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비밀의 도시 (2) >
환한 빛이 사라지며 드러난 공간.
그곳은 도시라기보다는 성이었다.
희망 성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성이었지만 거주 인원은 극소수뿐이었다.
성의 외양은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도시 루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략 40여 명 정도되는 거주자들.
그들은 모두 어깨 뒤로 가지각색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사를 연상케했다.
“루크 성의 임시 관리자인 테르티움, 도시 연맹의 맹주이시자 사십육성기의 주인이신 강재윤 님을 뵙습니다.”
푸른 날개를 가진 신비로운 눈빛의 청년이 재윤의 앞에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드디어 마지막 도시를 찾았군요.”
“저희들은 안전지대 관리자의 운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운명의 힘이 이끄는 존재가 이 공중 도시의 봉인을 깨고 찾아와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도시 루크의 일원은 도합 42명.
모두 안전지대 관리자의 능력을 가진 신비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 루크가 위치한 장소였다.
지하에 위치한 비밀 도시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공중에 위치해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섬.
그 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루크 성이었다.
루크 성의 주위로는 산과 숲이 펼쳐져 있어 이 안에만 있으면 이곳이 공중에 위치해 있음을 알기 힘들었다.
“이곳은 당신이 연결한 사십육 개 도시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 이곳이 그 도시들과 연결되는 순간 당신은 이 분리된 세계의 주인이 되며, 동시에 모든 도시 관리자들의 충성 맹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바라던 순간이 왔다.
그로써 희망 성이 있는 세계와 이곳이 연결될 것이다.
이는 운명의 탑 아루넬로부터 들은 얘기이니 분명했다.
“저는 임시 관리자일 뿐이고, 잠시 후 도시가 연결되면 이 도시의 진정한 관리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진정한 관리자?”
“이미 당신이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분은 모든 관리자들 중 가장 특별한 존재이시죠.”
테르티움의 말에 재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관리자들 중에 특별한 존재?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도시 루크가 도시 연맹과 연결됩니다.]
[사십육성기가 사십칠성기로 변합니다.]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
그때 곧바로 도시가 연결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재윤의 앞쪽으로 도시 샤인의 관리자 에이미를 비롯해 도시 에카토의 관리자 크라스까지 도시 연맹 모든 관리자들의 환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 샤인의 관리자 에이미, 도시의 주인이신 강재윤 님께 충성을 맹약합니다.”
핑크빛 날개에 뿔테 안경을 낀 여성 관리자 에이미가 재윤의 앞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도시 샤인의 주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재윤이 끄덕이자 에이미는 환하게 웃더니 재윤의 오른손에 키스하며 말했다.
“이로써 당신은 도시 샤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말뿐이 아니었다.
[도시 사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알림 또한 재윤이 도시 샤인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계속해서 도시 타르파의 관리자 제카엘을 비롯해 그동안 재윤이 연결시킨 모든 도시의 관리자들이 차례로 다가와 충성 맹약을 했다.
[도시 타르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도시 레마르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도시 밀레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
[도시 에카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46번째 도시인 에카토까지 모두 재윤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시 루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재윤이 이곳 분리된 세계에 위치한 47개 도시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재윤의 앞에 환한 빛무리가 회오리쳤다.
화아아악!
그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찬란한 백색의 날개를 가진 여성이었다.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처럼 은은하게 발산되는 신비한 후광!
그녀가 나타난 순간 모든 관리자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공손히 예를 취했다.
“오르도 님을 뵙습니다.”
“오르도 님을 뵈어요.”
그렇다.
그녀가 바로 희망 성의 관리자인 오르도였다.
봉인을 풀고 모든 외모를 회복한 오르도의 모습은 재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신비한 위엄과 후광이 빛나는 그녀는 무슨 여신처럼 보였다.
“루크 성의 관리자 오르도, 존귀하신 성주님을 뵙습니다.”
그런 오르도가 재윤 앞에 다가와 공손히 예를 취했다.
“당신이 바로 오르도?”
“네, 제가 바로 오르도입니다. 성주님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너무나 감회가 새롭군요. 성주님이 이 분리된 세계의 주인이 되신 순간 희망 성이 있는 세계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재윤 또한 감회가 새로웠다.
오르도를 보자 비로소 희망 성이 있는 세계와 게이트가 열린 것이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락이 안돼서 정말 답답했는데.
“그럼 당신은 앞으로 희망 성이 아닌 이곳 루크 성을 관리할 생각입니까?”
“희망 성에는 또 다른 제가 있답니다.”
