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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52화 (152/200)

152화.  < 흑요정의 호의 (1) >

흑요정 테네르.

그녀는 재윤이 나타났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분명 깨어있는 건 분명한데 일부러 모른 척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봐?”

재윤이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테네르? 자고 있는 건가?”

여전히 테네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에 재윤이 가서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자 그녀는 기분 나쁘다는 듯 손으로 슥 밀어냈다.

"뭐지? 왜 깨어있으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거냐?”

"......."

테네르는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뭔가 화가 난 건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재윤은 테네르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왔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혹시 이걸 원하는 거였나?”

재윤은 아공간에서 초코바 1개를 꺼냈다.

순간 테네르가 눈을 번쩍 떴다.

“눈치가 매우 느리구나, 인간.”

그녀는 초코바를 번개처럼 낚아채고는 그대로 비닐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테네르는 초코바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친김에 초코바 2개를 더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흐흠? 뭔가를 좀 아는 걸?”

테네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는 금세 호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재윤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오랜만이구나, 인간.”

“이제야 아는척을 하는 거냐?”

“날 만나러 온 용건은?”

“시험을 통과하러 왔다.”

“그럴 거라 예상했지. 그럼 건투를 빌겠다, 인간.”

테네르는 곧바로 시험을 위한 환상 결계를 발동시켰다.

[흑요정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18단계 전투가 시작됩니다.]

스스스.

곧바로 재윤의 주변에 다크 엘프 4명이 나타났다.

예전에 해치웠던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 급 전투력을 지닌 존재들.

당시 레벨 45였던 재윤은 이들 4명의 합공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재윤의 검이 4개의 사선을 그렸다.

“컥!"

“크윽!”

짤막한 신음과 함께 다크 엘프들이 몸을 떨었다.

네 명 모두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어 그대로 널브러졌다.

‘싱겁네.’

하긴 지금 레벨이 몇인가.

78레벨이 된 입장에서 다크 엘프들은 저레벨 하급 괴물에 불과했다.

[18단계를 통과했습니다.]

[19단계를 통과했습니다.]

[20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19단계에 나타난 다크 엘프 5명을 가볍게 처치하고 나자 이번에는 대왕 인면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크 엘프 족장보다 강력한 보스.

재윤에게는 물론 장난과도 같았다.

[20단계를 통과했습니다.]

[21단계를 통과했습니다.]

......

[29단계를 통과했습니다.]

대왕 인면지주 괴물들이 한 번에 여럿이 등장했지만, 그래봤자 재윤 앞에서는 보스 급이 아닌 일반 괴물에 불과할 뿐.

그야말로 파죽지세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리라.

괴물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재윤 앞에 버텨내지를 못했다.

[30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새로 나타난 보스는 대왕 삼두적린사.

머리가 세 개 달린 거대 뱀 보스였다.

당연히 그 또한 재윤이 50레벨 즈음에 상대했던 녀석이었다.

[30단계를 통과했습니다.]

밀려있던 숙제를 하는 기분이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한때는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했던 녀석들이 너무 쉽게 쓰러지는 것을 보자 재윤은 자신이 강해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레벨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마경 심법(Lv78)을 통한 막대한 내공에 천마 사부가 인정한 최강의 검법인 전쟁신의 검술(Lv78)까지!

보스 급 괴물들의 막강한 방어력도 검강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재윤은 계속 관문을 통과해 나갔다.

[40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40단계가 되자 이번에는 거대 여왕개미가 나타났다.

병정개미를 소환해 광폭화를 펼치면 놈들이 무적으로 변해 상대하기 난해했던 보스였다.

그러나 재윤이 당시에 고전했던 것은 파투스 전투 능력을 펼치지 못해서였을 뿐이다.

병정개미들이 소환되자마자 광역기로 녀석들을 없애버리고 여왕개미를 후려치자 가볍게 쓰러졌다.

[40단계를 통과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재윤은 49단계까지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50단계 시험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나타났던 모든 보스 급 괴물들이 총동원되었다.

거대 히드라, 다크 엘프, 거대 인면지주를 비롯해 거대 여왕개미와 거대 골렘들까지.

그것들이 각각의 특기를 살려 포위 공격을 펼쳐왔지만, 그래봤자 재윤과는 전투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

‘아직까지는 너무 싱거웠다. 이제 슬슬 강한 녀석들이 나올 때가 됐겠지.’

[50단계를 통과했습니다.]

[더 이상 관문이 없습니다.]

[흑요정의 시험이 종료됩니다.]

“뭐냐? 50단계가 끝이야?”

재윤은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100단계까지는 있을 줄 알았다.

‘이러면 레벨이 거의 오르기 힘들텐데.’

85레벨까지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몇 단계라도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스스스.

그 사이 결계가 사라지고 재윤은 본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테네르가 말했다.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한 걸 축하한다, 인간.”

“정말 50단계가 끝인 건가?”

“그래. 인간 각성자로서 50단계를 돌파한 건 그대가 최초다."

“내가 최초라면 관련 보상이 또 있어?”

재윤은 기대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테네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없어. 그냥 지금껏 흑요정을 발견한 이는 그대 외에는 없어서 최초일 뿐이야."

“흑요정은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자 테네르가 기분 나쁘다는 듯 재윤을 노려봤다.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난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그깟 지식 따위는 무시한다.”

“그럼 혹시 내가 마음에 들어서 내 눈에 띄었던 거야?”

“이상한 소리를 하네. 그저 난 심심했고 그때 그대가 눈에 띄었을 뿐이라고.”

테네르는 절대 재윤이 마음에 들어서 눈에 띈 건 아니라는 것을 유난히 강조했다.

