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5화 (25/255)

# 25

그는 말없이 자신의 왼손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녹공의 기운으로 부기를 가라앉히는 거야.’

한지호는 스스로에게 침을 놓을 때 오금희 중 녹공(鹿功)의 힘을 담았다.

녹공의 근원은 물이다.

차가운 물의 기운을 침에 실어 뜨겁게 부어오른 왼손을 식히려는 것이다.

꾸욱- 꾸욱!

연달아 네 개의 침을 손목에 놓은 그가 김해수를 쳐다봤다.

“보다시피 눈으로 확인이 가능할 정도의 외상을 입었습니다. 부기가 오르고, 근육과 인대에도 손상을 입은 것 같군요.”

“대체 왜 그러셨어요?”

“김해수 씨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대로 5분만 지나면 부기가 가라앉고 왼손을 슬 수 있을 테니 두고 보시죠.”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말이 안 되는 걸 보여줘야 해수 씨가 마음을 열지 않겠어요?”

한지호는 통증을 이겨내고 웃었다.

녹공의 차가운 기운이 부기를 가라앉히고 있는 게 느껴졌다.

큰 충격을 받고 손상된 근육과 인대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중이었다.

눈에 띄게 좋아지는 한지호의 왼손을 본 김해수는 말을 잃었다.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증명을 위해 자기 왼손을 내려치고, 거기에 침을 꽂아 순식간에 외상을 가라앉힐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고, 한지호는 5분 안에 김해수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았다.

스윽-

그는 손목에 꽂힌 네 개의 침을 뽑았다.

퉁퉁 부어올랐던 왼손이 멀쩡해졌다.

약간의 후유증은 남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 될 것이다.

한지호가 왼손을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만하면 시험을 통과한 거 맞죠?”

“정말 자기 손을 내리치다니……. 제가 항복할 수밖에 없네요. 순식간에 부기를 가라앉히는 건 처음 봐요. 어떤 의사도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네요.”

“그럼 이제 해수 씨의 치부, 다른 의사들이 두 손을 들었다는 문제가 뭔지 알려줄 차례입니다.”

한지호의 눈동자에 강렬한 열망이 떠올랐다.

어떤 의미에서 김해수는 황만금을 능가하는 대어다.

돈은 황만금이 더 많지만, 유명세는 김해수를 따라갈 수 없다.

그녀를 치료하면 상류층 사모님들과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질 것 같았다.

“놀라지 말아요, 한 선생님.”

김해수가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손을 셔츠로 가져갔다.

곧이어 김해수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풍만한 가슴을 가리고 있던 셔츠가 점점 벌어지며 속살이 드러났다.

한지호는 갑자기 옷을 벗는 김해수를 말릴 수 없었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셔츠를 다 벗은 그녀의 상반신은 비너스 조각 같았다.

호텔 스위트룸에 상의를 벗은 김해수와 단 둘이 있는 상황, 웬만한 남자는 벌써 코피를 쏟았을 것이다.

그녀는 셔츠를 벗은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기어코 브래지어 후크로 손을 가져갔다.

“가슴에…… 문제가 생겼어요.”

스르륵.

브래지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해수의 가슴이 적나라하게 공개 되는 순간이었다.

미니스커트 위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속살과 몸매가 보였다.

“이건-!”

한지호는 김해수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며 탄식을 뱉었다.

그의 반응에 김해수가 예상했다는 듯 묘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만져 봐도 괜찮아요.”

2장, 글래머(glamour) (2)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상반신을 노출한 김해수가 가슴을 만져 봐도 괜찮다고 했다.

산골짜기에서 스님을 데려와도 흥분할 게 분명한 상황이다.

그녀가 셔츠 단추를 풀 때부터 한지호의 몸도 자연스레 반응하고 있었다.

29살의 건장한 청년인 한지호가 흥분을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는 훤칠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연애 할 여유가 없어 모태 솔로의 길을 걸어왔었다.

그러나 남녀관계에 대해 모르는 쑥맥은 아니었다.

