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 진정한 운명의 지배자 (1)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파투아가 죽는 순간 재윤을 향해 막대한 운명력이 밀려들어왔다.
특히 초월자이자 운명의 군주를 쓰러뜨린 터라 초대량의 경험치를 얻어 그의 레벨이 단번에 2단계 상승해 Lv105가 되었다.
[초월환령검이 Lv105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투력이 급증했지만 다행히도 지난 번처럼 몸이 폭주하지는 않았다.
레벨이 오르는 순간 자연스레 마경심법이나 환선공 등만이 아니라 초월환령검의 레벨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 장벽이라 불리던 한계를 돌파했기에 가능한 일.
언젠가 또 다른 절대 장벽이 나타날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대량의 경험치만 얻을 수 있다면 점점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초월자 급의 적이 아니라면 거의 경험치를 획득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경험치를 통한 레벨 업보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막대한 운명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
그만큼 파투아가 운명의 군주로서 지내오며 쌓아둔 운명력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전에 각성한 천마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파투아를 쓰러뜨리고도 되레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재윤은 운명력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다.
즉, 그는 단순히 초월적 존재로서의 전투력만 상승한 것이 아니라 운명의 힘을 다루는 운명의 군주로서의 능력도 대폭 상승했다.
‘드디어 파투아를 해치웠구나.’
뿌듯하면서도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이제 마지막 거점만 점령하면 운명의 공역을 완전하게 지배하게 되겠지.’
파투아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진정한 운명의 지배자.
그 찬란한 권좌가 재윤의 앞에 놓여 있었다.
스스스.
결계가 사라지며 재윤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테네르를 비롯한 관리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재윤이 파투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2거점 세쿤둠의 관리자 세라넬! 존귀하신 운명의 군주 강재윤 님께 충성을 맹약하옵니다.”
끝까지 파투아에게 붙어 충성을 바쳤던 제2거점 관리자가 결국 재윤 앞에 엎드러졌다.
[세쿤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운명의 공역의 완전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진정한 운명의 지배자시여!”
“감축드리옵니다, 로드!”
3만여 운명의 전사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운명의 공역을 울렸다.
동시에 제2거점 세쿤둠을 수호하던 운명의 전사들은 망설임없이 항복했다.
파투아가 많은 운명력을 소모해 창조한 막강한 전투력의 그림자 군단들 또한 재윤을 향한 절대 충성을 맹세했다.
이는 파투아가 죽는 순간 재윤이 그들을 모두 소멸시켜버릴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죽이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이제는 모두를 수용해 운명의 공역을 안정시켜야 한다.’
재윤은 군주로서의 아량을 발휘해 그들을 살려준 것이다.
덕분에 고대의 전쟁신, 고대의 용사, 고대의 정령들이 모두 재윤의 부하가 되어 운명의 공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윤이 한 일은 운명의 힘에 의해 강제로 소멸된 이들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화아아악!
곧바로 찬란한 빛과 함께 아루넬이 하얀 날개를 활짝 펴며 나타났다.
그녀는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잠시 몽롱한 눈빛으로 재윤을 쳐다보다 이내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어떻게 다시?”
그러자 재윤의 옆에 서있던 테네르가 특유의 오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루넬, 진정한 운명의 지배자가 되신 로드께서 그대를 다시 살려주셨다.”
그동안 친구처럼 지내오던 테네르도 재윤을 향해 이제는 공경한 태도를 취했다.
아루넬 또한 재윤을 향해 그 즉시 군주에게 하는 예를 취했다.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던 저를 기억해주시고 다시 살려주시다니 로드의 은혜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순간 재윤이 아루넬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를 바라보는 재윤의 눈빛은 무척이나 따스했다.
“아루넬, 그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루넬은 파투아의 부하였지만 그의 만행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재윤을 도왔다.
그녀가 소멸조차 감수한 채 운명의 돌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면 재윤은 결코 파투아를 쓰러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아루넬은 테네르와 더불어 재윤이 운명의 지배자가 되는데 가장 큰 공로를 세운 특급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대는 내 바로 옆에서 나를 보좌하라. 나의 뜻은 그대를 통해 모두에게 전파될 것이다.”
