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39화 (139/255)

# 139

7장, interactive (2)

“거 참, 만만히 볼 친구가 아니네.”

“그러게 말이야. TV에 나와서 급하게 인기를 얻은 쇼 닥터라고만 생각했는데.”

“센터장님을 단박에 사로잡는 그 배짱이며 자신감. 우리 밑에 애들 중에도 저런 인물이 커야 하는데 말이지.”

김기준 교수와 박상욱 교수가 낮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갔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회의실에서 한지호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

Y대 암센터를 대표해서 원화 한의원과의 협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그들의 말에서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한지호는 최규열 센터장을 사로잡았고, 췌장 담도 암센터 소화기내과 교수 김기준이나 암 지식정보센터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 박상욱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한국 의료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협진이 성사 된 것이다.

김기준과 박상욱은 계속해서 한지호의 PT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지호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암센터의 센터장은 대학 병원의 원장 못지않은 권위를 지녔다.

게다가 다른 교수들의 면면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유방 교수를 포함해 다들 과장 급 주임교수다.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의술에 대한 확신을 피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지호 나이 또래, 즉 30대 초반의 의사들은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

대부분 레지던트 혹은 전공의에 속해 죽어라고 구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지호가 더욱 빛나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고작 30살에 불과하지만 이미 국민적인 명성을 얻었고, 독자적인 한의원 네트워크를 만든 핵심 인물이니 말이다.

이제 Y대 암센터와 협진까지 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날개 위에 날개를 단 셈이다.

한창 제자를 키우는 위치인 김기준 교수와 박상욱 교수가 한지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의대에서는 시스템 때문에 젊은 천재들이 튀어나오기 어렵다.

반면 한의학계는 의대에 비해 체계가 덜 잡혀 있는 대신 천재들이 일찍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물론 한지호 같은 젊은 한의사가 빛을 발한 건 무척 예외적인 일이지만 말이다.

“고생 많았소.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잘 해낼 줄은 몰랐는데 역시 한 원장님이오.”

한편 회의실에서는 유방과 한지호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힘이 실린 강한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 서로 다른 전공, 그 모든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김금순 환자를 함께 치료하는 동료가 됐다.

한국에서도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 역치 마찬가지라오.”

“센터장님 앞에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그동안 Y대 암센터가 축적해온 항암 치료에 대한 데이터를 존중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습니다.”

한지호는 최규열과 교수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적절한 선을 잘 지켰다.

너무 겸손하지도, 지나치게 거만하지도 않았다.

당당한 자신감과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했다.

뭐든지 중도를 지키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한지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실제로 Y대 암센터는 국내에서 항암 치료 성공률이 가장 높은 의료 기관이다.

그들이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특히 수술 치료라는 측면에서는 의사들의 실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Y대 암센터의 역량을 인정하는 동시에 한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어필해야 했다.

한지호는 현대 의학이 놓치는 디테일한 부분을 자신의 의술로 커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금순의 췌장에 문제가 있음을 최초로 진단한 것도 그 증거였다.

사람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환자 개개인에게 융통성 있는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이 한의학의 장점이다.

또한 항암 치료는 무척 독한 과정이라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쉽다.

자칫하면 음식물 섭취를 못하게 되면서 영양실조와 면역 저하로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침술과 한약재 처방, 식이요법 지도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낸 한지호의 PT는 최규열 센터장으로 하여금 협진 프로젝트에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게 만들었다.

Y대 암센터의 교수 회의실 안에서 서로를 지켜보는 한지호와 유방.

며칠 사이 둘은 상대를 더욱 신뢰하게 됐다.

앞으로 함께 김금순을 치료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일만 남은 것 같았다.

+++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한지호가 병상에 누워있는 김금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의 물음에 김금순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더. 선생님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신경 써주시고 하니까 참으로 좋네예.”

“제 환자인데 당연히 제가 직접 챙겨야죠.”

한지호는 원화 한의원 진료를 마치자마자 Y대 암센터에 들러 김금순의 상태를 체크했다.

췌장 담도 암센터와 원화 한의원의 협진이 결정됐고, 관심을 가진 언론이 무수하게 따라 붙었지만 그에게는 환자가 최우선이었다.

Y대 암센터 센터장 최규열의 공식 발표는 대한민국 의료계에 파란을 몰고 왔다.

의료계를 넘어 전국민이 협진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의학과 서양 의학의 협진 프로젝트다.

그것도 췌장암에 걸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의학적 시도를 하는 것이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의 협진이 아니라 대한민국 탑 클래스들이 손을 잡은 것이다.

Y대는 S대와 함께 국내 대학 병원의 투톱으로 분류되는 의료 기관이다.

한지호는 국민 한의사로 명성이 자자한 동시에 원화 정의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한의학계 돌풍의 핵이다.

이들의 만남은 건강, 특히 항암 치료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의료전문지는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와 뉴스 채널에서도 한국 항암 치료사에 기록 될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만약 협진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면 Y대와 한지호의 위상은 한 차원 더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관심이 큰 만큼 부담도 커졌다.

김금순의 차도가 좋지 않으면 국민적인 비난이 의료진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러한 비난 세례는 대부분 한지호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지호는 의연했다.

