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10장, 상처뿐인 영광 (1)
실크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시트가 바닥에 깔렸다.
그 위에 알몸이 된 요시모 유타가 누워 있었다.
일본은 한때 G2의 반열에 올랐었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 최정상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나라다.
역사적 감정을 뒤로 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부정할 수 없는 선진국이다.
그런 국가의 대사는 옛날로 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가까운 자리다.
적어도 중국이라는 대륙 안에서는 요시모 유타가 가장 높은 일본인이다.
그렇지만 눈을 질끈 감고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비쩍 마른 몸, 50을 넘긴 나이로인해 툭 튀어나온 아랫배.
이런 신체 조건이 볼품 없어서가 아니었다.
상습적 성매매로 인해 괴이한 병을 얻고, 남몰래 치료를 받고자 부들부들 떨며 누워있는 모습.
치료를 받으면 앞으로 영원히 남성성을 상실한다는 이율배반적 공포를 느끼는 모습이 초라한 것이다.
모든 것은 요시모 유타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한지호는 마음 깊은곳에서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이미 요시모 유타 몰래 녹취록까지 만들었다.
더 이상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
아무런 편견 없이 순수하게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치료가 완벽하게 끝나고, 요시모 유타의 성기 윗부분부터 아랫배를 보랏빛으로 물들인 상처가 말끔히 나으면 얼마든지 감정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환부에 직접 침을 놓는 건 아니니 큰 통증이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지금 맞는 침으로… 내 성기능은 영영 사라지는 거라고 했었지요?”
“그렇습니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닙니다. 일주일이 지나면 숙주인 성기의 기운을 완전히 죽인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그럼 상처와 고름들도…….”
“일주일 뒤에 한약재를 환부에 바르고, 처방한 탕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차차 좋아지겠죠.”
“알겠어요, 닥터 한. 정말 잘 부탁합니다.”
한지호는 마지막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환자가 잘 부탁한다고 해서 특별히 더 신경을 쓴다면 의사로서 실격이다.
평소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후우-.”
한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입을 타고 들어온 공기가 단전까지 내려가며 집중력을 향상시켰다.
단전에 잠든 오금희의 기운도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침으로 성기능을 제거하는 것, 가볍게 말했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한지호는 얇은 침에 오금희를 담아낼 수 있다.
그저 혈도만 자극한다고 해서 단번에 성기능을 죽일 수는 없다.
오금희 중에서도 뜨거운 불의 기운을 가진 웅공과 날카로은 쇠의 기운을 가진 호공을 함께 써야 한다.
두 기운을 침에 담아 성기를 주관하는 혈도를 아예 막아버리려는 것이다.
지이이잉-
손 끝에 잡힌 장침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전에서부터 솟아난 오금희 웅공의 화기(火氣)가 넘치도록 주입 됐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길게 시간을 끌지 않았다.
첫 번째 침이 요시모 유타의 음낭 옆으로 깊이 들어갔다.
“흐읍!”
보라색으로 물든 환부를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요시모 유타가 신음을 흘렸다.
일시적으로 불의 기운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다.
한지호는 첫 번째로 놓은 침에서 조심스레 손을 뗐다.
강렬한 화기가 음낭 주위의 혈도를 태워놓았다.
몸의 주인인 요시모 유타도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성기능을 유지하게 만드는 혈도 하나가 불타버린 셈이다.
스윽-
한지호의 손에 곧바로 두 번째 침이 들렸다.
이번에는 호공의 금기(金氣)가 들어찼다.
오금희를 무공으로 펼칠 때 웅공과 호공은 얼핏 비슷하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웅공은 주먹이나 발차기 한 방에 파괴적인 위력을 담게 만든다.
불의 기운답게 무섭도록 타오르는 것이 본질이다.
반면 호공은 사람을 찢어죽일 것 같은 살기를 뿜어내게 만든다.
순수하게 발휘되는 힘은 웅공보다 약해도 훨씬 더 위험한 급소를 노린다.
쇠처럼 날카롭게 막아서는 적을 베어 버리는 것이다.
무공이 아닌 의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화기로 가득찬 침이 혈도를 불태운다면 금기가 깃든 침은 혈도의 맥을 자른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침을 타고 침투해서 혈도를 조각조각 썰어버리는 것이다.
“으음.”
이번에도 요시모 유타가 신음을 흘렸다.
실제 느껴지는 통증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다만 금기로 휩싸인 침을 맞는 순간, 형언하기 힘든 서늘함을 체험했을 터였다.
낭심 아래쪽, 회음부와 가까운 지점에 두 번째 침을 놓은 한지호의 손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침술로 성기능을 죽이는 것은 의성의 경지에 다다른 한지호에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성기능을 죽였을 때 병균이 활동을 멈춘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냐는 점이다.
그는 확신을 가졌고, 그대로 행할 뿐이었다.
요시모 유타 입장에서는 성기능을 죽이는 침술이 일생일대의 모험이겠지만, 치료를 총괄하는 한지호에겐 그저 스치는 과정일 따름이다.
꾸욱- 꾹!
연달아 몇 개의 침이 더 꽂혔다.
허벅지 안쪽과 낭심 부위를 수놓은 침들은 부위가 부위여서인지 더 무섭게 보였다.
