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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61화 (161/200)

161화.  < 재앙의 이면 (2) >

“나는 운명이 가진 간악한 속셈을 파악하고는 그것을 오히려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운명의 힘이 작용하지 못 하도록 지구를 마계화시키는 것이 시급했다.”

아르데아의 계획은 지구의 마계화였다.

“아까 당신은 마왕 데사오의 힘을 이용했다고 했다. 그 또한 계획의 일부였나?”

“그 모든 걸 설명하려면 천년 전의 일부터 얘기해야겠지.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피 그림자의 재앙을 유지하려면 막강한 마력이 필요한데, 그대가 내가 만든 그 소검으로 내게 있는 모든 마력을 흩어버렸다. 이제는 이미 끝난 얘기일 뿐이야.”

어이없지만 그동안 안전지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결국 흑화 용사 아르데아가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는 한편으로 지구의 생존자들을 지켜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재윤 또한 안전지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순간 데카투스가 기막힌 듯 말했다.

“솔직히 나도 운명의 힘이라는 것이 별로 신뢰가 들지 않았다.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군.”

그러자 루니스가 말했다.

“안전지대가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마계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위협적인 일도 사라지는 걸 의미해요. 그렇다면 굳이 안전지대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죠.”

순간 아르데아가 큭 조소를 흘렸다.

“생존의 위협이 마계에서만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정말 순진하구나.”

“그럼 마계 말고 또 있다는 건가요?”

“운명이 모든 걸 장악하면 오늘과 내일에 대한 일관성도 사라진다. 오늘과 내일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이지. 마치 다른 세계처럼 말이야.”

아르데아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이를 테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 사람들이 그냥 죽어버릴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괴물들이 대거 나타날 수도 있다. 또는 지구 전체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형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 뜨거운 용암지대로 변하거나 혹은 얼음으로 뒤덮여도 이상할 게 없어.”

그 말을 들은 재윤 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결국 듣고 보니 진정한 재앙은 운명의 재앙이라 할 수 있었다.

마계화되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만 운명화(?) 되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

“당신 말대로라면 차라리 지구의 일부가 마계화된 상태로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이겠군.”

재윤의 말에 아르데아는 끄덕였다.

“마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운명의 힘은 그대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안전지대를 통해 그대들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어떤 식으로든 그대들이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지.”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알겠느냐? 나는 마왕의 하수인이 아니라 빌어먹을 운명과 대항해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궁극적으로 나는 마왕들도 내 발 아래에 두고 새로운 세계를 지배하려고 했다.”

재윤은 코웃음 쳤다.

“그 또한 당신에게는 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절망과 같은 일일 뿐이다.”

아르데아는 그저 운명과 대항해 싸우며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가 될 야심에 불타고 있을 뿐인지, 지구의 생존자들을 구해주겠다는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구의 지배자가 되면 모두에게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마계의 마물들이 인간들을 공격해 죽여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테니까.

‘가장 좋은 건 운명이건 마계건 다 사라지는 거겠지만.’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양쪽이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마계건 운명의 힘이건 둘 다 없애버리는 것이야 말로 궁극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둘 다 지구에는 해악된 존재들일 뿐이니까.

‘모든 것은 그대가 하기 나름이다.’

순간 재윤의 뇌리에 다시 테네르의 말이 떠올랐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까?’

운명의 ‘운’자만 들어도 이제는 진저리가 처질 정도였다.

운명은 재윤을 위해주는 척하며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럼 나도 운명을 이용할 수는 없는 건가?’

운명이 그에게 했던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재윤은 아르데아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순간 루니스가 눈을 크게 떴다.

“강재윤 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비록 아르데아가 힘을 잃어 모든 걸 실토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흑화 용사다.

그런 그와 손을 잡는다는 건 재윤이 사악한 힘과 결탁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에 아르데아조차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잠시 후면 죽을 것이다.”

순간 재윤이 돌연 아르데아의 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그의 등에 댄 후 마경 심법을 펼쳐 상당한 내력을 그의 몸에 주입했다.

