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18화 (118/255)

# 118

7장, 거물이 되는 길 (1)

“못 보던 얼굴이네?”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사모님이 눈을 치켜떴다.

진료실에 한지호 말고 낯선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침이나 뜸을 놓을 때는 간호사들이 보조를 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진료실에 한지호 말고 다른 사람이 보였던 경우는 없었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고, 한지호라는 스타 한의사와의 1대1 진료 때문에 거액을 지불하는 VIP 환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경우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반포 최고급 아파트의 주부 모임에서도 까칠한 걸로 유명한 사모님은 달랐다.

그러나 한지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눈앞의 사모님보다 훨씬 까탈스럽고 거만한 환자들도 숱하게 만났다.

한의원을 운영하며 쌓인 경험은 그의 자산이 됐다.

한지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제가 원화 정의 네트워크라는 한의원 브랜드를 만든 것, 혹시 알고 계세요?”

“뉴스에서 봤어. 한 원장이 주도로 한의원 몇 곳이 참여했다면서.”

“맞습니다. 그 중 한 곳에 계신 부원장님이에요. 당분간 저와 같이 진료를 보면서 더 꼼꼼하게 환자 한 분 한 분을 체크해드릴 예정인데, 혹시 불편하신가요?”

“불편하다기 보다는…… 한 원장 보려고 비싼 돈 내고 예약하는 건데, 다른 선생이 보면 좀 찜찜하잖아.”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환자분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거야 그렇지…….”

한지호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자 깐깐한 사모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옛말은 현대에서 부정당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웃는 얼굴에도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는다.

하지만 한지호처럼 능력과 인기를 두루 갖춘 사람이 의사의 입장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나오면, 거기에 침을 뱉을 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무뚝뚝하다.

유명한 교수급 의사일수록 환자를 기계적으로 대하기 일쑤다.

그렇기에 한지호의 부드럽고 유연한 태도가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나중에 제가 자리를 비우면 그때는 미리 환자분들에게 공지를 해드릴 겁니다. 당연히 진료비도 달라질 것이고요. 오늘은 그런 게 아니니 염려 푹 놓으세요.”

“아휴- 그래, 맞아. 우리 한 원장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려고. 내가 괜히 심술 맞았지?”

“아니에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뭐든 바로 물어주셔야죠. 잘 물어보셨습니다.”

파견 근무를 나온 부원장은 한지호가 손쉽게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걸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역시 최 원장의 한의원에서 일하는 부원장이지만 나이는 한지호보다 몇 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호의 노련미를 따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기 부원장님이 먼저 진맥을 하고, 그 다음에 제가 할게요. 그럼 더 정확하겠죠?”

“두 번이나? 나야 좋지, 뭐.”

까다로운 사모님을 순한 양으로 만든 한지호가 부원장에게 눈빛을 보냈다.

멍하게 한지호의 화술을 감상하고 있던 부원장이 다급히 다가왔다.

그가 먼저 진맥을 했고, 이후에 한지호가 사모님의 손목을 잡았다.

이미 몇 번 진료를 받았던 환자이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한지호는 침술실로 이동하지 않고 간단한 수지침을 놓았다. 그리고 전과 마찬가지의 약재를 처방했다.

겉만 보면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치료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깐깐한 사모님은 한 번 올 때마다 5백만 원의 진료비와 약재비를 지불한다.

그러고도 계속 원화 한의원을 찾는 건 돈이 넘쳐나서가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더 따질 건 따져가며 야무지게 지출을 한다.

VIP 환자 대부분은 아픈 곳이 낫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냉정하게 발걸음을 끊을 사람들이다.

한지호가 자신의 의술로 높은 가격만큼의 만족감을 주기에 계속해서 예약을 하고, 고액을 지불하며 진료를 받는 것이다.

“또 올게. 오늘도 고마워, 한 원장.”

“다음에는 몸이 조금 더 가벼워지실 겁니다. 조심히 가세요.”

한지호는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에게 자신감 넘치는 말을 선사했다.

처방대로 약을 잘 복용하면 계속 건강이 좋아질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표정에서부터 까칠한 기운을 풀풀 풍기던 사모님 환자가 나가자 부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런 환자들은 정말 상대하기가 힘듭니다.”

