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58화 (158/255)

# 158

6장, 국민 시너지 (2)

수승화강(水昇火降).

평소 생활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워있는 유대성도 곧바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반응을 할 뿐이다.

한지호는 환자인 유대성이 알아듣기 쉽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환자를 안심시켜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치료의 첫 걸음이다.

“혹시 사우나 가보신 적 있으세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유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사우나에 가보면, 열탕에 두한족열이라고 써놓은 곳이 있습니다. 탕은 뜨겁지만 머리를 기대는 부분은 아주 차갑게 식혀놓은 거죠.”

“아…….”

한지호가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는 듯, 뒤에 서있는 매니저가 탄성을 흘렸다.

유대성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는 눈치였다.

“두한족열. 머리는 차갑고 발은 뜨겁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혈액순환이 잘 되고, 기의 흐름도 원활해집니다. 뜨거운 열탕에서 머리만 차갑게 식힐 수 있도록 해놓은 사우나에도 한의학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는 겁니다. 수승화강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차가운 물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뜨거운 불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야 우리 몸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죠.”

사우나에 빗대어 설명을 하니 유대성도 금방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어려운 한의학 지식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것은 한지호의 주특기 중 하나다.

환자 스스로 자신이 왜 아프고, 어느 부분을 고쳐야 낫는지 알게 되면 치료가 훨씬 원활해진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지호가 대한민국 상위 1%들의 마음을 손쉽게 사로잡았던 것이다.

의술이 뛰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역량이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유대성 씨는 수승화강이 거꾸로 뒤집힌 상태입니다. 그러니 진통제나 해열제를 처방해도 그때 뿐, 계속 몸이 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법은 간단합니다. 머리를 차갑게 식혀주고 뜨거운 기운을 아래로 내리면 컨디션이 좋아질 겁니다.”

말은 쉽지만 절대 쉽지 않은 치료이다.

우선 수승화강의 원리를 체크해서 진단을 내리는 것부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뒤집힌 열기와 냉기를 원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유대성은 홍콩 행사 무대에 서야 하는 입장이다.

한가롭게 시간을 써가며 치료를 오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지호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원인도 찾았고, 해결책도 있다고 밝혔다.

홍콩에서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달리 완벽한 모습으로 유대성이 팬들과 행사를 진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유대성 씨의 몸의 수승화강을 맞춰 놓겠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려면 6시간 정도 남았다.

한지호는 일주일 가까이 중국 의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두통과 몸살을 하룻밤 만에 치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절대 허풍을 떨지 않는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유대성과 매니저는 아직 한지호의 의술을 체험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왜 국민 한의사라 불리는지, 원화 한의원과 네트워크가 어째서 단기간에 위천 한방병원의 라이벌로 성장했는지, 오늘 밤 몸소 증명할 차례다.

증명의 밤, 어둠이 짙어지는 가운데 그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

홍콩 현지에서 부른 의사는 돌아갔다.

한지호가 온 이상 그가 더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리츠칼튼 스위트 룸 안에는 한지호와 유대성, 그리고 매니저만 남게 됐다.

해가 뜨기 전까지 치료를 공언한 한지호는 먼저 차가운 수건을 주문했다.

가능한 차가운 물에 수건을 담군 후 물기를 쫙 빼서 가져오라는 부탁을 했다.

그것도 10분 간격으로 계속 수건이 필요하다.

물론 유대성의 매니저는 군소리 없이 지시를 따랐다.

마음 같아선 그는 더 한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유대성이 회복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무사히 홍콩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홍콩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느냐에 걸린 액수가 수십 억 원이다.

매니저 입장에서 한지호는 하늘이 그동안 유대성의 선행을 어여삐 여겨 보내준 귀인이나 다름없었다.

“수건 가져 왔습니다, 원장님.”

매니저가 욕실에서 차갑게 적셔온 수건을 들고 왔다.

한지호의 부탁대로 가장 차가운 물에 적신 후 꼼꼼하게 물기를 짜내어 냉기만 남겼다.

그 사이 한지호는 유대성의 잠옷 바지를 벗겨 놓았다.

유대성은 속옷만 입고 있게 되어 민망해 했지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수건을 유대성 씨의 이마에 올려놓아 주세요. 금방 차가운 기운이 사라질 테니 10분마다 수건을 갈아줘야 합니다.”

“네!”

매니저가 힘차게 대답했다.

찬 수건을 이마에 올려놓는 건 고전적인 방식이다.

일단 그렇게라도 머리에 가득 찬 열기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한지호는 유대성의 종아리와 발을 딱딱하게 만든 냉기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체의 냉기를 몰아내고 따뜻한 기운이 돌게 만들면 혈액순환과 기의 흐름이 많이 회복될 것이다.

그 다음 머리로 뻗친 열기를 다스리면 유대성의 몸이 수승화강의 균형을 되찾게 된다.

마침 한국에서 홍콩으로 올 때 이런저런 약재와 도구를 캐리어에 담아온 게 천운이었다.

리펄스 베이의 한의원에 들렀다 올 필요가 없었다.

캐리어에서 뜸을 뜨기 위한 재료와 침을 꺼낸 한지호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한 유대성을 안심시켰다.

“두 시간만 참으면 몸 상태가 훨씬 좋아질 겁니다. 저를 믿고 모든 걸 맡겨주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유대성이 갈라진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한지호는 밝은 미소를 보여준 후 뜸을 뜰 자세를 갖췄다.

시작은 침이 아니라 뜸이다.

차갑게 얼어붙는 종아리와 발바닥을 파고들 수 있는 강력한 약재도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약재는 아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쑥,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 가루로 뜸을 뜰 작정이었다.

