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 흑요정의 탑에는 어떤 비밀이? (2) >
《 주인, 우리 그놈들 다 쓸어버리자! 》
플루토는 신이 나 있었다.
그러나 재윤은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플루토의 능력을 알아보느라 세다넬을 공격하긴 했지만, 과연 잘한 일인가 싶어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말이 운명 어쩌고 하지만, 정말 그들이 재윤이 알고 있는 운명의 힘을 소유한 자들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냥 정체불명의 집단에 불과할 수도 있어.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세다넬을 베면서 확신했다.
그들도 상처를 받고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신과 같은 불사의 존재가 아닌 것이다.
물론 플루토라는 특별한 무기가 있어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레벨을 올려 강해져야 한다. 이 상태로는 아무리 플루토가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
문제는 운명의 탑을 지배하는 이들이 재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었다.
《 인간, 어서 탑으로 들어와. 》
그런데 그때 흑요정 테네르가 뜻을 전해왔다.
‘혹시 뭔가 비밀을 발견한 건가?’
재윤은 즉시 귀룡 성에 있는 흑요정의 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테네르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보다시피 게이트가 하나 생겨났어.”
그녀의 뒤쪽에는 정말로 신비한 빛의 게이트가 생겨나 일렁이고 있었다.
“어디로 통하는 게이트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중요한 건 그대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야. 그렇지 않다면 이 탑이 그대의 기물인 귀룡의 위에 생겨날 리가 없잖아.”
재윤은 게이트를 잠시 쳐다봤다.
아무리 연관이 있다고 해도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게이트 안에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는 일.
이 또한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금 막 세다넬에게 경고를 날리고 온 상황이니 더더욱 이상했다.
‘그래. 촉수를 보내 알아보자.’
촉수에도 눈이 있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끊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뭐가 있는지 잠깐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왼손을 뻗으려가다 문득 테네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게이트가 어디로 통하는지 알아보려고 하니 잠깐 내 뒤로 나와봐라.”
“그래.”
테네르의 앞으로 촉수가 지나가면 지난 번처럼 또 잘라버릴 지도 모른다.
그녀는 촉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터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촤아악!
역시나 재윤이 촉수를 생성해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자 그녀는 찜찜해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그 촉수가 그녀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지난 번처럼 화를 내며 그것을 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재윤은 촉수를 무사히 게이트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웬 던전 같은데?”
게이트 너머에는 커다란 던전의 입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촉수는 찰나의 순간 게이트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인만 해주고는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무슨 던전일까?”
재윤이 묻자 테네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수련의 던전일 거야. 운명의 방해없이 그대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장소.”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왜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느낌이야. 이런 느낌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날 믿어 봐."
“좋아.”
정말로 운명의 방해없이 강해질 수 있는 장소라면 못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 어떤 악마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해도 강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출렁.
재윤은 곧바로 게이트의 물결을 통과했다.
역시나 촉수를 통해 봤던 커다란 던전의 입구가 나타났다.
“정말이네. 던전이 있었어.”
뒤따라 게이트를 통과해 온 테네르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도 들어온 거야?”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구경이나 할까 해서. 난 신경쓰지 마라, 인간.”
그러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초코바를 하나 준다면 루팅을 도와줄 수도 있는데, 싫으면 말고.”
그러자 재윤의 옆에 베르타가 슥 나타나 테네르를 노려봤다.
“루팅은 나의 담당이다. 설마 내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것인가, 흑요정?”
“흥! 일자리는 무슨. 루팅을 누가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다.”
“어때? 내가 해도 괜찮지, 인간?”
재윤은 루팅을 두고 테네르와 베르타가 툭탁거리자 왠지 어이가 없었다.
“루팅은 베르타가 쭉 담당해왔으니 테네르 넌 그냥 구경이나 해. 혹시 숨겨진 보물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지.”
그 말과 함께 초코바 하나를 건네자 테네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물론 재윤은 별 기대 안하고 해본 말이었다.
숨겨진 보물 같은 게 있기나 할 것인가?
