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56화 (156/255)

# 156

5장, 한류스타 (2)

국민 MC 유대성과의 연결 고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야소녀 모임의 멤버이자 이지은의 절친, 김여정이 그 주인공이었다.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여배우 김여정은 런런런을 포함해 유대성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여러 번 게스트로 출연했다.

유대성과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평소에도 사적인 연락을 할 만큼 친한 사이라고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밝혔었다.

김여정을 통해서라면 유대성 본인이나 최측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김여정은 한지호와 이지은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전 여친의 베스트 프렌드인 셈이다.

남자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존재는 전 여친이고, 두 번째로 어려운 존재가 아마 전 여친의 베프일 것이다.

한지호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인맥을 찾는 것보다 김여정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 한지호는 홍콩 진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런런런 멤버들 역시 상하이에 도착해 첫 번째 행사 무대를 마쳤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쓰러졌던 유대성은 여전히 안색이 안 좋아 보였지만, 상하이 이벤트에서 특별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하이에서 두 번째 무대가 남아있고, 홍콩 일정도 만만치 않기에 유대성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유대성을 만날 기회가 영영 없을지 모른다.

마침 런런런 멤버들이 홍콩에 도착할 때, 한지호도 다시 홍콩으로 날아간다.

고민을 많이 해봐도 다른 선택지는 없다.

한지호는 결국 스마트 폰에서 김여정의 번호를 찾아내고 말았다.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손가락을 움찔거리다 그냥 버튼을 눌렀다.

귓가로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이제 되돌릴 수는 없다.

하필이면 통화 연결음도 이지은이 새로 발표한 노래였다.

한지호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끼며 폰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김여정이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베프의 전 남친 전화가 달가울 리 없다.

“여보세요?”

그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김여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진료까지 했던 사이다.

여전한 그녀의 목소리에 한지호는 정신을 수습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여정 씨, 오랜만이에요. 한지호입니다.”

“네, 한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번호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받으셔서 좀 놀랐습니다.”

“저도 많이 놀랐어요. 한 선생님이 전화를 하실 줄은…….”

김여정이 말꼬리를 흘렸다.

그녀가 당황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김여정이 한지호와 이지은의 사이를 제일 잘 아는 3자일지 모른다.

“혹시 통화 잠깐 괜찮으십니까?”

“지금 촬영 중간에 휴식 시간이라 여유 있어요. 괜찮아요.”

다행히 통화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한지호는 짧게 숨을 고르고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다름 아니라 여정 씨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부탁이요?”

“지금 중국에서 투어를 하고 있는 유대성 씨, 사적으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 네. 대성 오빠는 잘 알죠.”

역시 김여정은 유대성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다.

둘의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연예계서는 선생님 아니면 오빠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한지호는 차근차근 자신이 전화한 이유를 설명했다.

“유대성 씨가 베이징에서 쓰러졌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자기 관리를 잘 하기로 유명한 분이 단순 과로 때문에 쓰러질 확률은 무척 낮습니다. 상하이 행사에서도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고 하더군요. 곧 런런런 멤버들이 홍콩으로 오는데, 마침 제가 홍콩에서 진료를 하는 시기와 일정이 겹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유정 씨께서 저를 소개해준다면, 유대성 씨가 좋은 컨디션으로 홍콩 행사를 마무리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법 긴 이야기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폰 너머에서는 당장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다.

김여정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건 어렵지 않아요. 한 선생님이 워낙 유명한 분이시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저도 약을 먹으며 느꼈으니까요. 아마 대성 오빠도 반가워 할 것 같아요.”

한지호는 전화기를 잡지 않은 다른 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됐다.

이로서 국민 MC이자 한류스타인 유대성과의 연결 고리가 생겼다.

홍콩에서 그를 만나 컨디션 난조를 치료해주면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화려한 치료 경력도 다시금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러나 김여정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혼란스럽긴 하네요. 한 선생님과 지은이 사이의 일……. 잘 아는 입장에서 이렇게 전화를 받은 걸 알면 지은이가 서운해 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그럴 수 있죠. 저도 전화를 걸기까지 많이 망설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지은이는 이런 일로 감정을 소모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한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

“그랬나요? 지은이가?”

“당연하죠. 선생님을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데요.”

“저도…… 그랬었습니다.”

“두 사람이 가는 길이 다르다니 더 큰 상처를 받을 거라고 했는데, 전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가요.”

김여정의 말에 한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사자인 자신도 어렵게 받아들이고 인정한 이별이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제 3자에게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짧지만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김여정이 말을 이어갔다.

“죄송해요, 한 선생님.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네요. 대성 오빠에게는 바로 연락을 해볼게요. 그리고 지은이에게도 사실대로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친구끼리 이런 일을 숨기고 싶진 않아요.”

“물론 이해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정 씨.”

“아니에요.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요. 전에 지어주셨던 보약 덕분에 힘든 시기도 잘 넘겼고, 저도 한 선생님께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요. 지은이 일만 빼구요. 홍콩에서 갑자기 사라지신 건 정말 너무하셨었어요.”

