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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66화 (166/200)

166화.  < 운명을 속이다 (1) >

재윤은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평지처럼 공중에서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다.

그것은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순식간에 던전 밖으로 이동해 게이트를 타고 흑요정의 탑으로 돌아왔다.

“고맙다, 테네르. 덕분에 훌륭한 아이템을 얻었다.”

재윤은 테네르에게 초코바 2개를 줬다.

“자, 보상이다. 받아라.”

“후후, 뭐 이런 걸.”

날개가 있는 상자를 찾아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보상이지만 테네르는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그때 베르타가 무슨 일인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혹시 너도 초코바를 원하는 거라면 받아라.”

뭐든 먹을 때 같이 먹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던 베르타였다.

혹시 테네르에게만 초코바를 줘서 상심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

베르타가 큭 웃으며 사양했다.

“괜찮다, 인간. 난 너무 단 건 별로라서. 그보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상한 일?”

“방금 전 던전은 물론 이곳 탑에서는 코인 상품의 가격이 이전으로 돌아왔다.”

그는 식량 상자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상자가 희망 성에서는 12코인으로 올랐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전의 가격인 1코인이다.”

그는 재윤이 이해하기 쉽게 각종 상품 목록은 물론 음식 메뉴판도 모두 보여줬다.

조리된 음식 가격도 밖에서는 대폭 오른 터였다.

이전에는 부담없이 시켜먹을 수 있던 삼계탕 한 그릇은 밖에서 16코인,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도 12코인.

그러나 여기선 다 1코인.

“대박인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자 테네르가 대답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야. 여긴 운명의 힘이 미치지 않으니까. 그래서 운명이 장난 친 가격이 아닌 코인 상점의 초기 가격에서 변동이 없이 모든 걸 거래할 수 있어.”

그 말에 재윤과 베르타 모두 놀랐다.

베르타는 비로소 궁금한 것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로군.”

재윤이 테네르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베르타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 안에서 사서 아공간에 넣은 후 밖에 나가서 꺼내면 코인을 대폭 절약할 수 있겠네.”

“물론이야.”

그러던 테네르는 뭔가가 또 떠올랐는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보다 원한다면 그대의 힘을 내가 보관해줄 수 있어.”

“힘을 보관해?”

이건 또 무슨 말일까?

힘을 보관하다니.

“말 그대로야. 탑 안에 그대의 분신을 만들어 그대가 이곳에서 얻은 힘을 남겨두고 가면 이 안에서 그대가 레벨이 오른 걸 운명이 눈치채지 못할 거야.”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운명이 눈치챈다고 이미 오른 레벨을 다시 낮추지는 못할 텐데.”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그대가 여기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어떤 방해가 들어올지 알 수 없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운명이 작정하고 방해한다면 흑요정의 탑이라고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운명을 속일 수 있다면?

‘그럼 언젠가 뒤통수를 칠 수 있겠지.'

최악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베르타의 코인 상점 이용도 아직 해서는 안 된다.

인벤토리 상태창이 운명의 소관 하에 있기 때문이다.

아공간에 대량의 식량 상자들을 넣었다가는 밖에 나가는 즉시 운명에게 간파되고 말 것이다.

“이 날개도 당분간 밖에서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군.”

재윤의 말에 테네르도 동의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분간은 숨기는 게 맞아. 운명은 멀리서도 그대를 계속 관찰하고 있을 터라 그대에게 갑자기 대왕 비랑의 날개가 있는 걸 보게되면 이상하게 여길 뿐 아니라 더욱 그대를 경계하게 될 거야. 날개를 아공간에 넣어놔도 인벤토리를 통해 운명이 그대에게 대왕 비랑의 날개가 있는 걸 간파할 테니 분신에 남겨두는 게 현명하다.”

운명을 속이려면 이 안에서 얻은 모든 힘과 지식, 코인, 아이템을 분신에게 완벽하게 남겨두고 가야 한다.

그때 베르타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흑요정의 말대로 해라. 운명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어쩌면 그대는 이것으로 큰 위기를 모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 플루토를 가진 것만으로도 운명은 재윤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재윤이 레벨까지 오르고 있다면 운명이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인 후 테네르를 쳐다봤다.

“정말로 분신을 만들어 레벨과 아이템들을 모두 보관할 수 있는 거냐?”

“물론이야. 내 손을 잡아, 인간.”

테네르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재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보드라운 양손을 마주 잡았다.

