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6장, 국민 시너지 (1)
공항에서 홍콩 시내로 달려가는 택시 안, 한지호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유대성의 매니저와 나눴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그는 유대성의 컨디션이 다시 악화됐다고 말했다.
의사를 불러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베이징에서 쓰러진 이후 계속 심각한 수준의 몸살과 두통 증세에 시달려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침 김여정이 소개를 해준 국민 한의사 한지호가 연락을 해오니 매니저로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어.”
한지호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유대성의 매니저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한지호는 차근차근 증상을 들어봤다.
다행히 당장 유대성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정도는 아니었다.
원인을 찾기 힘든 몸살과 두통.
이것이 핵심 증세다.
문제는 중국의 뛰어난 의료진들이 전혀 손을 못 쓰고 있다는 점.
그로인해 유대성이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고, 주기적으로 드러누워 고통을 호소한다는 점이다.
사실 뇌수막염의 증상과 비슷하다.
한지호도 처음에는 뇌수막염을 의심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뇌척수액 검사와 CT 촬영을 했는데 뇌수막염은 아니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생명에 위협이 있을 정도가 아니라도 심각하긴 심각한 상황이다.
견디기 힘든 몸살과 두통이 계속되면 탈진을 유발하고, 면역 체계 훼손으로 추가적인 중병에 걸릴 수도 있다.
유대성처럼 몸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 이만큼 시달릴 정도면 보통 증상이 아닐 것이다.
한지호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유대성과 런런런 멤버들이 쉬고 있는 호텔에 도착해서 길게 망설일 틈이 없다.
가능한 빨리 알맞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게 어려울 경우 홍콩 행사를 취소하고 귀국해서 중점 치료를 받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물론 행사를 취소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래저래 참 어려운 여건이다.
한지호의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는 밤이라 뻥 뚫린 도로 위로 속도를 높였다.
홍콩의 깊은 밤, 국민 한의사와 국민 MC가 열악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만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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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성은 홍콩 리츠칼튼에 머물고 있었다.
유니언 스퀘어에 위치한 리츠칼튼은 홍콩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림 같은 전망을 자랑한다.
런런런 프로그램의 간판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MC인 유대성은 리츠칼튼에서도 스위트 룸을 배정 받았다.
한지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까마득한 높이의 스위트 룸까지 올라갔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유대성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해놓았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초조한 얼굴의 매니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 바로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지호의 얼굴을 알아본 매니저가 덥석 손을 잡았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 매니저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유대성을 걱정하느라 창백하게 질린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했다.
“바로 가시죠. 유대성 씨는 좀 어떻습니까?”
“전화 드렸을 때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계속 끙끙거리면서 앓고 계십니다.”
“의식은요?”
“의식은 있으신데…… 형님이 너무 지치셔서 대답을 잘 못하십니다. 저도 이것저것 여쭤보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소개 받은 의사가 와서 링겔을 꽂고, 이것저것 체크를 했습니다. 하지만 몸에 열리 살짝 높은 것 말고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해서…….”
“일단 제가 진단해보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홍콩 행사를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뇌수막염은 아니라고 나왔는데, 행사를 취소하게 되면 런런런 팀 전체가 짊어질 부담이…….”
매니저가 웅얼웅얼 말끝을 흐렸다.
그는 누구보다 유대성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 소속의 매니저로서 막대한 위약금도 동시에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 사이 한지호와 매니저가 스위트 룸 문 앞에 다다랐다.
매니저는 지체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홍콩이 자랑하는 리츠칼튼의 스위트 룸답게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넓고 럭셔리한 스위트 룸에 감탄하고 있을 틈이 없다.
“어딥니까?”
한지호의 물음에 매니저가 먼저 빠르게 걸어 나갔다.
“이쪽, 안방입니다!”
스위트 룸에는 복도와 거실은 물론이고 별도의 피트니스 공간과 여러 개의 방이 구비 돼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침실에 유대성이 누워있다.
한지호는 족히 더블 킹 사이즈는 될 법한 침대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유대성을 쳐다봤다.
10년 가까이 연예인 호감도 1위를 놓치지 않는 국민 MC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었다.
“…….”
직접 보니 뭐라고 말을 하기 힘들었다.
다 맞은 수액은 구석에 치워져 있었고,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며 침대 옆에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아마 그가 홍콩에서 응급조치를 한 의사인 것 같았다.
한지호는 따로 설명하지 않고 유대성에게 다가갔다.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홍콩 의사도 뒤로 물러나 의자를 내줬다.
“안녕하세요, 유대성 씨. 저는 한의사 한지호입니다. 듣고 계시지만 대답하기 불편하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진맥을 할 테니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편하게, 편하게.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지호는 유대성의 손목을 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조곤조곤 인사를 했다.
환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치료의 첫 번째 과정이다.
유대성은 실눈을 뜨고 한지호를 바라본 뒤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탈진에 가까운 상태로 누워있지만 의식은 또렷한 게 분명했다.
‘다행이다.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냐.’
한지호는 가늘게 뜬 유대성의 눈과 의식 상태를 보고 안도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힘이 빠져 초점은 없어 보이지만, 바라보는 대상에 동공이 고정 된다.
