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58화 (58/255)

# 58

7장, 첫 단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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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한의원의 모든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기운도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한의원 소속은 아니지만 서류상으로는 등록 된 직원이다.

한지호가 합법적으로 월급을 주고 경비를 공제하기 위해서는 조기운을 원화 한의원 직원으로 올려두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도 조기운을 살갑게 대했다.

자주 한의원을 오가며 안면을 익혔고, 그가 한지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다는 걸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한지호는 조기운을 비롯해 사무장 박우식, 코디네이터 정주은과 최리나, 안내 직원 이주희, 위천 한방병원 출신의 간호사 조민주와 이해나까지. 원화 한의원의 식구들을 천천히 돌아봤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직원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때로는 회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가벼운 브레인스토밍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날에는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잡담만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정기적으로 모든 직원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다.

특히 오늘은 중요한 안건이 있었다.

한지호는 먼저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도와주는 간호사 두 명을 쳐다봤다.

“조 간호사님, 이 간호사님. 근무 환경이 바뀌었는데 어때요? 개선을 바라는 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해줘요.”

“하루에 맞이하는 환자 수가 적어서 크게 힘든 점은 없어요. 환자분들이 모두 VIP라 더욱 신경을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별히 어려운 요구를 하는 분도 안 계시네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30대 중반의 조민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녀와 함께 스카웃 된 이해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국내 최대의 한의원 프랜차이즈인 위천 한방병원 출신이지만, 원화 한의원의 근무 환경에 만족하고 있었다.

늘 사람들도 발 디딜 틈이 없는 위천 한방병원과 달리 원화 한의원은 사전 예약제를 통해 정해진 만큼의 환자만 받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손님이 VIP이고, 특별한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일반 한의원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VIP라고 해서 특별히 이상하게 구는 환자는 없었다.

세상 어디에나 진상이 있다지만, 아무래도 사회적 위신과 체면이 있는 VIP들은 까칠하고 까다롭긴 해도 막무가내로 행동하진 않는다.

나중에 어떤 미친 환자가 등장할지 몰라도 지금까지 환자 응대에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한지호는 안내 직원인 이주희와 사무장 박우식을 쳐다봤다.

“주희 씨와 사무장님은 건의하고 싶은 점이 없습니까?”

그의 물음에 이주희가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정주은의 소개로 합류한 이주희는 특별한 건의 사항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반면 사무장으로 영입한 박우식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 회장님으로부터 새로운 개념의 VIP 전문 한의원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었습니다. 다행히 아주 비싼 진료비와 약값에도 불구하고 원장님의 명성과 의술 덕분에 개원 초기부터 환자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박우식이 말끝을 흐렸다.

개원 초기임을 감안하면 괜찮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한지호는 진지한 눈빛으로 박우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상담 과정에서 높은 가격에 진입 장벽을 느끼고 진료 예약을 잡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신뢰를 못 하는 VIP 환자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강남 지역의 인구만 생각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VIP 환자 유입이 가능합니다. 병원 차원에서의 홍보 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우식은 자기 사업체를 운영했던 사람답게 큰 그림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도 원화 한의원을 경영하는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황만금의 제의를 받고 사무장으로 합류한 박우식은 적당히 돈벌이를 하는 병원에 만족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원대한 비전을 품고 개원을 한 한지호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수익을 내며 강남 병원 바닥에 돌풍을 일으키기 위해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대대적인 홍보로 더 많은 VIP들을 환자로 부르고, 또 비싼 가격을 거리낌 없이 지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박우식의 주장은 매우 타당했다.

한지호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기에 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황만금으로부터 받은 10억 원의 투자금이 남아있다.

권리금과 보증금을 지불하고, 병원 인테리어와 설비 등에 쏟아 부은 돈을 제외하고도 제법 많은 액수가 남았다.

남은 투자금은 처음부터 개원 이후 단계적으로 홍보를 하기 위해 쓸 생각이었다.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와 함께 VIP 맞춤 홍보 전략을 의논해볼 생각입니다. 코디네이터 두 분도 사무장님의 의견에 동감하나요? 상담을 맡고 있으니 직접 체감하는 바가 남다를 것 같은데.”

박우식 사무장에게 향했던 질문이 자연스레 코디네이터들에게 이어졌다.

환자들의 상담을 책임지는 두 명의 코디들은 원화 한의원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한지호는 정주은과 최리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먼저 입을 연 건 한지호가 성형외과에서 만나 스카웃한 정주은이었다.

“사무장님 말씀처럼 상담 과정에서 진료비와 약값에 거부감을 느끼시고 예약을 잡지 않는 분들이 꽤 있으세요. 정해진 가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드렸을 때 그렇게 비싸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뒤이어 밝은 성격으로 벌써부터 여러 VIP 환자들에게 예쁨을 받는 최리나가 말을 보탰다.

“주은이, 아니 정 코디 말처럼 저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충분한 재력을 갖추신 분들이 대략적인 비용 이야기를 하니 거부감을 표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한의원이라고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게 하고, 또 그렇게 비싸냐면서……. 아무래도 이런 시스템의 한의원이 처음이다 보니 이해를 못 하시는 환자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원장님.”

직접 환자들을 상대하며 상담을 하는 코디네이터들의 경험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다.

사무장 박우식과 코디네이터 정주은, 최리나의 말은 하나로 연결 돼 있었다.

거물들을 치료하고 야소녀 모임으로 이름을 알린 한지호이지만, 아직은 비싼 가격을 선뜻 지불할 만큼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지호는 당연한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VIP 전문 한의원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서 이만큼 선방을 하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강남 한복판에 대규모로 한의원을 열어 벌써부터 흑자 운영에 무리가 없는 지경이니 남들이 보기엔 대성공을 거두는 중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돈이 많은 사람은 무수히 많고, 그들을 모두 원화 한의원으로 불러 기꺼이 큰돈을 지불하게 만들려면 갈 길이 멀다.