“이제 그대가 허락한다면 이 안에서 얻은 모든 것이 그대의 분신으로 변하게 될 거야."

“허락한다.”

그 순간 테네르의 양손에서 신비한 빛이 일어나 재윤의 손으로 스며들었다.

화아악!

순식간이었다.

재윤의 옆에 빛무리가 일어나더니 하나의 형상으로 화했다.

물론 재윤의 분신이었다.

그 분신은 한쪽에 앉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정말 나와 똑같이 생겼네.”

“그대의 분신이니까.”

테네르가 미소 지었다.

재윤은 상태창을 살펴봤다.

‘정말이군. 87레벨로 돌아왔어.’

레벨뿐 아니라 코인과 아이템, 심지어 지식 획득 상태까지도 아까 이곳에 막 들어왔을 때와 동일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냐?”

“나의 기억에 의해 그대가 막 이 탑 안으로 들어왔을 때로 시간이 되돌려졌다. 물론 게이트는 사라지고 거기서 얻은 힘은 그대의 분신으로 변했지만.”

“대단하군.”

“이 탑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야.”

조금씩 이 신비한 탑의 비밀에 대해 파악해가는 테네르였다.

“단, 분신은 그대가 필요하면 어디에서든 소환해 그대와 합체시킬 수 있다.”

“그건 아주 편하구나.”

“하지만 이 탑 밖에서 그렇게 할 경우 운명은 그 즉시 그대의 능력을 간파하고 말 거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분신을 소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럼 또 오마.”

재윤은 흑요정의 탑에서 나왔다.

그러자 데카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탑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느냐?”

시간이 되돌려졌다더니 정말이었다.

데카투스는 재윤이 흑요정의 탑에 들어갔다가 금세 밖으로 나온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별 다른 게 없어서.”

“뭔가 있나 했더니 아니었나 보군.”

“그래서 가끔씩 들어가 확인만 해볼 생각이다.”

재윤은 데카투스에게도 흑요정의 탑 안에서 있었던 일은 숨기기로 했다.

그를 못믿어서가 아니었다.

운명을 속이려면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 *

신비한 빛과 구름으로 뒤덮인 장소.

거대한 하나의 탑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푸른 날개를 가진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탑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외쳤다.

“운명의 탑 관리자 세다넬입니다. 각성자 강재윤은 굴복할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매우 위험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도 모두 지켜보았다. 강재윤에게 운명 저항의 능력을 가진 무기가 있는 건 우리 또한 알고 있던 바 그리 특별할 건 없다. 또한 레벨이 오르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어놨으니 그가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세다넬이 고개를 숙였다.

“그건 매우 적절한 조치입니다. 그의 능력은 이미 어지간한 용이나 용사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더 강해지면 나중에는 통제가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재윤에게 된통 당한 터라 치를 떨며 말했다.

그러자 중후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 제한 조치는 단순히 강재윤이라는 인간 각성자 하나 때문이 아니다. 인간들이 너무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그들이 재앙이 되어 우리를 대적하게 될 터라 언젠가는 취해질 조치였지.”

세다넬은 끄덕였다.

운명의 탑에서 정한 인간 각성자의 암묵적인 한계 레벨은 85레벨이었다.

딱 피 그림자의 재앙 아르데아를 처치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물론 사실상의 레벨 업은 제한이 없다.

그런데 90레벨부터는 매우 위험한 수준의 전투력을 갖게 되며, 100레벨을 돌파하게 되면 운명의 힘도 미치지 못하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 각성자들이 85레벨을 달성하면 그 이후에는 획득 경험치를 최저 수준으로 맞춰 놓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면 괴물들을 아무리 죽여도 86레벨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85레벨이 한계여야 했는데 강재윤은 무려 87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생사투의 특별 보상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도 뜻밖의 일이다. 설마 흑요정이 그를 숨겨진 수련장인 괴물 죄수 수용소로 이끌 것이라고는 우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

“그건 인간 각성자에 대한 흑요정의 호감도가 최고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로 알고 있습니다.”

세다넬은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아루넬이 그를 은연중 지원한 탓입니다. 심지어 아루넬은 그에게 제룡검과 제마검을 주고 돌려받지도 못했지요. 게다가 용사 루니스와 흑룡 데카투스까지 그의 동료가 되도록 암묵적으로 방치했습니다.”

“그래서 아루넬 대신 그대를 운명의 탑 관리자로 임명한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 해야 강재윤이 우리의 뜻에 굴복하리라 보는가?”

