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69화 (169/255)

# 169

1장, 향기 뒤에 숨은 악취 (1)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꽃은 폭력이나 위험성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는 무엇도 판단할 수 없다.

아름다운 장미만이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은은한 향을 자랑하는 화초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독초로 바뀐다.

예로부터 약(藥)과 독(毒)은 한 끗 차이라고 했다.

약을 잘못 쓰면 독이 되고, 독을 잘 쓰면 약이 된다.

꽃도 마찬가지다.

명징 약초의 최치우는 화차(花茶)의 달인으로도 유명했다.

꽃잎을 우려서 달큰하고 깊은 맛의 차를 내주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한지호도 종종 한의원 건물 3층으로 올라가 그가 주는 화차를 즐기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몸에 약이 되는 화차가 아니라 독이 되는 화차를 만들 수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지에 오른 약초꾼이나 한의사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범인이 차를 통해 형님의 몸에 독을 주입했다는 말 아니오?”

추따이언이 심각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피를 빼고, 침을 놓으며 첫 번째 치료를 마친 한지호는 추 씨 형제와 마주앉아 있었다.

추위안차오도 여전히 얼굴 반쪽이 마비 돼 있었지만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목과 어깨의 떨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는 잠깐 사이에 한지호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눈치였다.

“화, 화독이라면….”

한지호는 입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불편해 말을 더듬거리는 추위안차오를 쳐다봤다.

질문은 추따이언이 했지만 대답은 추위안차오에게 하려는 것이다.

“평소 국화차를 즐겨 드시지 않습니까?”

“그, 그것을!”

추위안차오가 눈을 크게 떴다.

마비되어 일그러진 눈과 크게 뜬 나머지 눈의 차이가 도드라지게 보였다.

추따이언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의자에서 튀어나올 듯한 기세로 한지호를 바라봤다.

“형님께서 가장 즐겨 마시는 차가 국화차인 것을 어찌 알았소?”

“구절초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면 독성이 나옵니다. 장복하게 되면 마비 증상이 일어나죠.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체내에 독성을 물들였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 힘듭니다.”

“그, 그런…….”

“식성이 특이해도 꽃을 직접 먹을 일은 없으니 차로 우려 마셨겠지요. 그렇다면 구절초와 같은 종에 속하는 국화차 말고 다른 방법이 또 있겠습니까.”

한지호의 막힘없는 대답이 추 씨 형제를 계속해서 놀라게 만들었다.

추위안차오는 깊은 배신감에 멀쩡한 두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에 반해 추따이언은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듯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놈이, 그놈이 감히! 형님께서 그리도 아꼈는데 어찌!”

“짐작 가는 인물이 있나 보군요.”

“계절마다 형님께 귀한 차와 건강식품을 진상해 올리던 놈이 있소. 그놈이 구해왔던 녹용이나 송로, 인삼 등이 워낙 극상품이었고 국화차 역시 형님이 즐기셔서 의심하지 않았거늘…….”

“구절초의 독성을 우려낼 수 있는 한의사나 중의사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당장 몸에 무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빼앗을 만큼 치명적인 독을 주입할 필요도 없고. 아주 천천히 독성이 쌓여서 안면 마비를 일으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범인의 목적은 추 조직부장님의 목숨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상무위원이 못 되게 하는 것, 그게 전부였겠죠.”

“무슈라이가 사주한 것이오!”

추따이언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고, 추위안차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호는 잘 모르지만 중국 공산당의 권력 투쟁은 그야말로 살벌한 것이었다.

추위안차오가 상무위원이 되면 다른 세력은 반드시 화를 입는다.

반면 그가 마비 증세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이익을 얻는 쪽이 있다.

무슈라이는 추위안차오가 물러날 경우 대신 상무위원에 오를 유력 후보였다.

아마 무슈라이의 사주를 받은 인물이 추위안차오에게 접근해서 친분을 다지며 독성이 깃든 국화차를 진상한 것 같았다.

“국화차를 올린 사람이나 배후를 잡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한의사로서 파악한 진상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물론이오. 이것만으로도 아주 큰 도움이 됐소. 선생의 공을 잊지 않겠소!”

추따이언은 언제 한지호를 싫어했냐는 듯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호는 속으로 웃음을 감추며 본론을 꺼냈다.

“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쌓인 독성을 해독할 수 있는지, 그 여부입니다.”

“선생의 말이 참으로 옳소. 해독만 된다면야 형님께서 상무위원이 되신 후 무슈라이 일파를 쓸어버릴 것이오.”

한지호는 추따이언이 형을 대신해 뿜어내는 살기를 모른 척 했다.

정치권의 은원(恩怨)은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는 다만 한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따름이다.

“임시방편으로 독혈을 뽑아냈지만, 계속 피를 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속 된 출혈로 다른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소?”

“위험해도 한 방에 독성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발본색원을 하시겠다?”

“그렇습니다. 추 조직부장님께선 이미 제게 목숨을 맡기셨습니다.”

한지호의 말에 추위안차오가 동의를 표했다.

처음 치료를 시작하며 대혈침을 꽂기 전, 치료할 동안 목숨을 맡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추 씨 형제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야 중앙 회의에 참석해서 상무위원이 되실 수 있겠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독환을 도려내는 것입니다.”

한지호의 입에서 생소한 단어가 나왔다.

독환(毒環)이라는 말은 추 씨 형제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차를 통해 흡수된 독성이 목과 턱 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독은 본래 하나로 뭉쳐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독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독 기운이 뭉치면 작은 고리가 됩니다.”

“그것만 제거하면 해독이 된다는 말이오?”

“100%는 아니지만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이후에는 해독에 좋은 약재를 달려 먹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첨단 의료 기기로 검사를 해도 독환이나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었소.”

