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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5화 (5/226)

[게이트 오브 서울 5화]

다음 날 아침 9시 성남시청 근방 카페.

석민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가 눈에 띄었다.

“의뢰인?”

“맞습니다.”

바짝 긴장했는지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석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석민은 잠시 자신 앞에 내밀어진 사내의 손을 응시하다가 응해 주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일단 선금부터 주시죠.”

그 말에 남자는 잠시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몸에 가려져 안 보였던 여자가 보였다. 통통한 얼굴에 약간 그은 피부, 하얀 운동화에 청바지, 가죽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갈색 머리는 틀어 올려 묶고 있었으며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석민은 이 여자가 앞선 남자보다 상급자라고 확신했다.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훈련과 운동으로 탄탄해 보이는 몸을 가진 것과 보수적인 분위기를 보건데 군인인 듯했다. 석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여자가 저격수군.’

여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자신의 품속에서 수표를 꺼내 들었다. 석민은 수표를 받아 금액을 확인한 직후 그것을 품속에 넣었다.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그러죠. 저쪽으로.”

석민은 사내의 안내를 따라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고, 사내는 그들 사이에 앉았다.

“커피 한잔하시죠.”

사내가 손을 흔들자, 대기하고 있었는지 종업원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였다. 종업원이 사라진 직후 사내는 지도를 꺼냈다.

“우리가 처리할 곳은 이곳입니다. 탄천 근처이죠. 일이 터진 후 새로 건설된 창고입니다. 과거엔 군의 물류창고이었지만, 지금은 그자들이 가지고 있죠. 이 안에 25톤짜리 컨테이너 4개가 있습니다.”

“이거만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 사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잠시 홀짝인 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폭약은 우리가 준비할 것입니다.”

“경비들은 전부 제거할 필요 있습니까? 상황에 따라…….”

남자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전부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컨테이너마다 2명씩 지키고 있고 창고 근처에도 4명이 순찰을 돌기 때문에, 한두 명 처리하는 것 가지고는 힘듭니다.”

“이 컨테이너 가건물이 경비들 숙소?”

“그렇습니다.”

조금 난감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가건물 주변을 4명이 항시 순찰을 돌고, 바로 옆에 경비들 숙소, 그리고 창고 안 컨테이너에도 2명씩 경비를 선다고 하니 이 남자 말대로 전부 제거하는 것이 속 편할 듯했다.

“우리 저격수는 이쪽에 배치할 것입니다.”

그는 창고 입구에서 약 150미터 떨어진 둑의 풀숲을 가리켰다. 그곳은 창고입구를 완벽하게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순찰 도는 경비들과, 안에 있는 이들을 처리하고 폭약을 설치하는 동안 저격수가 당신을 엄호해 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석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를 집어 들다가 잠시 갈등하더니 내려놓았다.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자, 비록 선글라스로 눈이 가려졌으나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여자가 보였다.

‘커피를 마시지 않길 잘했군.’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최석민 씨.”

석민은 그녀를 노려보며 자연스레 오른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 이름을 알다니, 역시 이들은 정부쪽 인물들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미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주머니 속의 권총은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그대로 잡고 계세요.”

그러더니 그녀는 손을 뻗었고 석민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그를 스쳐지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고 있는 유리잔으로 향했고, 그대로 들어 올려 빨대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봐요. 됐죠?”

그리고 잔은 다시 그의 앞에 놓아졌지만, 여전히 의심을 버리지 못한 석민은 빨대를 버렸다.

“제 이름은 아영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아영 대위입니다.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같이 위로 올라가도 될까요?”

“할 얘기가 있다면 여기서 하지.”

“소위, 잠시 비켜줘.”

“알겠습니다.”

사내, 아니 소위는 자신의 아메리카노를 들고 위쪽으로 올라갔고, 아영은 그가 올라간 것을 지켜본 뒤, 선글라스를 벗으며 앞머리를 살짝 뒤로 넘겼다.

가려진 눈이 드러나자, 딱딱해 보이던 분위기 대신 그녀의 미모가 도드라졌다. 훤하게 드러난 동그란 이마 밑에 짙은 쌍꺼풀이 보였다. 깊어 보이는 눈매 아래 오른쪽엔 작은 점이 있는데 그것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저격수로서 당신을 엄호할 것입니다. 이번 일에 당신을 추천한 것 또한 저이고요.”

그 말에 석민의 눈꼬리가 살짝 떨렸다. 잠시 생각이 복잡해진 그는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당신은 왜 나를 선택했지?”

그녀는 바로 대답하진 않고 다리를 꼬았다.

“최석민 씨가 10일 전에 권총으로 처리한 드론, 우리 정부 거였습니다. 덕분에 우연찮게 당신의 활약을 볼 수 있었죠.”

‘젠장, 그런 것이었군.’

석민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로는 그의 의문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겨우 그거 가지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능력을, 국가를 위해 헌신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헌신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개소리인가?

“헌신이라고? 이번 의뢰만 하는 게 아닌 건가? 아니면, 날 정부의 해결사로 고용할 생각인가?”

그 말에 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별로 좋은 말 같지 않으니, 요원이라 하죠. 결론적으로 예, 맞습니다. 우린 지금 당신에게 스카우트 제의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정부 대신 뒤처리를 하는 것입니다. 아, 물론 계획상입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당신이 거부하면 소용없으니까요.”

