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25화 (225/255)

# 225

7장, 최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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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메디컬 타운은 어느덧 김포 한강 신도시를 대표하는 랜드 마크가 돼 있었다.

더 이상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만 모이는 장소가 아니었다.

세련된 카페와 정갈한 산책로가 드넓은 부지를 채우고 있었고, 대기업이 투자해서 들여온 외국계 레스토랑도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의료 단지는 칙칙하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린 셈이었다.

따지고 보면 성형외과가 모인 강남 압구정은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으로 손꼽힌다.

K-메디컬 타운 역시 경기도와 김포를 상징하는 힙(hip)한 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외국인과 내국인 방문자들은 환자인 동시에 관광객이 됐다.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K-메디컬 타운에 들어선 의료 기관은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각 의료 기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 돌아온 날, 밀린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달려온 한지호도 만족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대표 원장이자 최대주주인 그는 나날이 발전하는 K-메디컬 타운을 보며 미소를 금치 못했다.

이곳이 허허벌판 공사장이었을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대규모 의료 단지를 건설하고, 원화 정의 네트워크를 유일한 한의학 기관으로 선정하겠다는 말을 들었던 게 엊그제 같았다.

“좋다, 정말.”

한지호의 입에서 짧지만 진심이 묻어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데 일조한 기분이다.

평일 저녁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활기를 더하고 있는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원화 아카데미 뒤편의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깐이나마 K-메디컬 타운을 돌아보길 잘했다.

신참 한의사들의 수련장이 되고 있는 원화 정의 한의원과 미래를 위한 비밀병기인 원화 아카데미 외 다른 의료 기관도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었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입주한 의료 기관이 두루두루 좋은 평가를 얻었기에 타운 전체가 살아났다.

만약 한 곳이라도 평판이 나빴다면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그런 점에서 보건복지부 양성문 장관이 일을 대단히 잘 해낸 셈이었다.

인맥이나 로비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해서 입주 기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지호 덕분에 장관직을 유지하게 된 양성문은 K-메디컬 타운의 성공적 유치를 발판삼아 더 큰 인물이 될 것 같았다.

아주 어쩌면 훗날 대선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미리부터 좋은 관계를 쌓아놓은 한지호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달게 된다.

한지호는 생각만 해도 흥이 나는 시나리오를 그리며 원화 아카데미의 입구에 섰다.

아카데미를 지키는 경호원들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입구를 통과해 1층 로비에 들어선 한지호는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다.

원화 아카데미의 오너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지문 인식과 보안 검색 등 주어진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 앞에 설 수 있었다.

띠딩-

한지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춰섰다.

신약 개발실의 직원들은 한 명도 퇴근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황의 주성분에서 부작용을 제어해냈기 때문에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한지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들 반갑게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에는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느라 고개도 돌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달랐다.

“오셨습니까, 원장님!”

“원장님! 저희가 해냈습니다!”

한 옥타브 올라간 개발실 직원들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한지호는 다시금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양 손의 엄지를 올렸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최고에요, 최고!”

굵직한 칭찬을 받은 신약 개발실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활짝 웃었다.

사실 개발실 연구진은 대다수 미한약품 출신들이다.

그렇기에 한지호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자잘한 부분에서 소통을 아끼지 않으며 많이 가까워졌다.

1차 부작용 제어라는 좋은 결과 덕분에 한지호와 연구진은 부쩍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 원장님, 피곤하실 텐데 직접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때 4층을 총괄하는 개발실장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살짝 들떠 있는 다른 연구 직원들과는 달리 차분한 태도가 돋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숱한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베테랑이다.

그렇기에 1차 부작용 제어가 천릿길의 한 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성공에 도취 된 연구진이 너무 들떠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도 실장의 일이다.

한지호는 눈앞의 신약 개발실장이 괜히 신영준 회장의 총애를 받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자신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는데 개발실장 덕택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당연히 와봐야죠. 다들 수고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서면 보고도 좋지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했고.”

“지금 바로 실험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개발실장이 자연스레 한지호를 안내했다.

다른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실험 데이터를 띄울 준비를 마쳤다.

“먼저 마황의 주성분 분석표입니다.”

개발실장의 목소리가 울리자 4층 중앙의 대형 화면에 복잡한 성분표가 나타났다.

한지호나 신영준 등 원화 아카데미의 수뇌부가 한눈에 데이터를 알아보며 보고를 받을 수 있도록 최적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주요 부작용을 발생시키던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에 아카데미에서 배합한 신약 성분을 투입했을 때의 변화입니다.”

실장의 말에 따라 화면에 떠오른 장면이 시시각각 변했다.

애플의 프리젠테이션이 부럽지 않았다.

한지호는 팔짱을 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형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외한도 이해하기 쉽게 직관적인 그래픽 이미지가 펼쳐졌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신약 성분이 투입되자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의 성분 표시가 둥글둥글해지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작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자료일 뿐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사실은 단 하나다.

마황이라는 비교적 값 싼 약재의 주성분에서 부작용을 제어해 냈다는 것.

동물 실험과 임상 실험 등 여러 절차가 남았지만, 마황의 긍정적 성분만 활용할 수 있게 만들 신약 개발의 첫 관문을 통과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한지호의 물음에 실장이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한지호가 오면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을 한 게 분명했다.

“신 회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2차 실험을 바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2차에서도 부작용 제어에 성공하면 그 다음은 동물 실험, 이후에는 임상 실험을 거쳐 상용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보통 동물 실험에서만 성공적인 결과가 나와도 투자가 쏟아지는 편이죠?”