한지호는 남들처럼 적당히 몇 억씩 벌려는 각오로 원화 한의원을 열지 않았다.

원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는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해준 박우식과 정주은, 최리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더 많은 VIP들이 원화 한의원의 문을 두드리도록, 그리고 상담 과정에서 거부감 없이 최고의 가격에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겠습니다. 병원 홍보와 관련해서는 계속 심도 있는 의논을 해보죠. 또 저 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곧 시작 될 겁니다.”

“어떤 방안을 준비 중이십니까?”

박우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원화 한의원의 성패는 원장 한지호에게 달려있다.

애초에 그가 얻은 명성을 기반으로 VIP 전문 한의원을 열 수 있었다.

한지호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은 손쉽게 해결된다.

박우식의 질문을 받은 한지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비장의 무기에 대한 단서가 흘러나왔다.

“TV 프로그램을 우리 편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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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한의원의 진료 스케줄은 그리 빡빡하지 않다.

사전 예약과 상담을 거치는 시스템이니 일과 중에도 여유 시간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VIP 환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한지호가 더 유명해지면 지금보다 훨씬 바빠질 것이다.

개원 초기이니 지금처럼 여유로운 게 당연했다.

한지호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 한의원을 연 지 한 달도 흐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원화 한의원이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진료가 비는 타이밍을 이용해 중요한 손님을 불렀다.

개원식에서 봤던 MBS 방송 예능국의 채성일 PD가 다시 발걸음을 했다.

예전에 전화로 방송 출연을 요청했던 채성일은 개원식에서도 조심스레 섭외를 시도했고, 한지호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대답한 바 있었다.

MBS 내부에서 프로그램 편성을 확정지은 채성일은 캐스팅을 확정 짓는 단계에 돌입했다.

그렇기에 며칠 전부터 한지호와 약속을 잡았고, 오늘에 이르러 미팅이 성사된 것이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한의원 2층 원장실로 들어온 채성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지호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태도에서 공손함이 묻어 나왔다.

대부분의 방송국 PD들이 거만하기 짝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무척 이례적인 자세였다.

그만큼 채성일의 프로그램 구상에 한지호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채성일의 인성이 여타의 PD들보다 훌륭하다는 점도 한 몫을 하겠지만 말이다.

“바쁘신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채 PD님.”

한지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다큐멘터리 PD 출신으로 여러 차례 수상을 하고 예능국으로 자리를 옮긴 채성일은 젊은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젊은 눈동자라는 건 힘이 느껴지는 반짝반짝한 눈을 뜻한다.

나이가 들수록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고, 자연히 눈동자에도 힘이 풀린다.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10대와 20대 중에서도 눈동자에서 아무런 빛을 뿜어내지 못하고 시들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반해 채성일은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PD임에도 신입들이나 뿜어낼 열정을 머금고 있었다.

강렬한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 특유의 기운이 채성일의 눈동자에 일렁거렸다.

똑똑-

그때 1층에서 올라온 코디네이터 정주은이 노크를 하고 원장실 문을 열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료는 어떻게 준비해드릴까요?”

“아이스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네. 원장님께서는요?”

“PD님과 같은 걸로. 고마워요, 주은 씨.”

“아니에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정주은은 상담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로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한지호의 비서 역할까지 도맡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병원 내에서 한지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서포트했다.

아무래도 한지호에게 직접 스카웃 됐고, 예전 병원 동기인 최리나와 이주희를 추천했기에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한지호도 알아서 자기 일을 도와주는 정주은을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그녀가 아이스 커피 두 잔과 수제 쿠키를 접시에 담고 들어왔다.

1층에는 상담을 하러 온 VIP 환자들을 위해 늘 질 좋은 커피 원두와 수제 쿠키가 준비 돼 있었다.

한지호는 허리를 숙이고 원장실 밖으로 나가는 정주은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잘 마시겠습니다, 원장님.”

“네. 쿠키도 맛있을 겁니다. 드셔보세요.”

채성일은 정주은이 가져온 아이스 커피로 목을 축였다.

한지호도 가볍게 입술을 적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마쳤다.

“프로그램 준비는 잘 되고 계십니까?”

커피 잔을 내려놓은 한지호가 멍석을 깔아줬다.

채성일이 마음 편히 본론을 꺼낼 수 있도록 먼저 방송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 의도를 아는지 채성일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편성이 확정 되면서 팀이 꾸려졌습니다. 프로그램 제목은 ‘건강 백서, 진짜! 가짜!’ 입니다.”

“건강 백서, 진짜! 가짜! 제목이 강렬하네요.”

“네. 프로그램 기획 의도는 간단합니다. 시중에 난무하는 수많은 건강 비법들이 과연 진짜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보는 것입니다. 민간 비법, 몸에 좋다는 약재, 유행하는 치료법 등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최근 유행했던 불만 제로의 건강 버전이군요.”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한 원장님.”

채성일은 척 하면 착 하고 알아듣는 한지호가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호는 잠시 입술을 닫고 생각을 해봤다.

일단 프로그램 제목부터 끌렸고, 생각할수록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수많은 건강 비법과 식품들, 그리고 다양한 치료법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간다.

무엇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유행처럼 번지는 건강 비법과 식품을 우르르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지상파 채널인 MBS에서 예능 형식으로 요즘 유행하는 건강 비법과 식품, 약재, 치료법 등을 파헤치면서 진짜 효과가 있는지 알려주면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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