여자가 먼저 상의를 벗고 가슴을 만지라고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하지만 한지호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김해수가 브래지어까지 벗고 가슴을 보여준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던 체온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째서 그녀가 까다롭게 시험을 요구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글래머 스타 김해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풍만한 가슴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에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때요? 보기 흉하죠.”

상반신을 고스란히 노출한 김해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녀가 옷을 벗으면 남자들이 정신줄을 놓고 달려들어야 한다.

김해수의 가슴을 직접 보는 건 극소수의 남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만약 그녀의 가슴 상태가 알려진다면 김해수라는 연예인의 브랜드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D컵은 될 것 같은 가슴 중앙의 분홍빛 유두가 보기 흉하게 함몰 됐고, 시퍼런 반점이 유두 아래를 뒤덮고 있었다.

파이는 옷을 입었을 때 보이는 가슴 위쪽만 멀쩡할 뿐, 유두를 중심으로 아래쪽은 만신창이였다.

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한지호는 건조한 음성으로 눈에 보이는 증상을 읊었다.

“극심한 유두 함몰에 원인 미상의 반점들. 단순한 피부병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유두 함몰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닐 테고.”

“맞아요. 원래부터 이랬을 리 없죠.”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 된 겁니까?”

“한 달 정도 지났어요.”

“의심 되는 원인도 말해주세요.”

“필러를 맞고 며칠 뒤에 갑자기…….”

김해수가 말끝을 흐렸다.

한지호는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파악했다.

글래머 스타 김해수는 가슴 성형을 하지 않은 걸로 알려졌고, 그래서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실리콘이나 자가 지방을 이식해서 가슴 성형을 한 다른 섹시 스타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풍만한 가슴이 탄력을 잃고 처질 수밖에 없다.

김해수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가슴에 필러를 맞은 것이다.

보톡스나 필러는 주사 한 방으로 성형 효과를 내기 때문에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가슴에 필러를 맞으면 자연스럽게 사이즈가 커지면서 탄력도 회복 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부작용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간혹 필러 부작용을 호되게 겪는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두가 푹 함몰되고, 이상한 반점이 가슴 아래에 퍼지는 증상은 금시초문이었다.

한지호는 진지한 얼굴로 김해수의 가슴을 노려봤다.

여자의 몸으로 여기고 쳐다보는 게 아니라 환자의 증세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는 한의사로서 무척 까다로운 난제를 앞두고 무섭게 몰입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가 한지호를 믿고 가슴을 보여줬다.

반드시 그 믿음에 답을 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황만금을 만났을 때보다 더 큰 기회일 수 있다.

김해수의 명성과 인맥은 한지호를 상류층 중심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치료에 성공하면 그녀의 이름을 발판삼아 상류층에서 화제의 인물이 될 것 같았다.

“도전해보겠습니다.”

“네?”

“김해수 씨의 가슴, 책임지고 원래대로 만들겠습니다.”

“정말, 정말 그게 가능한가요?”

도도하고 섹시한 김해수가 말을 더듬었다.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다.

비밀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소문은 어떻게든 새어 나가는 법이다.

연예계에 소문이 쫙 퍼지기 전에 가슴을 치료해야 한다.

상류층 남자들에게 계속 구애를 받기 위해서도 멀쩡한 가슴이 필요하다.

성형외과와 피부과 의사들은 난색을 표했고, 한의사들에겐 기대를 걸 수 없는 증상이었다.

그 와중에 유건영이 한지호를 추천했고, 그는 왼손을 일부러 다치게 한 뒤 침으로 순식간에 치료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눈앞에서 믿기 힘든 의술을 증명한 한지호가 치료를 선언한 것이다.

벼랑 끝에 몰려있던 김해수에게 한지호는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진부터 계속하죠. 필러를 맞은 게 처음입니까?”

“아니에요. 필러는 예전부터 주기적으로 맞아왔어요.”

“그럼 필러 외에 추측되는 다른 변화나 원인은요?”

