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40화 (40/255)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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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웅-

검은색 아우디 A5가 압구정 샵 골목에 진입했다.

한지호는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미용실 알렉산드르 앞에 차를 세웠다.

기다리고 있던 발렛 직원이 다가왔다.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인사를 건넨 한지호는 주택을 개조한 알렉산드르 미용실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의 현관문 앞에는 20대 초반의 여자 스텝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지호의 얼굴을 알아봤다.

불과 며칠 전에 이지은을 만나러 왔었던 걸 까먹을 리 없었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네? 네에.”

한지호가 천역덕스럽게 인사를 하자 여자 스텝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유는 몰라도 괜히 부끄러움을 타는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용건을 말했다.

“오늘도 이지은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잠시만요. 실장님 모셔올게요.”

여자 스텝이 쪼르르 사라졌다.

아마 그녀는 이지은을 담당하는 실장급 디자이너인 미진을 데리고 올 것이다.

한 번 겪어봤던 과정이라 앞으로의 진행이 뻔히 예상됐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의 미진이 스텝과 함께 나와 한지호를 맞이했다.

한지호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럭셔리한 일층을 가로질러 독립된 룸들로 이뤄진 이층에 다다랐다.

복도 끝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하는 것도 며칠 전과 똑같았다.

이지은은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알렉산드르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네일을 받는다.

그렇기에 알렉산드르 안에서의 행동 패턴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똑똑-

미진이 노크를 했다.

그녀는 아무리 이지은과 친한 사이라도 노크를 빼먹지 않았다.

연예인들이 프라이버시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또 사소한 부분에서 얼마나 예민하게 구는지 잘 아는 까닭이다.

“한 선생님 오셨어.”

미진의 말에 방 안에서 이지은이 대답을 했다.

“들어와요, 언니.”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방문을 열 수 있었다.

이지은은 알렉산드르에 오면 가장 먼저 헤어 관리를 받는다.

그 다음이 메이크업, 마지막이 네일 아트 순서다.

그렇기에 먼저 일을 끝낸 헤어 디자이너 미진이 한지호를 안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지은 씨. 목은 좀 어떠십니까?”

룸 안으로 들어온 한지호는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손톱 관리를 받던 이지은이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마주봤다.

그녀는 수많은 삼촌 팬을 홀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계속 안 좋아요. 이러다 점점 음역대가 낮아 질까봐 걱정이에요.”

“며칠 전에 말했던 대로 해결책을 가져 왔습니다.”

한지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이지은이 눈을 빛냈다.

잠긴 목을 풀고 고음을 회복할 수 있다면 뭐든 할 기세였다.

한지호는 가방에서 한약과 차를 꺼냈다.

한약은 먹기 좋게 포장 돼 있었고, 곱게 빻아 티백처럼 만든 찻잎은 물 한 병에 넣을 분량을 맞춰서 나누어 놓았다.

“하루 세 번 약을 먹고, 매일 마시는 물에 이 찻잎을 타서 마셔요.”

“그럼 일주일 안에 고음이 돌아올까요?”

한지호는 이지은의 성급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설명을 계속해나갔다.

“기운을 보해주는 약초와 산삼의 잔뿌리를 사용해 한약을 지었습니다. 무리한 스케줄로 떨어진 기력과 체력이 회복되면서 성대도 힘을 얻을 겁니다. 그리고 차는 오미자와 캐모마일, 돌배꽃을 섞어 만들었는데 지친 목을 풀어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 않아도 마사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매일 1.5리터 이상 찻잎을 우려낸 물을 마시도록 해요.”

이지은의 사소한 부분까지 다 챙겨주는 코디가 한지호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열심히 메모를 했다.

남자 매니저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코디가 대신하며 큰언니처럼 이지은을 돌보는 것 같았다.

“정말 약 먹고 차 마시면 고음이 나오는 거에요?”

