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40화 (140/255)

# 140

7장, interactive (3)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한지호는 이전 환자를 진료하고, 홀로 원장실에 앉아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데스크에 지시를 내려 다음 환자를 보기까지 일부러 간격을 오래 두게 해놓았다.

똑- 똑- 똑-

한지호의 검지와 중지가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초조한 심경이 행동에서 묻어 나왔다.

그가 이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가만히 앉아있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드디어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 폰이 떨리기 시작했다.

반가운 진동이었다.

한지호는 눈을 크게 뜨며 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살펴봤다.

- 유방 교수님 -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 애매하고 독특한 이름이 한지호를 웃게 만들었다.

그는 누가 폰을 훔쳐가기라도 할 것처럼 급히 전화기를 잡았다.

“네, 교수님!”

“한 원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경과는요?”

“수술은…….”

유방은 조금 지친 것 같았다.

아마 직접 수술을 집도하고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뜸을 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지호는 그를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수술은 어떻게 됐습니까?”

“무사히 끝났소. 김금순 환자는 안정을 취하고 있고, 경과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오.”

“하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혹시 수술이 잘 못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원화 한의원의 진료 시간 도중에 수술이 진행되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저 연락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한 고비를 넘긴 한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진료 끝나고 바로 암센터로 가겠습니다.”

“오셔서 추후 경과와 치료 진행에 대해 회의를 하십시다.”

“네, 그래야지요.”

“그럼 나중에 뵙겠소.”

전화를 끊은 한지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수술이 잘 끝났고, 이제 한지호가 김금순의 완치를 위해 제 몫을 할 차례다.

그는 기존의 항암 치료와는 다른 방식으로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유방 교수와 한지호의 협진은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아 한국 의료계에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큰 책임감이 느껴졌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한지호는 혼잣말로 각오를 다졌다.

삐빅-

그가 실내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네, 원장님.”

간호사 조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지호는 한층 밝아진 음성으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진료실로 이동하겠습니다. 다음 환자분도 안내해 주세요.”

“Y대에서 연락은 받으셨나요?”

“수술, 잘 끝났다고 합니다.”

“정말 잘 됐네요! 진료실로 다음 환자분 올려 드릴게요.”

원화 한의원의 수석 간호사인 조민주도 기쁜 소식을 듣고 하이 톤이 됐다.

협진 프로젝트는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원화 한의원의 직원들도 한지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낄 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지호는 새삼 자신의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원화 한의원 식구들을 챙기는 만큼, 직원들도 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한지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원장실에서 나와 진료실로 향하는 그의 걸음에 힘이 실려 보였다.

기운 내서 남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Y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상입니다.”

유방 교수가 브리핑을 마쳤다.

수술 결과와 예상되는 경과에 대하 보고를 한 것이다.

회의실 안에는 센터장 최규열과 췌장 담도 암센터 소화기내과 김기준 교수, 방사선 종양학과 박상욱 교수가 앉아 있었다.

한지호도 당당히 센터장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멤버 구성은 한지호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와 동일했다.

사실 환자 한 명의 수술이 끝났다고 해서 매번 센터장과 교수진이 모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특별한 상황이다.

김금순 환자는 전국민의 주목을 받는 협진 프로젝트의 대상이기 때문에 다들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먼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기준 교수가 사뭇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센터장 최규열이 있으니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러운 게 당연했다.

브리핑을 마친 유방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다들 김기준을 주목했다.

“수술이 아주 잘 됐고, 환자의 바이탈과 종합적인 컨디션도 매우 양호합니다. 일정을 정해서 바로 1차 항암에 돌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기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박상욱 교수도 의견을 개진했다.

“유 교수님이 수술을 워낙 잘 하셨으니 방사선 치료 일정도 빨리 잡는 게 어떻습니까?”

두 사람의 의견은 수술 후 치료의 정석이다.

암 환자의 경우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다고 해서 완치 판정을 받는 게 아니다.

몸 상태가 괜찮을 경우 방사선과 항암 치료를 병행해서 생존율을 10%라도 끌어 올려야 한다.

1기 췌장암이기에 수술 후 생존율이 더 높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수술을 받고 몸이 많이 약해졌거나 환자가 거듭된 항암 치료를 못 견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예외가 없다.

하지만 한지호는 암센터의 정석대로 치료를 진행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그럴 거라면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해진다.

물론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 지분 싸움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가 손을 들고 최규열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규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다.

저벅저벅.

자리에서 일어난 한지호가 앞으로 걸어갔다.

몸을 돌린 그는 앉아있는 네 명을 천천히 돌아봤다.

“먼저 센터장님과 교수님들께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다들 이미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게 무엇이오?”

비교적 낯이 익은 유방이 다른 교수들을 대신해 질문을 던졌다.

순간 한지호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미소를 지은 것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싶었다.

“제가 바로 김금순 환자의 주치의입니다. 수술을 집도하신 유방 교수님도, 여기 계신 김 교수님과 박 교수님 그리고 센터장님도 아닌 제가 주치의라는 것입니다.”

언뜻 듣기에 당돌하다 못해 도발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협진 프로젝트의 보도 자료에도 주치의는 원화 한의원 한지호 원장으로 적혀 있다.

지난 미팅에서도 결정이 난 사항이다.

무엇보다 환자가 한지호를 주치의로 원했고, 그가 들러리 역할을 하면 양한방 협진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적시라고 해도 김기준과 박상욱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최규열이 있어서 대놓고 따지지는 못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어린놈이 건방지다는 말이 진즉 나왔을지 모른다.

“흐흠.”

“커허으음.”

