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84화 (84/255)

# 84

1장, 진짜, 가짜! (1)

한지호는 진료를 마치고 곧장 팀 DK 사무실을 찾았다.

오대경이 국회의원 민시헌과 백수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알아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한 날이었다.

마창우는 침을 맞으며 새로운 내국인 카지노 사업권을 따냈다고 밝혔다.

그는 누가 봐도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게 분명한 사업에 투자권을 주겠다고 했다.

한지호 입장에서는 여지껏 얻은 적 없는 어마어마한 기회였다.

영종도에 신설 될 내국인 카지노는 어떤 말로도 수식이 불가능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황금이 샘솟는 우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지호의 치료를 통해 마창우는 손가락이 잘린 자리에서 느껴지는 환상통을 극복하고 있었다.

그는 완치가 되면 거액의 치료비와 더불어 카지노 사업권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한지호가 이제껏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마창우는 없는 소리를 지어낼 인물이 아니었다.

굳이 한지호 앞에서 허풍을 떨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마창우의 조직이 카지노 사업권을 따냈다는 건 사실 같았다.

마창우라는 위험하지만 특별한 환자와 얽힌 문제, 그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민시헌이라는 거물 정치인의 청탁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저벅저벅.

한지호는 오대경이 이끄는 팀 DK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콘래드 호텔의 프라이빗 라운지에서 받았던 청탁의 내막이 무엇인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야당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국회의원 민시헌이 단순히 백수오라는 약재를 띄우려고 은밀히 청탁을 했을 것 같진 않았다.

정책연구원의 자문위원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제시한 걸 보면 그만한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다.

“오랜만인데 얼굴이 더 좋아지셨습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입시다.”

오대경이 딴에는 반가운 듯 웃음을 터트리며 한지호를 맞이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팀 DK 사무실 내부는 최첨단 시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오대경을 비롯해 밑의 직원들의 인상이 하나 같이 80년대 조폭스러울 뿐이었다.

그에 반해 진짜 조폭 중의 조폭이라 할 수 있는 마창우는 비교적 세련된 스타일을 자랑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민시헌 의원과 백수오 사이의 접점을 찾았다고요?”

한지호는 오대경의 맞은편 의자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둘 사이에 안부 인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의뢰를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오대경이 조사한 결과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오대경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둑한 의뢰비를 받았으니 성실하게 대답을 해야 한다.

그에게 있어 한지호는 난데없이 나타난 특급 고객이다.

오대경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민시헌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풀어 놓았다.

“민시헌 의원은 야당 내에서도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지지도가 높습니다. 중도층이나 보수층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은 국회의원 아입니까. 그래서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 되고 있고…….”

“그거야 모든 국민이 아는 사실이죠.”

“맞습니다. 아무튼 간에 민시헌 의원의 뒤를 파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웠습니다. 워낙 거물이니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서 쉬운 측면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잘못 팠다간 독박을 쓸 수 있으니 조심도 해야 하고. 그래서 철저하게 백수오라는 키워드 하나만 들입다 팠습니다. 우리 한 원장님께서도 그것만 원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명확한 연결 고리가 뭐였습니까?”

한지호가 오대경을 다그치듯 말했다.

프라이빗 라운지에서 민시헌을 직접 만나 청탁을 받은 건 그에게 무척 중요한 사건이었다.

마창우의 카지노 사업 투자보다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소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촉을 받은 오대경은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만 본능적으로 신중을 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국내 백수오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회사가 어디인 줄 아십니까?”

“글쎄요.”

“내추럴 코리텍이라는 수입, 유통 회사입니다.”

“그럼 민시헌 의원이 내추럴 코리텍의 지분이라도…….”

“그래 눈에 보이는 연결 고리는 아입니다. 한 꺼풀 더 파고들어야 보이는 거지요.”