“방금 말한 사항을 잊지 않고 지킨다면. 그리고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

“오늘 만난 김에 침을 놓아야겠습니다.”

“침이요? 나 아픈 거 싫은데…….”

이지은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 막 20대가 된 그녀의 어리광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의사로서 이 자리에 서있는 한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환자를 대할 때 그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칼 같다.

약과 찻잎을 코디에게 건네준 그가 이지은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약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일주일 안에 고음이 돌아올지는 장담하기 힘들군요.”

“다음 주에 방송사 연합 콘서트가 있어요. 이미지 때문에 무조건 라이브로 무대에 서야 한단 말이에요.”

“그럼 침을 맞으세요. 침술을 병행하면 일주일 안에 고음이 돌아올 테니까.”

“진짜죠? 진짜 일주일이면 되는 거죠?”

“저번에 만났을 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주일을 넘기면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대신 치료비가 무척 비싸다고 엄포를 놓으셨잖아요.”

“기억하고 있었군요. 일주일 안에 고음이 회복되면 이지은 씨가 알아서 합당한 대가를 주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김해수 선배님을 치료했다고 들었는데, 마치 남자 김해수를 보는 것 같아요.”

이지은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연예계에서 김해수는 당당하고 도발적인 캐릭터의 선두주자다.

그런 김해수도 한지호 앞에서는 얌전한 환자였고, 끝내 몸을 섞으며 묘한 감정을 나눈 사이가 됐다.

통통 튀는 스무살 이지은 역시 한지호의 카리스마를 느끼고 있었다.

“그럼 침을 맞는 걸로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케이스에서 침을 꺼냈다.

이지은도 더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찡그린 표정으로 겁을 먹고 있지만 치료를 받아들인 것이다.

“짧게 끝내죠.”

한지호는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그의 침이 이지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에 꽂혔다.

지켜보던 코디와 헤어 디자이너 미진, 그리고 네일 아티스트까지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당사자인 이지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못했다.

순식간에 기다란 침이 목덜미를 뚫고 스윽 꽂혔기 때문이다.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통각이 예민하지 않은 혈도니까. 그럼 하나만 더.”

한지호는 말을 하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침을 더 놓았다.

이지은의 목덜미 좌우에 기다란 침이 하나씩 꽂혔다.

한지호는 침을 꽃아 놓은 채 고개를 숙여 이지은의 코앞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거의 매일 이 샵에 온다고 들었습니다. 딱 이틀만 더 침을 놓겠습니다. 또 내가 가져온 한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찻잎을 우려낸 물을 1.5리터 넘게 마셔요.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하는 거니까 잊어먹지 않겠죠?”

“네…….”

어디로 튈지 모를 것 같던 이지은이 순한 양이 됐다.

목에 침을 꽂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가 무척 귀여워 보였다.

그러나 한지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환자를 휘어잡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치료는 이미 시작됐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벌써 절반의 고지를 넘어섰다.

이지은은 다음 주에 열리는 연합 콘서트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삼단고음을 쏘아내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한지호의 이름이 연예계 바닥을 휩쓸고 지나갈 것 같았다.

10장, 성장(成長) (1)

“다음 순서는 차세대 디바, 최고의 여자 솔로! 이지은이 부릅니다. 굿 데이!”

MC가 이지은을 소개했다.

발랄한 표정의 이지은이 무대 중앙으로 총총 거리며 뛰어 나왔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콘서트 관객과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마이크를 잡은 이지은이 노래를 시작했다.

“한 번도 못 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 할 바로 그날-!”

첫사랑을 앓는 소녀의 감성을 표현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클라이맥스가 다가왔다.

이지은을 일약 국민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삼단고음을 부를 차례였다.

이 부분을 라이브로 소화하지 못하면 다음 날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진다.

“암 인 마이 드림- 임- 임-!”

해냈다.

이지은이 얼굴을 붉히며 삼단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녀가 부른 고음에 콘서트 현장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이지은! 이지은! 이지은!”

