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31화 (231/255)

# 231

10장, 상처뿐인 영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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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가 지났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리 짧지만은 않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분 초를 아껴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다면, 특히 한지호처럼 일주일에도 몇 번씩 비행기를 타며 해외를 나다니면 3주는 무척 짧게 느껴진다.

눈 깜짝 할 새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3주 동안 한지호는 홍콩 원화 한의원에서의 진료가 끝난 후 매번 요시모 유타를 치료했다.

침을 놓은 건 단 한 번이 전부였다.

오금희 웅공과 화공을 운용해서 화기와 금기로 가득 찬 침을 놓았고, 완벽하게 성기능을 죽였다.

두 번의 시도는 필요하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치료를 위해 요시모 유타의 남성을 회복불가능하게 만든 한지호는 매주 약재를 환부에 발랐다.

요시모 유타도 세간에 알려진 평판대로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다.

성기능을 잃은 것, 속된 말로 고자가 된 게 억울해서라도 열심히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가 처방해준 탕약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고, 환부에 약재를 바를 때도 통증을 꾹 참아냈다.

그렇게 3주가 흐른 오늘, 한지호는 요시모 유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완치 선언을 하게 됐다.

굳이 그가 선언을 하지 않아도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환부가 말끔하게 돌아왔다.

아직 100% 보통 사람의 피부와 똑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짓이겨져 고름이 줄줄 흐르던 상처는 모두 치료됐고, 피부의 색깔도 보랏빛이 아닌 원래의 살색을 되찾았다.

피부가 늘어져 쭈글쭈글해진 부분과 군데군데 남은 흉터 자국은 미용의 문제다.

정 거슬린다면 피부과에서 레이저로 지지면 그만이다.

의학적으로 요시모 유타의 아랫배와 성기 윗부분은 완벽하게 치료가 됐다.

“성공했습니다, 대사님.”

“그 말은…….”

한지호의 말에 요시모 유타의 눈빛이 흔들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드러내고, 목숨보다 소중한 성기능을 버리면서까지 매진했던 치료다.

그는 다시 한 번 확답을 듣고 싶은 눈치였다.

한지호는 주저하지 않고 요시모 유타가 간절히 원하는 말을 해줬다.

“완치입니다. 재발의 우려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 오오-! 완치, 완치란 말이지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마워요, 닥터 한. 덕분에 나는 계속 대사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네요.”

요시모 유타가 한참 어린 한지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성기능을 죽였을 때 원망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탓할 대상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3주라는 시간을 겪으며 그는 이성을 찾았다.

성욕이 아무리 왕성해도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생사의 문턱에서 자신을 건진 사람이 한지호라는 걸 명석한 요시모 유타가 모를 리 없었다.

“이제 더 조심할 부분은 없는 것인지요?”

“적어도 이 병과 관련해서는 혹시 모를 위험까지 확실하게 마무리 지었지 않습니까.”

“그, 그렇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성병은 99% 성관계를 통해 전염된다.

남은 평생 정상적인 성관계를 할 수 없게 된 요시모 유타가 다시 병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0.1%와 0% 사이에 있는 미지의 숫자일 것이다.

한지호로부터 재발할 우려가 없다는 확답을 연거푸 받은 요시모 유타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치료비는 어찌 드려야 할지요.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드리겠습니다. 닥터 한의 국제적인 명성에 어울리게끔 말이지요.”

“치료비는 받지 않겠습니다.”

한지호는 기다렸다는 듯 치료비를 거절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요시모 유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지호는 세계적인 영화감독과 배우, 스포츠 스타를 비롯해서 영국 왕실의 초청까지 받는 유명한 한의사다.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어도 한지호의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식이다.

특히 한의원에 찾아가는 게 아니라 따로 1:1 진료를 받는 경우 치료비는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한지호가 헨리오 무크로부터 무려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퍼져나가 기정사실화 됐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시모 유타 역시 치료비로 거액을 지불 할 생각이었다.

최고의 의사들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 희귀병을 치료해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남사스러운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도 화끈하게 성의를 표시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지호는 어리둥절해하는 요시모 유타를 똑바로 쳐다보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대사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하지요.”

“콜걸들을 수시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미성년자와 관계를 맺고 성병에 걸렸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었습니다.”

한지호의 말에 요시모 유타는 얼굴이 붉어졌다.

영원히 숨기고픈 치부를 한지호가 명명백백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지호의 독한 고백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님을 치료한 이유가 있습니다. 돈? 차고 넘칠 정도로 벌고 있습니다. 명예? 부끄럽지만, 이미 저의 명성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까지 퍼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대체 왜 내키지 않는데도 대사님을 치료한 것일까요?”

“…….”

