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29화 (229/255)

# 229

9장, 딜레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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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호는 요시모 유타에게 일주일을 달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하루만에 방법을 찾았다.

해결책을 손에 쥐고 일부러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밤 늦게까지 리츠 칼튼 스카이 라운지에 앉아있던 그는 해가 뜨자마자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보통 대사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한지호는 예외였다.

그에게는 요시모 유타의 모든 일정을 관리하는 수행 비서 직통 번호가 있었다.

긴 말 할 것도 없이 닥터 한이라고 밝히자마자 곧장 요시모 유타와 연결이 됐다.

아주 수월하게 약속을 잡은 한지호는 평정심을 되찾고 홍콩의 환자들을 진료했다.

요시모 유타도 낮 시간에는 대사로서의 업무를 보고 있다.

기괴한 성병이 심해지며 외부 행사 참석율은 떨어졌지만, 관저에서 업무를 보는 것까지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만약 한지호마저 치료를 못 하면 머지않아 대사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일본에서 요양이나 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남은 인생이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에 한지호가 연락을 하면 재깍재깍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오후 진료를 무사히 마친 한지호는 리펄스 베이의 별장으로 찾아갔다.

이틀 전 요시모 유타를 처음 만났던 일본 부호의 별장이다.

이번에도 그는 대사관저나 공식 사저 대신 별장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요시모 유타가 외부의 시선을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반증이었다.

단순히 체면 치레에 목숨을 거는 일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국의 대사가 외국 미성년자와의 성매매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 매장을 당하게 된다.

정계에서 은퇴하고 요양을 하는 것도 두렵지만, 온 세계가 그를 쓰레기로 낙인찍게 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그러게 왜 아랫도리 하나도 제대로 못 다스려서 이 고생을 하는 건지, 참.”

한지호는 홍콩에서 타고 다니는 콰트로포르테를 별장 앞에 주차시킨 다음 혀를 찼다.

세간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별장으로 자신을 부른 요시모 유타가 한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런 인물의 어깨에 아시아 평화가 달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한지호도 마냥 순진한 청년은 아니다.

훌륭한 개인이 곧 훌륭한 공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평가는 갈리지만, 삼국시대 최고의 덕장으로 평가 받았던 유비의 사생활도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조조는 또 어떤가.

그는 효웅이지만 위 나라의 백성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도무지 종 잡을 수 없는 괴짜에다 여색을 심하게 밝혔었다.

그렇기에 실망스럽기는 해도 요시모 유타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간밤에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미 결단을 내렸기에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해결책은 그야말로 극약 처방이다.

온갖 점잖은 척은 다 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깐 요시모 유타에게 하늘이 벌을 내리려는 것 같았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자연스럽게 대문이 열렸다.

계단을 밝고 별장 위로 올라선 한지호는 데자뷰를 느꼈다.

마치 이틀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때와 똑같은 비서가 한지호를 맞이했고, 요시모 유타는 별장에서 가장 큰 방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한지호의 머릿속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이 요시모 유타를 만났던 때와는 다르다.

이제는 그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고 있었고, 해결책도 찾아왔다.

당연히 표정부터 자세, 호흡까지 미세한 태도들도 달라졌다.

치료법을 찾은 의사는 세상 누구보다 당당해질 수 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신감이 흘러 넘치는 듯 했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요시모 유타는 웬만한 아파트 거실보다 넓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모습도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아랫도리를 잡아먹은 성병은 점점 더 심각한 고통을 주인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틀 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한지호를 맞이하지도 않았다.

일어나서 걸을 때마다 아랫배의 환부에서 고름이 떨어지며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닥터 한, 미안해요. 한 번 일어날 때마다 큰 마음을 먹어야 해서 말이지요.”

“아닙니다, 대사님. 편히 앉아 계시죠.”

한지호는 고개를 숙이고는 요시모 유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미묘하게 달라진 그의 태도를 요시모 유타도 감지한 것 같았다.

그늘진 요시모 유타의 얼굴에 기대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나 닥터 한을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이틀만에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요.”

“치료법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냈습니다.”

“스고이-! 역시 국제적인 명성이 헛된 게 아니었네요.”

요시모 유타는 반사적으로 일본어를 내뱉었다.

칙칙하던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를 늪에서 건져줄 지푸라기를 잡았으니 반색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한지호는 활짝 웃는 요시모 유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요시모 유타 대사님. 네팔 출신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통해 성관계를 가진 후 기괴한 성병에 걸렸다고 하셨죠.”

“마, 맞아요……. 헌데 그 이야기를 왜 다시?”

“평소에도 브로커를 통해 콜걸들을 자주 불렀지만 문제가 없었고, 유독 네팔 출신의 소녀와 관계를 가진 다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확실합니까? 정확한 치료를 위해 한 번 더 확인하는 겁니다.”

“확실해요. 보통 일주일에 한 명을 부르는데, 네팔에서 온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까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치료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지호가 치료법 이야기를 꺼내자 요시모 유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쉬운 치료가 아니라는 것은 그도 짐작하고 있었다.

성기 윗부분부터 아랫배까지 엉망진창이 됐는데 손쉽게 치료될 리 없다.

과연 얼마나 어려운 치료를 견뎌내야만 할까.

이 순간, 요시모 유타는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지호가 가져온 치료법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초월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병이 삼국시대 중국에서 발병했던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정말인가요? 이런 병이 또 있었다니…….”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현대 의학으로 규명이 불가능한 괴질이라 해도 역사 속에는 흔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지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병마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뿜어졌다.