츠으읏!

그러자 아르데아가 깜짝 놀랐다.

“이 기운은?”

재윤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맞아. 마왕의 마력보다 더욱 완벽한 마력이지.”

“믿을 수 없군. 어떻게 그대가 이런 기운을.”

흐릿해만 가던 아르데아의 눈빛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데카투스와 로벨이 무슨 마법을 펼쳐도 소용이 없었는데, 재윤이 내력을 주입하자 아르데아의 생명력이 즉시 회복된 것이다.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사실 당연했다.

재윤의 마경 심법은 모든 마왕들 위에 군림하는 천마의 무공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혈마의 무공이었다.

천마가 가진 마력의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극마(極魔)의 능력까지 갖춘 완벽한 마력.

본래 마왕의 마력에 의지했던 아르데아였다.

더 완벽한 마력이 깃들자 그에게는 생명수가 공급된 것처럼 활력을 주었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부상을 치료해 금세 멀쩡해졌다.

이대로라면 흩어진 마력도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본 루니스가 경악했다.

그녀는 푸른빛 검을 아르데아의 목에 가져다대며 재윤을 노려봤다.

“강재윤 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저는 물론이고 당신도 그동안 운명에게 농락당했습니다. 몰라서 당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알면서도 당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설마 마계와 손을 잡고 운명과 맞서겠다는 뜻인가요?”

“저는 운명과 싸울 겁니다. 당연히 마계도 마찬가지고요. 둘 다 없애버릴 수 없다면 조화를 이루어 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러자 루니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끄덕였다.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의 일이겠죠. 하지만 이자는 힘을 되찾는 순간 다시 흑화 용사로 돌아가 당신을 적대할 거예요.”

“이전으로는 돌아는 갈 겁니다. 하지만 저와 적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하며 재윤은 아르데아를 쳐다봤다.

아르데아가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적대하면 즉시 죽게 되는데 그런 미련한 짓을 할 것 같은가?”

그는 그 말을 한 후 재윤을 노려봤다.

“그대가 나를 살려준 이유는 뭔가? 물론 언제라도 날 죽일 수 있으니 완전히 살려준 건 아니지만 말이야.”

“당신이 내 일에 협조하면 당신을 죽일 일은 없을 것이다.”

“뭘 어떻게 협조하라는 건지 모르지만 날 그대의 하수인이 되게 만들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 게 좋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그 따위 짓은 하지 않는다.”

재윤은 싸늘히 웃었다.

“당신을 하수인으로 둘 생각은 없어. 그저 당신이 가진 피 그림자 재앙의 능력이 필요한 것 뿐이다.”

“공존하자는 말로 들리는구나.”

“잘 아는군. 그러나 너무 많이 진행시키지마라. 딱 절반 만큼만 유지시키는 게 조건이다. 또한 마을이나 성, 도시 주변은 절대 재앙화 시키지 마라.”

“무슨 뜻인지 알겠다. 나 또한 그대가 나의 영역에 간섭만 하지 않겠다면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으마.”

재윤은 그렇게 흑화 용사 아르데아와 동맹을 맺었다.

아르데아가 말했다.

“그러나 운명의 힘이 절대 이 일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겠지.”

“물론 내가 건재한 이상 그대들을 섣불리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그거면 충분해.”

재윤은 아르데아를 결계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귀룡에 탑승했다.

《 무엇 때문인지 더 이상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작동하지 않는다, 주인. 》

귀룡의 당혹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 어쩔 수 없지. 일단 희망 성으로 돌아가라. 》

‘벌써부터 변화가 시작됐군.’

귀룡의 안전지대만이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 성주님, 모든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사라졌어요. 》

《 다른 효과들은 어떤가요? 》

《 보호막이 사라진 것만 빼고는 이전과 동일해요. 파투스 회복 효과 및 각종 시설도 정상적으로 작동됩니다. 단, 안전 열차 운행은 앞으로 하루가 지나면 작동이 중지될 것 같아요. 》

본래라면 보호막뿐 아니라 모든 안전지대 효과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피 그림자의 재앙 아르데아가 건재한 이상 운명도 그렇게까지 재윤과 인간들을 몰아붙지지는 못했다.