“어쨌든 고맙다. 네 덕분에 난 운명의 나침반도 얻었고 부모님도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건 다행이네.”

테네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 시험을 통과한 보상을 내릴 테니 받아라.”

[흑요정 시험을 50단계까지 통과했습니다.]

[통과 보상으로 280,000코인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극 전투 능력 강화석 4개를 얻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2단계 상승합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80이 되었습니다.]

[마경 심법이 Lv80이 되었습니다.]

[흑요정과의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으음!"

재윤은 침음을 흘렸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나마 2단계라도 레벨이 오른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인가?

이제 어디가서 레벨을 올려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극 전투 능력 강화석 4개로는 광혈의 의지를 올리는 게 좋겠다.’

이건 미리 생각해둔 터였다.

이제 검기파와 같은 공격 능력은 올려봤자 별 의미 없었다.

물론 검기파도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긴 했다.

그러나 내공을 이용해 검강을 생성시킨 후 전쟁신의 검술을 펼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동기 아니면 무적기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그러나 이 둘 중에서도 강적을 만났을 때를 대비한다면, 역시나 모든 공격에 면역이 되는 무적기였다.

‘혈마 사부님과 싸울 때도 이게 통할지 모르지만.’

안전지대 보호막을 그냥 통과해버리는 불가사의한 능력자인 혈마에게는 어쩌면 무적기도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무적기가 통한다면 언젠가 있을 최후의 전투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 광혈의 의지 (Lv6)

-분류 : 극 전투 능력

-설명 : 파투스와 광혈의 힘으로 일시적이지만 무적 상태가 된다.

-효과 : 모든 피해 저항

-지속시간 : 8초

-시전 시 파투스 2 소모, 흡혈귀의 혈액(희귀 ) 2병 소모

-시동어 없이 시전자의 의지로 시전

-재사용 대기 시간 : 30분

덕분에 재윤은 이제 30분에 한 번 8초가 지속되는 무적기를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때 테네르가 재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나와 볼일은 없겠구나. 잘 가라, 인간. 그대의 앞날에 건투를 빌겠다.”

"혹시 또 다른 관문 같은 건 없나?”

"글쎄!"

순간 재윤의 두 눈이 빛났다.

‘글쎄라고?’

없으면 없다고 하거나 모른다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글쎄라는 말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

특히나 표정을 보니 틀림없었다.

알고 있지만 섣불리 막 말해서는 안된다, 라고 얼굴에 딱 적혀 있었으니까.

“뭐든 말해봐라.”

재윤은 자연스럽게 초코바 1개를 건넸다.

테네르는 그것을 받아쥐더니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있기야 하지만 내가 그런 걸 그대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유야 없으면 만들면 되겠지.”

재윤은 고개를 돌려 베르타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베르타가 초코바 2박스를 꺼내 테네르의 옆에 슥 내려놨다.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지, 지금 뭐하는 거야, 그대들?”

설마 초코바를 한두 개도 아니고 박스째로, 그것도 2박스나 내려놓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장 가져가. 운명의 룰에 의하면 난 이런 식의 대가성 뇌물을 받으면 안 돼.”

베르타 또한 뭔가 찜찜해하는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나도 그대가 시켜서 하긴 했지만, 이런 짓은 해서는 안 된다. 운명의 룰에 위배되는 것이다."

“부담가질 것 없어. 대가성이 아니라 그냥 선물이니까.”

“그냥 주는 선물이라고?”

“그럼 상관없지 않나?”

“그거야 상관없기는 하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좀 그렇지 않나.”

재윤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정황상 의심이 되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베르타는 왠지 자괴감이 드는 표정이었다.

흑요정 테네르는 뭔가 울컥해 하며 재윤을 노려봤다.

“베르타의 말 대로다. 더 이상 날 이 따위 뇌물로 유혹하지마라, 인간.”

“아무 대가성 없으니 그냥 받아. 순수한 호의로 주는 거니까.”

재윤은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테네르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순수한 선물이야?”

“그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물론이다.”

재윤이 끄덕이자 테네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그럼 난 이만 돌아가겠다.”

재윤은 정말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듯 쿨하게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매우 느린 걸음으로 이동하며 중얼거렸다.

“레벨을 올려야하는데 적당한 사냥터가 없으니 큰일이구나. 이러다 재앙에 의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순간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진 테네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상급 관문이 있긴 한데.”

재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테네르를 쳐다봤다.

“있지만 알려줄 수 없는 이유가 있나 보군.”

“내가 알려주면 안 되고 그대가 발견해야 한다.”

“힌트라도 줄 수 없어? 너무 막막하잖아.”

그러자 테네르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운명의 룰에 의해 그건 내 입으로 알려줄 수 없다. 그대가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밀실 밖으로 나갔다.

재윤은 뒤따르며 물었다.

“어디를 가는 거지?”

“그냥 산책하러. 심심하면 따라오든가.”

“마침 딱 심심했는데 잘됐네.”

그러자 테네르는 말없이 빠르게 걸었다.

천천히 걷는 것 같았지만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따라서 재윤은 귀룡을 타고 그녀를 따라갔다.

‘저긴 짙은 안개 지대?’

아직 이곳까지는 마계화가 되지 않아 숲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앞의 유독 자욱한 안개 지대는 재윤의 눈에도 익숙했다.

엘프들의 마을이 있는 곳이니까.

물론 지금은 족장 르티아를 비롯한 엘프들은 저 숲이 아닌 재윤의 안전지대 중 한 곳으로 들어와 지내고 있다.

마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터라 안전지대 밖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저 안개 지대에 새로운 관문이 있는 건가’

어쨌든 테네르는 산책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재윤에게 새 관문의 장소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물론 단순히 초코바를 받았다고 그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 역시 지구가 재앙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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