그의 말에 한지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냥 받아줄 수만은 없다.

한숨을 내쉰 부원장은 원화 정의 네트워크 소속의 최 원장이 아끼는 후배이고, 어쩌면 장차 한지호의 일손을 거들지도 모른다.

파견 근무를 나왔으니 가르칠 건 제대로 가르쳐야 했다.

“힘든 유형의 환자지만, 의사가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됩니다. 난동을 부리거나 무턱대고 쌍욕을 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화가 안 통하는 또라이들은 어디에나 있잖아요?”

“그런 환자들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원장님?”

“당연하죠.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면 됩니다.”

“어떤…….”

부원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의술이건 환자 응대건 한지호의 비법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부원장은 파견 근무를 나올 때부터 자신이 한지호보다 나이가 몇 살 많다는 걸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39살인 최 원장도 원화 정의 네트워크에 가입하며 한지호 밑으로 들어갔다.

아직 개원을 못한 부원장은 학부 시절로 돌아가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만한 진정성이 보이기에 한지호도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수하려는 것이다.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 막무가내인 또라이들. 그들을 일반적인 시선에서 판단하면 안 됩니다. 모두 아픈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들… 이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들의 난동이나 욕설도 아픔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의사가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면 깡패처럼 굴던 환자도 고분고분 해질 겁니다. 문제는 의사가 환자에게 위축되어 확신을 주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겁니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진솔한 깨달음이 담긴 조언이었다.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아프다.

몸이 아프면 필연적으로 마음의 균형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 몸과 마음은 연결 돼 있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받는다.

한지호는 이상한 환자, 까다로운 환자, 또 난폭한 환자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의술에 대한 확신으로 환자를 안심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치료받을 수 있다는 확신, 나을 수 있다는 확신만 받으면 제 아무리 대단한 환자라도 의사 앞에서 얌전해질 수밖에 없다.

그 확신을 각인시키는 건 의사의 몫이다.

한지호는 책임을 결코 환자에게 돌리지 않았다.

진짜 이상한 환자가 왔다고 해도 진료실에서 마주한 순간부터 모든 책임은 의사의 몫이 된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진실.

그의 말을 들은 부원장은 감명을 받은 듯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가식적으로 연기를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진맥도 정확하게 보고, 잘 키우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겠어. 최 원장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네.’

그의 표정을 확인한 한지호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부원장에게 전생의 의술을 전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핵심적인 힌트 몇 개를 던져주면 부원장의 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 같았다.

심성과 배우려는 자세는 이미 합격점이다.

그를 잘 키워서 자신이 원화 한의원을 비울 때 진료를 맡기는 그림이 그려졌다.

까다로운 VIP들을 100%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적어도 원화 한의원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을 인재로 보였다.

‘아예 우리 한의원에 달라고 해야겠다. 대신 최 원장님께 뭘 드려야하나. 광고 한 번 제대로 해주면 되겠지?’

한지호는 파견 근무를 나온 부원장을 스카웃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서서히 더 넓은 무대에 큰 뜻을 펼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국가도 전쟁을 치르기 전에 내정부터 다스린다.

마찬가지로 한지호는 자신이 없어도 원화 한의원과 네트워크의 브랜드가 유지되도록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블랙문 카지노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카지노 랭킹에 집계되고 있고, 소장파 세력의 리더가 된 한지호는 원화 정의 네트워크라는 브랜드를 키우는 중이다.

이제 정말 더 높은 하늘 위로 또 한 번 뛰어오를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려라, 대륙.”

한지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혼잣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내실을 다지며 새롭게 정복할 드넓은 땅을 상상하는 그의 모습은 삼국지 시대의 군주나 제후를 빼닮아 있었다.

한지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천하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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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의 밤은 낮보다 더 화려하다.

오랜만에 H 호텔 앞에 도착한 한지호는 입구에 차를 세웠다.

하얀색 벤틀리가 호텔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아 더 밝게 빛났다.

고급차들이 즐비한 곳이지만, 한지호의 컨티넨탈은 위풍당당한 기세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는 차 키를 호텔 소속의 발렛 직원에게 맡겼다.