“네, 그렇습니다. 동물 실험 결과가 좋으면 리포트를 공개하게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투자 제의가 쏟아질 확률이 무척 높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일단 한 걸음 멋지게 내딛었으니 끝까지 가봅시다.”

“그런데 대표 원장님…….”

개발실장이 긴히 할 말이 있는 듯 말끝을 흐렸다.

막힘없이 보고를 올리던 모습과는 딴 판이었다.

신중해진 그의 모습에 한지호도 이채를 띄며 대답했다.

“편하게 말하세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지원 할 테니까.”

“2차 실험, 그리고 동물 실험 준비를 위해 추가 예산 편성이 필요합니다.”

“주중에 보고서 만들어 올리세요. 홍콩 다녀와서 다음 주에 검토한 다음 바로 집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발실장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아무리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어도 1차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금액을 추가로 지원해 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지호는 망설이지도 않고 지원을 약속했다.

쩨쩨하게 굴 거였다면 2천억 원이라는 자금을 모아서 원화 아카데미를 세우지도 않았다.

설령 마황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 실패해도 투자된 연구비를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원래 그렇게 끊임없이 버티고 또 버티는 게 신약 개발이다.

한지호는 개발실의 연구원들, 그리고 원화 아카데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각의 프로젝트를 받쳐주는 기둥이다.

그가 든든히 버티고 서있어야 원화 아카데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처음으로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한 날, 한지호는 마음의 신발끈을 질끈 조여 맸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완주해내겠다.

눈을 감는 순간, 전생의 규호처럼 회한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다.

라오스에서 험한 여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진료와 신약 개발까지 챙기느라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오금희의 기운이 단전을 채우고 있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피로보다 열정이 더 강했다.

신약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이 한지호에게 불가사의한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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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라오스, 서울, 그 다음은 홍콩이다.

지난 2주 동안 무려 4개국을 돌아다녔다.

미국 LA의 비버리 힐스에서 모샤드 일라이의 장례식을 치렀고, 라오스에선 비엔티안과 시골 마을을 넘나들며 탈북자들을 치료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밀린 예약 진료와 신약 개발을 체크하느라 3박 4일이 훌쩍 지나갔다.

한지호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서울에만 있지 않았다.

홍콩 방문도 꽤 오랜만이었다.

바이룽 부원장과 중국 현지의 스텝 한의사들이 버텨주고 있지만, 역시 한의원 운영에 도움이 되는 VIP들은 한지호를 찾는다.

원장 특진을 위해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오는 환자들도 심심찮게 늘어났다.

한지호의 명성이 국제적으로 번지면서 중의학을 맹신하는 중국 VIP들의 시선도 달라진 것이다.

게다가 한지호는 상무위원이 된 추위안차오와 대륙의 여신 금링링을 치료하며 스스로를 증명한 바 있다.

콧대 높은 중국인들도 한지호의 의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에 도착한 한지호는 말 그대로 돈다발을 싸들고 그를 기다린 환자들을 만났다.

다행인 것은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급을 다투는 중환자가 찾아오진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중국 각지의 부호들이 줄을 섰는데, 라오스에서 의료 봉사를 하느라 벌지 못한 돈을 하루만에 다 채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오늘도 다들 수고했어요.”

“원장님께서 쉬지도 못하시고…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환자가 한의원 밖으로 나가고, 한지호의 인사에 바이룽이 손을 내저었다.

밀린 예약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한지호는 점심도 샌드위치로 대충 때우며 침을 잡았다.

진맥과 시침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하루 종일 밀려드는 환자들, 그것도 까다로운 중국의 부호들을 상대하면 누구든 진이 빠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호의 얼굴은 쌩쌩해 보였다.

라오스에 다녀온 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까.

“내일도, 모레도 바쁘겠지만 다 같이 힘을 냅시다. 이렇게 환자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축복.”

확실히 그는 조금 달라졌다.

도를 깨우쳤다면 과장이겠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한 건 분명했다.

바이룽 부원장과 스텝 한의사, 그리고 간호사와 직원들에게 골고루 밝은 기운을 나눠준 한지호는 차에 올라탔다.

한국에서는 벤틀리 컨티넨탈 쿠페를 타는 그는 홍콩에서도 차를 구입했다.

홍콩의 세금은 살벌한 지경이지만, 매번 택시나 리무진을 부르는 것도 일이었다.

부와아아아앙-

한지호를 태운 마세라티 콰트로 포르테는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배기음으로 명성이 높았다.

상어처럼 날카롭고 미끈한 모양이 홍콩과 제법 잘 어울렸다.

한지호는 우렁찬 배기음과 삼지창 마크를 뽐내며 홍콩 원화 한의원이 위치한 리펄스 베이를 벗어났다.

그는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한지호 덕분에 정적의 음해를 이겨내고 중국 대륙을 움직이는 상무위원이 된 남자, 추위안차오.

추위안차오가 친히 일정을 맞춰 홍콩으로 왔다.

상무위원이 한국에 방문하면 장관이 직접 나가서 맞이한다.

당연히 대통령과도 독대를 하는 국빈 대우를 받는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국가 수반급으로 모셔지는 게 당연하다.

한지호는 그런 추위안차오에게 생명의 은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치료의 대가는 충분히 받았지만, 추위안차오는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지호와 추위안차오.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로 만났을 때보다 한층 더 거물이 돼 있었다.

한의학계와 정계에서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둘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운전대를 잡은 한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작정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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