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34화 (34/255)

# 34

‘이 와중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집중하자, 집중!’

한지호는 살짝 고개를 흔들고 잡념을 날려버렸다.

김해수의 몸이 완전히 열렸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녀의 몸 안에선 침술과 산삼으로 만든 양기가 꿈틀거리며 구음절맥과 싸우고 있다.

한지호는 남자의 원천적인 양기를 주입해 힘을 증폭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면 서로 다른 성질의 양기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엄청나게 왕성해진다.

침술, 산삼, 남자의 원천지기.

이 세 가지 양기가 삼위일체를 이뤄야만 구음절맥의 무시무시한 음기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이다.

‘들어간다!’

한지호가 눈을 크게 떴다.

단전에 모은 원천적인 양기를 김해수에게 주입할 순간이 왔다.

1초 안에 성공과 실패가 갈릴 것이다.

상황은 갖춰졌다.

김해수의 몸은 뜨거워질 때로 뜨거워졌고, 힘이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양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났다.

한지호는 강력한 양기를 전신으로 퍼지게 만들었다.

남자를 상징하는 원천적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자 체온이 급격히 올라갔다.

그의 몸이 김해수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지금 이 순간, 한지호의 몸은 순수한 양기의 덩어리가 됐다.

짜릿한 자극을 느꼈던 김해수는 지나치게 뜨거워진 한지호의 몸 때문에 다소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넘겨야 한다.

맞닿은 피부와 피부 사이로 한지호의 양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한지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숨구멍을 활짝 열고 자신의 양기를 분출했다.

진짜 음양교합을 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양기를 주입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칠 틈이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한지호가 의식적으로 몸의 기운을 분출시켰다.

조금씩 흘러나가던 원천적 양기가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쏟아졌다.

파바바박!

용암처럼 뜨거운 양기가 일시에 휘몰아치며 김해수의 몸을 감쌌다.

한지호와 몸을 딱 붙이고 아래에 누워있던 김해수는 화상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체적인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양기가 그녀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아아-!”

그녀의 신음이 하이 톤이 되어 침실 안을 울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뜨겁고 거대한 기운이 김해수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파팟!

일시적으로 스파크가 튀었고, 밀착된 둘의 알몸에서 정전기와 비슷한 짜릿한 감각이 맴돌았다.

섬광과 함께 원천의 양기를 쏟아낸 한지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옆으로 드러누웠다.

김해수의 몸 위에서 내려와 침대 옆에 대(大)자로 뻗은 것이다.

“허억- 허억-!”

그는 정말로 격렬한 정사를 나누고 탈진한 남자 같았다.

실제로 음양교합을 한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체력이 소모 됐다.

온몸으로 남자의 원기를 발산해 김해수에게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며칠 푹 쉬고 휴식을 취하면 금방 회복될 일이지만, 순간적으로 방전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김해수는 달랐다.

잠시 잠깐 괴로워하던 그녀는 온몸을 가득 채운 양기 덕분에 깊은 만족감을 경험했다.

삼십대 중반의 팜므파탈이 이제껏 남자 경험이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단순히 쾌락을 나누는 정사에선 느낄 수 없는 충만감이 김해수를 사로잡았다.

남자의 양기를 한껏 받아들이는 것만큼 여자의 몸에 좋은 일이 또 없다.

땀을 잔뜩 흘린 그녀의 피부가 유독 생기 넘쳐 보였다.

“한 선생님… 끝난 건가요?”

김해수는 짙은 여운을 느끼며 옆에 누운 한지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감았던 눈을 뜬 그녀는 한지호의 거친 호흡 소리를 들었다.

“후우-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한지호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대답했다.

방중술과 음양교합의 원리를 응용한 치료는 무사히 완료됐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양기가 용암처럼 분출되던 느낌, 설명하기 힘든 쾌감과 탈진이 동시에 찾아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해수는 조심스레 이불로 한지호의 몸을 덮어줬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고생했어요.”

“김해수 씨는 어떻습니까?”

“뜨거운 뭔가가 몸 안으로 들어온 건 확실해요. 이제 지켜봐야죠.”

“산삼으로 만든 약을 마저 먹고, 침을 몇 번 더 맞으면 구음절맥의 저주에서 해방 될 겁니다. 오늘 주입한 양기가 김해수 씨의 몸에서 강력한 증폭제 역할을 하게 될 테니.”

“믿고 있을게요. 조금 쉬어요.”

이불을 덮어준 김해수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아름다운 실루엣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마 땀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하러 갈 모양이었다.

한지호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설까 생각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억지로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집주인이 쉬어 가라고 침대를 내줬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을 편히 먹고 눈을 감았다.

오늘 일을 통해 소녀경을 바탕으로 한 방중술까지 직접 실천해봤다.

전생의 경험을 하나씩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 있다는 게 실감 돼서 뿌듯했다.

‘구음절맥도 넘어섰어.’

태자병에 이어 구음절맥까지, 현대 의학으로는 병명도 밝혀내기 어려운 큰 산 두 개를 연달아 정복했다.

그 대상도 평창동의 거부 황만금과 연예계 최고의 스타인 김해수였다.

아직 김해수의 증상이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해수의 침대에 누운 한지호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체력을 완전히 소진해서인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포근한 이불과 어둠이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낸 한지호를 덮어주고 있었다.