협진 프로젝트가 발표된 다음날, 변함없이 한의원 진료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김금순을 찾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굵직한 경험으로 단련된 한지호의 멘탈은 보통 사람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는 당장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취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결과를 중시한다.

일찍 샴페인을 터트려봤자 결과가 나쁘면 더 비참한 꼴이 될 것이다.

김금순 환자를 완치시키고 난 다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즐겨도 늦지 않다.

국민적인 성화와 응원도 한지호를 필요 이상으로 들뜨게 만들 수는 없었다.

“혈압을 비롯해 모든 게 정상입니다. 맥박도 좋고, 호흡도 아주 편안해요. 내일 수술실로 들어가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잠시 김금순의 맥을 짚은 한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에 김금순도 계속 미소로 답하고 있었다.

“사실 수술 받는 것도 겁나고… 췌장암도 못 알아낸 대학 병원도 못 미덥고 그랬습니더. 근데 우리 선생님이 주치의가 되어 주셔서 이렇게 와주시니 한결 안심이 되네예.”

“Y대 암센터는 국내 최고잖아요. 유방 교수님은 제가 만나봤는데 정말 훌륭한 의사이십니다. 내일 수술도 직접 집도하시며 최선을 다하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마음 편히 먹어도 되겠지예?”

“그럼요. 저를 믿고, 마음을 편하게 드세요. 마음이 편해야 몸도 빨리 회복합니다.”

한지호는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김금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1기에 조기 진단을 했다고 해도 암은 사소한 질병이 아니다.

게다가 췌장암은 다른 암보다 위험도가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병상에 누워있는 김금순이 얼마나 무섭고 떨릴지 충분히 짐작이 됐다.

“가족들… 보호자분들은 잠시 식사하러 가셨죠?”

“예, 선생님. 저녁 먹는다고 요 밑에 내려갔습니더.”

“나중에 보호자에게도 설명하겠지만, 앞으로의 치료 과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김금순 환자님 스스로가 잘 알고 계셔야 믿음을 가지고 치료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겠죠?”

“잘 기억하고 있어야지예.”

“먼저 특별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내일 수술을 받으실 겁니다. 췌장 꼬리 부분을 절개해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보통은 전공의나 레지던트가 이런 설명을 대신한다.

하지만 협진 프로젝트에 의해 한지호가 김금순의 주치의 역할을 맡게 됐고, 그는 중요한 설명을 다른 의사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사실 큰 병원일수록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사에게 깊이 있는 설명을 못 듣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의 의사가 담당하는 환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달랐다.

원화 한의원은 VIP 전문을 표방하기에 환자 한 명 한 명을 살뜰히 챙기는 게 몸에 배여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오직 김금순 환자 한 사람을 위해서 Y대 암센터로 온다.

당연히 더 많은 신경을 쏟을 수 있었고, 그만큼 환자는 만족스런 설명을 듣고 안정을 찾기 쉬웠다.

한지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췌장암 1기 환자들의 경우 수술 후에는 내과, 방사선과, 외과 외래 진료를 받으며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금순 환자님의 케이스는 조금 다를 겁니다. 제가 주치의이기 때문이죠.”

기대감을 주는 말이었다.

김금순의 눈도 젊은이의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한지호는 그녀의 기대감을 아낌 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제가 직접 침을 놓고, 한의학적 처방으로 수술 후 항암 치료를 주도할 계획입니다. 이왕이면 몸에 무리가 가는 방사선이나 기존의 항암 치료는 최대한 절제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항암 치료가 그렇게 독해서 사람을 잡는다던데…… 진짜 선생님만 믿겠습니더.”

“저와 암센터의 의료진 모두가 최선을 다할 테니 마음 푹 놓으세요. 오늘도 일찍 주무시는 게 좋습니다.”

“긴장이 되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이 잘 오려나 모르겠네예.”

“그럴 줄 알고 이걸 가져 왔지요.”

한지호가 하얀 가운 안에서 침 세트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장난스럽게 침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김금순도 활짝 웃어줬다.

“숙면을 유도하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침을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더, 선생님.”

“그대로 가만히 누워계시고 옷을 명치 위로 올려만 주세요.”

김금순은 Y대 마크가 수놓아진 입원복을 명치 위까지 돌돌 말아 올렸다.

한지호는 케이스에서 침을 꺼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정신을 집중했다.

마시고 내쉬는 숨을 다스릴 수 있다면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동양 의학과 무술에서는 호흡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한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깊게 들이마신 숨이 아랫배까지 내려갔고, 단전의 기운이 호흡의 영향을 받아 온몸으로 퍼졌다.

이것이 일상적인 운기조식이다.

오금희의 기운이 전신을 지배하자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왔다.

티 없이 맑은 상태, 그야말로 명징한 정신으로 침을 놓을 수 있게 됐다.

한지호는 지체하지 않고 김금순의 복부에 침을 놓았다.

그리 대단한 효과를 내는 침술이 필요하진 않았다.

다만 김금순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환자의 멘탈 케어와 컨디션 관리 역시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한지호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협진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나고 나면 그의 의술이 빛을 발할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Y대 암센터와 원화 한의원이 손을 잡고 얼마만큼의 시너지를 낼지, 머지않아 그 실체가 드러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