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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75화 (175/200)

175화.  < 환신술을 펼치다 (1) >

‘여기는?’

어둑한 밤.

밤 하늘에는 오렌지빛 달이 떠 있었다.

언뜻 보면 지구와 흡사해 보이지만 달의 크기가 달랐고, 숲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달랐다.

‘지구는 아니다.’

하긴 그것도 예전의 지구 기준일 때의 얘기일 뿐.

변화된 지구라면 이런 환경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재윤은 사부 환선이 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 없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환신술(幻身術)을 펼쳐 철저히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환신술의 대상이 필요했다.

‘뭐든 상관없어. 최대한 빨리 변신해야 된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천마가 눈치채게 될 테니까.

그가 환계의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환신술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저쪽에 뭔가 있군.’

거리는 대략 1km.

그곳에 제법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녀석이 하나 감지되었다.

‘마기? 하급 마족 정도는 되는 녀석인데?’

재윤은 즉각 그쪽으로 이동했다.

신장이 2미터 쯤 되어 보이는 사내.

그러나 그의 두 눈은 피처럼 붉고 왼팔은 어깨부터 손까지 붉은 비늘이 박혀 있었다.

딱 봐도 인간이 아닌 마족.

재윤이 감지한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녀석이었다.

그의 뒤로 온갖 험악하게 생긴 마물 부하 수십여 명이 보였다.

마물들은 자그만 수레를 끌고 있었는데, 수레 위에는 두 명의 여성이 사슬에 묶인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한 명은 인간 여성이고, 다른 한 명은 엘프였다.

그런데 재윤은 그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저들은?’

여성 엘프는 그의 부하인 로사엔이었다.

또한 인간 여성은 희망 성 소속 각성자 중 하나인 채시은.

‘어째서 저들이?’

설마 희망 성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일까?

여기서는 관리자 통신이 되지 않으니 알 방법이 없었다.

재윤은 당장이라도 마족을 때려잡은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랬다가는 천마의 추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저 마족 놈으로 변신해 천마 사부님의 추적부터 따돌려야 한다.’

곧바로 재윤은 환선이 준 환선구를 이용해 결계를 펼쳤다.

일순간 하급 마족과 마물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주변이 짙은 안개로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때 마족의 앞에 재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결계로 인해 마족 외에는 재윤을 볼 수 없었다.

안개처럼 보이지만 실상 마족만 따로 결계로 가둔 상태에서 재윤이 그 결계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건방진 놈!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붉은 비늘로 뒤덮인 마족의 왼손이 날카로운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커억!”

재윤이 날린 환도가 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침착하게. 기회는 한 번뿐이다.’

한손은 환선구를 쥐고 다른 한손은 마족의 사체에 대고 환신술을 펼쳤다.

츠으으!

순간 그의 모습이 마족과 동일하게 변했다.

동시에 마족의 몸은 흐물흐물 녹더니 그대로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됐다.’

환신술에 성공한 것이다.

그로인해 환선구는 신비한 빛이 사라지고 평범한 구슬로 돌아왔다.

환선구의 환력이 다시 모이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하는 터라, 지금 변신한 육체를 잘 유지해야 했다.

이 육체가 죽게 되면 환신술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재윤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일단 천마의 추적은 확실하게 따돌릴 수 있게 됐지만, 로사엔과 채시은이 왜 저꼴이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희망 성에 계신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을까?

환계에 있는 환선 사부는?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있는 한 부모님은 무사하실 것이다.’

로사엔 등이 왜 저렇게 됐는지는 알아봐야겠지만, 용사 루니스와 데카투스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환선 사부 또한 마찬가지다.

천마의 성격 상 자신을 환계의 미로에 빠뜨린 환선을 가만두려 하지 않겠지만, 환선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정면 승부는 천마에게 밀릴지 몰라도 그녀가 작정하고 피한다면 천마라고 해도 쉽게 그녀를 어찌할 수 없었다.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은 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해.’

재윤은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킨 후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했다.

어렵게 환신술을 펼쳐 천마의 이목을 따돌리는 중이었다.