한지호는 폰을 들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홍콩에서 첸의 전화를 받고 이지은을 놔둔 채 칭화 병원으로 달려간 게 결정적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하긴 너무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일을 떠올리며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간 될 때 또 약 지으러 오세요, 여정 씨. 진료를 안 받으셔도 3층에서 보약을 가져갈 수 있도록 따로 처방을 써놓겠습니다.”

“서울 올라가면 들릴게요. 대성 오빠와 통화하고 나서는 메시지로 연락 드려도 되겠죠?”

“그럼요.”

한지호와 김여정은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전화를 끊었다.

과연 원인불명의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는 국민 MC 유대성을 치료할 수 있을까.

김여정이 그 기회를 손에 안겨줄지, 한지호는 저녁까지 연락을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았다.

+++

김여정과 통화를 한 날,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지호는 늦은 시간까지 틈이 날 때마다 폰을 확인했지만 전화도 메시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나 굳이 다시 연락을 해서 재촉을 하진 않았다.

이미 사정을 전했고, 승낙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촉을 거듭 할 만큼 김여정과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다.

답답해도 그냥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결국 다음날이 밝았고, 한지호는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김여정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마음을 비운 그는 매주 이용해 익숙해진 항공편을 타고 홍콩으로 날아갔다.

밤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기에 자정 무렵 공항에 도착하게 됐다.

변함없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한 한지호는 가장 먼저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홍콩 공항에 발을 디디고, 짐을 찾는 곳으로 걸어가던 그가 폰을 켰다.

세상이 좋아져서 별도의 절차 없이 자동으로 로밍이 된다.

LTE 데이터 역시 하루에 9천 원이면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에서처럼 스마트 폰으로 전화와 카톡,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는 것이다.

디리리링-

그의 폰이 효과음을 내며 켜졌다.

비행 시간 내내 꺼져있던 폰에 몇 개의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한지호는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폰을 살펴봤다.

“어?”

메시지 함을 건성으로 내리던 그의 동공이 커졌다.

김여정이 보낸 메시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한지호가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는 동안 그녀가 약속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늦은 연락이기에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지호는 살짝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참.”

스스로에게 웃음을 터트리며 김여정이 직접 보낸 글을 읽었다.

점점 한지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 연락이 늦어서 죄송해요, 한 선생님. 촬영 현장도 바빠지고, 대성 오빠와도 바로 통화가 안 돼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선생님 이야기를 했더니 대성 오빠도 무척 반가워하네요. 오빠의 매니저 연락처를 알려드릴게요. 이 번호로 연락하시면 중국에서도 바로 통화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행운이 따르시길 바래요. -

“됐다!”

한지호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었다.

전에는 주먹을 꽉 쥐는 걸로 그쳤지만, 유대성의 매니저 전화번호를 받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늦은 시각이라 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몇몇이 한지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말았을 뿐이다.

“고맙습니다, 여정 씨. 꼭 보약 지으러 와요.”

한지호는 김여정에게 보내는 메시지 내용을 입으로 읊으며 답장을 보냈다.

곧이어 유대성의 매니저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대뜸 전화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대신 메시지로 김여정의 소개를 받은 한의사 한지호라고 밝혔다.

사실 한국에서 한지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톱스타 못지않게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유명한 한의사다.

괜히 국민 한의사라는 애칭이 붙었겠는가.

구구절절 긴 말을 쓰지 않아도 유대성의 매니저가 알아서 연락을 취해올 것이다.

이미 김여정이 소개까지 해놓았으니 막힐 게 없었다.

“잘하면 홍콩에서 자리 잡는 기간을 엄청 단축할 수 있겠어.”

한지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의 캐리어가 수화물 벨트 위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으윽-

그는 무겁고 큰 캐리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낚아챘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꾸준한 오금희 수련으로 단련된 그의 육신은 평범한 현대인의 한계를 초월한지 오래다.

내공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UFC의 세계 챔피언도 한지호에게 상대가 안 될 것이다.

다만 육체의 힘을 폭력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거의 없는 세상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따름이었다.

삼국지 시대에는 무력(武力)과 지력(智力)으로 천하를 움직였다면, 현대는 그야말로 다양한 재능이 힘이 되는 시대다.

누구는 소설을 쓰고, 누구는 만화를 그리고, 또 누구는 의술이나 금융 등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각자의 천하를 도모한다.

우우웅- 우우웅-

한지호가 전생과 현생의 시대상을 비교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폰이 울렸다.

주머니에 넣어둔 폰을 꺼낸 그가 이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방금 메시지를 보낸 유대성의 매니저, 그의 번호가 액정에 찍혀 있었다.

한지호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급히 전화를 해온 것이다.

그만큼 유대성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네, 한지호입니다.”

그는 사뭇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한지호 원장님? 맞으십니까?”

“유대성 씨의 매니저 아니신지요?”

“네, 네! 원장님, 혹시 지금 홍콩이시면 바로 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늦은 시간이 대단히 실례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성 형님 컨디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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