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대박! 대박! 대박! 삼단고음처럼 삼단대박 날 거에요. 야소녀 이지은>
<개원 축하해요. 약도 잘 먹고 있어요. Fs 크리스탈>
<원화 한의원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배우 김여정>
<축! 개원. 영화배우 김해수>
우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인기 연예인들이 보낸 화환이었다.
화환에 적힌 내용만 봐도 각자의 성격이 묻어났다.
한지호는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잊지 않고 화환을 보내준 야소녀 모임 멤버들과 김해수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들이 보내준 화환은 두고두고 원화 한의원을 홍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예인 마케팅에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한지호는 한 푼도 쓰지 않고 탑 클래스 여자 연예인들을 마케팅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김해수는 물론이고, 이지은과 크리스탈, 김여정도 자발적으로 한지호를 홍보해주고 있었다.
이미 야소녀 모임에 참석해 진맥을 하는 사진을 SNS에 올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지호가 야소녀 멤버들에게 보약을 지어줬다는 소식은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다.
이지은이 자신의 집에서 한지호의 보약을 먹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상류층 사람들도 인기 연예인들의 선택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김해수와 야소녀 멤버들의 응원은 돈으로 값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화환은 연예인들에게서만 온 게 아니었다.
평창동의 큰손 황만금 회장도 화환을 보냈고, 다른 스케줄로 미처 참석하지 못한 플래티넘 홀딩스의 유건영도 화환으로 마음을 보탰다.
한지호에게 청우단을 꾸준히 구입한 고객들 중에서도 화환을 보낸 사람이 많았다.
청우단 고객 대부분은 대기업의 과장 급 이상이다.
그런 사람들의 공식 직함이 적힌 화환은 원화 한의원에 신뢰감을 더해주기 충분했다.
인기 연예인들과 금융권 엘리트들의 화환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한지호는 잠시 하나의 화환 앞에 멈춰 섰다.
“마리아 수녀님…….”
<축복하고 사랑한다, 지호야. 마리아.>
화환에 적힌 글자에서 마리아 수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동안 열심히 달리느라 마리아 수녀와 천사원을 소홀히 여겼었다.
얼마 전 마리아 수녀에게 오천만 원을 건넸고, 그것으로 마음의 짐을 약간 덜었던 게 사실이다.
뿔뿔이 흩어진 다른 동생들도 막연히 잘 지낼거라고 생각했다.
한지호는 얼른 원화 한의원을 정상 궤도에 올려 천사원을 재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진심이 가득 담긴 화환을 보내준 마리아 수녀에게 속으로 약속을 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제가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자랐다는 걸 잊지 않겠습니다, 수녀님.’
한지호가 다짐을 곱씹는 사이 개원식 준비가 끝났다.
화환 대신 직접 참석한 손님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원화 한의원의 출발을 선포 할 차례였다.
“형님.”
조기운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상담실로 꾸며진 1층 안에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 한지호의 인삿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갈게.”
한지호가 입구 바깥에 놓인 화환들을 뒤로하고 1층 상담실로 들어섰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청우단 고객 중에서 시간을 낸 사람들이 주류를 이뤘고, 명징약초의 최치우도 가게를 비우고 개원식에 참석했다.
다양한 사람들 틈에 눈여겨 볼 인물이 따로 있었다.
인테리어를 주관한 베를린 스튜디오 소장 임형빈과 나란히 서있는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MBS의 채성일 PD구나.’
한지호에게 방송 출연을 요청했던 채성일 PD는 개원 소식을 듣고 자신이 와도 되겠냐고 물었었다.
애초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임형빈 소장과도 아는 사이라고 하니 더더욱 환영할 일이었다.
임형빈 옆의 채성일도 한지호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화 한의원의 원장, 한지호입니다. 먼저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지호가 입을 열었다.
그가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짝짝짝짝짝-!
과장되지 않은 박수 소리가 멎어들자 한지호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아직 어리고, 경력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보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뜻 깊은 도전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껏 병원 밖에서 의술을 펼쳤던 것처럼 원화 한의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 세심하고 깊이 있는 치료를 하겠습니다. 원화 한의원의 행보가 정체에 빠진 국내 한의학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강하고 오래 가는 박수 세례였다.
한지호는 거듭 허리를 숙이며 개원식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 샴페인을 준비했습니다.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천천히 드시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세요. 원화 한의원과 저에 대한 조언과 충고도 기쁘게 듣겠습니다.”
1층 상담실 뒤편에는 여러 개의 테이블이 세팅 돼 있었다.
케이터링 전문 업체에 문의해 고급스러운 카나페와 과일 쥬스, 샴페인 등을 준비해 놓았다.
개원식을 길고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
짧지만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 뒤에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면 충분하다.
한지호는 미국이나 유럽의 가벼운 파티 문화를 떠올렸다.
외국에서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인맥을 만든다.
원화 한의원의 개원식도 정해진 틀 없이 편안한 사교 파티처럼 꾸미고 싶었다.
그의 인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다과 테이블 근처로 몰려들었다.
다소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지만 하나 둘 명함을 주고받으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다들 이런 곳에서 새로 알게 되는 인연이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 스케줄에 따라 자연스레 빠지면 된다.
한지호는 여러 사람들이 명함을 주고받는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리고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임형빈과 채성일이 나란히 서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기대 이상으로 멋진 인테리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 소장님. 그리고 채 PD님 맞으시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지호가 잔을 살짝 내밀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임형빈과 채성일이 가볍게 건배를 하며 축하를 건네 왔다.