둘은 연달아 헛기침을 하며 최규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센터장 최규열은 한지호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할 따름이었다.

“물론 한 원장이 주치의이지.”

“그럼 김금순 환자의 주치의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별도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없이 한의학적 치료만을 진행 할 생각입니다. 계속해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며 치료 계획을 변경할 수 있지만, 우선은 제 방식을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한지호의 말에 결국 김기준이 참지 못하고 반발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이 그의 불쾌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재발 가능성이…! 만약 환자가 재발하게 되면 우리 모두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전국민이 김금순 환자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존댓말을 쓰고 있지만 마치 제자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였다.

한지호는 김기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일부러 노려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오금희의 기운을 눈빛에 살짝 담는 것만으로도 김기준을 위축시킬 수 있었다.

그는 단지 내공을 이용해 교수진을 억지로 제압하려 들지는 않았다.

강력한 의지를 발산함과 동시에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는 것이다.

“공명심 때문에 항암 치료를 유예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고령 환자에게 방사선과 항암 치료는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재발률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환자의 근본적인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김금순 환자는 1기에 조기 진단이 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한의학적 치료로 몸의 면역력을 살리며 경과를 지켜본다 해도 갑자기 재발률이 치솟진 않을 것입니다.”

“만의 하나, 정말 만의 하나라도 재발이 되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어떻게 할 겁니까? 만약의 가능성을 줄이는 게 현대 의학의 핵심입니다. 전국민이 지켜보는데 췌관선암 1기로 수술을 받았던 김금순 환자가 재발이라도 하면, 혹은 합병증이라도 걸리면! 그때는 한 원장님께서 책임지실 수 없어집니다.”

김기준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한지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지만, 이제껏 따라온 관습을 놓지 못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한의사와의 협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방사선 종양학과의 박상욱 교수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한지호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기존의 치료 패턴을 답습하면서 환자에게 보약이나 지어주려고 협진 프로젝트를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유 교수님도 그런 뜻으로 제게 협진을 제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바통을 넘겨받은 유방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정확한 의사를 전달했다.

“나는 한 원장님의 의술을 신뢰하고 있고, 이 기회에 우리가 새로운 방향의 치료를 개척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믿소.”

유방 교수의 지원 사격이 더해졌다.

한지호는 쐐기를 박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주치의로서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수술이 잘 끝난 1기 환자의 경우 제한적으로 한의학 치료가 기존의 항암 치료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그게 이 협진 프로젝트가 성사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김기준도, 박상욱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100% 수긍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한지호가 자신의 책임을 걸고 나온 마당에 더 반대해봤자 끝나지 않을 싸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더구나 수술을 집도했던 유방과 센터장 최규열이 한지호의 편에 서있는 것 같았다.

둘은 대학 병원의 교수답게 윗사람의 의중을 기가 막히게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최규열이 최종 결정을 내려줬다.

“한 원장, 소신대로 김금순 환자를 맡아주게. 주치의는 한 원장이니까.”

“감사합니다, 센터장님.”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대신할 계획은 세워 왔겠지?”

“물론입니다.”

한지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턱대고 자신에게 치료를 맡기라고 했겠는가.

앞으로 보여줄 그의 한의학적 치료는 왜 현대 의술의 정점에 올라있는 미국 의대들이 대체 의학을 연구하는지 증명해 보일 것이다.

“우선은 식단부터 제가 직접 짤 겁니다. 현미를 위주로 꽃송이, 홍삼, 달래, 그리고 엄선된 육류를 통한 단백질 보충까지.”

“한의학에서는 보통 채식이나 자연식을 권장하지 않나?”

“환자마다 다릅니다. 큰 수술을 마치고 계속해서 병마와 싸워야 하는 경우 단백질 섭취가 필수적입니다. 텍사스 의대의 MD 앤더슨 암센터에서는 개고기와 오리고기가 항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김의신 박사님의 연구였지, 아마?”

“맞습니다.”

김의신 박사는 한국인이지만 MD 앤더슨 암센터의 종신 교수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가 택사스 의대 내부에서 대체 의학 연구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지호는 해외 사례를 철저히 조사하며 치료를 준비해왔다.

식단 하나를 이야기 할 때도 MD 앤더슨 암센터의 발표를 인용하니 최규열이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식단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침술과 탕약으로 몸의 자체 면역력을 회복시킬 겁니다. 먼저 침술로는 전신 혈도의 온도를 높여 기의 순환을 활성화 시킵니다. 그리고 독소를 배출하는데 탁월한 약재를 써서 복수가 차는 것을 방지하고, 합병증 없이 몸 안이 깨끗해지도록 만들겠습니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뜬구름 잡기처럼 들릴 가능성이 높은 말이다.

만약 한지호가 여러 방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유명 한의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무시 당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술이 진짜임을 여러 차례 증명했고, 협진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최규열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믿어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한 원장의 손에 환자의 생명이, 협진 프로젝트의 성패가, 그리고 우리 암센터의 명예가 달려있네.”

“할 수 있습니다.”

“혹여 환자의 경과가 안 좋거나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말고 유 교수나 김 교수, 박 교수와 상의하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이로서 내부 교통 정리가 끝났다.

한지호는 김금순 환자의 수술 후 치료를 전적으로 책임지게 됐다.

과연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고도 재발 없는 완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남들이 보기엔 도박일지 몰라도 한지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늘 그러했듯 그는 의문의 시선을 경탄으로 바꿀 것이다.

한지호는 암이라는 거대한 괴물과의 전투에 연합군 사령관을 맡은 셈이다.

반드시 적을 토벌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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