그러자 모두가 놀라면서도 아루넬을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운명의 지배자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존재.
쉽게 말해 아루넬은 재윤의 비서나 참모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화아아악!
계속해서 또 한 명의 존재가 환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머리카락 아래 중성적인 얼굴, 나무의 몸체를 가진 기괴한 존재였다.
다름 아닌 코인 나무 베르타.
“베르타! 드디어 너를 살렸구나.”
그러자 베르타 또한 잠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지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어떤 상황인지 금세 파악하고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재윤을 향해 예를 취했다.
“베르타가 위대하신 운명의 지배자를 알현합니다. 언제고 당신이 진정한 운명의 힘을 얻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진정으로 감축드립니다.”
베르타는 더 이상 코인 나무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수많은 나무 정령들이 살고 있던 세계의 우두머리였다.
“바라옵건대 제가 속했던 세계도 회복시켜주신다면 그 은혜를 결단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재윤은 미소 지었다.
베르타는 그가 친구로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
끝까지 의리를 지키다 파투아의 분노를 사 소멸되었던 친구의 부탁이다.
당연히 들어줘야 할 것이다.
“염려마라. 지구와 더불어 가장 먼저 네가 속한 세계를 복구해주겠다.”
지금처럼 한두 명을 되살리는 일은 간단한 일이지만, 망가져버린 세계를 복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지구처럼 되어버린 세계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사악한 운명의 군주 파투아로 인해 파괴되어 잊혀진 세계들!
이제 그것들을 하나하나 복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재윤이 신경쓸 건 없었다.
테네르를 비롯한 운명의 공역 일곱 거점 관리자들에게 맡겨두면 되니까.
“테네르."
그러던 재윤이 테네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재윤을 쳐다봤다.
“네, 로드시여! 말씀하소서.”
“내가 너에게 가장 고마워하고 있는 것 알지?”
"별 말씀을."
아루넬이 운명의 돌을 가져다줘 운명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줬다면, 테네르는 재윤이 운명의 군주가 되도록 끝없이 도움을 주었다.
“잊지 마. 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영광이옵니다, 로드.”
테네르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보다 이제 지구를 본래로 돌려야하지 않을까요?”
“그래야지.”
그렇지 않아도 그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
“재윤아? 아직도 자고 있니?”
“이 녀석! 아무리 휴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늦잠을 자다니!”
오늘은 일요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던 재윤은 부모님의 성화에 일어났다.
“벌써 다녀오셨어요?”
“그럼. 지금이 몇 시인데?”
“다음 주부터는 너도 새벽에 일어나 등산가자.”
“생각해볼게요, 하하.”
재윤은 거실로 나와 냉수를 마셨다.
그러다 이내 실소를 흘렸다.
‘역시나 회귀는 잘 적응이 안되네.’
그는 자신이 운명의 군주라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었던 것이다.
마치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잠시 동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너무 평화로운 일상.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이었다.
‘본래라면 지금쯤 비명 소리가 들리고 난리가 나 있을 텐데,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재윤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부모님이 등산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이것이 본래 펼쳐질 현실이었지만 파투아로 인해 그 난리가 났던 것이다.
“밥 먹자, 아들!”
“어서오너라.”
“예, 갈게요.”
어머니 김지현이 정성스레 만든 김치찌개에 밥을 먹으며 재윤은 가슴이 뭉클했다.
“밥 먹고 장기 한 판 어떠냐?”
“좋죠.”
아버지 강두성이 장기를 두자는 말에 재윤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는 그저 일상이었던 이런 순간들.
너무 당연하게 주어졌던 터라 얼마나 소중했는지 잘 몰랐다.
재윤은 부모님에게 모든 병에 면역이 생기며 생명력이 증가하는 축복을 펼쳐주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아버지와 장기를 둔 후 재윤은 산책겸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모든 걸 잊고 인간 강재윤으로서의 평범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운명의 공역에서의 일은 관리자들에게 맡겨두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날씨도 좋네.”
골목길을 따라 잠시 걸었을까?
재윤은 낯익은 소녀를 발견했다.
두꺼운 안경에 등에는 가방을 맨 채 어딘가를 바쁘게 가는 여고생.
다름 아닌 한혜미였다.