“전혀……. 매번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 똑같은 필러를 맞았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이 이 지경이 된 거예요.”

“그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도 평생 처음 보는 경우라고, 원한다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마음 같아선 의료 소송이라도 걸고 싶지만, 그럼 온 세상에 소문이 나잖아요.”

“시술에는 변화가 없었고, 다른 원인도 없는데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여기까지 제가 잘 이해한 거 맞죠?”

“맞아요.”

한지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턱밑을 쓰다듬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에 고민이 깊어졌다.

우선 김해수의 정확한 상태부터 확실히 알아내야 한다.

진맥은 물론이고, 촉진(觸診)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촉진을 해도 되겠습니까.”

“촉진이요?”

“증상이 나타난 곳을 만지는 걸 뜻합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만져 봐도 괜찮다고 말했잖아요.”

김해수는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내밀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그녀가 가슴을 쭉 내미는 광경은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한지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눈앞에 있는 김해수를 섹시한 글래머 스타로 인식하지 않고 한 사람의 환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만약 가슴의 병을 치료한 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코피를 쏟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으윽-

한지호는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김해수의 가슴을 만졌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촉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유두가 함몰되고 반점이 생겼어도 원래의 풍만함은 그대로다.

다만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외관이 흉해졌을 뿐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지는 여자 가슴이 김해수라니, 근데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촉진을 하는 거라니!’

한지호는 새삼 모태 솔로인 자신의 처지가 우스워졌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집중하고 촉진에 신경을 쏟았다.

스윽- 스으윽-

그는 손가락 끝으로 김해수의 유두와 가슴 아래 반점들을 만졌다.

꽤나 자극적인 터치였지만 한지호나 김해수 둘 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반점에서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져. 고름이나 종양과는 다른 것 같군. 유두가 함몰 된 건 가슴 지방의 균형이 무너져서인가?’

촉진을 마친 한지호가 김해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엑스레이나 CT에서 검출 된 건 없습니까?”

“없어요, 전혀.”

“종양도 아니고, 고름이라 말할 수도 없고. 하지만 반점들에서 미세한 이물감이 느껴졌습니다.”

“…….”

걱정이 깊어졌는지 김해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한지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진맥을 하겠습니다.”

그는 김해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두 눈을 감은 한지호는 본능적인 감각을 활성화 시켰다.

평범한 한의사들의 진맥과는 다르다.

전생을 각성한 이후 그는 일반인이 느낄 수 없는 것까지 모조리 감지하게 됐다.

진맥만으로 한 사람의 전반적인 몸 상태를 알아내는 게 가능하다.

심장 박동과 피의 흐름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걸 느끼고 분석하지 못해서 진맥으로 병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지호는 심장 박동은 물론이고 피의 흐름까지 진맥으로 느꼈고,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찌릿!

강렬한 느낌이 한지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손끝에 와 닿는 김해수의 심장 박동, 그리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무궁무진한 전생의 기억.

이 모든 게 하나의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해보죠.”

눈을 뜬 한지호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케이스에서 침 하나를 꺼냈다.

“조금 아플 겁니다.”

경고를 한 그가 침을 가슴 가까이 가져갔다.

“침을 놓으려구요?”

“아파도 참아요.”

간단하게 대답한 한지호가 가슴 아래 반점 하나를 노려봤다.

시퍼런 반점 수십 개가 가슴 양 쪽을 뒤덮고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찌르려는 것이다.

꾹!

침이 반점을 뚫고 김해수의 가슴 아래에 꽂혔다.

“아앗!”

그녀의 입술 사이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한지호가 경고를 했지만 통증이 생각보다 컸다.

쑤욱-

반점에 침을 놓은 한지호는 시간을 끌지 않았다.

지체 없이 곧바로 침을 뽑은 한지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바늘 끝에 살짝 맺힌 핏방울을 손가락으로 만진 것이다.

‘차가워. 핏방울이 아니라 얼음물을 만진 것처럼. 내 생각이 맞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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