여기서 자칫 어떤 식으로라도 정체가 발각되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일단 이 마족 녀석의 기억부터 읽어야겠군.’

환신술을 펼쳐 마족과 동일한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그 마족이 어떤 존재인지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다행히 환신공에는 환신술을 펼친 대상의 기억을 일부나마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놈은 나룬이라는 이름의 하급 마족이다.’

별볼일 없는 떠돌이 하급 마족인 그는 오늘 우연히 마을을 하나 습격했고 미모의 여성 둘을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다름 아닌 채시은과 로사엔.

그녀들이 왜 이 정체불명의 이세계에 위치한 마을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룬은 채시은과 로사엔을 마족들의 도시인 카르타스라는 곳에 데려가 노예로 팔려고 했던 것 같았다.

엘프들은 전통적으로 마족들이 선호하는 노예이고, 각성자이자 미모의 인간 여성은 더욱 희귀한 존재라서 최근에 인기가 많았다.

따라서 둘 다 카르타스라는 곳에 가면 매우 비싸게 팔릴 것이다.

이는 모두 나룬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사실.

‘후!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만약 이 순간 재윤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채시은과 로사엔은 악몽과도 같은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저들에게도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서는 안 돼.’

재윤이 채시은과 로사엔에게 정체를 밝힌다고 그녀들이 어디 가서 발설할 리는 절대 없지만, 그렇다 해도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좀 더 이놈의 기억을 읽자.’

지금 상태로는 온전히 나룬의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재윤은 나룬이 가진 전투력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봤다.

‘이놈의 특기는 왼손을 어떤 형태의 무기로든 변환할 수 있는 건데?’

생각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능력이었다.

팔의 길이도 늘어날 뿐 아니라 무기를 거대화시키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잘됐다. 이놈을 활용하면 레벨 업도 가능하겠어.’

물론 재윤은 지금 상태로도 레벨87의 본신 능력을 모두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면 그 또한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쟁신의 검술이나 환선도법도 당분간은 펼치지 않는 게 좋겠지.’

이곳 세계 어디에 천마의 눈과 귀가 존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루토를 비롯한 모든 장비는 아공간에 잘 넣어두었다.

또한 의상도 나룬이 입고 있던 가죽 옷으로 바꿔 입었다.

‘이놈의 기억 속에 그래도 쓸만한 무공이 하나는 있구나.’

나룬은 마계부터 인접한 소세계들까지 잡다한 세계들을 떠돌며 제법 오래 살아남을 만큼 잔머리가 뛰어났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다크 스네이크 소드〉라는 상승 검술을 하나 익혔다.

왼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나룬에게 최적화된 검술.

그러나 그리 대단한 성취를 보지는 못했다.

천성적으로 노력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특화 능력 다크 스네이크 소드(B)를 얻었습니다.]

다행히 재윤이 따로 수련하지 않아도 특화 능력이 생성될 정도는 되었다.

환신술로 변신한 육체지만 재윤이 가진 각성자로서의 능력은 그대로 적용되니 가능한 일.

[새로운 특화 능력 마기 축적(A)을 얻었습니다.]

마기 축적은 마족의 종족 특성 중 하나로 마기를 체내에 쌓는 능력이었다.

곧바로 들리는 알림.

[마경 심법(S)과 마기 축적(A)은 동시에 활성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활성화되면 다른 하나는 비활성화 상태가 되어 해당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거야 말로 재윤이 바라던 바였다.

마경 심법의 마공을 사용하게 되면 환신술을 아무리 기막히게 펼쳤다 해도 천마의 눈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족의 순수한 마기는 들킬 염려가 없다.

마경 심법에 비해 위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A급 특화 능력인 이상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마기 축적을 활성화했습니다.]

[마경 심법이 비활성화되었습니다.]

그 순간 체내에 있던 마경 심법의 막대한 내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언제든 마경 심법을 활성화하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니까.

[다크 스네이크 소드가 Lv87이 되었습니다.]

