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4장, 나누는 삶 (1)
서울로 돌아온 한지호는 언론 앞에 나서지 않았다.
국제적 거물을 치료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식상해졌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게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한지호가 일시적으로나마 모샤드 일라이의 파킨슨 병 증세를 회복시킨 것은 세계 의학계에서 대단한 화제거리였다.
이미 다른 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에 완치라는 표현을 쓰긴 어렵다.
그러나 역사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 파킨슨 병과의 싸움에서 한지호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헨리오 무크를 복귀시키고, 영국으로 넘어가 왕실의 인정을 받았을 때와는 반응이 또 달랐다.
언론만 관심을 표하는 게 아니라 세계 의학계의 원로 교수들이 한지호의 의술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콧대 높은 서양의 의사들, 그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했다는 존스 홉킨스 의대의 교수들이 한지호라는 동양인 한의사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이 역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때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소회를 밝히고, 어떻게 권투의 전설 모샤드 일라이를 도와줬는지 알리는 게 정석이다.
더불어 세계 의학계의 러브콜에도 즉각 응답했어야 한다.
그러면 한지호의 국제적 명성은 또 한 단계 큰 상승폭을 그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들과의 교류는 몇십 억 원짜리 광고보다 더 나은 홍보 효과를 일으켰을 터였다.
한지호가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취재 요청 등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한 채 조용히 진료에만 집중했다.
모샤드 일라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한지호를 연호하며 떠들썩했지만, 당사자인 그는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조용히 진료만 하며 보냈다.
절대 한가한 일정은 아니었다.
서울과 홍콩을 오가고, 틈틈이 김포의 K-메디컬 타운을 방문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할 리 없다.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스케줄을 조정해서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지금 한지호는 분명 의도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피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이제까지의 행보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파킨슨 병이라는 불가해의 질병과 맞서 싸워 가장 큰 주목을 받게 된 시점에서 왜 이러는 것일까.
미스테리한 한 달이 지나고, LA에서 소식이 날아왔다.
권투의 전설 모샤드 일라이가 눈을 감고 운명했다는 연락이었다.
모샤드 일라이는 파단법 덕분에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무려 한 달을 더 살 수 있었다.
단순히 숨만 쉬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며 의미있게 삶을 마무리했다.
그가 거액의 자산 중 절반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뉴스도 세상을 감동시켰다.
한지호는 조용히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맨디에게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 가까워 왔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일정을 뺄 수 있었다.
그는 모샤드 일라이의 주치의가 사망 선고를 내리자마자 연락을 받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에 탔다.
이제는 한지호가 자리를 비워도 원화 한의원이 흔들리지 않는다.
원장 특진을 보는 VIP 환자들에게만 양해를 구하면 된다.
역삼동의 서울 원화 한의원은 문재영 부원장과 신입 한의사들이 지키고, 홍콩 원화 한의원에도 바이룽 부원장과 새로 합류한 든든한 멤버들이 있다.
K-메디컬 타운의 원화 정의 한의원과 원화 아카데미 역시 걱정 할 일이 없었다.
단순히 잘 나가는 한의원을 만드는데 만족하지 않고 시스템을 확립하는데 공을 들였던 한지호의 노력이 열매를 거둔 셈이다.
홀가분하게 비행기를 타고 LA로 날아간 한지호는 곧장 익숙한 동네로 이동했다.
LA 공항에는 맨디가 보낸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맨디를 비롯한 일라이 패밀리는 한지호를 동양에서 온 현자이자 은인으로 대우해줬다.
파단법을 펼치고 받은 치료비는 정확히 77만 7777달러.
한지호가 행운을 가져왔다며 럭키 세븐을 맞춰준 것이다.
현재 환율을 적용하면 9억 1500만 원에 다다른다.
한 사람을 치료하고 받은 치료비 최고치는 헨리오 무크가 지불한 100만 달러였다.
