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10장, 검은 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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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경은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를 소개시켜준 것만으로도 플래티넘 홀딩스의 유건영에게 톡톡히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상류층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일을 오대경에게 맡기는지 확실히 느껴졌다.
한지호는 오대경 덕분에 한국 한약 협회장 김일은과 대포차 조직을 일망타진했고, 마창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회의원 민시헌에 대해서도 의뢰를 했다.
오대경이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 민시헌의 뒷조사를 부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민시헌이라는 이름을 들은 오대경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한지호는 민시헌의 일거수일투족을 파헤치거나 비리를 알아내라는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았다.
백수오.
민시헌이 <건강백서, 진짜! 가짜!>의 아이템으로 추천한 아이템이 키워드였다.
한지호는 민시헌과 백수오 사이의 연결 고리만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라면 오대경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의뢰였다.
민시헌을 조사하고, 마창우의 조직이 최근 공들이고 있는 사업을 알아보는 것.
그 대가로 한지호는 오대경에게 무려 2천만 원을 입금시켰다.
노는 물이 달라지니 오가는 돈의 액수도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2천만 원은 무척 큰돈이지만, 한지호는 은밀한 정보를 얻는 대가로 그만한 금액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었다.
매달 원화 한의원을 통해 버는 순수익이 이미 억 대에 근접했다.
직원들의 월급과 인건비, 값비싼 역삼역의 임대료와 약재비, 세금, 황만금에게 투자 받은 10억 원에 대한 상환금까지.
이 모든 것을 공제하고 순수하게 한지호의 지갑으로 들어오는 돈이 매 달 1억 원 가까이 이르렀다.
보통 개원을 하고 첫 일 년은 적자에 허덕이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개원 3달 만에 적지 않은 순이익을 거두고 있었다.
아직 돈을 많이 번다는 느낌은 없었다.
개원을 하기 전부터 한 번에 수천만 원에서 일억 원 이상을 내는 환자들을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겼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훨씬 풍족해진 건 사실이었다.
더구나 지금의 수익이 끝이 아니다.
원화 한의원은 이제 막 한 계절을 넘겼을 뿐,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고 오대경에게 2천만 원을 지불하는 것도 가능했다.
선입금을 받은 오대경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원하는 정보를 찾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한국 한약 협회와의 트러블을 통해 한지호와 오대경 사이에는 최소한의 신뢰가 생겼다.
한지호는 그를 믿고 일상에 집중했다.
매일 쏟아지는 환자와 매주 신경을 써야 하는 방송 촬영, 그리고 틈틈이 천사원을 돌보며 사생활까지 챙겨야 한다.
조기운이 관리하는 청우단을 제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눈을 감았다 뜨면 순식간에 며칠이 훌쩍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누구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민시헌을 만나고 열흘이 지났다.
민시헌 의원실에서는 아직 별다른 압박을 넣지 않았다.
조만간 한지호가 백수오를 아이템으로 선정해 방송 할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상식적으로 민시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마 한지호가 뒤에서 조사를 의뢰하고 수를 재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터였다.
한지호는 지난 열흘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인터폰을 타고 조민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장님, 마창우 환자님 오셨어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혼잣말을 중얼거린 한지호가 시계를 쳐다봤다.
어느새 마창우의 예약시간이었다.
그를 만나는 것도 오늘이 네 번째다.
첫 만남에서는 증상만 확인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진료에서는 뜸과 침을 병행했다.
그동안 마창우는 처방해준 약을 성실히 먹었고, 매 주 한의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걸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해요.”
한지호의 말이 떨어지고, 곧이어 조민주가 진료실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 너머로 마창우의 떡 벌어진 어깨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세요.”
조민주의 안내를 받고 들어온 마창우가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한지호를 만나서 진료를 받는 게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부드러운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늦지 않고 오셨네요. 지난 한 주는 어떠셨어요?”
“그게 말입니다.”
마창우가 오른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검지가 잘린 그의 오른손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매주 보다 보니 한지호의 눈에도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마창우의 오른손이 익숙해진 것이다.
“확실히 통증이 전보다 줄어들었습니다. 거 참, 신기합니다.”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물론 한 원장님을 믿고 왔지만, 참.”
한지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마창우는 날카로운 눈매를 누그러트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치료가 제대로 안 되면 가만 안 있을 거라고 기세등등하게 말하던 마창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주먹 세계의 전설도 한지호 앞에서는 얌전한 환자가 되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의술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원래 뜸과 침을 한 번에 시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마창우 환자님의 증상은 워낙 복잡한 원인이 얽혀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만큼 복잡한 치료를 매우 조심스럽게 해냈기에 효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한 원장님의 치료를 의심했던 게 부끄러워집니다.”
“아닙니다. 심각하고 특이한 병일수록 의사를 신뢰하기 힘든 게 당연합니다. 대부분 다른 병원에서 치료 효과를 못 봤기 때문에 불신이 깊어진 상태가 되죠. 마창우 환자님은 제 진료를 잘 따라오고 있으십니다.”
“이 사람 체면까지 세워주시고, 감사합니다.”
마창우가 짧지만 묵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경거망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음지에 속한 인물이지만, 아무나 전설이 되어 전국적인 조직을 이끌 수 있을 리 없었다.
마창우는 진심으로 한지호에게 탄복했다.
나이는 어려도 자신의 특이 질환을 고쳐주는 의사로 완벽하게 인정을 한 것이다.
“이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죠. 증상이 어떻게 완화되고 있습니까?”
한지호는 한 달 사이에 급변한 마창우의 태도에 희희낙락하지 않았다.