“강남 한의원 바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시길 바랍니다. 축하드립니다, 한 원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전화로 인사드렸던 MBS 채성일입니다. 개원을 축하드립니다.”
건배를 한 세 사람은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파티에 준비 된 샴페인은 모두 돔 페리뇽이었다.
VIP 전문 한의원을 추구하는 원화 한의원의 개원식에 싸구려 샴페인을 낼 수 없는 법이다.
한지호는 최고급 케이터링 서비스를 원했고, 샴페인부터 음료와 간단한 스낵까지 최상품만 사용했다.
비용이 꽤 들었지만 그런 잔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의원이 너무 세련된 것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임 소장님도 대단하시고, 탁월한 안목을 가지신 한 원장님도 참 멋지십니다.”
채성일이 먼저 한의원의 분위기를 칭찬했다.
국내 최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임형빈은 원화 한의원을 청담동의 갤러리 못지않게 꾸며 놓았다.
그는 과도하고 화려한 장식에 집착하지 않고, 은은하지만 기품이 드러나는 인테리어 컨셉을 잡았다.
안내 데스크와 개별 상담실, 환자 대기 공간이 어우러진 1층은 엔틱한 원목 가구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바닥과 벽면은 대리석 소재를 활용했고, 조명은 요란한 샹들리에 대신 깔끔한 북유럽 스타일을 따랐다.
미니멀과 심플이라는 최근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였다.
한지호는 채성일의 칭찬에 고개를 저으며 임형빈을 더 띄웠다.
“임 소장님이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한의원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역시 대한민국 최고라는 명성은 아무데나 붙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아휴- 한 원장님도 별 말씀을.”
임형빈은 손사래를 쳤지만 기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채성일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한 원장님, 혹시 전에 드렸던 섭외 제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새로 편성을 준비 중이라는 건강 프로그램 말씀이시죠?”
“네. 곧 편성이 확정 될 것 같고, 기획이 마무리되는 단계입니다. 저는 꼭 한 선생님을 고정 패널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때는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한의원 스케줄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말이신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채성일은 눈을 크게 뜨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SNS와 인터넷에서 유명인사가 된 한지호를 꼭 섭외하고 싶어 개원식까지 왔는데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한지호는 손을 내민 채성일과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개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채성일의 섭외 전화였다.
병원이 없는 프리랜서 한의사로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곤란한 점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한지호는 당당하게 개원을 해서 소속을 두고, 아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한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채성일의 전화가 결정적인 동기 중 하나였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채성일은 방송 출연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한지호에게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을 내주시면 자세한 프로그램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기획 의도부터 다양하게……. 방송 출연을 결정하셔도 한 원장님 진료 스케줄에 크게 지장이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 1회, 6시간 이내로 녹화가 끝날 겁니다.”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만들죠.”
“네!”
채성일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사실 방송국 PD들은 거만한 걸로 악명이 높다.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워낙 많기에 언제나 갑의 입장에 선다.
하지만 채성일은 동생 뻘인 한지호에게 싹싹한 태도로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한지호의 출연 여부가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성패에 키 포인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사와 한의사들이 방송에 출연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돈을 내고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으려는 쇼 닥터(show doctor)에 불과하다.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을 찾기 힘들었고, 스타성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어떻게든 TV를 이용해 병원을 띄우려는 속물들이 대부분이다.
채성일은 한지호가 그런 쇼 닥터와는 차원이 다른 한의사라고 판단했다.
그는 방송국 PD이기에 연예계 소문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할 수 있다.
한지호가 야소녀 모임에 참석하며 유명세를 얻자 바로 채성일의 정보망이 가동됐고, 김해수의 정체모를 난치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평창동의 거물까지 치료한 뛰어난 한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화면빨 잘 받게 생긴 훈남이었고, 야소녀 모임 덕에 젊은층 사이에서 인지도도 높아졌다.
건강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참신하고 실력 있는 얼굴을 찾던 채성일에게 한지호는 하늘이 내려준 인물이었다.
그가 유독 한지호 앞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한 선생님, 아니 이제 원장님이라고 불러야겠군요. 개원을 축하하고, 원화 한의원이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그때 뒤쪽에서 다른 손님이 한지호를 불렀다.
한지호는 임형빈과 채성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러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드디어 개원을 하며 자신만의 성을 만들었고,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게 TV 지상파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됐다.
한지호가 원화 한의원을 열었다는 소식은 곧 개원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입을 타고 각계각층으로 전해질 것이다.
연예계 관계자들, 금융권의 엘리트들, 한지호라는 젊은 한의사의 유명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상류층들이 원화 한의원을 알게 되는 건 시간 문제다.
그는 활짝 웃으며 개원을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뜻깊은 순간을 공유했다.
역삼에 둥지를 튼 원화 한의원이 강남과 서울, 대한민국 한의학계를 집어삼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었다.
7장, 첫 단추 (1)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내과, 그리고 한의원.
전공 분야를 막론하고 병원이 운영되는 모습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조금씩 분위기는 달라도 환자를 갑으로 모신다는 점은 똑같다.
병원이 아니라 고객을 대하는 모든 사업체의 특성이다.
소비자는 갑이 되고, 판매자는 을이 되어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역삼 M 타워에 문을 연 원화 한의원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었다.
VIP 전문 한의원을 표방하고 나선 원화 한의원은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아무리 대단한 환자가 찾아와도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원장인 한지호를 만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