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1화]
프롤로그
서울, 중앙선의 러시아워(rush hour)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물론 출근시간 땐 모든 노선이 사람들로 가득 차는 편이다. 중앙선 보다 더 악명 높은 노선도 많고 말이다. 그러나 중앙선은 다른 노선들보다 배차간격이 길었기에 그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특히나 더 지옥 같았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마치 성냥갑 속의 성냥처럼 서로를 포개야만 탈 수 있었다.
자신의 키가 크지 않고서야 서로 바짝 밀착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출근하는 사람들은 숨쉬기도 힘든 상태로 내릴 역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날은 8월, 악명 높은 여름 더위의 절정기였다.
그나마 세게 틀어놓은 지하철 에어컨 바람이 간혹 자신들의 얼굴이나 어깨에 와 닿았기에, 쩍쩍- 들러붙는 살들의 틈 사이에서도 각자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부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대게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생각들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런 빌어먹을 시간을 견뎌, 매일 조인트나 까대는 직장상사가 있는 회사에 출근을 꼭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부터, 실적이 안 오르는 회사일, 그리고 아직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이자까지.
혹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폰으로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릴 것이다.
그러지도 않는다면 신세 한탄이라도 하겠지.
이 지긋지긋한 세상, 전쟁이 나든 뭐든 해서 확 뒤집어 지면 안 되나? 이런 생각 말이다.
-이번 역은 왕십리, 왕십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왕십리역에 도착하자 몇몇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승역이니 많은 사람들이 내릴 것이고, 다들 조금쯤은 숨통이 트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또다시 사람이 미어터지는 2호선이나 분당선 지하철로 갈아타면 여전히 지옥은 계속되겠지만, 갈아탈 지하철로 옮겨가는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흉부를 압박하는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기에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한시라도 빨리 지하철에서 튀어 나가고자 했다.
많은 이들이 환승을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비췄다. 그것은 형광색 빛깔의 구체로, 마치 도깨비불처럼 두둥실 떠다니며 밝은 빛을 뿜어냈다.
‘저게 뭐지?’
마침 빛나는 구체와 가장 가까이 있던 한 남자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는 설마 자신에게만 보이는 건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그동안 잠을 너무 못 자서 헛것이 보이는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히 그만 보이는 것이 아닌 듯,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가던 걸음을 멈췄다. 대부분은 바쁘게 갈 길을 가느라 깊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한발씩 구체에게로 다가갔다.
누가 이것을 여기에 둔 것일까? 남자는 자신이 이른 아침부터 지옥 같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려던 목적도 잊고 말았다.
그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린 직후 그것에 손을 뻗었다. 그가 손을 뻗자, 주변에서 힐끔거리던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것은 따뜻했다. 아직 손끝에 완전히 닿지도 않았는데 그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새로 나온 전등 같은 건가?’
그의 손이 구체에 닿는 순간, 거대한 빛이 뿜어졌다.
빛이 사라지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고, 왕십리역을 중심으로 주변 300미터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불꽃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그 버섯구름은 보통의 폭발과 같은 잿빛의 그을음이 아닌 구체와 같은 형광 빛을 띠었다.
핏빛과도 같은 불덩이는 소멸하지 않은 채 점점 커지고 넓어지더니 원형의 띠를 만들어냈다. 원형의 띠 안쪽은 하늘에서 봤을 땐 하얗게 빛이 났으며, 땅에 볼 땐 밤하늘보다도 더 새까맸다.
어두운 먹구름이 원형의 띠를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먹구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과 경기도 전역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원형의 띠 어두운 부분에서 괴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괴수의 생김새는 도마뱀 같았으며, 그 크기가 매우 다양했다. 심지어 일부는 마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용(龒)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괴수들은 나타나기 무섭게 사람들을 사냥하고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사람들은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사방에서 밀려드는 괴수들에게서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군대가 정비를 끝마치자마자 서울과 경기 전역에 배치되었으나, 괴수들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은 두꺼우면서도 유연해서 일반적인 소총탄이 먹히지 않았다.
물론 군대의 화력이라면 비늘의 제거가 아주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자니 시민들과 괴수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과, 수도의 인프라, 시민들의 재산 문제 등등으로 현실적으로는 실행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괴수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종국에는 죽여도, 죽여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괴수들에 의해 탄약이 부족해지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결국 군대의 방어선은 구축되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났으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수도는 대전으로 임시 이전하게 되었다.
이름이 뭐라고?
서울에서 사태가 벌어진 지 6년 후.
대한민국 임시수도 대전의 임시정부청사가 된 5성급 호텔, ‘임페리얼’.
그곳의 연회장은 회의실로 바뀌어 모든 불이 꺼진 채 PPT 화면만 환하게 비춰졌다.
매우 중요한 계획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작전의 성격상 군이나 정보조직 자체적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최상급자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자가 쓸 만하다. 이건가? 훈련받은 정예 특수부대원을 뒤로하고 말이지.”