남자 관객들이 열광을 하며 자지러졌다.

여자 관객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지은은 청초하면서 아이 같은 매력으로 남녀 팬을 골고루 갖고 있다.

인기 많은 가수들 여럿이 모인 연합 콘서트에서도 이지은의 존재감은 단연 빛났다.

그 중심에는 시원하게 속을 뻥 뚫어주는 삼단고음이 있었다.

“잘 하는데요, 형님?”

“그래. 오늘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신사동 오피스텔 소파에서 TV를 보던 조기운과 한지호가 만족스런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무리한 스케줄로 성대가 잠겼던 이지은은 한지호의 치료를 받고 완벽하게 삼단고음을 성공시켰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한지호가 만든 한약을 복용하고, 세 가지 찻잎을 블랜딩 해서 우려낸 차를 물 대신 마셨다.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르 미용실에서 세 번의 침술 치료를 받았다.

오늘의 성공적인 공연은 그 결과였다.

한지호는 자신있게 공언한 것처럼 일주일 안에 이지은의 성대를 회복시켰다.

TV 화면 안에서 신나게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넌 좀 어때?”

이지은의 순서가 끝나자 화살이 조기운에게 돌아갔다.

고개를 돌린 한지호는 사뭇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같이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조기운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는 순식간에 군기가 바짝 든 표정을 지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형님이 주신 리스트는 전부 암기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인사 차 연락을 돌렸고, 추가 주문을 원하시는 분들과 약속 시간도 잡았습니다.”

“무조건 추가 주문을 다 받으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계속 주문량이 증가할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달에 최대 2000알이라는 선을 맞춰서 조절을 하겠습니다.”

“좋아, 준비를 잘 했네.”

한지호가 조기운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청우단 고객 리스트를 넘겨주고 신경을 껐는데 착실하게 일을 한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사람만이 냉혹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조기운은 한지호의 오른팔이 될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지호는 그를 쳐다보며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고객들을 직접 대면하는 순간부터가 진짜 시험이야. 대부분 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엘리트 계층이니까, 그에 걸맞은 태도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워.”

“네, 형님. 명심하고 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도 격식을 헤치지 않도록 몸가짐과 언행을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지호가 목소리를 낮췄다.

뭔가 민감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꺼낼 때 본능적으로 나오는 습관이었다.

조기운도 눈을 빛내며 경청 할 자세를 취했다.

“판매량이 늘어나고, 다양한 사람들이 고객이 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법적인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혹시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바로 나한테 말하고.”

“조심하겠습니다.”

“당장은 별 일 없을 거야. 그래도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유비무환이죠.”

“오, 문자 좀 쓰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형님과 대화하려면 저도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공부에는 때가 없어. 필요한 책 있으면 뭐든 말해. 도와줄게.”

“네, 형님!”

조기운이 믿음직스런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청우단 고객 리스트를 외우고,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할뿐 아니라 공부까지 시작한 그가 새삼 더 마음에 들었다.

전생의 조자룡은 문무겸장이었다.

젊은 시절 워낙 뛰어난 무예에 포커스가 맞춰져 용장(勇將)으로 이름이 높지만, 노년기에는 지략으로 촉한의 땅을 지켰던 지장(智將)이기도 하다.

그런 잠재력을 온몸에 지닌 조기운이 공부에 흥미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껏 그를 이끌어줄 동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한지호를 만난 건 조기운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자 기회였다.

본인도 모르는 전생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워줄 사람이 세상에 또 누가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한지호는 조기운이라는 창창한 인물에게 투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가 잘 성장해서 전생의 조자룡과 같은 진가를 보여주면 더 없이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 줄 것이다.

이지은의 무대를 보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둘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조기운은 한지호가 살던 연남동 원룸에 새 둥지를 틀었다.

버스가 끊기기 전에 연남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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