그런데 던전의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테네르가 바닥의 한 곳을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여길 파보면 뭔가 있을 지도.”
멀쩡한 바닥을 파보라니.
정말 뭐가 있을까?
재윤은 플루토를 휘둘러 땅을 팠다.
《 으으! 이 고귀한 나를 고작 땅파는 용도로 쓰는 거냐, 주인? 》
플루토가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 나는 삽이 아니라고! 》
계속 투덜거리자 재윤은 씩 웃으며 달랬다.
《 알았다. 이번만 파고 다음엔 땅파는 용도로는 쓰지 않도록 하마. 》
플루토는 자아가 있는 검이다보니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람처럼 인격, 아니 검격(劍格)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다.
“어? 정말로 뭐가 있네?”
상자가 하나 있었다.
“거 봐. 뭔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테네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좋아. 초코바 값은 제대로 하는구나.”
재윤도 흐뭇하게 웃으며 상자를 열어봤다.
안에는 한 장의 지도가 들어 있었다.
[수련의 던전 지도를 얻었습니다.]
곧바로 들리는 알림을 통해 재윤은 이곳이 테네르가 말한 대로 수련의 던전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지도는 수련의 던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게 있으면 길을 헤맬리는 없겠군.”
미로의 형태로 되어 있어 지도가 없다면 상당히 헤맸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번째 수련의 장소는 저기인가?”
재윤은 지도를 보고 던전의 한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잠시 걷자 앞쪽에 드디어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재윤은 놀랐다.
최근 3일 동안 매일 한번씩 성을 공격해오는 무리 중 하나인 혈의복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검이 아닌 도를 사용하며 괴상한 술법같은 걸 펼치는 이들로 3일 동안 수백 명이 넘게 해치웠지만 별다른 지식을 획득하지도 못했다. 보상은 고작 1코인씩만 얻었을 뿐.
‘저놈들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때 혈의복면인들도 재윤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달려왔다.
“적이다!”
“모두 공격하라!”
그중 하나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재윤의 목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쒸익!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기습같은 공격이었지만.
카캉! 푸확!
재윤이 가볍게 검으로 그것을 쳐냄과 동시에 혈의복면인의 목을 찔렀다.
“커억!”
혈의복면인이 푹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630코인을 얻었습니다.]
[하급 파투스 물약을 얻었습니다.]
그 순간 재윤은 깜짝 놀랐다.
“오! 코인에 드롭템까지!”
지난 3일 간 저들을 아무리 해치워도 1코인만 들어왔을 뿐이다.
드롭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코인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거기에 파투스 물약까지.
그렇다면 경험치도 제법 들어온다는 뜻.
재윤으로서는 당연히 반색할 일이었다.
‘정말로 여기는 운명의 힘이 간섭하지 못하는 곳인가?’
한편으로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운명의 탑에 있는 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미쳐 날뛸 것이다.
“감히! 죽여버리겠다!”
“놈을 없애라!”
혈의복면인 하나가 재윤에 의해 쓰러지자 그들이 분노하며 무더기로 달려왔다.
그러나 재윤의 검이 번쩍이는 순간 그들은 목과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크아악!”
“으악!"
[578코인을 얻었습니다.]
[921코인을 얻었습니다.]
[1042코인을 얻었습니다.]
[하급 파투스 물약을 얻었습니다.]
[환마혈도문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 환마혈도문
-획득 지식 등급 : E
-환마혈도문 소속 무사들에 대한 피해 5% 증가
‘오!’
게다가 밖에서는 그렇게 죽여도 얻지 못했던 지식까지.
‘이 지식은 좀 특이하네.’
오크나 다크 엘프처럼 종족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집단에 대한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환마혈도진을 펼쳐라!”
“놈을 찢어죽여라!”
혈의복면인들은 또 괴상한 술법을 펼쳐 합체거인 상태로 공격해왔다.
그러나 재윤은 이미 합체거인을 상대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합체거인의 막강한 공격만 받아낼 수 있으면 그것을 해치우는 건 쉬운 일.