“눈이나 기계로 확인할 수 있는 종양이 아닙니다. 독성의 기운이 모여 만들어진 것, 한의학과 중의학에서 말하는 기경팔맥이나 혈도 역시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한지호가 자세하지만 단호하게 설명을 했다.

그때 배신의 충격으로 몸을 떨고 있던 추위안차오가 손을 들었다.

“나는 이미 선생께 모, 목숨을 맡겼지. 위, 위험을 감내할 테니 무슨 방법이든 써도 괜찮다.”

절반 가까이 마비된 입술을 움직이며 뱉어낸 말이 상황을 정리했다.

한지호는 추위안차오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환자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치료는 한의사와 환자, 그리고 하늘이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추위안차오는 까다로운 증상을 앓고 있지만 좋은 환자였다.

“피를 흘렸고, 더 흘릴 예정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하셔야 됩니다. 치료는 세 시간 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피할 수 없는 승부다.

앞으로 24시간이 지나지 전, 한지호와 추 씨 형제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 같았다.

+++

추위안차오가 마치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가까이서 그를 보지 않는다면 숨이 멎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뿐이다.

얼굴을 추하게 만드는 마비 증상도 일시적으로 멈췄다.

잠이 든 상태에서는 끊임없이 안면 근육을 꿈틀거리는 미세한 발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끼이익-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한지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한지호는 수마(睡魔)에 사로잡힌 추위안차오를 보고 만족했다.

추위안차오는 저절로 잠든 게 아니었다.

한지호가 그의 수혈(睡穴)에 침을 꽂고 기운을 불어넣어 인위적으로 의식을 뺏어온 것이다.

일종의 마취 상태라 봐도 된다.

물론 약물을 투여하는 전신 마취보다는 강도가 약하다.

그러나 꽤 심한 통증도 무리 없이 버티며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정도는 된다.

일찍이 화타는 마비산을 통해 환자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외과 수술을 집도했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마취술을 시도한 의사가 화타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인 규호의 의술을 이은 한지호에게 있어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굳이 마비산을 만들지 않아도 문제 없었다.

스윽-

한지호가 손가락을 추위안차오의 콧구멍 앞에 붙였다.

약하지만 호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독환을 제거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추위안차오의 상의를 벗겨 놓았고, 피가 흐를 것을 대비해 침대 위에 커다란 수건을 여러 장 깔았다.

하지만 마지막 테스트를 해야 한다.

한지호는 기다란 침을 꺼내 추위안차오의 심장 부위와 명치 어림에 놓기 시작했다.

푸욱- 푸우욱-

깜짝 놀랄 만큼 침이 깊이 들어갔다.

더구나 통점(痛點)을 정확히 겨눈 것이었다.

일부러 통증이 심하게 느껴지는 위치에 침을 놓은 것은 테스트를 하기 위함이다.

이만한 고통을 가해도 추위안차오가 깨지 않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

여러 곳의 통점에 침을 깊이 꽂았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추위안차오는 여전히 죽은 사람처럼 깊이 잠들어 있었다.

“됐어, 이만하면.”

한지호는 만족한 듯 혼잣말을 읊조리며 통점에 놓은 침을 회수했다.

사실은 그도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 이후 처음으로 피부를 가르는 치료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타와 규호에게 있어 피부를 가르는 일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었다.

관우의 팔을 갈라내어 뼈에 박힌 독화살 조각을 꺼낸 적도 있었다.

심지어 조조에게는 머리를 열어 화기를 발산시켜야 한다고 권했었다.

화타와 규호가 살아 돌아왔다면 목과 턱 사이를 살짝 찢어 독환을 소멸시키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해냈을 것이다.

한지호도 자신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이 문제다.

머릿속에 전생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실제로 해본 경험이 없기에 긴장이 되는 게 당연했다.

처억.

한지호는 추따이언이 구해준 소도(小刀)를 집었다.

한의학과 중의학에서는 매스 대신 전통적인 형태의 작은 칼을 사용한다.

동양 전통의학에도 엄연히 외과 치료법이 존재하고, 예로부터 소도를 이용한 절개와 해부가 이뤄져 왔었다.

동의보감의 허준은 조선시대에 인체를 해부했고, 지금도 중의사들은 합법적으로 드레싱 치료를 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전통의학의 명맥이 많이 끊기면서 내과 치료에 집중하게 됐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한지호도 외과 치료에서 두각을 나타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손을 다치게 하고 붓기를 가라앉힌 것과 블랙문 카지노에서 조준혁의 손을 즉시 치료해낸 것 모두 외과 시술이다.

한지호는 스스로를 믿으며 소도를 추위안차오의 목에 가져갔다.

사아아악-

예리하게 다듬어진 칼날이 턱과 목이 연결되는 부위를 갈랐다.

칼날이 파고든 틈으로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정밀한 손짓이었기에 피가 마구잡이로 솟구치진 않았다.

목에서도 끈적끈적한 독혈이 붉은 피와 섞여 침대에 깔아놓은 하얀 수건을 적셨다.

절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작은 틈.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한지호가 소도로 열어낸 부위는 사혈(死穴) 근처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독성이 전신으로 퍼질 뿐 아니라 환자가 즉사할 수도 있다.

위험한 독 기운은 똘똘 뭉쳐 사혈 가까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기운은 혈도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아래턱과 목젖 사이, 그 안으로 소도가 들어갔다.

소도의 칼날에는 독과 상극인 불의 기운, 오금희 조공의 화기(火氣)가 담겨 있었다.

손끝을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멀쩡한 근육과 혈관을 자를지 모른다.

사혈을 건드려선 더더욱 안 된다.

한지호는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며 승부를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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