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 절대 장벽은 없다 (1) >
1백여 명이 넘는 초월자를 죽임으로 인해 획득한 초대량의 경험치.
그것은 Lv100인 재윤의 레벨을 올려놓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것도 한 단계가 아니라 무려 3단계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절대 장벽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
그것은 레벨 100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게 될 경우 그 힘의 폭주를 견뎌낼 수 없어 그대로 몸이 터져버리거나 혹은 소멸되어버리는 재앙이 엄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장벽을 죽음의 장벽 혹은 소멸의 장벽이라고도 했다.
[마경심법이 Lv103이 되었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103이 되었습니다.]
[환선공이 Lv103이 되었습니다.]
[환선도법이 Lv103이 되었습니다.]
특히 재윤의 경우는 각종 특화 능력들이 폭주를 가속화시켰다.
본래는 Lv100까지만 존재하는 특화 능력들이 Lv103이 되며 그 위력이 급증하자 그것을 신체가 견뎌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으윽!’
재윤의 모든 것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마기가 흩어지고, 환력이 흩어졌다.
사기적이라 할 수 있는 각성자로서의 스탯들도 사라지고, 신체는 산산 조각이라도 날 듯 균열이 일어나 있었다.
‘어째서 초월환령검은 그대로지?’
그런데 재윤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특화 능력인 초월환령검의 레벨이 여전히 Lv100이었기 때문이다.
레벨이 올랐으면 당연히 그 또한 레벨에 맞게 조정되어야 정상!
마경 심법 등은 모두 그렇게 되었는데 유독 초월환령검만 레벨 변동이 없었다.
‘혹시 깨달음 때문인가?’
이는 환족왕의 가르쳐준 내용이었다.
Lv99이후부터는 깨달음에 이르지 않으면 단순히 경험치를 쌓는 것만으로는 레벨을 올릴 수 없다.
그런데 운명의 힘이 깃들어 있는 초대량의 경험치가 들어오자 그러한 법칙이 깨졌다.
레벨이 103으로 강제 상승해버린 것이다.
다만 초월환령검의 깨달음은 그대로라 여전히 Lv100이었다.
‘어쩌면 초월환령검의 경지를 높이면 살아날 수 있을지 몰라.’
사실 죽어가는 와중에 초월환령검의 레벨이 오른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을까 싶었지만, 재윤은 온 정신을 그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수련보다 죽음과도 같은 실전만이 해답이다.〉
죽음과도 같은 실전!
천마와의 결투 중 깨달음을 얻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지금도 동일했다.
적과 싸우는 전투가 아닌 스스로의 신체에 엄습하는 죽음의 위기이지만, 이 또한 죽음과도 같은 실전이었다.
‘버틴다! 절대 죽지 않는다!’
이미 신체의 모든 마기와 환력이 사라지고 장기를 비롯한 모든 부위가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재윤의 정신만은 또렷했다.
마음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심검의 경지에 이른 상태인데 육체가 녹아내린다한들 무슨 제약이 있을까?
육체가 모두 사라진다해도 정신만 멀쩡하면 죽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 터무니없는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죽음의 상황에 처하자 초월자로서의 그의 의식이 또 하나의 단계를 돌파한 것이다.
[초월환령검이 Lv101이 되었습니다.]
[초월환령검이 Lv102가 되었습니다.]
[초월환령검이 Lv103이 되었습니다.]
초월환령검의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이 연거푸 들려옴과 동시에 재윤의 육체는 불가사의한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편 파투아는 그같은 재윤의 상태를 상상도 못한채 승리를 확신했고, 오래도록 벼르고 있던 제1거점 프리뭄의 관리자 테네르에게 징벌을 내렸다.
그로인해 마왕의 촉수들이 테네르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 촉수들은 재윤에 의해 그 즉시 잘려나갔고, 마왕은 처참히 부서졌다.
“어떻게 네놈이!”
그 모습을 본 파투아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절대 장벽에 도달한 것으로 인해 처참히 죽었어야 할 재윤이 너무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절대 장벽이란 건 없다. 한계를 초월하지 못하는 이들의 핑계일 뿐이지.”