직접 침을 맞은 요시모 유타는 눈을 감은 채 아래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지호는 말을 아낀 채 왼쪽 손목에 감긴 롤렉스의 초침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성기능을 살려두면 숙주에서 또 다시 병균이 활동할지 모른다.
그래서 평소보다 오금희의 기운을 더 강렬하게 실었다.
보통은 일각 정도 침을 꽂아두지만 오늘은 절반인 7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끝났습니다. 시간이 되면 침을 거두겠습니다.”
“…….”
요시모 유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다.
치료를 위해 수락 했지만, 막상 자신의 성기능이 제거 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절망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처럼 성욕이 왕성했던 사람이 남성성을 영원히 잃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다.
한지호는 어떤 위로의 말도 보태지 않았다.
녹취록 이야기도 당장은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든 치료가 끝난 다음 요시모 유타에게 자신의 카드를 보여줄 것이다.
주중 일본대사 요시모 유타.
그는 이제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시아의 평화에만 남은 인생을 걸게 됐다.
한지호는 힘없이 늘어져있는 요시모 유타를 쳐다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부디 그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존경스러운 남자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
한 사람의 남성성을 인위적으로 빼앗는다는 것,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요시모 유타의 성기 주위에 침을 놓은 한지호는 한국으로 돌아가 진료에 매진했다.
한의사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후 가장 찝찝한 치료를 하고 왔기 때문에 평범한 환자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서울 원화 한의원과 K-메디컬 타운을 오가며 바쁘게 시간을 보낸 한지호는 다시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직 요시모 유타의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일주일 사이 성기능이 완벽하게 죽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상대로 결과가 좋다면 환부를 다스리기 위한 약재 치료도 시작할 시점이다.
처방전은 미리 써뒀다.
한지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홍콩 원화 한의원의 부원장 바이룽이 처방대로 약을 만들어 놓았다.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따로 챙긴 한지호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본 부호의 별장으로 향했다.
법적인 주인은 일본 부호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요시모 유타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별장이었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라 으리으리한 별장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요시모 유타는 언제나처럼 가장 큰 방에서 한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노크로 예의를 갖춘 한지호가 방문을 열었다.
일주일만에 만난 요시모 유타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욱 수척해져 있었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는데 남은 살도 쪽 빠져 호리호리해 보였다.
하지만 건강 상태가 염려되지는 않았다.
다크 서클도 없었고, 눈동자의 초점이나 피부의 윤기도 정상이었다.
다만 깊은 마음 고생으로 입맛이 떨어져 살이 빠진 것 같았다.
“좀 어떠십니까, 대사님.”
한지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요시모 유타는 방 안으로 들어온 한지호를 보고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난 두 번의 만남에서 한지호를 극진히 환대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치료를 위해서라고 해도 한지호가 요시모 유타의 남성성을 죽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성 불능자가 된 그는 누구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따라서 한지호를 바라보는 요시모 유타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간… 정말 신기할 정도로 발기가 안 되었지요. 포르노를 보고, 온갖 자극을 받아도 전혀… 전혀…….”
“대사님께서 치료를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고름이나 상처는 훨씬 덜해졌을 텐데요.”
한지호의 말은 틀림이 없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금 얄미울 법도 했다.
의자에 앉은 요시모 유타는 숨을 들이킨 후 경과를 말했다.
성기능을 상실했으니 치료라도 완벽히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지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모를 만큼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고름이 더 터지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원래는 하루에도 여러 번 고름이 흘러내려 움직이기 힘들었는데…….”
“숙주인 성기로 침투한 병균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설명은 들었지만 정말 이리 될 줄은, 어떻게 이런 병이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세상에는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무수한 미스테리가 남아 있죠. 질병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과거의 기록을 통해 치료법을 알아냈을 뿐, 이 병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필 내게 이런 병이…….”
요시모 유타는 다시금 탄식을 내뱉었다.
한지호는 그의 신세한탄을 길게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탈의하고 누우시죠. 오늘은 환부에 약을 바르고, 탕약 복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합시다. 빨리 치료라도 다 해버려야 나도 보람을 느끼겠지요.”
요시모 유타는 주저 없이 바지를 벗었다.
그는 비서를 시켜 미리 준비해둔 실크 천 위에 알몸 상태로 누웠다.
지난주에 무려 성기능을 죽이는 치료를 받아서인지 망설임이 사라진 것 같았다.
“흐음.”
한지호는 환부를 확인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던 보랏빛 환부의 열상이 다소 가라앉았다.
게다가 새로운 고름이 터지지 않아서 이전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 보였다.
곽가의 북방 정벌대가 역병을 잡아냈던 방법이 확실히 통한 것이다.
미지의 병균은 숙주인 성기에 갇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
이제 환부만 깨끗하게 회복시키면 요시모 유타는 고통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주중 일본대사에서 물러나 은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성성을 잃어버린 그가 매진할 것은 오직 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촤르르르륵-
한지호는 준비해온 병 안에 담겨있던 약재를 골고루 펴서 발랐다.
한약재가 환부에 직접 닿기 때문에 요시모 유타가 인상을 찡그렸다.
침을 놓을 때보다는 더 심한 통증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끝이 머지 않았습니다.”
한지호는 완치라는 희망을 제시하며 요시모 유타를 다독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치료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단계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아시아 외교가에 숱한 소문을 만들어냈던 요시모 유타의 와병도 끝나게 될 것이다.
한지호는 완치 너머, 그 다음 계단을 고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