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49화 (149/255)

# 149

2장, 동귀어진(同歸於盡) (1)

국회의사당에서의 모임이 끝나고, 양성문은 다음 일정 때문에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모임에 참석한 다른 자문위원들도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나 한의학계를 대표해 참석한 두 사람.

조준혁과 한지호는 나란히 회의실에서 빠져나오며 회포 아닌 회포를 풀기로 했다.

“잠깐 시간이 되십니까?”

“한 원장님과의 대화라면 얼마든지.”

둘은 국회의사당 중앙의 휴게실에 앉았다.

각 층마다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놓고 편히 쉬거나 작업을 할 수 있게 휴게실을 마련해 놓았다.

탁 트인 공간이지만 바깥의 카페보다 훨씬 조용했다.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고, 의원이나 보좌관들은 주로 각자의 방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커피라도?”

“좋습니다.”

한지호는 자판기 밀크커피 두 잔을 뽑아왔다.

대한민국 한의학계를 좌지우지하는 두 명이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를 두고 마주앉았다.

“중국 진출이라니, 정말입니까?”

한지호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조준혁은 마치 한지호가 들으라는 듯 양성문 장관에게 위천의 중국 진출을 알렸다.

의도적인 도발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한지호의 물음에 조준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봐도 삼국지 시대의 조조를 쏙 빼닮은 얼굴이었다.

이목구비는 다르게 생겼지만, 눈빛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 비슷했다.

조준혁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지호의 눈길을 외면하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은 한지호의 짙은 눈동자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하지만 조준혁은 극소수의 예외에 드는 인물이다.

그가 재미있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한 원장님이 당황하는 모습을 다 보고, 중국 진출을 결정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예정에 없던 중국 진출, 우리를 견제하기 위함이 맞겠지요?”

“솔직한 대답을 원하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닌 홍콩에 진출하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위천은 한국을 대표하는 한의원 브랜드입니다. 원화에게 하나라도 타이틀을 빼앗길 생각이 없습니다.”

“양한방 협진으로 항암 치료를 성공해낸 시점에서 이미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의술이라는 타이틀을.”

한지호가 또 다시 정곡을 찔렀다.

조준혁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양한방 협진과 항암이라는 분야에서는 원화 한의원이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놔두면 원화의 브랜드 파워가 위천을 넘어설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았다.

“중국에서는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할 겁니다. 내가 막을 테니까.”

잠시 숨을 고른 조준혁은 견제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원화 한의원의 중국 진출을 방해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한지호는 한 줄기 의아함이 깃든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급하게 홍콩 진출을 추진해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원래 준비하던 게 아니라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졸속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아닙니까? 최소 수십억 원의 예산과 인력, 시간이 낭비 될 겁니다.”

“낭비? 낭비, 낭비.”

조준혁은 한지호가 한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낭비라 해도 상관없지.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위천의 홍콩 지점을 여는 게 아닙니다.”

“그런…….”

“성공하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으니 최소한 같이 망하자는 겁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적의(敵意)가 번들거렸다.

한지호는 말을 아끼고 조준혁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수십억 원의 예산, 투입 될 인력과 기회 비용, 그 모든 것쯤은 날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원화 한의원이 홍콩에서 혼자 성공을 거두면 우린 정말 위험해지니까. 내가 쌓아올린 위천의 아성에 금이 갈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더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수 있습니다.”

“전국에 수십 개의 지점을 두고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뭐가 그리 두려운 겁니까, 이사장님?”

“대한민국 한의학계는……!”

조준혁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늘 포커페이스와 차가운 음성을 유지하는 그가 감정의 편린을 내보인 것이다.

“내 말 한 마디에 움직여야 합니다. 한의학계 전체가. 그런데 한 원장님이 등장한 이후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질서에 금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아시겠습니까?”

이제 막 마흔을 넘긴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계를 혼자 주무르며 지배하던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집착.

한지호는 조준혁이 뿜어내는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물론 피하거나 움츠러들 마음은 전혀 없었다.

상대가 승부수를 띄웠다면, 이쪽에서도 전력으로 부딪치면 된다.

“재밌겠군요. 홍콩에서의 승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더 자주 보게 될 겁니다, 한 원장님.”

한지호와 조준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자판기 커피처럼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국에서는 위천이 저만치 앞서있고, 원화가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하는 형세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둘 다 백지 상태에서 바닥부터 도전을 해야 한다.

홍콩에서 펼쳐질 원화와 위천, 한지호와 조준혁의 진검승부가 대한민국 한의학계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로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두 사람의 행보에 탄력이 붙을 것 같았다.

뒤쳐지는 쪽은 아마 매우 많은 것을 잃게 되리라.

총성 없는 전쟁이 끝나고, 최후에 웃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지 감히 예측하기 어려웠다.

+++

“같이 죽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박우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화 한의원 원장실에 모인 사람은 모두 네 명.

한지호와 박우식, 그리고 조기운과 문재영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전국을 떠돌며 위천 한방병원의 실태를 조사하던 조기운이 드디어 돌아왔다.

오늘은 그의 보고를 받는 동시에 홍콩 진출 문제를 심도 깊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제가 지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조준혁 이사장은 그런 수를 준비하고 있었네요.”

대강 설명을 들은 조기운도 박우식처럼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한지호는 홍콩에서 원화 한의원을 성공 시킨 후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아 위천 한방병원을 뛰어넘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위천이 맞불 작전을 들고 나온 것이다.