요시모 유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갑작스러운 한지호의 질문이 그를 숨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

한지호는 격하게 흔들리는 요시모 유타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추위안차오 상무위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사님께서 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해온, 그리고 기여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기능을 잃는 사건을 겪으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죠. 대의를 위해 치료를 했는데 공든 탑이 무너지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전장치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불쾌하시겠지만, 치료비 대신이라 생각해주십시오.”

“안전장치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요? 내게 왜 이러는 겁니까, 닥터 한!”

“별 거 아닙니다. 상습적 성매매, 네팔 출신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로 희귀한 성병에 걸린 사실 등을 대사님의 목소리로 직접 인정한 녹음 파일이 제게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요시모 유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완치가 돼서인지 움직임에도 제약이 없어졌다.

하지만 한지호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앉은 채로 그를 올려봤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대로 한국과 일본, 또 중국과 일본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다면 녹음 파일이 공개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이게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모르지는 않겠지요?”

“경찰에 신고를 하시겠습니까? 신고가 접수되자마자 녹음 파일이 세상에 알려질 텐데.”

“으읍…….”

흔들림 없는 한지호의 태도에 요시모 유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지호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자신의 판을 짰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요시모 유타에게 주어진 빈틈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떠는 것뿐이다.

“제가 돈이나 다른 이익을 위해 녹음 파일을 이용할 정도로 레벨이 낮은 인간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꾸준히 대사님의 행보를 지켜보겠습니다. 정말 내키지 않는 치료를 한 보람이 있도록, 법과 의료 윤리를 어기면서 만든 녹음 파일을 영원히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좋은 외교관이자 정치인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러지 않았어도…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나는 내 할 일을 잘 했겠지요!”

“그럼 굳이 이런 일이 없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치료든 정치든 결과가 중요한 거니까.”

한지호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답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큰 키 때문에 시선이 요시모 유타의 정수리를 향하게 됐다.

“다시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게 대사님께도 좋겠죠. 대사님의 남은 삶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시기를.”

더 이상은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한지호의 의지는 요시모 유타의 뼈에 각인 됐을 것이다.

지체없이 별장을 빠져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탄 한지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던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그 어떤 사람도 감히 이게 옳다고 판단을 내려줄 수 없는 문제다.

한지호는 자신에게 솔직하기로 결심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쨌든 요시모 유타의 치료는 일단락이 됐다.

주사위는 넘어갔다.

요시모 유타가 한지호의 바람대로 자기 역할을 해낼지, 아니면 실망감을 주고 녹음 파일 공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한지호는 진심으로 요시모 유타가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훌륭한 정치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녹음 파일의 존재도, 또 이토록 찝찝한 치료의 기억도 영영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의 영역을 넘어선 의술로 한중일 3국의 은인이 된 날, 한지호는 기쁨 대신 씁쓸한 감정을 홀로 곱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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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안차오가 한지호를 찾았다.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지만, 한지호는 그 앞에서 위축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한지호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진료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이동했다.

사실 찜찜한 구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중 일본대사 요시모 유타의 치료를 부탁했던 장본인이 바로 추위안차오다.

둘은 정치 외교를 떠나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다.

요시모 유타가 추위안차오에게 녹음 파일 이야기를 꺼냈을 수도 있다.

만약 추위안차오가 상무위원의 압도적인 권력을 이용해 녹음 파일을 삭제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한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지호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굳이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고픈 마음도 없었다.

우렁찬 배기음을 내뿜는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 내내 한지호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언제나 결론은 똑같았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설 수 없어.”

차에서 내린 한지호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는 설령 추위안차오의 부탁 혹은 압력을 받아도 양보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녹음 파일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호 자신뿐이다.

요시모 유타의 치부가 담긴 녹음 파일은 응당 거액이었어야 할 치료비를 한 푼도 안 받고 확보한 것이다.

공적으로는 훌륭해도 사적으로는 경멸스러운 인간인 요시모 유타를 치료해준 이유이기도 하다.

그 파일이 사라지면 한지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발걸음은 어느새 약속 장소 코앞에 다다랐다.

추위안차오는 5성급 호텔의 프라이빗 룸을 빌렸다.

한지호가 도착하자 호텔 직원들이 룸 안에 기별을 넣은 후 문을 열어줬다.

스르르륵-

미닫이 방식으로 열리는 문이 신선해 보였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잡고 문을 열어야하지만, 럭셔리와 번거로움은 늘 가까운 친구다.

호텔 직원이 열어준 미닫이 문 너머로 널찍한 응접실이 눈에 들어왔다.

추위안차오는 상아색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한지호는 그에게 걸어가며 가볍게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추위안차오가 더 빨랐다.

그는 예상과 반대로 호탕하게 웃으며 한지호에게 박수를 쳤다.

“하오, 흥 하오! 한 선생, 요시모 유타의 약점을 잡았다고? 역시 대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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