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71화 (71/255)

# 71

4장, 수단과 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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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친 한지호는 오늘도 어김없이 한세 병원을 찾았다.

최치우는 벌써 1주일 가까이 입원해 있었다.

병원에서는 최소 1주는 더 입원해서 안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최치우는 깁스를 한 채 퇴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명징약초를 오래 비워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멀쩡한 오른팔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통원 치료를 받겠다며 의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지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천하의 최치우도 한지호의 말은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단순히 명징약초의 가장 큰 고객이자 파트너라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한지호의 권고를 가볍게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괜찮다는데도, 사람 참.”

“제가 안 괜찮습니다. 여기 계신 원복 님도 안 괜찮으실 거고요. 안 그렇습니까?”

“맞수다. 형님도 기왕 한 선생 말을 듣기로 한 거, 길게 불평하지 마시우.”

최치우는 미안함을 숨기기 위해 계속 툴툴거렸고, 한지호와 이원복에게 핀잔을 들었다.

값비싼 1인실에 계속 누워있는 게 답답하기도 하면서 미안할 것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최치우에게 생색을 내고픈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마 자신 때문에 다쳤을 가능성이 높은 그를 완벽하게 치료하고 싶을 뿐이었다.

“최 사장님. 제가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주일 뒤에 실밥을 뽑고 나면 본격적으로 신경 회복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직도 왼팔에는 얼얼한 느낌밖에 없네. 의사 말로는 재활 치료를 받으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구만.”

“병원에서 하는 재활 치료도 성실히 받으셔야죠. 하지만 정말 신경이 회복되지 않는 거라면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럴 터이지…….”

“그래서 제가 연구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력이 빨리 회복되고, 신경도 멀쩡히 돌아와 감각을 찾게 만들어야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말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한지호는 최치우의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남은 1주일은 휴가라 생각하고 푹 쉬세요. 우리 한의원에서 필요한 약재는 제가 직접 명징약초에 들러 가져가겠습니다.”

“쉬는데만 집중 하는 게 좋겠수다, 형님. 내가 한 선생과 같이 가게에 들러 안내문도 써 붙이고, 약재 정리도 하고 오겠수.”

한지호와 이원복의 말에 최치우도 더는 툴툴거리지 못했다.

사실 그도 내심 불안하던 차였다.

수술을 받은 지 1주일이 다 되도록 왼팔이 계속 얼얼하며 감각이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경 계통에 문제를 느껴본 사람만이 그 공포를 짐작할 수 있다.

멀쩡한 신체 기관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팔이나 다리가 무감각한 고무 덩어리처럼 느껴질 때의 공포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최치우는 워낙 정신이 강한 인간이기에, 또 한지호라는 동아줄이 있기에 잘 버티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티를 내려 하지 않아도 불안함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한지호는 최치우의 눈동자에 떠오른 공포와 혼란을 읽어냈다.

그는 남몰래 단전에 깃든 오금희의 기운을 발동시켰다.

간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웅공(熊功)이 한지호의 전신을 채웠다.

웅공은 목기(木氣)와 연관 돼 있다.

무공으로 사용하면 바위를 부술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의술에서 웅공의 목기는 간을 보하는 효과를 지녔다.

한지호는 웅공을 일으킨 채 두 손으로 최치우의 어깨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어깨를 주무르며 웅공의 목기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슈우우우우-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기운이 최치우에게 들어갔다.

오금희 웅공의 기운을 받아들인 최치우는 일시적으로 간의 힘이 강해지게 된다.

수술을 받고 지친 몸이 활력을 찾게 되며 불안한 마음도 약간은 진정될 것이다.

어깨를 주무르면서 충분히 기운을 주입한 한지호가 손을 뗐다.

최치우는 그런 한지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커허허허, 자네는 안마도 기가 막히게 하는구만? 몸이 풀리면서 편안해진 것 같네.”

“한의원 망하면 마사지 샵이나 차릴까요?”