급소 한 곳만 공격하면 합체를 이룬 7명의 혈의복면인들이 모두 죽게 된다.
“쿠아아아악!”
“크아아악!”
플루토의 검신에 맺힌 검강이 광채를 발하는 순간 합체거인들은 무력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코인과 드롭템 보상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환마혈도문에 대한 지식이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합니다.]
[환마혈도문에 대한 지식이 D급에서 C급으로 상승합니다.]
지식 등급도 계속 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놈들 내가 이미 죽인 놈들 같은데?’
불현 듯 드는 생각.
처음에는 복면을 쓰고 있어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합체거인의 술법이 강제로 깨지면 복면이 흩어지며 얼굴이 드러난다.
한번 스치듯 봤던 얼굴들이지만 불과 3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동일한 얼굴들이 이곳에서 보이자 재윤은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죽은 자들이 왜 여기서 나타난 건가?’
지난 3일 동안 몰려왔다가 재윤에게 패퇴하며 도주했던 환마혈도문의 무사들 중 재윤에게 죽은 수백 명이 모두 이곳에서 다시 죽임을 당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88이 되었습니다.]
[마경 심법이 Lv88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레벨이 한 단계 올랐다.
재윤은 기쁘면서도 황당했다.
‘왜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레벨은 올리고 본다.’
계속해서 다음 수련의 장소들로 이동했다.
외뿔 거인, 다크 코볼트, 거대 암석 골렘, 거대 리자드맨 등 지난 3일 동안 꾸준히 나타났던 괴물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89가 되었습니다.]
[마경 심법이 Lv89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또 다시 레벨 업!
역시나 재윤은 그것들이 자신이 직접 해치웠던 녀석들임을 확인했다.
‘운명의 방해로 인해 받지 못했던 보상을 여기서 받은 것 같은데?’
흑요정의 탑에 생겨난 수련 던전의 비밀!
만약 이게 맞다면 밖에서 해치운 괴물들의 코인과 경험치 보상을 여기 와서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지는 내일 또 들어와보면 알게 되겠지.’
재윤은 테네르와 베르타를 향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이 던전의 괴물은 다 해치운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자.”
그러자 테네르가 한 곳을 향해 걸어가 발로 바닥을 탁 쳤다.
“잠깐! 그 전에 여기도 파면 뭔가 나올지도.”
“그럼 당연히 파봐야지.”
재윤은 반색했다.
테네르가 숨겨진 보물을 찾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으니까.
이번에는 베르타에게 삽 한 자루를 사서 땅을 팠다.
팍팍!
몇 번 흙을 퍼내자 그 안에 큼직한 보물 상자 하나가 보였다.
곧바로 열어보자 번쩍이는 붉은 빛 날개가 들어 있었다.
[대왕 비랑의 날개(전설)를 얻었습니다.]
* 대왕 비랑의 날개
-등급 : 전설(★★★★★)
-설명 : 환수(幻獸)의 하나인 대왕 비랑(飛植)의 날개로 장착 시 비행 속도가 상승하며 각종 특수 공역 비행 시 속도 저하 효과를 받지 않는다.
-탑승물 장착 제한 : 전설 이상 등급 탑승물
-개인 장착 제한 : Lv85
‘이건?’
재윤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건 3일 전 흑룡이 잡아온 붉은 날개 늑대 두목의 날개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 날개를 재윤이 손에 쥐는 순간 먼지로 변해 흩어져 얻지 못했다.
운명이 득템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진 날개가 이곳 던전에서 보물이 되어 숨겨져 있었다니.
덕분에 재윤은 이제 이 날개를 장착하고 상공을 비행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귀룡에게 장착시켜 비행 속도를 높일 수도 있었다. 이제는 동료가 되어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흑룡 데카투스에게 더 이상 날개를 떼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디 한 번 장착해볼까?’
레벨 제한이 85이니 재윤은 지금 즉시 장착할 수 있다.
[대왕 비랑의 날개를 장착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비행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