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63화 (63/255)

# 63

첫 방송 이후의 반응과 촬영장 분위기 등을 고려한 분석이다.

한지호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큰맘 먹고 출연한 프로그램이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이-!

그는 오늘 예약된 진료 스케줄을 확인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토요일 오전이지만 상담을 거쳐 진료를 확정지은 환자들이 몇 명 있었다.

“오늘 하루도 달려볼까.”

상쾌한 주말의 시작이었다.

+++

오전 진료가 끝났다.

한지호를 만난 VIP 환자들은 어제 방송을 잘 봤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상담을 거쳐 진료에 이르렀다는 건 비싼 치료비를 낼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방송에 나온 게 환자들과 소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몇 건의 진료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온 한지호는 퇴근 준비를 했다.

촬영이 있는 수요일 대신 토요일 진료를 추가했지만 오전이면 충분하다.

아직 개원 초기이고, VIP 전문이라는 특성 상 환자들이 물밀 듯 몰려오지는 않는다.

굳이 토요일 오후까지 병원 문을 열고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다들 수고했어요.”

한지호가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같이 퇴근을 하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안내 데스크의 이주희와 코디네이터 정주은, 최리나가 평소와 달리 상기된 얼굴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그녀들이 한지호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무슨 일 있어요?”

“오늘따라 상담 예약 전화가 엄청 많이 왔어요. 아무래도 방송의 힘이 크긴 큰 것 같아요.”

“어제 방송이 됐는데 벌써 전화가 와요?”

“네. 바로 상담 받으러 찾아오신 분도 있고, 다음 주는 상담 일정이 엄청 타이트할 것 같아요.”

이주희는 오전 내내 전화기를 붙잡고 상담 예약을 잡아야 했다.

방송의 영향으로 상담을 원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막상 전화를 해놓고 사전예약제와 코디네이터 상담이라는 낯선 시스템 때문에 고개를 내저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방송의 영향이 큰 건 확실했다.

두 명의 코디네이터도 이주희와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 상담 받으신 분들은 전부 진료 예약을 잡으셨어요.”

“저도 오늘 한 분 빼고 상담자 전원 진료 예약 확정이에요! TV가 진짜 무섭긴 무섭네요.”

정주은과 최리나의 말은 한지호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코디네이터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진료를 포기한다.

대략적으로 전해 듣는 원화 한의원의 치료비와 약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VIP라고 생각하는 환자들도 이만한 돈을 한의원에 지불해야 하는지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방송 출연 이후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많은 게 달라졌다.

상담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진료를 보겠다고 한 건 괄목할 성과였다.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무장 박우식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가 원하던 대로 원화 한의원이 본격적으로 강남 상류층의 돈을 긁어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뒷돈을 줘가며 방송에 출연하려고 기를 쓰는 이유가 있군요.”

“원장님은 출연료를 받으시며 금요일 프라임 타임에 나오시니 완전 이득이에요. 그렇죠?”

“요즘 말로 개이득이라고 하는 거, 맞죠?”

“그런 말도 아세요?”

한지호가 요즘 애들의 언어를 쓰자 여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하루만에 방송 효과가 나타난다는 건 주목할 일이었다.

한지호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코디네이터 둘을 쳐다봤다.

“다음 주에는 상담이 밀려서 정신이 없겠군요. 우리 병원의 특성 때문에 환자들이 걸러지겠지만, 주은 씨랑 리나 씨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2화 방송까지 나가면 나면 병원이 미어터질지도 몰라요.”

“몸이 부서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담자들을 진료실로 올려 보낼게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원장님.”

정주은이 당차게 대답했다.

오늘 하루 상담 실적이 좋아서 기분이 업된 것 같았다.

2층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온 간호사 조민주와 이해나도 미소가 가득했다.

단순히 퇴근을 한다고 표정이 좋은 게 아니었다.

그녀들 역시 정주은의 이야기를 듣고, 방송의 효과를 체감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한지호는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 외에도 인센티브를 약속했고, 한의원 수익이 늘어나면 직원들도 함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토요일 점심 무렵, 원화 한의원 식구들은 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각자 주말을 보내기 위해 헤어졌다.

다음 주가 되면 업무량이 늘어날 것 같지만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았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올 월요일을 기다릴 것 같았다.

+++

주말이 금방 지나갔다.

기대했던 월요일 아침이 밝았고, 원화 한의원은 개원 이후 어느 때보다 더 바빠졌다.

한지호의 방송 출연 효과로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문의했고, 실제 상담에서 진료로 넘어가는 비율도 훨씬 높아졌다.

덕분에 안내 데스크의 이주희와 사무장 박우식, 그리고 코디네이터 최리나와 정주은은 밀려드는 업무량에 속으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고, 인센티브라는 달콤한 당근이 있기에 누구도 불평을 토로하진 않았다.

다들 끊임없이 울리는 예약 전화와 상담에도 지치지 않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다.

한지호와 간호사들은 당장 바빠진 걸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예약과 상담을 거쳐 진료가 확정된 환자들만 상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원화 한의원 시스템의 큰 장점이었다.