“예끼! 농담이라도 말게. 요즘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가는 원화 한의원이 망하긴 왜 망해!”

한지호는 그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웅공을 일으켜 목기를 주입한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최치우는 어깨 안마를 받아서 몸이 풀렸다고 느꼈지만, 목기의 영향으로 간이 살아나며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이다.

한지호가 오금희의 다섯 기운을 응용하는 수법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는 최치우와 이원복을 돌아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1주일 뒤에 실밥을 뽑고 나면 진짜 치료가 시작될 테니 체력 충전 단단히 해두세요. 그리고 원복 아저씨는 저랑 같이 명징약초에 다녀오시죠.”

“그래야 겠수다. 진열대 정리도 좀 하고, 한 선생이 필요로 하는 약초들도 내줘야 형님이 안심할 것 같수.”

한지호와 이원복의 말을 들은 최치우는 이전보다 훨씬 기운이 나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은 말고 다녀들 오게. 나도 계속 가게가 걱정이 되던 참이네.”

“그럼 약재는 제가 알아서 가져가겠습니다. 1주일만 더 버티세요, 최 사장님.”

한지호는 이원복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1주일 뒤부터는 최치우의 팔을 치료하는데 전력을 쏟아 부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1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이원복과 함께 명징약초로 가는 한지호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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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한지호가 유일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날이다.

원화 한의원은 수요일과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수요일은 <건강 백서, 진짜! 가짜!>의 촬영이 있기에 쉬는 날이라고 할 수 없다.

토요일도 오전 진료이긴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휴일은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한지호는 어제 오후 명징약초에 들러 필요한 약재를 잔뜩 가져왔다.

약재를 원화 한의원에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든 그는 정오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가끔은 이렇게 늦잠을 자는 걸로 피로를 회복해야 한다.

오금희를 익힌 후 아침 일찍 눈을 떠도 피곤하지 않지만, 결국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리다.

“으… 좀 살 것 같다.”

연일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던 한지호가 기지개를 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균형 잡힌 식단과 충분한 수면은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

특별한 질병이 없는 사람은 식단과 수면만 관리해도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만큼 먹는 것과 자는 것이 몸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한지호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찬물이 목을 넘어 온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장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틀었다.

쏴아아아-

한지호는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일요일이긴 하지만 저녁에는 이지은을 만나기로 했다.

아직 한국 최고의 인기 여가수인 이지은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김해수의 경우처럼 편하고 쿨하게 시작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해수 씨가 서울로 올라오면 말해줘야겠네.”

한지호는 대한민국을 풍미한 글래머 스타 김해수와의 사이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은과 연애를 시작한 이상 그녀와 계속해서 쿨한 사이로 남을 수는 없다.

피식-

뜨거운 물줄기를 맞던 그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지은과의 연애 때문에 김해수와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주말 드라마 속 주인공도 아니고, 남자들의 망상 속 고민을 한지호는 실제로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지은의 진심을 받아들였기에 김해수와는 남녀가 아닌 의사와 환자 관계로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다.

지방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는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길 것이다.

“지은 씨 만나기 전에 정리할 것도 좀 있고.”

한지호는 저녁 약속에 나가기 전 머릿속을 떠도는 의술을 정리해두려 했다.

여전히 감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최치우의 왼팔을 치료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저벅저벅.

샤워를 마친 한지호가 몸의 물기를 닦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속옷만 입은 그의 몸은 잘 빚어놓은 조각상 같았다.

한지호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가장 편한 자리에서 머릿속의 의술을 정리하고 싶었다.

한의학으로 외과적 치료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한지호는 김해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기 왼손을 다치게 만들었고, 순식간에 외상을 치료해냈다.

