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6장, 국민 시너지 (3)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유대성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다리를 누르며 추궁과혈을 하고 있는 한지호의 머리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뚝뚝 떨어진 땀이 침대 시트를 적셨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유대성은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추궁과혈은 단순한 마사지가 아니다.
정확하게 혈도를 눌러 자극을 주는 방법이다.
더구나 한지호는 오금희의 내공까지 사용해서 혈도를 자극하고 있다.
스포츠 마사지를 받을 때 느껴지는 고통의 족히 다섯 배는 참아내야 한다.
뜸으로 하체의 냉기를 몰아냈지만 아직 부족하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유대성의 하체를 주무르기 시작한지 벌써 30분.
한지호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전력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추궁과혈을 받는 유대성의 자세도 남달랐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픔을 참지 못해 신음을 흘리거나 엄살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지언정 절대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뜸을 뜰 때 뜨거움을 호소했던 것도 무척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지호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는데 환자인 자신이 아픈 티를 내면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성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대성다운 태도였다.
“거의 끝나갑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더 아플지도 모릅니다.”
한지호가 양 손을 무릎 아래로 가져가며 미리 경고를 했다.
유대성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충분히 아픈데 지금보다 더 아플 수도 있다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한지호는 손가락 끝에 오금희 조공(鳥功)의 기운을 가득 담았다.
심장에서 치솟은 화기(火氣)가 손가락 끝에 맺혔다.
그 상태로 음릉천 혈을 짚었다.
음릉천은 무릎 뼈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혈도로 종아리와 발로 연결되는 기혈의 관문 역할을 한다.
화르르륵-
손가락을 통해 불의 기운이 유대성의 무릎으로 침투했다.
누르는 압이 강하지는 않았다.
대신 혈도로 쏟아 부은 화기의 강도가 높을 뿐이었다.
“으으으음…….”
잘 참던 유대성의 입가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치 화상을 입는 기분일 것이다.
한지호는 정신을 집중한 채 남은 기운을 더 쥐어짰다.
이것이 추궁과혈의 마지막 단계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강렬한 화기를 불어 넣었을까.
곧이어 한지호가 한숨을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후우-. 추궁과혈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체력적으로 많이 지쳤다.
서울 원화 한의원에서 하루 종일 진료를 하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날아왔다.
그런데 쉬지도 못하고 유대성을 치료하느라 기력을 소모하고 있으니 지치는 게 당연했다.
“다리가…… 다리가 덜 쑤십니다, 선생님!”
한지호가 숨을 돌리는 사이 누워있던 유대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각조각 나는 것 같았던 종아리와 발의 통증이 상당히 완화된 것이다.
한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계속 누워있으세요. 단기간에 냉기를 몰아내고 열기를 받아들이느라 몸이 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몸살 기운이 많이 나아지긴 했습니다.”
“침을 놓고, 머리의 열기를 다스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컨디션이 좋아질 겁니다. 물론 그 전에 한 잠 길게 푹 주무셔야겠지만.”
“믿어지지가 않네요. 한 선생님, TV에서 종종 봤지만 진짜 이런 분일 줄은…….”
유대성의 칭찬에 한지호는 미소로 응대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매니저를 쳐다봤다.
“수건 갈아야 할 시간입니다. 5분만 있다가 침을 놓겠습니다. 넉넉잡아 1시간 안에는 치료가 끝나겠군요.”
“네, 네!”
넋을 놓고 추궁과혈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재빨리 욕실로 달려갔다.
그의 임무는 시간마다 차가운 수건을 갈아서 유대성의 이마에 올려놓는 것이다.
한지호는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침을 놓기까지 5분.
짧은 시간이지만 꿀 같은 휴식이다.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스위트 룸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하면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수승화강이 뒤집혔다는 원인을 밝혀냈고, 알맞은 방법으로 치료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지호는 추궁과혈이 끝났을 때 속으로 팔부능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목표점이 보인다.
조금만 더 달려서 결승선을 통과하면 국민 MC 유대성의 은인이 된다.
더불어 홍콩과 중국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새벽이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한지호는 유난히 환하고 밝은 아침 해를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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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놓는 건 일사천리였다.
한지호의 최고 강점으로 꼽히는 분야는 누가 뭐래도 침술이다.
진맥이나 약재 처방에도 자신이 있지만, 역시 침술이 첫 번째 무기다.
뜸과 추궁과혈로 혈도를 열어놓은 후 침술을 시전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바로 침을 놓는 것과는 효과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러 번에 걸쳐 혈도를 자극시킨 다음 침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침 하나를 놓을 때마다 바로바로 반응이 왔다.
유대성은 찌릿한 느낌이 다리를 거쳐 전신으로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혈도가 제대로 자극을 받아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혈액순환은 물론이고, 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돌고 있다.
한지호는 침을 다 놓고 15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유대성의 다리와 발바닥에 빼곡하게 놓았던 침을 일일이 뽑았다.
“좀 어떠세요?”
“말도 안 됩니다. 정말 말도!”
“몸살기가 가라앉았죠?”
“아직 찌뿌둥하긴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몸이 쑤셔서 잠이 안 올 정도였는데…….”
