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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4화 (4/226)

[게이트 오브 서울 4화]

사태 이후 6년. 그는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총질로 하루하루 먹고살았다. 하지만 이 짓거리는 생각보다 돈벌이가 되지 못했다.

사람 죽이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아져 보수가 생각보다 짤 때가 많았고, 불법적인 일이기 때문에 의뢰인이 돈을 안 주고 튀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그때는 철저히 복수를 했지만. 심지어 범죄행위를 빌미로 협박 혹은 사기까지 당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세상이 살기 힘들어졌어도 사람 죽이는 일은 여전히 매우 위험했다.

그러다보니 많이 벌어봤자 한 번에 200만, 적게는 한명을 죽이고도 단돈 10만 원도 채 못 받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다시 잔금과 빠져나갈 돈을 생각했다.

복잡한 생각을 포기해버린 석민은 매트리스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10분쯤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눈을 뜨고선 휴대폰을 만졌다. 그는 요즘 사람답지 않게, 폴더폰을 사용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낸 뒤 폰을 베개 옆으로 던지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의뢰

10일 후 석민은 집을 나와 거리를 나섰다.

그가 10일 전, 문자를 보낸 상대는 최용민이었다. 그는 수원지방경찰청의 형사인데, 부업으로 석민처럼 해결사를 원하는 고용주들에게 다리를 놔주는 ‘소개꾼’역할도 했다.

오늘 석민이 집을 나선 이유는 바로 최용민에게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 왔냐.”

맥주전문점 ‘더 로드’에서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최용민이 고개도 돌리지 않으며 말했다. 그는 근무시간인데도 태연하게 술을 마셨다.

“여전히 근무시간인데 술을 마시는 것을 보니 대한민국 경찰의 미래가 밝네요.”

느릿느릿 말하며 빈정거렸지만 최용민은 양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갈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치안업무는 군이 하는데, 뭐. 경기도는 계엄령 떨어진 지 오래잖아.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지. 기껏해야 맥주나 축내는 거랄까.”

석민은 자연스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얼마 안 가 바텐더가 다가왔다.

“제일 싼 거. 300ml.”

그 말에 바텐더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물론 용민의 인상도 따라 구겨졌다.

“내가 사장인데 아무거나 마셔.”

“그래봤자, 저질 수제맥주 아닙니까?”

“흥.”

용민이 잔을 기울였다.

“요즘 같은 시기에 제대로 된 맥주 구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자부한다고.”

석민은 용민의 말에 시선을 돌렸으나, 그도 사실 알고 있었다. 이 근방에선 용민이 직접 주조한 수제 맥주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그저 농담 반으로 한 말이었다.

“그래서 공무원이 사업을 해도 돼요?”

그 말에 용민은 피식하며 웃었다.

“그야, 공무원 월급이 너무 짜니까. 월 200으론 풀칠하기 힘들어. 아무리 아껴도 전기세만 월 30이 넘어. 거기에 가스비다 뭐다 하면…. 에휴, 내가 딸자식이 2명인데….”

이러다가 용민의 끝없는 신세한탄으로 넘어갈 것 같아, 석민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본론으로 넘어가죠. 요즘 일거리 없다더니, 그래도 10일 만에 의뢰가 들어왔네요.”

기다리다 굶어죽을 뻔했어요. 하려다가 그는 현명하게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용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이것도 별로야. 일거리가 없지. 너 말고도 대부분이 많이 못 벌어도 좋으니 제발 일 좀 소개해 달라고 하지만, 이젠 웬만하면 다들 직접 총 들고 원한관계를 청산하니까. 요즘은 청부살인 같은 게 아니라 괴수나 원한을 산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보디가드를 고용하지. 하지만, 넌 그런 거 안 하지?”

잠시 말을 끊은 용민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사인에 바텐더가 음악을 틀었다. 유행이 지난 가요였다.