하지만 헨리오 무크는 홍콩에서 머물며 장기간 치료를 받았었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왕복 비행 시간까지 고작 3일을 쓰고서 10억 원 가까이를 받았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액수다.
물론 한지호가 모샤드 일라이의 가족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맨디의 초청을 받고 10시간 넘게 날아온 것은 순수하게 이 세상을 떠난 모샤드 일라이를 배웅하기 위함이다.
모샤드 일라이는 그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안겨줬다.
그로인해 언론과의 접촉도 피하고 지난 한 달 동안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특별한 교감을 나눈 스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무진 뒷좌석에 앉아 LA 시내를 지나가던 한지호는 복잡한 심경으로 창밖을 쳐다봤다.
“어?”
그런데 한지호의 눈길을 사로잡는 광경이 있었다.
고속도로 너머 보이는 고층 빌딩 전광판에 익숙한 영상이 계속 재생됐다.
모샤드 일라이가 전성기 때 링 위에서 도전자들을 무자비하게 쓰러트리는 영상이다.
한지호도 유튜브를 통해 몇 번씩 재생해서 봤던 그의 전성기 베스트 영상이었다.
LA 시내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라도 볼 수 있게끔 초고층 빌딩 옥상 전광판에서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영상 아래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자막이 떠올랐다.
- Rest In Peace, OUR CHAMPION! -
한국말로 번역하면 우리의 챔피언에게 명복을 빈다는 뜻이다.
LA 시에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기업인이나 후원자가 전광판을 빌려 영상을 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LA 시민들, 그리고 미국 국민들과 전세계의 팬들이 한 마음으로 모샤드 일라이를 추모하는 것 같았다.
보통 시대를 풍미한 스타가 죽으면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추모 열기가 피어난다.
모샤드 일라이의 경우 지금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만드는데 일조한 노인 세대가 앞장서서 추모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피땀흘려 나라를 일으킬 때, 링 위에서 주먹 하나로 세계를 평정한 모샤드 일라이는 세대를 대표하는 영웅이었다.
그의 죽음은 노인들에게 한 시대가 갔음을 알리는 동시에 젊은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기폭제였다.
한지호를 태운 리무진은 비버리 힐스로 진입하기 위해 LA 다운타운을 가로질렀다.
인파가 많은 거리에 들어서자 더 뜨거운 추모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슴 한 켠에 검은색 리본을 달거나 리본 모양 뱃지를 붙인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모샤드 일라이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검은 리본을 부착한 것이다.
한지호는 울컥한 기분을 느끼며 뒷좌석 깊이 몸을 묻었다.
언젠가 자신이 눈을 감았을 때, 그때 세상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지 상상이 됐다.
그리움과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엄청나게 잘 나갔던 사람으로만 남을까.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한지호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원화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한의학을 체계화 시키고, 신약 개발에 매진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100% 남 좋은 일은 물론 아니었다.
한의학을 체계화시키면 전세계 의료계에서 강력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
게다가 신약 개발은 수천 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안겨줄 것이다.
세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의 야망을 위한 일이라는 게 더 솔직한 말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리무진을 운전한 기사가 도착을 알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버리 힐스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눈앞에 보였다.
한지호는 짐을 트렁크에 놔둔 채 차에서 내렸다.
막상 모샤드 일라이의 저택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였다.
미국 장례식은 파티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다만 거실로 가는 복도에서부터 은은한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한지호가 넓은 거실에 나타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한지호를 초대한 맨디도 마침 거실에 있었다.
“닥터 한!”
맨디가 그를 크게 부르며 한 걸음에 달려와 두 손을 덥썩 잡았다.
다른 가족들도 한지호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건네왔다.
일라이 패밀리의 환대에 한지호도 고개를 숙이며 마음을 전했다.
“상심이 크시겠네요. 위로를 전합니다.”