진짜 한지호를 원하는 환자만 진료하기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물론 코디네이터들의 노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 간호사님, 환자분 모셔주세요.”

60대 남성을 진맥하고, 체질에 맞춘 보약을 처방한 한지호가 이해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료실 옆에서 한지호를 도와주던 이해나가 60대 환자의 팔을 잡아줬다.

부축이 필요한 환자는 아니지만 최상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고맙수다, 한 원장.”

“네. 조심히 가시고 일주일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 정확한 복용법과 주의할 점을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고맙네.”

바바리 코트를 입은 60대의 멋쟁이 할아버지는 5백만 원 짜리 보약을 짓기로 했다.

한지호는 그동안 이지은이나 크리스탈, 김여정의 보약을 지어주고 수천만 원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5백만 원이 과하게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약이 5백만 원이나 하는 건 엄청나게 비싼 편에 속한다.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기로 한 60대 환자도 만만찮은 재력을 갖춘 셈이다.

이해나와 함께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환자의 뒷모습을 지켜본 한지호가 기지개를 켰다.

바쁘게 돌아가는 1층 상담실과 달리 2층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다음 진료 예약은 30분 뒤에 잡혀있다.

30분 동안 편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 여유도 아마 일주일 뒤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방송을 보고 상담을 받은 환자들이 대거 진료 예약을 잡으면 2층도 북적거릴 게 분명했다.

우웅- 우우웅-

한지호가 의자에 몸을 묻고 쉬려는 찰나, 테이블 위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야소녀 모임에 참석한 사진이 공개된 직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쏟아졌던 것처럼 방송 출연 이후의 반응도 비슷했다.

한창 늘어난 전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지만 무작정 안 받을 수도 없다.

중요한 사람의 전화라면 받아야 한다.

한지호는 손을 뻗어 스마트 폰 액정을 확인했다.

“어?”

번호를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지은의 이름이 폰 화면에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지은 씨.”

“한 선생님! 아니, 이제 한 원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죠?”

이지은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로 통화를 하는 것인데도 발랄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냥 편하게 불러요.”

“그럼 지호 오빠는 어때요?”

“네?”

“헤헤, 농담이에요. 개원식에도 못 가고 그래서 전화했어요. 방송도 잘 봤고 해서. 이러다 저보다 더 유명해지는 거 아니에요?”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습니까. 스케줄로 바쁠 텐데 화환도 보내주고. 미처 고맙다는 말을 못했군요.”

“우리 사이에 화환 정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 쑥스럽죠. 전에 지은 보약은 꾸준히 잘 먹고 있어요. 확실히 스케줄 소화하는데 체력적 부담이 덜해진 거 같아요.”

“다행입니다. 세 분의 체질에 맞춰 심혈을 기울였으니 믿고 계속 복용하면 더 큰 효과가 느껴질 겁니다.”

“안 그래도 여정이나 크리스탈도 좋아하던걸요? 약 다 먹으면 또 지을 거라고 하던데. 크리스탈이 요즘 해외 공연이 많은데 보약 때문에 컨디션이 계속 좋다고 해요.”

“기분 좋은 뉴스네요.”

한지호는 스마트 폰을 든 채 환하게 웃었다.

직접 지은 보약이 효과가 있다는 말은 한의사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지은이 전화를 걸진 않았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사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

한지호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이지은과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단순한 VIP가 아니다.

연예인으로서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 그리고 순수한 재력만 놓고 봐도 진짜 1%에 속하는 인물이다.

사실 그런 계산을 떠나 한지호와 이지은은 제법 가까운 사이였다.

그녀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면 사적인 시간을 내주는 건 어렵지 않다.

월요일에 통화를 한 둘은 수요일 밤으로 약속을 잡았다.

수요일은 MBS 사옥에서 <건강 백서, 진짜! 가짜!>의 촬영이 있는 날이다.

한지호는 촬영이 끝나고 이지은을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첫 방송 반응이 좋았기에 3화 촬영도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무사히 끝났다.

채성일은 한결 여유롭게 현장을 진행했고, 문주연도 지난 2주보다는 표정이 밝아졌다.

2화 촬영에서 한지호에게 밀린 감이 있는 양승찬은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3화 주제는 안티 에이징이다.

노화를 막는 각종 비법과 식품을 낱낱이 파헤치는 시간이었고, 역시 한지호에게 더 유리한 주제였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민간요법은 대부분 한의학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한의사인 한지호가 민간요법을 저격하면 강렬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면서 식품 의학 전문가를 자처하는 양승찬도 다양한 사례를 준비해 분전했다.

그러나 한지호는 연예인 못지않은 쇼맨쉽을 발휘하며 능수능란하게 자기 분량을 확보했다.

2화에 이어 3화에서도 전문가 패널의 주도권은 한지호가 가져갔다.

그래서인지 문주연도 쉬는 시간에 주로 한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3화 촬영을 마친 한지호는 제작진과 인사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빠져 나왔다.