재윤은 싸늘히 웃으며 한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파투아.”
순간 멀리 있던 파투아의 몸이 그의 앞으로 자석처럼 끌려왔다.
꽈악!
재윤의 한 손이 파투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쿠으윽!"
파투아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축 늘어진 상태로 몸을 떨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경악했다.
운명의 군주이자 자타가 공인한 최강의 존재인 파투아가 재윤의 앞에서 마치 천적이라도 만난 듯 맥없이 당할 줄이야.
우드득!
재윤은 망설이지 않고 손에 힘을 줬다.
그의 손에서 일어난 기운에 파투아의 몸체가 그대로 녹아버렸다.
공연히 시간을 끌어봤자 파투아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그를 해치운 것이다.
‘후! 드디어 끝이 온 건가?’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파투아를 죽였으면 경험치가 들어와야 한다.
레벨이 오르지 않아도 경험치가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 아무런 경험치도 없었다.
게다가 그의 부하들이 모두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그가 만든 그림자들은 그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왜 저들이 멀쩡하지?’
고대의 전쟁신과 고대의 용사 등을 비롯한 수많은 파투아의 부하들.
그들은 재윤을 두려워하며 떨고만 있을 뿐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그럼 모조리 죽여주지.’
그런데 그들은 순간 마치 환영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소환?’
그들 모두가 어딘가로 소환된 것이다.
동시에 들려오는 음성.
《 절대 장벽을 넘어서다니 대단하구나. 하나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애초부터 너는 나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존재다. 》 다름아닌 파투아였다.
《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
재윤이 묻자 파투아는 큭 웃으며 대답했다.
《 너는 그저 나의 분신을 해치웠을 뿐이다. 》
분신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방금 전 그가 그의 부하들을 소환해 데려간 것이 분명했다.
《 그럼 기다려라. 가서 죽여줄 테니. 》
《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을 운명의 군주로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
《 정말 불가능한 일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
현재 재윤의 레벨은 103이다.
무려 3단계나 레벨이 상승한 지금의 전투력은 그 스스로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초월환령검(Lv103)이 아닌 마경심법(Lv103)만 해도 이미 공간의 제약에 얽매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환선공(Lv103)의 환력도 마찬가지다.
마기와 환력을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경지.
마치 바다에 호수를 연결에 물을 쏟아내듯이 무한한 마기와 환력을 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얻게 된 신비한 능력들 중 하나는 공간 이동이었다.
뜻이 이르는 곳에 그가 존재했다.
가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즉, 파투아가 운명의 공역 어디에 있든 재윤은 그가 있는 곳으로 즉각 공간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놈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파투아가 죽었다면 말이 되는 일이지만, 그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금방 찾아내 없애주마.’
한편 그 사이 무력화 상태에 빠졌던 테네르를 비롯한 재윤의 부하들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테네르가 안도와 경탄의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그 사이 또 강해졌구나.”
재윤은 미소지었다.
“다행히 절대 장벽이라는 걸 넘어섰다. 그런데 파투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아. 분명 놈이 살아서 내게 뜻을 전해오는데 말이야.”
그러자 테네르 또한 굳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래도록 운명의 군주로서 지내왔던 자야. 절대 방심해서는 안돼. 특히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제2거점 관리자 세라넬에게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 존재해. 그것은……."
그런데 그녀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
화아아아악!
갑자기 엄청난 빛의 폭풍이 몰아치더니 공간이 그 폭풍에 휘말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막고자 했지만 막을 수 없는 미증유의 힘.
재윤 또한 그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
***
"으아아아악!”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
재윤은 무심코 일어나 창밖을 열어봤다.
악어의 머리에 인간의 몸체를 가진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뭐냐, 이건?’
크로거가 사람을 잡아먹는 저 장면.
재윤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구가 괴상하게 변한 직후 재윤이 처음으로 목격했던 끔찍한 살육의 장면이었으니까.
그렇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그때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꿈인가?’