“머리도 이전보다는 덜 아프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두통이 있지만 강도가 약해진 기분입니다.”
“수승화강에서 화강을 먼저 해결했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하반신으로 내려오게 됐으니 머리에 찼던 열기도 자연스레 순환이 된 것이죠. 이제 두통을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한지호의 말이 유대성을 안심시켰다.
직접 치료 효과를 체험했기에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는 새로운 침을 손에 들었다.
“머리에 침을 놓는 걸 두침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두피 상응부에 침을 찔러 대뇌 피질구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의술입니다. 1975년 중국 산서성의 초순발 선생이 두침을 확립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머리에 침을 놓는 방법은 전승 돼 왔습니다.”
“네.”
“단 세 개의 침만 놓아서 유대성 씨의 머리에 차있는 열기를 해소시키겠습니다. 엎드려서 누워 보세요.”
앞의 어려운 설명은 잘 이해되지 않아도 세 개의 침으로 해결을 보겠다는 말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유대성은 군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누웠다.
엎드린 유대성이 눈을 깜빡이는 찰나, 한지호는 망설이지 않고 첫 번째 침을 놓았다.
백회혈이었다.
정수리 끝에 위치한 백회혈은 몸의 기운과 외부의 기운이 소통하는 창구다.
그곳에 침을 놓아 머리의 열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도왔다.
다음은 뒷목이다.
뒷목 윗부분 움푹 패인 곳에 위치한 경와혈이다.
목은 기의 흐름을 관장하는 부위다.
디스크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로 목을 다치면 온몸이 불편해진다.
잘못하면 전신불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목이 우리 신체가 매끄럽게 작동 되도록 다스리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경와혈에 제법 깊이 침을 놓았다.
머리의 열기가 목을 거쳐 몸 아래로 내려가도록, 그리고 원래 있어야 할 수기가 목 위로 올라오도록 통로를 넓힌 것이다.
이처럼 침 하나하나에 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절대 아무 혈도에나 마구잡이로 침을 놓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침을 놓으면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낳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돌팔이 한의사는 돌팔이 의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다.
물론 한지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한지호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세 번째 침을 놓았다.
흔히 말하는 뒤통수, 뒷골에 있는 옥침혈이 그 주인공이었다.
백회, 경와, 그리고 옥침까지.
거침없이 세 개의 침을 놓은 한지호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대부분의 침은 15분, 일각(一刻)이 지나면 효능을 발휘합니다. 처음 일각 동안 혈도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이후에는 자극을 토대로 신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15분만 누워있으면 되나요, 선생님?”
“네. 편하게 엎드려 계세요.”
한지호는 유대성을 놔두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매니저가 침실 안을 지키고 있기에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스위트 룸의 바(bar)에서 차가운 에너지 음료를 꺼내 마셨다.
탄산이 섞인 에너지 음료를 마시자 피로가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에너지 음료는 간에 안 좋다.
운기조식으로 컨디션을 조절하는 한지호는 커피는 마셔도 에너지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긴 하루였다.
내공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 신이 되는 건 아니다.
그도 사람이기에 피로가 누적되면 지치기 마련이고, 눈꺼풀이 태산처럼 무거워져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다.
“또 한 건 해냈다, 한지호.”
빈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한지호가 혼잣말을 읊조렸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를 칭찬해준 것이다.
갑자기 연락을 받고 달려와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치료 결과가 걱정되진 않았다.
다리의 냉기를 해소시키며 유대성이 효과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아마 머리에 꽂은 침을 뽑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유대성의 두통과 몸살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내일 오후, 각종 언론과 팬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유대성은 멀쩡한 모습으로 행사 무대에 설 확률이 높다.
분명 중국 기자들은 유대성의 몸 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이고, 그는 한지호에게 치료를 받아 몸이 나아졌다고 대답할 터였다.
자연스레 한지호는 유대성을 낫게 해준 한의사로 대륙의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에서 굵직한 스타와 거물들을 치료하며 명성을 얻었던 것처럼 홍콩에서도 같은 길을 걷는 셈이다.
명징 약초의 최치우 사장이 조언해준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저벅저벅.
한지호는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통유리 창문 앞에 섰다.
리츠칼튼은 홍콩의 꼭대기에 우뚝 서있다.
그렇기에 스위트 룸 거실에서는 홍콩 야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밤을 지나 새벽이 깊었지만 별처럼 반짝이는 홍콩의 건물 조명은 여전했다.
한지호는 아찔한 야경을 내려다보며 처방을 생각했다.
수승화강을 바로 잡았기에 특별한 약재를 처방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체온을 안정시키고 활력을 찾아주는 한방차를 끓여 꾸준히 마시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쑥과 인삼, 생강과 구기자, 대추와 계피 모두 홍콩에서도 구하기 쉬운 약재다.
어차피 며칠 뒤면 중국 투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당분간 꾸준히 한방차를 복용하라고 권할 작정이었다.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와 전신으로 퍼졌다.
유대성은 국민 MC이자 한류스타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 또 한 사람의 환자를 자신의 의술로 치료해냈다.
사람을 고쳤을 때 느껴지는 이 특별하고 뿌듯한 감정은 의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 한의사와 국민 MC의 첫 만남, 둘의 궁합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