조준혁은 원화 한의원이 중국에서 성공해 국내의 벽을 넘어서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으려고 수십억 원 이상을 쏟아 부으려는 것이었다.

“위천은 잃을 게 크지 않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중국에서 망하더라도 말이죠. 동시에 망하면 타격은 있을지언정 어차피 한국에서의 독보적 위치는 흔들리지 않으니까.”

한지호는 조준혁의 노림수를 꿰뚫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도 마땅히 대처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박우식도 그런 사실을 지적했다.

“위천과 달리 우리는 중국 진출에 실패하면 잃을 게 많습니다. 열심히 쌓아온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브랜드 가치도 떨어지게 될 겁니다. 협진 프로젝트도 금방 잊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해외에서의 성과에 유독 민감하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100개 가까운 지점을 가진 위천과 우리는 똑같이 실패해도 타격을 입는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러나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위천이 우리와 같은 타이밍에 홍콩 진출을 하는 걸 전제로 깔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한지호는 현실을 부정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려 들지 않았다.

위천 한방병원은 홍콩에 지점을 연다.

원화 한의원 역시 돌이키지 않고 홍콩 진출을 추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주어진 변수를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한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위천 한방병원에서 뭘 하든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의술로 우리가 낫다는 걸 증명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조준혁 이사장의 태도입니다. 같이 망하자는 그 태도.”

“콧대 높은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것도 어려운데, 위천이 사사건건 우리를 막아서려는 정책을 펼치면 이중고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물귀신 작전을 펼칠 것 같으니…….”

잠자코 앉아있던 문재영이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같이 성공하기는 어려워도 작정하고 같이 망하기는 쉬운 법이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저열한 조준혁의 수가 여러모로 한지호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일단은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 같군요. 사무장님, 칭화 그룹과의 실무는 원래대로 진행 시키도록 하세요. 입지가 정해지면 바로 개원 일정을 잡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지호의 지시를 받은 박우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칭화 그룹에서 몇 곳의 후보지에 대한 검토를 마칠 것이다.

한지호는 검토가 끝나는 즉시 망설이지 않고 홍콩 개원(開院)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준혁의 맞불 작전에 휘말려 주춤거리게 되면 그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셈이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 탄 형국이기 때문에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수밖에 없다.

“형님, 이제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홍콩과 관련된 이야기가 일단락되는 걸 느꼈는지 조기운이 화제를 바꿨다.

한지호는 눈을 빛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난 조기운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물론 개인적인 회포는 오늘 밤 내내 술잔을 기울이며 풀 것이다.

지금은 그가 알아온 정보를 공식적으로 보고 받을 차례였다.

“뭐든 말해봐. 대단한 게 아니라고 괜찮아.”

“각 지방에 있는 위천 한방병원의 지점들을 다니며 알아낸 사실인데요, 전에 보고 드린 것처럼 중앙에서의 체계적인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점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고, 시스템도 허술한 편입니다. 이 정도로는 결정적인 약점이라 할 수 없지만, 그냥 넘기기 힘든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그냥 넘기기 힘든 소문?”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었다.

한지호를 포함해 박우식과 문재영도 자세를 고치며 흥미를 보였다.

조기운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먼저 병원장인 유우선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VIP들의 진료를 보다가 종종 오진을 해서 일이 커진 적이 몇 번 있답니다.”

“음…….”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위천에서 동네 한약방과 프랜차이즈 제휴를 시작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동네 한약방에 위천의 이름을 달아주겠다는 말이야?”

“네. 일정 조건만 맞추면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서 위천이라는 간판을 달게 할 거라고 했습니다. 한약방 입장에서는 홍보에 도움이 되고, 약재 구입 가격도 이전보다 조금 내려가니 나쁠 게 없습니다. 물론 위천은 위천대로 프랜차이즈 수수료를 받고, 약재도 대량으로 공급해 이익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냐. 한방병원 지점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데 동네 한약방들을 챙기겠어? 말 그대로 이름만 내주고 돈만 벌 생각이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방병원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터질 거야. 동네 한약방 중에서는 신뢰하기 힘든 곳도 많으니까.”

“조준혁 이사장은 그런 리스크를 감내할 생각인 걸까요?”

“글쎄.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여기겠지. 한약방까지 프랜차이즈를 확장시키면 수익은 엄청나게 늘 거고, 자잘한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것 같아. 조준혁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보다 소문의 진위는 확신할 수 있어?”

“지방에 있는 위천 한방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입니다. 근거 없는 뜬소문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형님.”

조기운의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어설픈 정보를 물어온 사람은 저렇게 단단한 눈빛을 보일 수 없다.

자기 발로 지방을 샅샅이 훑었기에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오랜만에 본 조기운은 부쩍 성장한 느낌이었다.

한지호는 팔을 뻗어 조기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전처럼 앞으로도 이 어깨를 자주 두드려 주고 싶었다.

“고생했다, 기운아. 유우선 병원장의 상태, 그리고 한약방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대로 파야겠어. 잘 하면 위천의 급소를 찌를 수 있을지 몰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죽자고 덤비는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도 같이 죽자고 맞서야지.”

한지호의 입에서 자못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조준혁은 홍콩에서의 공멸(攻滅)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지호도 그에 버금가는 각오로 맞서 싸우는 게 최선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벌어질 싸움을 예고하는 듯 한지호의 눈동자가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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