적어도 급작스러운 쇼크나 발작은 없을 확률이 높았다.
한지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1초에서 놀라운 관찰력으로 나름의 진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맥을 잡은 한지호가 눈을 감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하는 건 그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미세한 맥박의 차이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낼 수 없다.
‘맥이 좋지 않지만… 특별한 징후가 느껴지진 않아. 뭐가 문제지?’
유대성의 맥박은 가늘고 불규칙적이었다.
그렇지만 몸살과 두통에 시달려 체력이 약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럴 것이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수 천, 수 만 가지 질병을 알고 있는 한지호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단순한 몸살로 치부하긴 어렵다.
베이징의 행사장에서 유대성이 쓰러졌던 게 벌써 일주일 전이다.
그동안 유대성은 지속적인 치료를 하고 수액과 진통 해열제 처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째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 몸살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지호는 손목에서 손을 떼고 다시 유대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널리 알려진 호감형의 인상 그대로다.
TV에서 보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고, 볼도 움푹 들어가 수척한 인상이 됐다.
“유대성 씨, 머리가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는 것 외에 다른 증상은 없나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문진(問診)의 단계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환자가 직접 호소하는 내용에서 실마리를 찾을 때도 있다.
유대성은 실눈을 뜨고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머리가… 그냥 아픈 게 아니라 터질 것 같습니다.”
“몸살은 어떠세요? 가장 아픈 부위를 말씀해주시면 진단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리, 다리가 제일 아파요. 특히 종아리가…….”
한지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보통 감기 몸살 환자들은 몸 전체가 고르게 쑤신다고 말한다.
특별히 아픈 부위를 짚어내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대성은 정확하게 다리, 그리고 종아리를 언급했다.
“이불과 옷을 걷고 살펴보겠습니다.”
한지호가 양해를 구한 뒤 이불을 걷어냈다.
유대성은 편한 잠옷 파자마 차림이었다.
바지를 위로 걷어 올리자 꽤 두꺼운 종아리와 허벅지가 드러났다.
하지정맥의 징후는 전혀 없다.
하체가 약한 편도 아니다.
런런런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유대성의 하체는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튼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종아리가 집중적으로 아픈 다른 이유가 있을 터.
한지호는 손끝에 기운을 모으고 유대성의 종아리를 어루만졌다.
‘차갑다!’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유대성의 종아리는 벽돌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문제는 체온이다.
얼굴에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종아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한지호는 심각해진 얼굴로 종아리를 비롯해 허벅지와 무릎, 그리고 발바닥까지 세심하게 만졌다.
몸을 만지고 혈도를 누르는 것 또한 진단의 방법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절진(切診)은 단순히 맥을 짚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는 것, 환부를 만지고 몸 구석구석을 눌러보는 것 모두 절진에 포함된다.
다소 생경한 방식에 유대성 본인과 매니저, 또 구석으로 물러난 홍콩 의사까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의사가 진맥 말고 몸 구석구석을 주무르듯 만지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대성이 여자였다면 민망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지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다리와 발바닥을 꼼꼼하게 주물렀다.
마사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혈도를 살짝 눌러보며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곧이어 손을 뗀 그가 매니저에게 부탁을 했다.
“물에 적신 수건이나 티슈를 가져다주시겠어요?”
“네, 네, 선생님.”
매니저가 곧바로 수건을 물에 적셔서 가져왔다.
한지호는 앉은 자리에서 손을 닦았다.
유대성의 다리를 비롯해 발바닥까지 만졌기에 위생 상 손을 닦은 것이다.
이윽고 한지호의 손길이 유대성의 이마로 향했다.
국민 한의사의 손바닥이 국민 MC의 이마를 덮었다.
먼저 축축한 땀의 느낌이 났지만, 뒤이어 펄펄 끓는 기운이 전해졌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종아리나 발바닥과 달리 유대성의 이마는 뜨거웠다.
한지호는 손바닥을 붙인 채 매니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열제는 충분히 처방 받지 않았습니까?”
“네, 방금도 해열진통제 성분이 포함 된 주사와 수액을 맞으셨습니다. 그런데 잠깐 열이 좀 내려가고 밤이 되면 다시 힘들어 하셔서……. 상하이 행사도 끝나자마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셨었습니다.”
북경에서 쓰러진 후 상하이 행사장에 등장한 유대성은 확연히 안 좋아진 인상으로 아시아 팬들의 걱정을 불러 일으켰었다.
이 상태라면 홍콩 행사장에는 아예 서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지호는 보이지 않던 단서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가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해결책을 찾았을 때 나오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이 어둠 속의 별처럼 반짝였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한지호의 말에 매니저가, 그리고 누워있던 유대성도 눈을 크게 떴다.
“저, 정말이십니까? 한국으로 가지 않고 여기서도 형님을 치료하실 수 있으시다는……?”
“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은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 실마리를 확실히 잡아낸 것 같다.
한지호는 놀란 매니저 대신 유대성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몸은 수승화강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대성 씨는 일시적으로 화승수강이 되어 심각한 컨디션 난조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제가 치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