지난주와 달리 오늘은 조기운을 대동하지 않았다.

조기운이 천사원 아이들의 행방을 탐색하러 지방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부우웅-

지하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건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출발하면 이지은과의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보다 3화 촬영이 조금 길어졌지만 문제없었다.

MBS 사옥 밖으로 나온 한지호는 한강을 건너 강서로 향했다.

강서를 거쳐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이지은은 대중의 시선을 피하는데 이골이 난 인기 연예인이어서 그런 장소를 많이 알고 있었다.

한강 잠원 지구의 독특한 카페처럼 연예인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레스토랑이 약속 장소였다.

촬영이 퇴근 시간을 넘겨서 끝났기에 차가 많이 밀리진 않았다.

어차피 강서는 강남이나 강동에 비해 유동 인구가 적은 편이다.

가양대교를 건너 김포공항 방향으로 가는 길은 도로 사정이 원활했다.

예상보다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한 한지호는 널찍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단독 주차장을 갖춘 3층짜리 레스토랑 건물이 다소 의외의 장소에 우뚝 서있었다.

유동 인구가 적고 땅값이 싼 동네라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았다.

강남 일대와 달리 발렛 직원도 없어서 직접 차를 세워야만 했다.

철컥-

차에서 내린 한지호는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섰다.

1층 입구 근처에 서있던 직원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서 오셨나요?”

“잠시만요.”

한지호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이지은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때맞춰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 2층에 있어요! -

이지은이 보낸 메시지였다.

한지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직원을 쳐다봤다.

“일행이 2층에 있다고 하네요. 올라가서 주문하겠습니다.”

“네. 주문하실 때 테이블 버튼 눌러주세요.”

간단한 안내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간 한지호는 혀를 내둘렀다.

2층은 탁 트인 테이블 대신 손님들이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끔 커텐이 처진 부스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서울 외곽의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이렇게 꾸며져 있다.

한지호가 2층에 다라라 발자국 소리를 내자 구석의 커튼이 열렸다.

“여기에요!”

이지은이 커텐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한지호를 불렀다.

얼굴만 살짝 내민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반갑습니다, 지은 씨.”

“저도 엄청 반가워요.”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둘 다 엄청나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 치고는 자주 보는 편이다.

“개원하시고 처음 보는 거네요. TV에 나오시는 건 봤지만.”

“그런가요?”

“누가 연예인인지 모르겠어요. 한 선생님을 TV에서 보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화면빨이 괜찮다는 소리는 좀 들었는데, 어땠습니까?”

“진짜 연예인 하셔도 되겠던데요.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 한의사 통틀어서 최고였어요.”

“고맙습니다. 지은 씨한테 칭찬을 들으니 힘이 나네요.”

만나자마자 가벼운 농담과 좋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미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한 달 넘게 못 봤지만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그간 틈틈이 연락을 하면서 안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배 고프죠? 주문 할까요?”

“아까 출발하셨다는 연락 받고 주문 해뒀어요. 조금 있으면 음식이 나올 거예요.”

이지은은 센스 있게 한지호의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 주문을 해놓았다.

어린 나이에 비해 사회 경험이 많은 티가 났다.

마음 같아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이지은은 나이로 따지면 한지호가 여동생으로 여기는 유초아와 고작 두세 살 차이다.

그러나 사회 경험과 엄청난 인기, 또 상류층에 속하는 재력 때문에 마냥 어리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지은 씨, 꼭 해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에 지은 보약은 아직 남았을 테고, 혹시 아픈 곳이 생기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한지호가 이지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질문을 던졌다.

긴히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순간 이지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상큼한 미소가 사라지고 딱딱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편하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한지호는 이지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힘주어 말했다.

그녀는 야소녀 멤버들을 소개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건강 백서, 진짜! 가짜!>에 출연하게 된 것도 이지은 덕분이다.

야소녀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채성일 PD에게 섭외 전화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건 뭐건 이지은의 고민이라면 가능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곧이어 이지은이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여정이한테 들었는데 한 선생님이 김해수 선배님과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고 하셨다면서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해수 씨와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이입니다. 요즘은 영화 촬영으로 지방에 내려가있어 연락을 못한지 꽤 됐네요.”

한지호는 솔직하게 터놓았다.

이지은이 왜 김해수와의 관계를 묻는지 모르지만, 김여정에게 대답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이지은은 뭔가 결심한 듯 눈을 반짝였다.

그녀가 한지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실 한 선생님이랑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어요. 충동적인 거 아니에요. 오래 고민했으니까 한 선생님도 깊게 생각해주세요.”

“…!”

예상하지 못한 고백이었다.

이지은은 남성, 여성을 떠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다.

한지호는 그녀에게 진심어린 고백을 받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김해수의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이지은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편한 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보통 인기 연예인을 스타라고 부른다.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빛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어느새 하늘 높은 곳의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대끼는 사이가 됐다.

말없이 이지은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복잡한 심경으로 물들고 있었다.

- 3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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