7장, 그녀의 선물 (1)

김해수의 침대에 누워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눈을 뜬 한지호는 사방이 어두컴컴한 걸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잠시 쉰다는 게 그만 제법 오래 잠든 것 같았다.

“몇 시까지 잔거야?”

한지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걷어내자 차가운 공기가 그의 피부를 서늘하게 감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로 잠들었던 것이다.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한지호가 얼른 침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벗어 놓은 옷을 입으려는 것이다.

스윽-

부스럭거리며 속옷과 청바지, 셔츠를 입은 한지호는 그제야 불을 켰다.

빛이 들어온 침실 벽면에 걸린 시계는 벌써 하루의 끝이 임박했음을 알려줬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된 것이다.

철컥.

한지호는 조심스레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김해수의 청담동 빌라는 복층 구조다.

아래층에 있는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TV소리도 들렸다.

집주인인 김해수가 거실에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지호는 약간 민망함을 느끼며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편한 옷을 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김해수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둘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완전한 알몸을 맞대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서였지만, 그 생생한 느낌과 강렬한 자극을 없던 일로 치긴 힘들었다.

“일어났어요?”

“미안합니다. 생각보다 오래 폐를 끼쳤네요.”

“폐라니요. 치료하느라 힘을 쓰신 건데 지쳐서 잠들 수도 있죠.”

김해수는 한지호가 자신의 침대에서 몇 시간씩 잠을 잔 게 불쾌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대응에 한지호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그때 김해수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잠깐 앉았다가요. 커피 한 잔 어때요?”

“커피? 좋죠.”

한지호는 얼떨결에 소파에 앉았다.

커피를 타기 위해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는 김해수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막 잠에서 깼지만 그녀의 육감적인 실루엣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방중술로 치료를 할 때는 철저하게 환자로 바라봤지만, 그 고비를 넘겼으니 김해수가 여자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선물 받은 케냐 커피에요. 약간 신맛이 감도는 게 내 취향이라서.”

“잘 마시겠습니다.”

소파에 앉아 김해수가 건네주는 커피 잔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그녀와 커플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한지호는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커피를 마셨다.

적당한 온도의 커피에서 깊은 향이 우러났고, 깔끔한 신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맛있네요.”

“그렇죠?”

한지호의 말에 김해수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였다.

항상 당차고 섹시한 표정만 짓는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한지호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몇 시간이 지났는데, 몸은 좀 어때요?”

“놀라운 거 하나 말해줄까요.”

“네?”

“겨우 몇 시간 사이에…… 푸른 반점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어요.”

“정말입니까?”

김해수의 말에 한지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치료에 임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김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에요. 아직 함몰된 부위도 그대로고, 반점도 많이 남았지만 몇 시간 사이에 눈에 띌 변화가 나타났다는 건 확실해요.”

“빠른 속도로 효과가 나타나고 있군요.”

“그런데 한 선생님 말처럼 몸에 열이 나고 나른하기도 하네요.”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알겠어요. 남은 약 꾸준히 잘 먹고 푹 쉬면 되는 거 맞죠?”

“네. 틈틈이 날을 정해 침을 놓으러 오겠습니다.”

“증상이 완전히 낫기 전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을 생각이에요.”

“잘 생각했습니다. 구음절맥은 무서운 체질입니다. 반점이 전부 사라지고, 함몰 부위가 회복 되어도 한동안은 푹 쉬면서 보양에 힘쓰는 편이 좋습니다.”

“그럴게요. 난 이제 한 선생님을 100% 신뢰하니까.”

오묘한 말이었다.

김해수는 똑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100%라는 단어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한지호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음양교합을 흉내 낸 치료는 성공적이었고, 벌써부터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고비를 넘겼으니 김해수의 구음절맥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김해수 씨가 더 많았죠. 계속 침과 약 치료를 병행하며 경과를 지켜보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연락 할게요.”

한지호는 김해수의 배웅을 받으며 청담동 빌라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밤하늘과 쌀쌀한 바깥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포근하게 느껴졌다.

현대의 의사들은 엄두도 못 낼 큰 산 하나를 정복했기 때문일까.

청담동 밤거리를 헤쳐 가는 한지호의 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

방중술로 김해수에게 양기를 주입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조자룡이라는 거인의 인생을 품고 있는 조기운이 전역했다.

의경 생활을 무사히 마친 조기운은 복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모아둔 돈으로 방을 얻었다.

한지호는 그와 함께 더 큰 일을 도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자유 시간을 줬다.

이제 막 사회의 공기를 다시 쐬게 됐으니 잠깐은 자유를 누리게 할 필요가 있다.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자유를 마음껏 만끽한 후 조기운이 찾아오면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현할 생각이었다.

첫 단계는 사업자등록이다.

한지호는 당분간 병원을 열지 않고 계속 프리랜서 한의사로 활동할 것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해 놓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청우단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으니 법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그는 조기운의 전역에 맞춰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구음절맥 치료의 마무리에도 공을 들였다.

성공적인 방중술 치료 이후 이틀에 한 번씩 청담동 빌라를 찾아가 침을 놓았다.

110년 수령의 천종산삼으로 지은 약과 침술, 그리고 음양교합 치료가 삼위일체를 이뤄 매우 빠른 속도로 구음절맥 증상이 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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