침술이나 한약 등으로 외과 치료가 어렵다는 건 한지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치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단순한 외과적 시술을 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뺑소니 사고로 부러졌던 최치우의 팔은 현대 의학을 통해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감각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뼈와 근육, 신경을 완벽하게 봉합했는데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감각 상실이 발생한 것이다.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후유증이지만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다시 살을 열어 재봉합을 해도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의사들은 대부분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감각이 회복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지호는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빈틈을 한의학으로 치료하겠다고 단언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화타의 제자였던 규호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전생에서 한지호는 화타를 대신해 독화살을 맞은 관우의 팔을 열어 외과 수술을 집도했었다.

그 후로도 관우는 멀쩡하게 팔을 쓰며 천하를 진동시켰다.

독화살을 맞은 것에 비하면 최치우의 상태가 훨씬 더 양호하다.

“살을 열지 않고도 신경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어.”

소파에 앉은 한지호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듣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관우의 팔을 고쳤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가 한 둘이 아니다.

굳이 다시 최치우의 팔을 열어 위험한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

한지호의 뇌리로 몇 가지 방법이 스치고 지나갔다.

손상을 입고 반쯤 죽어있는 신경에 강한 충격을 주는 침술 요법이 떠올랐다.

그는 한의학이라는 틀 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작정이었다.

우웅- 우우웅-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 폰이 울렸다.

의술에 대한 고민을 하던 한지호는 진동이 한참 울린 뒤에야 폰을 확인했다.

스마트 폰 액정을 본 그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천사원 아이들을 찾으러 지방에 내려간 조기운의 전화였기 때문이다.

“그래, 기운아.”

“지호 형님! 찾았습니다!”

“응?”

“광주 고모네로 갔던 지훈이, 고창에서 찾아냈습니다!”

조기운의 말에 한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민우와 민기 형제의 신원은 이미 확보했다.

하지만 광주로 내려갔던 지훈이가 걱정이었는데, 조기운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아이를 찾은 것이다.

한지호는 잠시 다른 생각을 접어두고 통화에 집중했다.

“찾았어? 고창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

“질이 안 좋은 아이들 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말해봐.”

“가출 청소년들 모아서 합숙시키며 자잘한 범죄에 이용하는 양아치 조직이었습니다. 거기서 활동하는 걸 찾아내서 데려나왔고, 지금은 배불리 밥 먹이고 제가 얻은 숙소에서 푹 자고 있습니다.”

“잘했다, 정말 잘했어. 그런데 양아치들이 순순히 지훈이를 보내주진 않았을 텐데…….”

“제가 형님처럼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제압하진 못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형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동자가 네 명 정도였는데, 적당히 교육시켜서 뿔뿔이 흩어 놓았습니다.”

한지호는 고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능히 짐작했다.

조기운은 체육 특기생 출신이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후에도 험한 노가다 판에서 막노동을 하며 거칠게 살아왔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믿기 힘든 몸놀림으로 용역들을 밀어내고 어린 아이를 구해내지 않았던가.

조기운이 혼자서 고창의 양아치들을 두들겨 패고 지훈이를 빼낸 과정은 한 편의 액션 영화와 같았을 것이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내가 늦장을 피우는 바람에 너도 그렇고, 지훈이도 험한 꼴을 봤네.”

“아닙니다, 형님. 지훈이랑도 어제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세상 무서운 걸 경험하며 나이에 비해 철이 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 아이들을 다 찾았으니 천사원을 다시 세우기만 하면 되겠어. 얼른 지훈이 데리고 올라와라, 기운아. 형이 최고로 맛있는 밥 사줄게.”

“네, 형님. 나중에 서울 행 기차에 타서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조기운이 씩씩한 목소리로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한지호는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건설회사의 횡포와 불미스러운 사고로 천사원이라는 고향을 잃어버렸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흩어진 아이들을 찾았고, 천사원을 재건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한지호는 어떠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꼈다.

원화 한의원을 열고,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으며 바람이 만들어졌다.

그 바람의 여파로 최치우가 다치기도 했지만 안 좋은 일보다는 좋은 일이 훨씬 많아지게 만들면 된다.

조기운의 전화가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줬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앞으로 쭉 쭉 날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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