“아니에요. 닥터 한 덕분에 마지막까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잘 했고, 즐거울 순 없지만 따뜻하게 마지막을 보내드렸답니다.”
맨디의 큰 눈망울에는 물기가 살짝 어려 있었다.
하지만 원망이나 후회가 남아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한지호가 선물해준 마지막 한 달을 알차게 보냈기 때문이리라.
“제가 미국식 장례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어떻게 예의를 표하면 될까요?”
그답지 않게 어리숙한 한지호의 물음에 맨디가 활짝 웃었다.
“호호, 별 다를 건 없어요. 저기 앞에 파파가 누워있으니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 되는 거죠. 일부러 가족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서 분주하지 않게 장례를 치르고 있어요. 내일 비버리 힐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파를, 아버지를 모실 거예요.”
간단하게 안내를 받은 한지호는 거실 중앙에 놓인 관으로 걸어갔다.
안이 보이게끔 투명한 유리로 덮인 관 안에는 모샤드 일라이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한지호는 관 옆에 놓인 성경책에 손을 올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덕분에 제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모샤드. 하늘에서 편히 쉬시기를.’
짧지만 진심어린 추모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맨디가 질문을 던졌다.
“LA에는 얼마나 머물 건가요? 닥터 한이 원한다면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편히 쉬어도 좋아요.”
“그러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해야 할 일? 하긴, 닥터 한처럼 유명하면 진료 스케줄이 엄청나겠죠.”
“그것도 그렇지만… 꼭 한 번 가보고픈 곳이 있습니다.”
“어디인가요?”
“라오스입니다.”
맨디도 전혀 예상 못한 지명이었는지 가뜩이나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지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라오스에서 모샤드 일라이에게 받은 가르침을 실행에 옮겨볼까 합니다. 그게 제 나름의 추모가 될 것 같군요.”
알 듯 모를 듯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한지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모샤드 일라이의 관을 쳐다봤다.
관 속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이 무척 편안해보여서 인상적이었다.
어떤 삶을 살면 마지막이 저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그 숙제를 풀기 위해 한지호는 라오스로 날아갈 결심을 굳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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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LA의 장례식에 다녀온 한지호는 일주일만에 다른 비행기를 탔다.
그동안 스케줄을 다시 조율하고, 홍콩과 서울에서 그를 기다리던 특진 VIP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리고는 무려 2주의 휴가를 내버린 것이다.
해외 일정으로 한의원을 비울 때가 종종 있었지만, 한 번에 2주를 비운 적은 없었다.
서울과 홍콩에서 각각 두 번씩 진료를 못하게 되는 기간이다.
시스템적으로 한의원이 운영되는데 문제는 없지만, 특진 환자들을 진료하지 못하는 만큼 금전적 손해는 엄청나다.
원장 특진을 신청한 VIP 환자들은 간단한 침을 맞고 약 처방을 받는 것으로 수백만 원의 치료비를 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2주를 비우면서 억대의 돈을 포기한 셈이었다.
외국의 거물을 치료하면 그 이상의 수익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명 스타를 치료하고 돈을 더 벌기 위해 2주를 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돈을 벌기보다 쓰기 위해 2주가 필요했다.
모샤드 일라이를 치료한 이후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한지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히 라오스 땅을 밟았다.
라오스는 최근 배낭여행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국가였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 탈북자들의 주요 루트였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을 거쳐 라오스에 다다른 탈북자들은 태국 국경을 넘는 순간 만세를 부른다.
태국까지만 당도하면 한국으로 망명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오스는 육로를 이용한 탈북의 최종 기착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라오스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우호적이었지만, 최근들어 북한과 송환 협약을 맺으며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라오스에 도착한 탈북자들은 몸을 숨긴 채 어떤 의료 혜택도 못 받고 괴로워하고 있다.
한지호는 바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남몰래 라오스로 날아온 것이다.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당장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라는 것을 모샤드 일라이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한 한지호는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