《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방어병력을 편성해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세요. 희망 성과 초승달을 제외한 안전지대는 포기합니다. 오늘 중으로 다른 안전지대에 있는 이들은 그 둘 중 한 곳으로 즉각 이주시키세요. 》

《 알겠습니다. 》

사안이 급박하다보니 재윤은 먼저 통신으로 오르도에게 지시를 내렸다.

보호막이 사라진 이상 안전지대 기적이나 혜미와 같은 곳까지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병력을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희망 성으로 모이면 좋겠지만, 초승달에 있는 인원이 모두 오는 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초승달은 인구가 많은 만큼 각성자들의 숫자도 많으니 자체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그때 루니스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정말 막막하군요.”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막았으니 다행입니다. 아르데아를 죽였다면 지금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잖아요.”

그러자 옆의 데카투스가 말했다.

“그보다 이제 저 운명의 탑에 있는 아루넬과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녀라면 분명 이 일과 관련해 운명의 힘으로부터 어떤 언질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

재윤은 즉각 귀룡 성에 있는 운명의 탑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환한 빛의 날개를 가진 아루넬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각성자님, 그렇지 않아도 오시길 기다렸어요.”

그녀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요. 위에서는 당신을 두고 회의가 열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위라면 그 초월자들 말인가요?”

“저도 자세히는 알 수 없습니다. 운명의 힘이 결정한 걸 저는 전달해주는……"

그렇게까지 말하던 아루넬은 돌연 침통한 표정으로 변했다.

“죄송합니다, 각성자 님.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운명의 탑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운명의 탑은 더 이상 당신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벌써 이런 결정이 나다니.

재윤은 어차피 운명에 더 이상 기대지 않기로 한 터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불이익이 있는 건지나 알고 싶군요. 혹시 저의 레벨이 초기화라도 되는 건가요?”

재윤이 각성자가 된 건 모두 운명의 힘 때문이다.

그런데 운명의 힘이 등을 돌린다면 더 이상 각성자로서의 힘을 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운명 스스로 운명의 룰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이 지금껏 얻은 것은 정당한 대가였죠. 앞으로도 괴물을 처치하면 당신은 레벨이 오르며 강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러나 거저 주어졌던 혜택, 이를 테면 안전지대와 관련해서는 많은 불이익이 생겨날 것입니다.”

아루넬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룡검과 제마검도 지금 즉시 회수 조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 또한 당신에게만 주어진 특혜였으니 회수가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전혀 뜻밖의 알림이 들려왔다.

[운명의 힘이 제룡검을 회수합니다.]

[플루토가 저항했습니다.]

[운명의 힘이 제마검을 회수합니다.]

[플루토가 저항했습니다.]

‘저항이라고?’

그때 플루토가 재윤에게 뜻을 전해왔다.

《 누가 지금 강제로 내가 포식한 무기를 내놓으라고 하는구나. 혹시 주인의 뜻이냐? 》

《 아니, 운명의 뜻이라고 하는데? 》

《 그럼 무시하겠다. 》

한편 아루넬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왜 회수가 안 되는 걸까요?”

“글쎄요.”

재윤은 시치미를 뚝 뗐다.

플루토에게 운명 저항의 능력이 있는 줄은 그도 몰랐다.

운명도 가져갈 수 없는 물건이라면 굳이 알아서 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재윤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루넬이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부디 다시 또 뵐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리고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고개를 돌리자 귀룡 성에 있던 운명의 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놀랄 건 없었다.

당분간, 아니면 앞으로 영원히 운명의 탑에 들어갈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스스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운명의 탑이 사라진 그 자리에 흑색의 탑이 하나 생겨났다.

‘저 탑은 뭐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의 존재가 그곳에서 재윤을 반겼다.

다름 아닌 흑요정 테네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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