용민이 손을 위로 향해 까딱거리자 바텐더는 인상을 쓰며 소리를 더 키웠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귀마개를 꺼내 착용한 뒤, 맥주를 준비했다.

용민은 바텐더의 불만스러운 행동을 보고도 음악을 음미하듯 눈을 감고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눈을 뜨고는 대뜸 입을 열었다.

“일거리가 들어온 것은 맞는데, 이상하게도 물주가 네가 하길 원하더군. 직접 널 거론했어.”

그 말에 석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물주가 날 알아요?”

“브스스(빈토레즈의 은어)쓰고 혼자 활동하는 변태새끼가 너 말고 더 있냐?”

그는 눈알을 굴리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빈토레즈를 쓰는 사람은 그 말고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랬다.

“여하튼 널 필요로 하는 물주가 한 놈 있는데, 쉬운 일이라는군.”

쉬운 일? 석민은 속으로 비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죽이는 것만큼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은 없었다.

“타깃은 누구죠?”

맥주가 석민의 앞에 놓였다. 석민은 바로 몇 모금 들이킨 후,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한 번도 실전경험을 한 적이 없는 중년 남녀인데 겨우 30명.”

“30명?”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맥주를 다 마신 용민은 담배를 꺼내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정확히 30명의 경비병들이 지키는 것은 군수품, 그놈들이 군수품을 대규모로 밀반입한다는군. 북한제 자동소총, 수류탄, 알라봉(RPG-7의 은어)에다가 중기관총이 들어있데, 수량은 대략 100톤 정도고 그걸 파괴하는 게 목적이야.”

석민은 지난번 상덕의 일이 생각나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들 민병이라도 조직하려는 것 같은데…….”

“그 정도 규모면 상당한 조직 같은데, 조직명은 뭐죠?”

“알려주지 않았어.”

“그럼 거절하죠. 아니 알 거 다 아시는 분이….”

“선금이 1천, 성공하면 2천이야.”

그 말에 자리에 일어나려던 석민이 잠시 움찔거렸다. 보통 의뢰를 뛰어넘는 수고비였다.

물론 용민도 소개비로 10%가 떨어질 테니. 큰  돈일 테고.

“……그거 쉬운 일 맞아요?”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 정도 조직이면 네가 뒷감당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내가 누구냐? 대한민국의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 아니냐?”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놈들 창고에 관해 조사해보았지. 천국의 문 교단 소유의 창고더군.”

“천국의 문?”

석민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은 당연했다.

요즘 들어 교세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는 교단이자, 이단으로 불리는 집단이었다. 얼마 전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그에게 확성기를 들이밀던 자칭 선교사 또한 그 교단 소속이었다.

그 교단과 엮이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석민은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도 함부로 건들이지 않는 세력이었으니까.

“아니 신을 믿는다고 하는 것들이 왜 무기를….”

“모르지. 하여튼, 조건이 더 있는데 들어보겠어?”

“…일단 계속해보세요.”

“이번 일은 너 혼자 하는 게 아니야. 정확하게 너 포함 2명이 하는 거야.”

“2명?”

석민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전에 용민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래, 너 독고다이 변태인 거 알아. 하지만 들어봐. 다른 한명은 저격수레. 널 보조해 준다고 했어. 물주 쪽 사람이라고 하는군.”

“……이거 정부쪽 일이죠?”

세세한 정보하며, 고용주가 다른 이까지 제공하는 의뢰. 이제껏 이런 적은 없었다. 차라리 2명을 고용하고 말지.

석민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용민을 쳐다봤다.

“그래 맞아.”

‘정부’라는 말에 석민의 표정이 일그러지다 못해 아주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볼 때마다 무표정하기만 했던 바텐더가 피식하고 웃을 정도였다. 석민은 정부를 매우 많이 불신했다.

“그 새끼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부른 거죠? 그 특수부대원들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런 사람들을 두고….”