오대경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지호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앞둔 관객처럼 집중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시헌 의원실에 제일 많이 후원을 한 회사가 바로 내추럴 코리텍입니다. 알게 모르게 정치자금 윽수로 찔러준 겁니다. 원래 선거에는 돈이 많이 들고, 여러 기업 홍보실에서 유력한 후보자들에게 정치자금을 만들어 줄라고 혈안이 된다 아입니까.”

“내추럴 코리텍이 민시헌 의원의 총선 자금을 지원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은 건가요?”

“선거 자금에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한 원장님. 다만 정황 증거로 유추를 하는 거 아이겠습니까.”

“그럼 민 의원이 총선 때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백수오라는 내추럴 코리텍의 핵심 아이템을 밀어주려한다?”

“하나 더 있습니다. 민시헌 의원의 조카가 내추럴 코리텍에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입니까. 나이도 젊은데 벌써 전무라고 합니다.”

“음…….”

한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드러난 정황으로 민시헌이 백수오라는 약재를 주목받게 하려는 이유는 자명해 보였다.

총선 때 도움을 주고, 조카를 고위직으로 임명한 내추럴 코리텍을 돕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추럴 코리텍은 오대경의 말대로 국내에 유통되는 백수오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고 한다.

만약 한지호가 <건강백서, 진짜! 가짜!>에서 백수오를 추천하면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수혜자가 될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청탁에 의한 것이기는 해도 백수오 자체는 방송에서 추천하기 부족함이 없는 약재다.

가격에 비해 효능이 뛰어나고, 지금보다 더 널리 쓰이도록 권하면 국민 건강 증진에 보탬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청탁에 의한 것이라는 동기만 빼고 생각하면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방송에서 백수오를 아이템으로 다루고, 민시헌 의원에게 빚을 지우는 일……. 완전 이득이잖아?’

오대경의 조사 결과를 들은 한지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무조건 민시헌의 청탁을 받아들이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는 고(GO)를 외치는데 가슴이 스톱(STOP)을 말하고 있었다.

한지호는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스로의 본능적 감각을 신뢰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혹시 다른 정보가 더 확인되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전화 드리겠습니다. 살펴 가이소.”

오대경의 인사를 받고 밖으로 나온 한지호가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창우가 제시한 카지노 사업 투자도, 민시헌의 청탁도 너무 큰 덩어리였다.

위기가 곧 기회이듯 기회 역시 위기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큰 덩어리의 기회는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패가망신을 부를 수도 있다.

한지호는 찬바람을 쐬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딛지 않으면 이제껏 쌓은 모든 것을 잃을지 모른다.

깊은 고민에 빠진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

한지호는 1차 조치를 취했다.

<건강 백서, 진짜! 가짜!> 제작진에게 방송 아이템으로 백수오를 추천한 것이다.

오대경이 수집한 정보 이상의 문제가 없다면 백수오를 다루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본능적 감각의 경고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제작진 차원에서 백수오를 검토하게 한 후 스스로 실태를 조사하러 나섰다.

진료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 한지호는 경동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주말의 여유와 데이트를 뒤로하고 경동시장에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백수오의 실태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왔는가!”

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 다시 명징약초를 책임지고 있는 최치우가 한지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귀침을 응용한 치료 덕분에 수술 후유증을 이겨낸 그는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원화 한의원의 독점적인 약재 공급상이자 경동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돌아온 것이다.

“잘 지내고 계셨죠? 무리는 하면 안 됩니다, 최 사장님.”

“그럼 그럼!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지. 내가 한 원장 말을 누구보다 잘 듣지 않는가?”

“무거운 걸 들거나 나를 일이 있으면 꼭 사람 쓰세요. 최소 1년 동안은 왼팔에 무리가 가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하셔야 해요.”

“명심함세. 보자마자 내 걱정부터 해주니 기분이 좋구만, 커허허허-!”

최치우는 한지호의 잔소리를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진심어린 염려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한지호는 건강한 최치우를 보고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가 명징약초를 지켜주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한지호 개인에게도, 그리고 원화 한의원에게도 최치우는 가장 소중한 후원자이자 파트너 중 한 명이었다.