“그럼 지금은 분신?”
“분신이지만 본신과 동일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어느쪽이 분신이라고 할 수 없죠.”
“양쪽 다 본신이라는 뜻이군요.”
“네, 그렇게 봐도 상관없어요.”
본신이 두 개일 수도 있다니.
대체 오르도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전에 그녀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재윤의 명성이 높아지면 그녀 스스로 봉인된 기억을 되찾게 될 거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당신이 누군지 기억해 냈나요?”
그러자 오르도가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천계의 상급 천족으로 이 뒤바뀐 세상에서 운명이 선택한 존재를 돕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상급 천족? 그러면 천사라는 뜻입니까?”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성주님을 모시는 관리자이니 저를 어려워하지 마세요.”
신비한 후광과 함께 피어나는 포스가 엄청나다 했더니 상급 천족일 줄이야.
그러나 재윤은 의외로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는 지금 마왕과 맞서 싸우고 있다.
또한 천마이자 혈마인 존재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상급 천족이 나타났다고 해서 특별히 놀랄 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상급 천족이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라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희망 성과 초승달에는 별일 없죠?”
“마족들이 피 그림자 재앙 지역을 마계화해서 희망 성을 지속적으로 도발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윤은 끄덕였다.
역시나 데카투스 등이 예상한 대로였다.
“피해 상황은?”
“제가 능력을 되찾은 이상 성주님 소유의 각 안전지대들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다만, 안전지대 외부는 마계처럼 변해 온갖 마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죠.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다른 안전지대들이나 혹은 지구의 생존자들에게는 끔찍한 상황이 펼쳐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긴 얘기는 필요없겠군요. 당장 희망 성으로 이동해야겠습니다.”
그러자 오르도가 끄덕였다.
“성주님은 이제 이 성 중앙의 게이트를 통해 희망 성의 게이트로 언제든 왕복하실 수 있습니다.”
“이곳 도시들의 관리를 잘 부탁합니다.”
“네, 성주님. 그게 저의 소임이니 염려 마세요.”
오르도가 47개 도시의 총괄 관리자가 된 이상 재윤은 세세한 것들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각 도시들은 열차로 연결될 것이며, 코인 경제(Lv2)가 실현되어 재정도 풍족해질 것이다.
굳이 교역을 하지 않아도 코인 경제를 통해 자체적으로 재정이 쌓여나가기 때문이다.
사라진 도시 카테나처럼 코인이 부족해 안전지대를 유지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 * *
루크 성의 게이트는 거대했다.
재윤은 귀룡에 탑승한 상태로 루크 성의 게이트에서 희망 성의 게이트로 이동했다.
화아아악!
환한 빛무리와 함께 희망 성의 게이트 상공에 거대한 거북이 형상의 귀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성주님이 오셨다!”
이미 희망 성의 거주자들은 재윤이 온다는 소식을 관리자 오르도로부터 알림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다 재윤이 거대한 거북이의 머리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모두 환호를 질렀다.
“와아아아!”
“성주님 어서 오세요!”
“대표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최진석과 채시은을 비롯한 생존 공동체의 거주자들.
그들은 지금도 대부분 희망 성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곳보다 시설 면에서 훨씬 훌륭한 도시 초승달로 언제든 이주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곳에 정이 들어 떠나지 못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재윤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고는 최진석, 채시은을 비롯한 희망 성의 각성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해줬다.
“재윤아!”
“하하하! 오랜만이다, 재윤아!”
그때 두 명의 청년이 재윤을 향해 달려왔다.
이민철과 장예찬이었다.
그들을 본 재윤의 표정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오랜만이야, 민철이 형. 예찬이 너도. 다들 별일 없었지?”
“그래. 우리야 네 덕분에 너무 잘 있었지. 그리고 나 이제 레벨 60됐다.”
“난 레벨 58.”
“오! 그동안 많이 올렸네?”
각성자들 대부분은 희망 성 아니면 초승달에 거주하며 그 중 한곳 던전만 도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민철과 장예찬을 비롯한 소수 정예 멤버들은 긴 열차 이동 시간을 감수해가며 매일 희망 성과 초승달 던전을 모두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멤버들 중에는 윤현성과 박은빛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전지대 혜미의 초기 멤버들.
윤현성의 레벨은 58, 박은빛은 레벨 59였다.
“오랜만입니다, 성주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들은 재윤 덕분에 가족들과 상봉하게 된 터라 재윤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독 각별했다.
“그동안 저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부모님을 찾았습니다.”