당장의 성과로 기뻐하기 보다는 남은 증상을 완전히 치료해내는데 집중하려 했다.
“원래는 검지가 있던 자리에서 자주 두개골을 쪼갤 듯 한 통증이 느껴졌었습니다. 그래서 자다가 깰 때도 많았습니다. 사실 손가락을 자른 후 편히 잠든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불면이 간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계속해서 악순환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쑥과 침 치료를 받고, 약을 계속 먹어서인지 지난주에는 잠을 잘 잤습니다. 깨어 있을 때는 드문드문 통증이 느껴졌지만, 숙면을 취한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잠은 인간에게 있어 밥보다 더 중요한 요소다.
경우에 따라서는 열흘 이상 단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잠은 이틀만 못 자도 사람이 미치고, 사흘을 넘기면 빈사 상태에 이른다.
마창우는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손가락을 자른 후 숙면을 취한 적이 없었다.
잊을만 하면 느껴지는 검지의 고통이 뇌리를 쑤시며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지호에게 치료를 받고, 드디어 중간에 깨지 않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여전히 잘린 검지의 환상통이 남아있지만, 잠을 제대로 잤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한지호는 그의 말을 듣고 치료 정도를 파악했다.
“시술실로 옮기시죠. 오늘은 뜸을 생략하고, 침만 놓겠습니다.”
“뜸은 안 놓는 겁니까?”
“네, 이제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숙면을 취하면 몸은 자연스레 긴장을 풀게 됩니다. 굳이 뜸으로 긴장을 완화시키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됐다는 뜻입니다.”
마창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처음보다 나아졌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조민주에게 콜을 넣어 마창우를 시술실로 보냈다.
오늘부터는 뜸을 생략하고, 새로운 차원의 침술로 마창우의 환상통을 치료할 것이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
과연 환상통이라는 고지를 정복하면 마창우는 어떤 보답을 할까.
국회의원 민시헌을 만나기 전까지 한지호의 머릿속을 떠돌았던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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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호는 오금희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침을 놓았다.
뜸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줄 필요가 없어졌기에 마음놓고 침술을 펼쳤다.
약재 처방과 치료로 마창우의 간은 예전보다 훨씬 강성해졌다.
간의 힘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통증도 줄어들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심장에 쌓인 화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화기를 잡아야 통증도 사라진다.
한지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화기와 반대되는 수기(水氣)를 품은 오금희 녹공(鹿功)의 힘을 침에 담아 혈도를 자극하는 것뿐이다.
흉터가 자글자글한 마창우의 등판에 침을 다 놓은 한지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처럼 혈도를 따라 침을 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치료였다.
오금희의 기운을 쏟아내는 건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이마 위로 맺힌 식은땀을 닦아낸 그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조금만 누워 계시면 됩니다.”
“오늘 침은 뭔가 달랐습니다.”
“그렇게 느껴지셨습니까?”
“알 수 없는 기운이 등가죽을 뚫고 몸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기분이었습니다.”
한지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엎드려있는 마창우가 침에 실린 오금희의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몸을 쓰는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랐다.
마창우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극한까지 육체를 단련하고 혹사시키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인 감각이 남다른 것 같았다.
“무척 예리하시군요.”
“잘못했다간 어디서 칼을 맞을지 모르는 세계에 사는데 어떻게 안 예리할 수 있겠습니까, 한 원장님.”
한지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익숙해졌지만, 마창우는 주먹 세계를 평정한 조직의 부두목이다.
“10분 뒤에 침을 뽑겠습니다.”
한지호는 잠시 마창우를 혼자 놔두고 시술실에서 나가려 했다.
10분 동안 찬물로 세수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엎드려 있는 마창우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한 원장님.”
“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그게 아니라… 전에 치료를 해주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선물하겠다고 한 말,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손가락이 잘린 자리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치료비는 섭섭지 않게 챙겨드릴 겁니다.”
“완치가 된 후 이야기 하셔도 됩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는 치료비와 상관없는 별도의 선물입니다. 미리 자금을 준비해놓고 계시라는 뜻에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자금이요?”
“확실한 투자처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영종도에 내국인 카지노 건설을 허가 할지 모른다는 뉴스는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네.”
마창우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시술실 안에는 마창우와 한지호 둘 밖에 없었다.
그는 한지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실체를 말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카지노 사업권, 내가 따냈습니다.”
“……!”
내국인 카지노 허가 여부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 카지노에 투자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이만하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맞을 겁니다.”
마창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10배, 2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일이 확실했다.
한지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시술실에서 나와 세수를 했다.
찬물이 얼굴을 적셨지만 머리가 계속 띵했다.
혹시 마창우가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만약 사기가 아니라면 로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회인 게 분명하다.
우웅- 우우웅-
한지호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찰나, 가운 안에 넣어둔 스마트 폰이 울렸다.
폰 화면에는 오대경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절묘한 타이밍에 오대경이 전화를 건 것이다.
“한지호입니다.”
“한 원장님, 오대경입니다. 제가 의뢰를 완수했다는 거 아입니까.”
“그 말은…….”
“민시헌 의원과 백수오의 관계, 빠싹하게 알아냈습니다. 시간 나실 때 사무실로 들려 주이소.”
연달아 커다란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한 번에 몰아서 오는 법이다.
지금으로선 마창우, 그리고 민시헌과 엮인 일이 호재인지 악재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기회들이 연달아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한지호. 이럴 때일수록 내 페이스를 유지해야 해.’
한지호는 화장실의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노려보며 정신을 바로잡았다.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파도를 타고 놀 것인가.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많은 것이 뒤바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