“준비는 대충 해놓았다네!”

“네.”

최치우가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한지호의 부탁을 받고, 미리 모종의 준비를 마쳐 놓은 것이다.

그를 따라 명징약초 내부로 들어가니 진열장 앞 탁상에 약재가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백수오였다.

최치우는 가공되기 전 상태의 백수오를 구해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굳이 한지호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됐다.

약초꾼들 사이에서 큰형님으로 통하는 최치우가 도움을 주니 시간과 수고를 단축할 수 있었다.

“이건 가요?”

“자잘한 소규모 농가의 백수오를 일일이 다 구할 수는 없지만, 굵직한 것들은 대부분 마련해 놓았네.”

“고생하셨습니다. 가공되기 전의 것들은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한지호는 새삼 최치우의 수완에 감탄하며 탁자 위를 쳐다봤다.

백수오를 약재 상태로 판매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가공을 거쳐 알약이나 환단, 또는 달여 마시는 한약의 형태로 판매한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은 백수오의 원래 모습을 보고 제품을 판단하기 힘들다.

물론 가공되기 전 순수한 백수오를 본다고 해서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약방이나 한의원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라고 해도 약초의 질을 가늠하는 건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지호가 냄새만으로 약초의 진가를 파악해내는 게 대단한 것이다.

괜히 최치우가 깜짝 놀라 처음 본 자리에서 한지호를 인정했던 게 아니다.

정밀 기계 감식을 거치지 않고 약초의 진위 여부와 등급을 판단하는 건 명인 반열에 오른 약초꾼이나 가능한 일이다.

누가 봐도 가품이 확실한 약초라면 몰라도 대부분은 판별하기 무척 애매한 상태다.

그러나 한지호는 자신이 있었다.

약재의 진위 여부, 그리고 세밀한 등급을 구분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전생을 각성하며 얻게 된 능력이 저절로 약초의 향을 분간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탁자 오른쪽에 놓인 백수오부터 손으로 들어 감별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진짜고.”

한지호는 창공에서 지상의 사냥감을 노리는 한 마리 매처럼 눈을 매섭게 치떴다.

감각을 극대화시킨 그는 코끝으로 느껴지는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려 노력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신경계를 초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오금희 녹공이 발동됐다.

첫 번째 백수오를 내려놓은 한지호는 물을 찾았다.

“냉수 한 잔만 부탁드립니다.”

“아, 그걸 깜빡하고 있었구만. 잠시만 기다리게나.”

최치우는 눈을 크게 뜨고 재빨리 차가운 물을 가져왔다.

미식가들이 음식을 맛볼 때 냉수로 입 안에 남아있는 맛을 씻어내곤 한다.

약초를 감별할 때도 비슷한 방법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지호는 냉수를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목 뒤로 넘겼다.

눈과 코와 목은 하나로 연결 된 기관이다.

입 안과 목을 씻어내며 코에 깃든 약초의 향기까지 빼내고 있었다.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온갖 향기가 섞여 약초 감별에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수십 년 넘게 약초꾼의 세계에서 살아온 최치우마저 한지호의 꼼꼼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백수오를 연달아 들었다.

탁자에 놓인 가공 전의 백수오들을 감별할수록 한지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최치우도 느낄 정도였다.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최 사장님, 이 중에서 내추럴 코리텍이 가공할 때 쓰는 백수오가 무엇입니까.”

“자네가 세 번째로 감별한 것이라네.”

“하아- 이것 참.”

한지호가 알 수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최치우의 궁금증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한지호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첫 번째 백수오 말고 나머지는 전부 가짜입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내 보기엔 전부 백수오와 같았는데!”

최치우의 약초꾼 경력과 자존심에 흠이 갈 이야기였다.

제대로 감별을 시도하진 않았어도 최치우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지호는 단호했다.

“나머지가 다 가짜라는데 한의사 면허를 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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