그녀는 석민의 표정이 더 찌그러지기 전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잠시 제 설명을 들어주세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최석민 씨, 우리나라는 6년 전 대참사 이후 종말론을 내세우는 사이비 종교인 천국의 문 교단, 서울에 둥지를 튼 괴수들, 이들 말고도 현 대한민국에 손을 뻗치고 있는 기업, 단체, 국가들에게 매우 무력한 상태입니다. 대참사 이후 우리나라는 힘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죠. 하지만, 놈들이 계속 활개 치는 것을 이대로 계속 지켜볼 순 없습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그들을 처치하기엔 너무 상황이 안 좋죠.”

그 말에 다 알았다는 듯이 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 같은 놈이 필요하단 말이군. 난 정부쪽이랑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까.”

“예, 맞습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그렇다는 것은 내가 위험에 처해지면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래, 항상 그래왔지 너희들은.

“보수는?”

“기본급제로 줄 것입니다. 월 600에,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그에 따른 보너스도 줄 것입니다.”

석민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기본급치고 매우 보수가 짭짤했다. 거기다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보너스까지 준다고 하니, 그가 그동안 해 왔던 일 중 가장 매력적인 의뢰비였다.

얼마나 줄진 알 수 없지만, 정부의 더러운 일만 처리한다는 점에서 이미 적지 않은 금액이라는 것이 예상됐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이번 일 말고도 다른 사람과 일해야 하나?”

“아뇨, 저만 함께 할 것입니다. 이번 일의 발의자가 바로 저니까요. 연락장교쯤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말은, 날 감시한다는 것이군.’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비싼 만큼 위험한 일인 것 같은데, 겨우 그런 이유들 가지고 날 선택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더군다나 난 특수훈련을 받은 적도 없지. 그런데도 내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적격자라고 보는 건가?”

그 말에 아영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는 듯했다.

“당신 말고 저와 함께 할 수 있는 적격자는 없어요.”

“어째서?”

“왜냐하면…….”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방송소리가 들렸다. 카페주변이 아닌 성남시 전체에 나오는 방송이었다.

-국민여러분, 여기는 계엄사령부 중앙경보통제소입니다. 실제 괴수경보를 발령합니다. 현 시각 경기도 전 지역에 괴수경보를 발령합니다.

사이렌소리가 매우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2층에 있던 소위가 아래로 내려왔다.

“대위님, 지하로 가셔야 합니다.”

“일단 몸을 피하죠.”

대참사가 일어난 이후, 경기도 지역을 포함해 전국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모든 건물 지하에 대피시설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였다.

종업원이 지하실 문을 열쇠로 열자마자 소위와 아영은 안으로 내려갔지만, 석민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카페 창가 쪽으로 뛰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공포의 예광탄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심지어 여러 개의 미사일들이 벌써 발사되었는지, 불꽃과 함께 흰 연기가 항적운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때, 미사일이 착탄하면서 섬광이 일어났고, 그 섬광 속에서 비룡(飛龍)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크기가 대충 소형민항기 정도였다.

파충류 특유의 괴성이 사이렌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뭐합니까? 괴수 처음 봐요? 빨리 안 내려가요?”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사장이 안절부절못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고 석민은 그제야 지하실 밑으로 내려갔다.

모두 내려간 것을 확인한 후, 사장은 가게 카운터 계산기를 가지고 안으로 내려왔다.

“요즘 대피하는 틈을 노려서 돈을 훔치는 놈들이 많아서요.”

그는 눈들과 마주치자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하듯 말했다.

대답은, 듣지 못했다.

***

그날도 해가 저물어 갔다.

어차피 경기도와 서울은 구름에 의해 하늘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쪽하늘은 흐릿하게나마 붉게 물든 것이 보였다. 사실 이는 매우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엔 구름이 너무 두꺼워서 석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민은 파이프를 문 채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그는 이미 무장을 마친 상태였고, 티타늄 헬멧도 바이저를 올린 채 쓰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에서의 붉은빛인가? 그러고 보니 태양과 달을 보지 않고 산 지 얼마나 되었지?

‘그때와 같군.’

옛 생각이 난 그는 조금 쓸쓸한 얼굴로 변했다. 얼마 안 가 파이프를 다 핀 그는 잠시 음음-거리면서 콧노래로 박자와 가락을 맞춘 뒤 음울하고 서글픈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아직 그들의 사지가 뜯기지 않았고

괴물을 쏴 죽이지 않았다.

그들은 명령이 아닌 지원하여

서울로,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그들은 어리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붉게 물든 배경 뒤로 석민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 노래는 국가를 위해 죽어간 영웅을 위한 노래가 아니다.

그저 이 노래는….

석민의 눈이 감겼다. 그의 입에선 노래가 계속 이어졌다.

“…피 튀기며, 취한 채로

울부짖어라, 늑대같이!

친애하는 나의 조국이여,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 뜨거운 폐허 안에서….”

“벽에 걸어둔 가족사진이 불탄다.”

자신의 노래를 가로챈 사람을 찾아 눈을 뜨자 한 인영이 보였다.

아영이었다.

그녀는 안면 위장 마스크를 쓴 채 얼룩무늬 길리슈트 토그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레 석민의 옆에 앉았다.

석민은 자신의 노래를 멈추게 한 그녀를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추모가, 2차 서울수복작전에 살아남은 러시아 고려인 동포가 만든 노래죠. 그걸 알고 계신 것 보니 역시 서울 수복작전 때 있었군요. 살아남은 자가 별로 없었는데.”

“너도 있었나 보군.”

자신의 째림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에게 석민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예, 강남구 지역, 미군과 함께 싸웠죠. 최석민 씨는 역시 노원, 중랑구죠? 러시아군과?”

석민은 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는 러시아 선두 정찰조의 길잡이였다.

“그래도 대놓고 금지곡을 부르진 마세요.”

국가와 정부를 비난하는 가사가 있어 추모가는 현재 금지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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