그녀는 재윤과 눈이 마주쳤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시간이 회귀되며 그녀는 기억이 지워진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구나.’
재윤은 한혜미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게 살아라. 공부 열심히 하고.’
그는 속으로 한혜미를 응원해주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이제는 아는 척을 하는 게 이상한 상황이니까.
대신 활력이 넘치도록 축복을 펼쳐주었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특히 머리가 맑아지는 축복이었다.
수험생인 그녀에게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 걸었을까?
“어이! 한혜미! 어디 가냐?”
굵직한 그 음성은 재윤의 귀에 매우 익숙했다.
“학원 가요.”
“그래. 공부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야. 운동도 꾸준히 해라.”
“걱정마세요, 민철 오빠. 저 아주 건강해요.”
“오! 하긴 오늘따라 뭔가 더 씩씩해 보이는 걸. 보약이라도 먹었냐?”
“헤헤, 그냥 꾸준히 운동해서 그런가 보죠. 그럼 또 봐요.”
“그래. 또 보자.”
우람한 덩치의 청년은 이민철이었다.
그가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헬스장에 한혜미가 다니는 터라 둘은 친해졌다고 했었다.
그러던 이민철은 재윤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재윤아? 너 거기 있었냐?”
“어, 산책 중이었어.”
이런 식으로 길에서 이민철과 마주치는 일은 아주 흔했다.
그는 동네 형이었으니까.
“오늘 저녁 뭐하냐?”
“글쎄! 별 일 없는데?”
그러자 이민철은 어느새 다가와 재윤에게 어깨 동무를 하며 말했다.
“달리 할 일 없으면 삼겹살 어때? 내가 쏘겠다.”
“좋지.”
“예찬이도 불러라. 모처럼 셋이 삼겹살 실컷 먹자.”
“모처럼은 아니지. 우리 지난 주에도 삼겹살 먹은 것 같은데?”
“일주일만이면 모처럼이야. 어쨌든 저녁때 보자. 지금은 내가 좀 바쁘거든.”
“그래. 이따 연락해, 형.”
이민철은 헬스장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물론 이민철에게도 활력의 축복을 펼쳐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민철이 형은 여전하네.’
이민철을 보자 재윤은 더욱 지구가 제대로 돌아왔음이 실감났다.
덕분에 오늘 밤은 삼겹살 파티를 하게 될 것이다.
막강한 탱커였던 각성자 이민철은 이렇게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폐허가 된 지구에서 그같은 능력을 가진 것보다 지금의 현실을 훨씬 반가워할 것이다.
잠시 걷던 재윤은 커피 숍 앞에서 또 낯익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아이스 커피를 한 잔씩 손에 쥔채 걷고 있는 두 남녀.
“어휴!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저는 정말 잔업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윤 과장님.”
“미안해. 내가 다음 주에는 꼭 쉬게 해준다, 박 대리.”
“과장님만 믿을게요.”
투덜거리는 두 남녀.
다름 아닌 윤현성과 박은빛이었다.
저들은 오늘도 회사에 출근해서 잔업을 하다가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나 가족들을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물론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만 말이다.
‘너무 피곤해들 보이네.’
재윤은 그들에게 활력의 축복을 은밀히 펼쳐주었다.
그러자 둘은 언제 피곤했냐는 듯 생생한 상태가 되었다.
“와! 갑자기 힘이 나는 걸. 역시 졸릴 때는 커피가 최고라니까.”
“저도 정신이 번쩍 나네요. 커피 마시러 나오기 잘했어요.”
둘은 커피를 마셔서 활력이 생긴 것이라 생각할 뿐, 설마 재윤이 그들에게 축복을 펼쳐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때.
“재윤아.”
누군가 재윤을 불렀다.
흑색의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노인.
그는 평범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부님.”
다름 아닌 천마.
그는 일부러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게 가장 평범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마계는 걱정말거라. 상마왕들이 알아서 잘 기강을 잡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네가 곧 전투가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예, 외계인 녀석들이 곧 쳐들어 올 겁니다.”
“허허, 할 일이 많은 네가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쓰면 되겠느냐? 그놈들은 내게 맡겨라.”
“사부님께서 나서 주시면 저야 편하죠.”
재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