독일 3사 윗급의 슈퍼카를 몰고 다니는 오너들 중에는 절대 발렛을 맡기지 않는 부류도 있다.

혹시라도 직원의 실수로 차가 상하면 손해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자기 몸처럼 차를 아끼는 것도 좋지만, 한지호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3억짜리 자동차라고 해도 결국은 소모품이다.

사람이 차를 타는 것이지, 차가 사람을 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해수로부터 아우디 A5를 선물 받았을 때는 한지호도 전전긍긍했다.

누구 못지않게 차에 집착하며 혹시 기스라도 날까봐 온 신경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잘 부탁해요.”

팁으로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며 차키를 맡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눈이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고개를 숙였다.

원래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5성급 호텔이지만, 근무하는 직원들이 한지호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더욱 공손해진 것 같았다.

김영찬 교수의 윤리위원회 제소 사건으로 한지호가 블랙문 카지노의 의료 자문이란 사실은 온 세상이 알게 됐다.

덕분에 한지호는 예전보다 더 떳떳하게 카지노를 출입할 수 있었다.

나쁜 의도로 공격을 했던 김영찬은 오히려 한지호에게 자유를 준 셈이다.

공격한 김영찬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한지호는 여러 겹의 날개를 얻었다.

이래서 주먹은 아무데서나 휘두르면 안 된다.

자칫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되면 한 방에 K.O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찬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벽한 카운터 펀치로 반격을 날린 한지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1층의 카지노 출입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피부색의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보였지만, 역시 주 고객층은 내국인들이었다.

그래도 정선의 카지노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정선 카지노에는 며칠째 옷을 갈아입지 않고 테이블을 전전하는 중독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영종도 블랙문 카지노는 정선보다 훨씬 엄격한 고객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외국의 고급 카지노처럼 방문객들은 최소한의 복장 예절을 준수해야 한다.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지저분한 행색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화려한 영종도 국제 특구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고객들 대부분이 부유해 보였다.

송도 신도시에 사는 신흥 부유층과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주로 들리기 때문이다.

입지적인 측면에서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카지노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지호는 출입문 앞에 잠시 서서 고객들이 드나드는 걸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출입문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허리를 숙였다.

마창우가 데리고 있는 블랙문 코퍼레이션의 직원들, 노골적으로 말하면 마창우의 조직에 소속된 동생들은 한지호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지호를 비롯한 주요 투자자와 VVIP 고객들의 얼굴을 기억하라고 특별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람들이 예고 없이 카지노에 방문했을 때 알아보지 못하면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또 VVIP들은 자신을 알아보고 특별 대우를 해주는 걸 좋아한다.

원활한 카지노 경영을 위해 마창우가 단단히 교육을 해놓은 것이다.

한지호는 허리를 숙이는 떡대, 아니 경호원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마 이사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대표이사님께서는 지금 VVIP들을 모시고 지하 2층에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원장님.”

경호원 중 한 명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사실 굳이 안내가 필요 없지만, 한지호는 그냥 경호원이 안내를 하게 내버려 두었다.

이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 1층을 지나치며 머리를 굴렸다.

‘대체 누가 왔기에 마 이사님이 직접 지하 2층까지 내려가서 게임을 하는 거지? 웬만하면 인사면 하고 움직이지 않을 텐데. 전야제 파티에 초청했던 거물들일 가능성이 높겠군.’

간단하지만 예리한 추측이었다.

블랙문의 대표이사인 마창우가 지하 2층의 프라이빗 룸으로 내려가서 게임을 하거나 관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요한 고객이 카지노에 방문해도 잠시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마침 오늘은 한지호가 정기적으로 블랙문 카지노에서 의료 자문을 하는 날이었고, 마창우가 자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저벅저벅-

한지호는 VVIP들만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대리석과 순금, 진주와 루비로 장식 된 지하 2층은 그리스 신들의 세계인 올림푸스를 연상시켰다.

이곳에 마련된 수십 개의 프라이빗 룸 안에서는 최소 몇 천만 원의 판돈이 오가고 있다.

잠시 후 정확히 누구를 만나게 될지, 한지호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얼마나 놀라게 될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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