“모르지.”

그가 맥주잔을 톡톡 두드리자, 바텐더가 맥주를 채워주었다.

“뭐, 정부입장에선 독립적으로 무장을 한 단체 따윈 원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그 ‘천국의 문’ 놈들은 광신도 중에서도 광신도들이잖아. 그것들은 정부도 함부로 건들기 힘들지. 교세도 너무 강하고. 그렇게 정부가 공식적으로 건들기 힘드니까, 너를 고용하려는 거 아니겠어?”

석민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는 되도록 정부쪽과 엮기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불신한 것도 있지만, 정부쪽과 엮이면 그가 저지른 불법행위 또한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행법상 군이나 정부쪽 인사가 아니면, 자동화기는 쓸 수 없었다.

현재 민간에 ‘공식적’으로 풀린 무기들은 전부 단발사격만 가능한 것들이었고, 권총과 12게이지 샷건에서 발사되는 총기 외엔 모든 것이 불법이었다. 검문소에서 군인들이 VSS를 보고도 그냥 통과시킨 것은, VSS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민간인이 무기를 가질 수 있는 곳은 경기도뿐이었다.

그 외에 불법무기를 가진 이들은 계엄령에 의해 즉결심판에 해당했다.

그가 가진 M16A1은 군용으로, 자동사격이 가능한 것이고, VSS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부일 하다가 그들에게 신분이 노출된다면?

…난감할 따름이었다.

‘아니지, 빈토레즈를 쓰고 혼자 활동하는 걸 알 정도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보수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그에게 남은 돈은 이제 얼마 없었고, 이번 의뢰를 받아 보수를 챙긴다면 적어도 6개월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놈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고 의뢰를 맡겼다는 것은 이미 그에 따른 뒷조사가 끝났다는 소리일 테고, 자신의 불법행위 정도는 눈감아 주겠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래?”

용민이 물었다.

소개비가 적잖이 쏠쏠해서 그런지 그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다.

현재 그의 경찰 월급은 200만 원. 그러나 이번 일의 소개비만 해도 300만 원이니, 초조하고, 조급해지는 그의 마음이 석민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죠.”

대답하면서 석민은 남은 9x39mm 총알 개수를 생각했다. 딱 35발 남았다.

‘이번 일 마치고 새로운 탄약 거래처를 찾아봐야겠어.’

그는 상덕이 주었던 카드가 생각났다.

“좋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용민은 품속에서 쪽지를 꺼냈다.

“내일 아침 9시에 물주 만나서 설명 듣고 그날 밤 물주네 저격수랑 일 치르면 될 거야.”

‘바로 내일? 마치 내가 수락할 줄 알았나보군.’

석민은 ‘너무 쉽게 수락했나, 왠지 너무 끌려가는 기분인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용건이 끝났는지, 용민은 남은 맥주를 들이켠 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일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네 덕분에 나도 돈 좀 쏠쏠하게 버는 셈이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내가 쏘지. 난 이만 서로 돌아가마.”

“그러세요.”

용민이 자리를 뜨자, 석민은 술 몇 병과 요깃거리로 피자 한 판을 주문했다.

“피자가 얼마나 비싼지 알고 그래요? 무려 3만 원이라고요.”

“그러니까 시키는 거지 가져와.”

바텐더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부엌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대략 10분 후, 겨우 손바닥 크기의 피자가 석민의 앞에 놓였다. 치즈도 진짜 치즈가 아닌 인조치즈였고, 토마토소스도 너무 얇게 발라져서 겨우 새큼달큼한 맛이 느껴질 정도였으며 토핑도 없었다.

용민의 ‘더 로드’는 확실히 비쌌다. 그래도 다른 곳과 다르게 음식가지고 장난을 치진 않았고, 이 허접해 보이는 피자도 실은 수제였다.

‘얼마만의 피자냐.’

그는 피자를 반으로 접고는 입안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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