[마기 축적이 Lv87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다크 스네이크 소드와 마기 축적이 현재 레벨인 87에 맞게 조정되었다.

그로 인해 막대한 마기가 몸에 느껴졌다.

생전의 나룬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 정도면 상급 마족과 붙어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겠군.’

스스스.

작업이 완료되자 재윤은 곧바로 환술진의 결계를 풀었다.

이제 그는 마족 나룬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상태.

눈 앞에 환선이나 천마가 있어도 그가 재윤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말이다.

“로드, 갑자기 안개가 피어났습니다.”

“허둥대지마라. 별일 아니다.”

재윤은 평소 나룬처럼 무뚝뚝한 음성으로 외쳤다.

“예, 로드.”

현재 그의 부하 마물들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미노타우루스 2

카치카 20

금속 슬라임 4

4미터 신장의 소머리 거인인 미노타우루스.

마기를 보유하고 있다보니 재윤이 이전에 해치웠던 미노타우루스들보다 몇 배는 강했다.

그런만큼 그 2마리의 미노타우루스들이 나룬 휘하 최강의 맹장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염소의 머리에 인간의 몸체를 가진 카치카들은 괴력을 가진 녀석들로 마계에서 가장 흔한 마물들이었다.

다만 금속 슬라임들은 제법 희귀한 마물들이었는데, 보통의 슬라임처럼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움직이다가 유사시 딱딱한 금속으로 변할 수 있었다.

지금 채시은과 로사엔을 묶고 있는 사슬도 슬라임들이 변신한 것이었다.

“제발 우릴 풀어주세요! 부탁입니다.”

“마족! 우리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채시은은 애타게 사정했고, 로사엔은 오히려 협박을 해왔다.

그녀는 마족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내 부하답네.’

재윤은 로사엔의 당당한 태도에 내심 흐뭇했다.

그러나 그는 마족 특유의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들을 노려봤다.

지금 그는 철저히 마족 나룬으로서 그녀들을 대해야 했다.

“조용히 있어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채시은은 탄식하며 눈을 감았고 로사엔은 코웃음 쳤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마족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았다.

“로드! 앞에 마족 쿠툼 님의 부대입니다.”

그때 카치카 정찰병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쿠툼은 하급 마족이지만 휘하에 꽤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투력도 강했다.

그래서 하급 마족들 사이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룬도 평소에 쿠툼을 만나면 항상 굽실댔다.

“쿠, 쿠툼 님을 뵙습니다.”

재윤의 부하 마물들이 잿빛 머리털을 가진 오우거 형상의 마족의 모습이 보이자 즉각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가 바로 마족 쿠툼이었다.

쿠툼의 뒤로는 미노타우루스만 10여 마리, 그리고 1백여 마리가 넘는 카치카들이 중무장을 한 채 따르고 있었다.

‘경험치를 주려고 오다니 기특하구나.’

이곳은 강자존의 세계.

마족들이나 마물들의 세계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이거나 지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

물론 그렇다 해도 마왕의 권속 마족을 공격하는 건 해당 마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니 삼가야 한다.

다행히 쿠툼은 소속이 없는 마족이라 공격해도 부담이 없었다.

《 베르타, 내가 지금 정체를 숨기고 있으니 당분간 흑요정의 탑이 아닌 곳에서는 루팅을 하지 마라. 》

《 그러지. 건투를 빈다, 인간. 》

천마를 속이려면 베르타의 모습도 보여서는 안 된다.

재윤은 철저히 마족 나룬으로서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이전의 나룬이 아니라 매우 강해진 나룬으로 말이다.

마계에서는 하급 마족이 각성을 통해 상급 마족이 되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터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한편 쿠툼은 재윤이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본래라면 당연히 그 앞에 엎드려 인사를 해야 정상인 놈이 뭘 믿고 저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놈이 갑자기 미친 건가?’

헐값으로 재윤의 각성자 노예들을 강탈할 생각인 그는 일단 기부터 죽여놓기로 했다.

“나룬! 나를 보고도 꼿꼿이 서있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 너다.”