“오! 그게 정말이냐, 재윤아?”
“세상에! 정말 축하해요!”
“축하합니다.”
그들은 모두 재윤이 부모님을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민철과 장예찬은 귀룡에서 막 내린 강두성과 김지현을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아니, 너희들은? 민철이와 예찬이 아니냐?”
“크흑! 살아계셨군요.”
“두 분 모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박은빛과 윤현성은 물론이고 채시은과 최진석 등도 재윤에게 와서 축하해주고는 강두성 부부에게 가서 인사했다.
재윤의 귀환으로 희망 성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사이 재윤의 시선은 희망 성 외부를 보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어둡게 변해버린 세상.
하늘엔 피처럼 붉은 달이 떠 있고, 사방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들이 돌아다녔다.
‘마계화되어 있다더니 정말이었군.’
심지어 멀리 시커먼 형상의 거대한 성 하나가 보였다.
희망 성의 수십 배는 되는 크기의 그 성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저 성은 마왕 데사오의 마왕성입니다.”
오르도의 말에 재윤은 깜짝 놀랐다.
그 사이 귀룡에서 나온 용사 루니스와 데카투스 역시 그 말을 듣고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곧바로 루니스가 오르도에게 물었다.
“설마 마왕 데사오가 이곳 세계로 건너왔나요?”
“그건 아직 불가능합니다. 저 성은 이 성을 겁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환영이죠. 그러나 저 환영에 접근하는 순간 마계로 소환될 수 있으니 절대 접근하시면 안 돼요.”
마계로 소환될 수도 있다니.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일종의 함정 같은 것이군요.”
“그렇죠. 피 그림자 재앙의 근원인 흑화 용사 아르데아를 처치하지 않으면 앞으로 저같은 함정은 계속 생겨날 거예요.”
마계화가 된 지역은 함부로 이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
재윤은 오르도로부터 현재 흑화 용사 아르데아가 어디 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르데아는 아직 재앙화되지 않는 지역을 계속 노리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곳 세계는 피 그림자의 재앙에 완전히 뒤덮이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될 경우 이곳 세계는 사실상 마왕 데사오에게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머지않아 마왕이 강림할 수도 있는 터라 안전지대들도 위태해진다.
모든 거주자들이 47개 도시 연맹이 있는 세계로 이주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죠.”
곧바로 재윤은 루니스와 데카투스에게 아르데아를 견제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들은 흔쾌히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놈을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놈은 우리에게 맡겨라. 부활하는 즉시 계속 찾아죽일 테니까.”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아르데아를 맡아주면 이곳 세계가 완전히 마계화되는 건 일단 막을 수 있다.
재윤은 그 사이 레벨을 85까지 올려 아르데아를 처치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어디 가서 레벨을 올리냐는 것.
희망 성이나 초승달의 던전을 돌아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한군데 있지.’
저쪽 세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지만, 이곳으로 돌아온 이상 아주 확실하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흑요정의 시험을 치르는 것.
시험의 단계를 통과하면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정 단계마다 극 전투 능력 강화석도 얻을 수 있다.
이전에 재윤은 17단계까지 통과한 후 18단계에서 좌절했었다.
당시 레벨은 45.
이후 55레벨이 되면 다시 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현재 78레벨이 될 때까지 미도전 상태였다.
천마로부터 마경 심법(Lv78)을 전수받아 막대한 내공을 얻은 덕분에 재윤의 전투력은 본래와 비할 수 없이 강력해졌다.
넘사벽이라 느껴지던 용사 루니스나 데카투스도 머지않아 따라잡을 자신이 생겼으니까.
따라서 지금의 능력이라면 흑요정의 시험 관문을 꽤 많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단번에 85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곧바로 재윤은 귀룡을 타고 안전지대 기적 근처에 있는 흡혈귀 루나티쿠스 던전으로 향했다.
열차를 통해 기적으로 이동했다가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귀룡을 타고 가면 순식간일 것이다.
다만, 곳곳에 마왕성의 환영이나 마계에 있을 법한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것이 생겨나 있어 이동 시 조심해야 했다.
《 마계로 소환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귀룡. 》
《 염려 마라, 주인. 》
귀룡은 함정들을 피해 쾌속질주를 펼쳤고, 금세 루나티쿠스의 던전 앞에 도착했다.
재윤은 곧바로 던전의 끝으로 들어갔다.
광혈의 흡혈귀 루나티쿠스의 방에는 여전히 몽환적인 외모의 미소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흑요정 테네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