한지호는 역삼동 빌딩 3층에 들어온 명징 약초의 최치우를 통해 최상품 인삼을 확보했다.

홍콩의 VIP들에게 판매하면 한국에서도 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이렇게 쓸 줄은 모르고 시범용으로 가져온 약재들이 주인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아주 뜨거울 겁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하지만 참아내셔야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 올려놓은 약재가 떨어지고, 화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건 자신 있습니다.”

한지호의 엄포에도 유대성은 겁을 먹지 않았다.

일주일 째 계속 되는 지긋지긋한 두통과 몸살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그깟 뜨거움이 대수랴.

한지호는 루곡, 삼음교, 상구, 태백, 은백 모두 다섯 곳의 혈도에 뜸을 놓기 시작했다.

허벅이 아래 무릎 부위부터 발바닥까지 일자로 연결 된 혈도다.

차가운 기운이 들어차서 딱딱하게 뭉친 부위이기도 하다.

치이이이익-

불이 붙고, 진한 향이 감돌았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향을 맡는 것 또한 치료에 도움이 된다.

전신의 긴장이 풀리고 몸이 나근나근해져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으음….”

그때 누워있는 유대성이 신임을 흘렸다.

본격적으로 뜸이 열기를 내면서 찌릿찌릿한 고통을 느낀 것 같았다.

평상시에 뜸을 놓았다면 통증이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유대성의 종아리와 발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돌처럼 딱딱하다.

억지로 틈을 만들어내서 열기로 냉기를 뚫는 과정이니 고통이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지호는 균형을 맞춰 올려놓은 뜸이 떨어지지 않을까 지켜보며 유대성을 격려했다.

“참으셔야 합니다. 조금만 지나면 적응이 될 겁니다, 유대성 씨.”

“생각보다…… 많이 뜨겁네요.”

“쑥을 곱게 갈아 놓은 걸 애주구라 합니다. 인삼 가루도 같이 섞었지만, 어쨌든 애주구로 뜸을 놓는 방법을 애구법이라 부릅니다. 애구법은 불의 열기가 직접적으로 피부에 전해지는 뜸입니다.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화를 통해 유대성의 신경을 돌려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또 이유를 알고 아프면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유도 모른 채 아프기만 하면 치료 과정 전체를 불신하기 쉽다.

“10분 정도면 끝납니다.”

“10분…… 이나요?”

유대성이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10년이 넘는 무명 생활을 견디고, 극한의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걸로 유명한 국민 MC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몸이 아프면 정신력도 약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한지호는 유대성을 탓하지 않았다.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일주일 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 약해질 것이다.

수승화강이 뒤집혀 느끼게 되는 두통과 몸살은 평범한 감기몸살과는 차원이 다르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다리가 조각나는 기분이라 잠을 자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베이징 행사장에서 갑자기 쓰러졌겠는가.

고통의 강도로 따지면 칭화 그룹 회장 웨이 림의 이복 형인 림커창이 걸렸던 주화입마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금방입니다.”

한지호는 시간을 재며 유대성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이미 5분이 지났다.

처음과 달리 유대성은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뜸에서 뿜어진 열기가 종아리와 발의 냉기를 뚫는 중일 것이다.

그 다음은 추궁과혈이다.

열기로 혈도를 풀어준 상태에서 종아리와 발바닥의 혈도를 꾹꾹 눌러주면 기의 흐름이 한층 원활해질 터.

일반적인 마사지와 달리 한지호의 추궁과혈은 내공을 담아 정확한 혈도를 자극한다.

추궁과혈이 끝나면 비로소 침을 놓을 예정이었다.

무려 3단계에 걸친 치료가 끝나면 유대성의 하체에 열기가 돌고, 혈액순환이 되면서 몸살이 상당히 완화 될 거라 기대됐다.

그 다음에 머리로 올라가 열기를 식히면 치료가 끝난다.

열기를 식히는 건 비교적 간단하다.

한지호가 유대성의 다리에 집중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갈아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동안은 수승화강의 원리가 뒤집혀서 해열제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리의 냉기를 몰아내고 혈도를 따뜻하게 데우면 인체의 균형이 돌아온다.

그런 상태에서는 머리의 열을 식히면 금방 차도를 보이게 된다.

병원에서 쓰는 진통제를 써도 이전보다 빨리 몸이 반응할 게 분명하다.

이렇듯 한의학은 당장 나타나는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증상이 발현 된 원인을 고치는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중시한다.

원인을 고치면 증상을 다스리는 것도 훨씬 쉬워진다.

물론 많은 한의사들, 그리고 중의사들은 근본 원인을 탐구하는 동양 의학의 본질을 잊어버렸다.

그저 현대 의학을 쫓아가기 바쁜 채 증상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증상에 집중하는 방법으로는 첨단 과학을 내세운 현대 의학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한지호는 동양의 전통 의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충실하게 지키는 몇 안 되는 한의사다.

단순히 화타와 규호의 의술을 전승 받아서가 아니라 이런 점 때문에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이제 뜸을 제거하겠습니다. 잘 참으셨어요.”

한지호가 유대성의 다리에 놓아뒀던 뜸을 조심스레 제거했다.

매니저는 10분마다 새로운 수건을 가져와서 교환했다.

유대성의 이마에 두 번째 찬 수건이 올려졌다.

“좀 어떻습니까?”

“다리가 욱신거리던 게 약간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죠. 이제 뜸으로 혈도를 자극했으니 추궁과혈을 마치고 나면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낄 겁니다.”

한지호가 호언장담을 했다.

보통 의사들은 환자에게 두루뭉술하게 말한다.

혹시라도 책임질 일이 생기면 도망갈 구석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지호는 되겠다 싶은 치료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길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다.

홍콩의 밤, 한지호는 유대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진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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