재윤은 왼손을 쭉 뻗었다.

날카로운 검날로 변한 그의 손이 쿠툼의 목을 그대로 관통했다가 돌아왔다.

촤아악!

쿠툼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다가 목에서 핏줄기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커어억!”

그는 설마 자신이 이토록 어이없이 죽임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쓰러지면서도 황당해하는 기색이었다.

[12,000코인을 얻었습니다.]

[4,320루페스를 얻었습니다.]

대량의 코인과 함께 루페스 획득!

루페스는 마족들이나 마물들이 사용하는 화폐 단위였다.

나룬의 전재산은 고작 50루페스 뿐이었는데, 쿠툼을 해치우자 놈이 갖고 있던 대량의 루페스를 얻은 것이다.

“쿠, 쿠툼님이 당했다!”

“감히 로드를!”

한편 갑자기 재윤이 쿠툼을 단번에 해치워버리자 그의 부하들이 깜짝 놀라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재윤의 왼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전방을 누볐다.

서걱! 촥! 파파팟-

시뻘건 칼날이 움직일 때마다 미노타우루스들의 목이 날아가고 카치카들의 허리가 잘려나갔다.

“크아아악!”

“꿰에엑!”

쿠툼의 부하들이 전멸한 건 순식간이었다.

코인과 루페스는 자동으로 들어오고 바닥에는 마물들이 드롭한 각종 아이템들이 반짝였다.

“뭣들 하는 거냐? 아이템들을 주워와라.”

“예, 옛!”

“로드의 명을 받듭니다.”

부하 마물들이 후다닥 달려가 바닥에서 반짝이는 각종 드롭템들을 주워다 바쳤다.

재윤은 그것들을 아공간에다 챙겼다.

“로드! 언제 그렇게 강해지셨습니까?”

“쿠툼 님을 한 방에 보내시다니 대단하십니다요.”

그들은 재윤을 존경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재윤은 싸늘히 웃었다.

“원래부터 나는 강했다. 귀찮아서 싸우지 않았을 뿐이야. 이제부터 날 건드리는 놈들은 다 죽일 것이다."

“오오!”

“쿠와아!”

부하들이 환호했다.

이곳 세계에서 자신의 로드가 강한 것처럼 신이 나는 일은 없었다.

‘저놈들은 일단 살려두는 게 좋겠지.’

아무리 마물들이라 하지만 어쨌든 충성을 바치고 있는 녀석들이다.

큰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죽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채시은과 로사엔 덕분에 그녀들을 노리는 마족 패거리들이 계속 나타났다.

덕분에 불과 반나절만에 마물 수백 마리에 하급 마족 셋을 해치우는 쾌거를 달성했다.

‘흑요정의 탑에 들어가봐야 알겠지만 이런 식이면 경험치가 꽤 쏠쏠하겠는데?’

그러나 매일 이처럼 많은 마족과 마물들을 죽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일단 저들을 어떻게 보호하는가가 문제야.’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채시은과 로사엔을 그냥 이곳에서 풀어줄 수도 없었다.

그녀들이 왜 이곳에 있는 지 사정을 알아봐야 하니까.

‘그래. 차라리 마족들의 도시로 데려가는 게 편하겠군.’

둘 다 재윤의 노예로 등록해 놓으면 오히려 안전해진다.

도시의 규율 상 다른 마족의 노예에게 손을 대는 건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재윤이 도시 카르타스로 가는 건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었다.

‘도시에 가면 마왕군에 지원해 전쟁에 나갈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마왕과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라 마왕과 마왕간의 전쟁이 훨씬 더 자주 벌어진다.

마왕들의 영역 다툼이 하루도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 카르타스는 재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마왕 데사오의 관할이었다.

‘하필이면 마왕 데사오인가? 하긴 뭐 상관없겠지.’

전쟁에 참여해 경험치만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특히 마계의 전장은 최고의 사냥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지사방이 다 경험치 덩어리들일 테니 말이다.

‘여기서 100레벨까지 간다.’

재윤은 즉시 도시 카르타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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