그런데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프리뭄의 전장에 있던 그가 갑자기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여긴 꿈이 아니야. 환상도 아니고.’
현실이었다.
“사람 살려! 아아아악!”
“으아! 이 괴물들 뭐야?”
“사, 살려줘……아악!”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아비규환의 살육이 펼쳐지는 지구 종말의 대재앙.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똑같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시간이 그때로 돌아온 것이다.
‘설마 시간 회귀?’
황당하게도 상태 창이 뜨지 않았다.
그의 모든 능력이 사라졌다.
그의 육체는 각성자가 아닌 당시의 인간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은 유지된 채 그때로 돌아온 건가?’
재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으아아악! 살려줘!”
“크르르르!"
“아악!”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뭔가가 계단 위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크로거일 것이다.
그때의 상황대로라면 놈은 재윤이 있는 201호의 문을 부술 것이고, 재윤은 그 사이 시간의 틈새에서 각성의 시험을 통과해 각성자가 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시간의 틈새는 열리지 않았다.
콰앙!
게다가 문이 부서지고 나타난 존재는 크로거가 아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청년.
그가 나타난 순간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이는 듯했다.
“사, 사부님?”
재윤은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천마였던 것이다.
“누가 사부라는 거냐?”
천마는 재윤을 향해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는 듯 냉소를 날렸다.
‘사부님이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시는군.’
하긴 시간이 회귀된 상태라면 그럴 것이다.
재윤이 천마 아니, 혈마와 만나 그의 제자가 되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니까.
‘젠장!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를 죽이겠다?’
재윤은 비로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파투아가 무슨 수작을 어떻게 벌였는지 모르지만 시간을 되돌려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냥 되돌린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상황도 변경시켰다.
재윤이 각성자가 되지 못하게 만들었고, 또한 크로거가 아닌 천마를 이곳으로 보냈다.
‘나를 죽이려고 꽤나 머리를 썼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재윤이 큭하고 웃자 천마가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사신을 보고도 웃는다? 미친 놈이로군.”
그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재윤을 향해 한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그의 손가락에서 붉은 광선같은 것이 뻗어나왔다.
마왕들이라고 해도 이 광선에 스치면 그대로 녹아버리는 가공스러운 위력이 깃든 절대의 마공(魔功).
그런데.
그렇게 날아오던 광선이 돌연 그대로 흩어졌다.
재윤이 손을 슥 휘젓자 벌어진 일.
‘파투아! 너는 내가 심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모르는 건가?’
초월환령검의 심검은 마경 심법의 마기나 환선공의 환력이 없이도 펼칠 수 있다.
초월자의 영역.
그것도 초입이 아닌 몇 단계 상위의 경지에 까지 들어선 그였다.
즉, 갑자기 시간 회귀를 해 잠시 혼란에 빠지긴 했지만, 초월자인 그의 능력은 시간이 회귀한다고 해서 초기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상태 창 역시 마찬가지.
그것이 잠시 보이지 않았던 건 재윤 스스로 당연히 초기화되었을 것이란 생각에 봉인되었던 것일뿐, 그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금세 다시 자각하는 순간 본래 상태로 돌아왔다.
따라서 재윤이 천마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시간 회귀를 통해 재윤을 죽이려 했던 파투아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천마는 마치 석상처럼 몸이 굳어져 있었다.
재윤이 그의 공격을 소멸시킴과 동시에 제압해두었으니까.
“사부님, 정신차리세요.”
재윤은 천마가 비록 파투아에 의해 창조된 존재지만 그 스스로의 의지로 파투아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역시 비록 초입이지만 초월자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으니까.
‘시간이 회귀되며 천마 사부님과 파투아가 분리된 게 분명해.’
그로인해 천마는 다시 살아났다.
이제 그를 자각시켜 기억을 되돌려 놓으면 더 이상 파투아의 통제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화악!
재윤의 두 눈에서 쏟아져 나간 안광이 천마의 두 눈을 파고들었다.
그 빛은 천마의 기억을 봉인하고 있던 파투아의 족쇄를 흩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