세다넬은 즉시 대답했다.

“지금보다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그에게 자신이 한낱 미물과 같은 무력한 존재로서 큰 절망을 느끼게 해줘야만 감히 우리에게 저항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동시에 회유를 위한 시도 또한 필요해 보입니다. 그가 원하는 건 안전지대입니다.”

“그것은 불가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하였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안전지대를 다시 돌려주면 그것은 우리가 그에게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긴 합니다만 일방적으로 압박만 해서는 그가 최후까지 발악을 해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충성을 대가로 귀룡의 안전지대 정도는 보장해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그러자 중후한 음성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가 충성스러운 태도를 보인다면 그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

“지금 상황이 예측할 수 없게 된 이상 87레벨의 인간 각성자라면 사실 이용가치가 적지 않습니다. 그를 압박해 우리 일에 계속 협조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그대에게 그 일에 대한 전권을 맡기겠다.”

“맡겨주십시오.”

세다넬은 자신 있게 미소 지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말해 보라.”

“얼마 전 강재윤의 귀룡 성에 정체불명의 탑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도주한 흑요정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저의 힘으로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강재윤이 그 안에서 뭔가 힘을 얻을지 모르니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그에 대해 우려해 그 탑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아직 탑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다만 강재윤이 그곳에 들어가 어떤 힘이나 물건을 하나라도 얻었다면 상태창에 나타나겠지. 아직까지 그런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뭔가 있나 탑에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을 뿐이다.”

그러자 세다넬은 안도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더욱 압박해 굴복시키겠습니다.”

곧바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적입니다!”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사방이 스켈레톤들입니다.”

날이 어둑해지는 순간 희망 성의 사방으로 스켈레톤들이 시커멓게 몰려왔다.

“빌어먹을! 이제는 밤에도 공격을 해오려는 모양이군.”

데카투스가 스켈레톤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전투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낮의 전투에 지친 희망 성의 일원들에게는 매우 고단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또 다시 새로운 괴물들이 성을 공격해올 터라 이대로라면 희생자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재윤이 말했다.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해. 내가 성의 사방을 돌며 적들을 죽일 테니 당신은 성 안에서 방어를 맡아줬으면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데카투스는 본신으로 변해 성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각 성벽을 내려다보며 위태한 곳이 보이면 즉시 지원해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게 했다.

그 사이 재윤은 스켈레톤들을 빠른 속도로 해치웠다.

스켈레톤들은 밤새도록 끝도 없이 밀려왔고 새벽이 되자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날이 밝자 다시 리자드맨, 외뿔 거인, 암석 골렘, 환마혈도문의 무사들이 성의 각 방향에서 공격을 해왔다.

그러나 데카투스가 작정하고 방어에만 전념하니 아군의 희생자가 대폭 줄었다.

그 사이 재윤이 성의 사면을 공격해오는 괴물들을 하나 하나 격퇴해 나갔다.

그러다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이 오면 재윤은 귀룡 성에 있는 흑요정의 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탑에 들어간 즉시 바로 나오는 터라 데카투스는 물론이고 관리자 오르도 또한 재윤이 탑 안의 던전에서 레벨 업을 위한 사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10일의 시간이 흐르자 재윤의 실제 레벨은 Lv89에서 Lv90까지 1단계 상승했다.

10일 동안 1단계만 오른 이유는, 90레벨을 위한 요구 경험치가 89레벨 때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레벨 업이 느린만큼 Lv90이 되는 순간 재윤은 놀랄 만큼의 전투력 성장을 맛보았다.

전쟁신의 검술(Lv90)과 마경 심법(Lv90)이 둘 다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물론 재윤은 그렇게 강해진 힘을 흑요정의 탑에 분신의 형태로 숨겨두었다.

수련의 던전에서 얻은 막대한 코인과 각종 아이템들도 분신의 아공간에 보관해두었다.

따라서 표면적인 재윤의 레벨은 87 그대로였고, 그의 재정 상황도 최악인 것처럼 보였다.

성의 재정 코인뿐 아니라 그의 개인 코인도 매일 지불되는 성의 보수 비용과 식량 구입 비용으로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공간에 잔뜩 쌓여있던 파투스 물약이나 생명력 물약도 이제는 몇 병 없었다.

바로 그때 희망 성에 다시 운명의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들리는 알림.

[각성자 강재윤 님! 운명의 탑 세다넬이 당신을 찾습니다.]

[지금 즉시 희망 성 내에 위치한 운명의 탑으로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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