한의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때의 한지호는 세상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존재다.

그는 요시모 유타를 압도하며 말을 이었다.

“당시에도 중국 북부 지방의 이종족과 성관계를 통해 역병이 퍼지곤 했습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였죠. 바로 숙주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숙주?”

“병균의 뿌리가 자리잡은 곳을 뜻합니다. 이 경우 멀쩡한 성기가 숙주이고, 환부를 아무리 치료해봤자 숙주가 건재한 이상 계속해서 같은 증상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지, 지금 그 말은… 닥터 한, 설마……?”

요시모 유타는 일본 정부 최고의 엘리트다.

그렇기에 주중 대사라는 막중한 자리에 올랐고, 차기 수상 후보로도 점쳐지는 것이다.

빠르게 말귀를 알아들은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요시모 유타는 마치 공포 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을 본 사람처럼 입을 쩍 벌리고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다행히 성기를 물리적으로 제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의학적 처방을 통해 성기, 음경과 음낭의 기능을 죽이면 숙주에 자리 잡은 병균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겁니다. 이 방법으로 대사님과 비슷한 증상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있습니다.”

“어으, 어… 그, 그래도… 어떻게 그런…….”

바지를 벗어 흉측한 환부를 보여주면서도 점잖은 자세를 잃지 않았던 요시모 유타가 말을 더듬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침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그만큼 한지호의 치료법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요시모 유타는 겉보기와 달리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50을 넘겼어도 매주 콜걸을 불러 성매매를 해왔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서는 성기능을 죽여야만 한다.

남자로서의 삶은 끝나는 것이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 고개를 저으며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정말 그 방법밖에 없어요? 그게 확실한 치료법이라고 자신할 수 있어요?”

“제 이름을 걸고 보증하겠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어디서도 치료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대로 증상을 방치하면…… 목숨까지 위태로워지겠죠.”

병의 위험성은 한지호가 강조하지 않아도 요시모 유타 자신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썩어들어간 피부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미칠 지경이다.

환부가 확장되면 병 때문에 죽거나 괴로워서 자살할지 모른다.

그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 번의 관계 때문에… 내게 왜 이런 일이……!”

한지호는 억울해하는 요시모 유타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모를 네팔 소녀와의 관계가 원인이지만, 매주 콜걸들을 부르지 않았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고향을 떠나 팔려온 네팔 소녀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손길에 놀아나고 있을까.

물론 그녀와 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100% 괴이한 성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면역 체계와 체질, 병마의 활성도 등 복합적인 요소가 맞아 떨어져야만 한다.

한지호는 굳이 네팔 소녀를 찾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에서 팔려온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서 노력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사님?”

한지호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성기능 상실을 감수하며 치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기괴한 성병을 놔둘 것인가.

선택은 오직 요시모 유타의 몫이다.

한지호는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뻔하다.

이대로 버텨봐야 심각한 증상 때문에 정상적인 성관계를 할 수 없다.

요시모 유타가 성기능을 유지하려고 목숨을 버리는 멍청한 선택을 할 리 없었다.

“치료… 할 테니 꼭 완치를 보장해줘야겠어요.”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럼 한 시가 급하니 오늘부터 바로 치료에 들어가도록 하죠.”

한지호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별장에 올 때 이미 처치에 필요한 침 케이스를 들고 왔다.

약재도 처방해서 바이룽 부원장에게 준비를 시켜 뒀다.

“오늘 침으로 성기능을 제어하고, 다음주에는 바르는 약으로 환부의 상처와 고름을 진정시킬 겁니다. 성기능을 죽이는 것 자체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침으로 혈도를 막아서 양기가 통하지 않게 만드는 것뿐, 물리적으로 절제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두 번 다시는 성기능이 회복이 안 되는 것이지요?”

완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요시모 유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지호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됩니다. 임시 방편이 아니라 숙주인 성기를 완전히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후우우… 알겠어요. 그렇다면 도리가 없지요.”

“준비가 되셨으면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시간을 드리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하의를 탈의한 다음 누워주세요.”

“밖에서 비서를 불러주겠어요? 준비를 마치고 알려드릴게요.”

한지호는 요시모 유타에게 시간을 주고 방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별장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맡았던 비서가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를 받을 준비를 마치면 한지호에게 다시 알림을 줄 것이다.

그동안 한지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숨을 골랐다.

요시모 유타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방금 전까지 나눈 대화는 모조리 녹음 됐다.

그가 스스로 미성년자 성매매를 인정한 내용이 한지호의 소형 녹음기에 담겼다.

물론 의료 윤리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의사로서의 윤리보다 더 중요한 것을 택했다.

그는 대의를 위해 파렴치한 요시모 유타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치료가 끝난 후 성기능을 잃은 요시모 유타가 이상하게 변한다면, 그래서 아시아 평화를 뒷전으로 여긴다면 억울해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요시모 유타를 컨트롤해서 제 역할을 하게 만들 카드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한지호의 녹취록은 요시모 유타에게 저승사자처럼 느껴지리라.

이제 치료를 완벽하게 해내고, 자신의 해법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한중일 3국의 은인이 되는 동시에 두 얼굴을 가진 일본 대사를 옭아매기 위해서는 의술로 불가능을 뒤집어야 한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한지호의 침에 참으로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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