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방금 준 퀘스트도 그렇고 너무 모호하게 주잖아요? 선택받은 자를 찾아라.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퀘스트예요? 선택받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는지 아니면 타국에 있는지, 그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어린지 심지어 이름의 첫 글자도 안 나와 있잖아요?”

그녀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을 찾기로 결심한 뒤에도 나름 열심히 노력은 했으나 단서가 없어서 찾지 못하고 있었죠. 지금 이렇게 3년 만에 당신을 찾은 것은 진짜 행운이었어요. 우연히 드론에 찍힌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여전히 전 엉뚱한 곳을 찾고 있었을 테니까.”

“어떻게 내가 동류인지 알았지?”

“싸우는 방식이요. 우리의 상태창을 보면 이미 우리의 등급을 서로 알고 있으니 말할 필요 없겠죠? 일반인들은 9등급, 운동 좀 한 인간들은 8등급이 나오지만 우린 7, 6, 5등급이 나오죠. 당신이 거기서 보여준 기민한 모습은 아무리 훈련을 받더라도 일반 사람이라면 그렇게 움직일 수 없어요. 당신의 기민한 모습 덕분에 지금과 같은 계획을 정부에 제출할 수 있었고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후, 이번 퀘스트도 사실 어이없죠. 거짓된 전령을 찾아 사명을 완수하라와, 당신을 인도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분명 당신을 인도해서 거짓된 전령을 찾고 알 수 없는 사명을 완수하라는 것이겠죠. 거짓된 전령은 분명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부르는 표징일 텐데, 너무 모호해요. 당신을 찾은 것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함께하길 원해요. 내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찬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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