가장 상석에 앉은 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던 해군 동정복 차림의 여인이 대답했다. 계급을 상징하는 소매장을 보건데, 그 여성은 대위였으며,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대위 계급치고는 상당히 젊은 편에 속했지만, 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가슴에 달린 약장이 2줄이라는 사실과 그중에 무공훈장이 3개나 되는 것을 보고서는 쉽게 그녀의 계급에 대해서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가 보여준 기록을 보면 이 남자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 군복무도 3급 현역에 병과도 헌병인데, 헌병은 기행(기술행정)쪽 아닌가? 특수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혹시 이자, 따로 받은 훈련이 있나? 국정원의 비밀요원이었나? 혹시 UDU?”
그는 은근 기대했는지 들뜬 말투로 말했지만,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대통령님.”
“그러면?”
“단순한 일반인에, 지금은 PMC(민간군사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는 대통령님이 말씀하신 UDU처럼 혼자 활동합니다. 그쪽 세계에선 알 사람은 알 만큼 유명합니다.”
그 말에 비웃듯이 헛기침을 하거나 대놓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나왔다.
“비밀스럽고 불법적인 업무를 하는데 그쪽업계에서 유명하다? 그게 말이 되나? 지금 누구 놀리는 건가?”
“허참, 혼자 활동하는 용병나부랭이가 우리 정예대원들보다 났다?”
육군 정복 차림의 장성이 다 들으라는 듯이 크게 혼잣말을 했지만,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도 내심 같은 생각을 하였으니까.
대통령은 잠시 손가락에 깍지를 낀 채, 여인을 주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위, 그렇다면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바로 수긍하실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여인은 ppt를 다음 화면으로 넘겼고, 나타난 영상을 재생했다.
“이것은 1주일 전, 8월 23일에 우리군의 정찰 드론이 촬영한 것입니다. 장소는 통제지역인 수원의 호수공원입니다.”
***
호수공원의 호숫가 약간 경사진 곳에서 어떤 남자가 드러누워 후드 재킷의 후드를 눌러 눈을 가린 채, 파이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근래에 담배 관련 세금이 많이 오른 통에 상대적으로 연초 값이 싼 파이프 담배를 태우는 것이 흔해졌다.
사실 이곳은 호수공원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로 호수물 이미 다 말라붙어 바닥을 보인 지 오래였고, 식물 또한 생명을 다해 누렇게 변한 잎들만 무성했다.
만약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날, 이런 곳에 누워 담배를 태우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남자의 모습은 조금 특이했다.
그는 검은색 항온 스웨터 위에 카키색 후드 재킷을 입고 있었고, 짙은 감색의 청바지와 발목까지 오는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8월의 악명 높은 더위가 시작되었음에도 이곳이 추웠기 때문인 것 같았다.
또한 군장을 메고 있었는데, 국군이 사용하는 군장이 아닌 러시아제였으며, 군장을 들고 있는 손에는 가죽으로 된 반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옆엔 총검이 장착된 샷건이 놓여있었는데, 트렌치 건이라 불리는 샷건으로, 구하기 힘든 총이었다.
파이프에서 전달된 연기가 그의 입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다가 슬슬 그 기세가 누그러질 무렵,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과거에 뚱뚱했던 사람이 급격하게 살을 뺀 것처럼, 얼굴의 피부가 살짝 늘어져 있었다. 심지어 그의 낯빛은 빛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점들만 빼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얼굴이었고, 대충 나이대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남자는 파이프를 입에서 뗀 뒤, 재를 톡톡 털어내 청소도구로 청소를 했다. 그 손길이 꽤나 꼼꼼했다.
청소가 끝났는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군장 뒤쪽에 매달린 잡낭에 파이프와 도구를 대충 쑤셔 넣었다. 몸이 뻐근한지 고개를 몇 번 돌리기까지 하더니 한숨과 함께 트림까지 시원하게 내뿜었다.
그 행동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북쪽의 어떤 건물에 줄곧 고정되어 있었다. 과거엔 관공서였지만, 지금은 그가 찾아야 하는 ‘목표물’의 아지트였다.
그는 트렌치 건을 뒤로 메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었다. 현재로선 그의 눈에 띄는 생명체는 없었다. 어떤 벤치에 도착하자 그의 걸음이 멈췄다.
거기엔 길쭉한 가방과 학생들이 쓸법한 백팩이 놓여 있었다. 그는 가방을 열어 길쭉한 가방에서는 vss 혹은 빈토레즈라고 불리는 저격 소총을 꺼냈다. 빈토레즈는 러시아제로 소음기가 기본으로 달린 아음속탄환을 발사하는 저격총이었는데, 그가 들고 있는 빈토레즈에는 러시아제 4배율짜리 스코프도 달려있었다.
총을 확인한 남자는 옆에 있던 백팩도 열었다.
그곳엔 티타늄으로 되어있는 오토바이 헬멧 같은 것이 나왔다. 바이저도 티타늄과 방탄유리로 구성되어 있는,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그는 눈구멍만 뚫려있는 발라크라바를 얼굴에 뒤집어쓰고는 헬멧을 머리에 올렸다. 바이저는 올린 채였다. 소음저격총에 탄창을 넣고 노리쇠를 잡아당겨 장전한 후, 조정간을 안전 쪽으로 돌린 뒤에야 그는 관공서 건물로 향했다.
버려진 관공 사태 이후로 관리하지 않아서 주변이 풀들로 무성했고, 근처에 있는 관공서 주차장엔 먼지가 뽀얗게 쌓인, 녹슬고 낡아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차들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