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무공 수련 (2) >
한편 재윤이 무공을 수련하는 동안 루니스와 데카투스는 흑화 용사 아르데아와 맞서 싸웠다.
무공 수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사이 아르데아를 그대로 놔뒀다가는 이 분리된 세계가 피 그림자의 재앙으로 온통 뒤덮이고 말 테니까.
한때는 철천지 원수였던 용사와 흑룡이 한 팀이 되어 마왕의 세력과 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크으윽! 또 너희들인가? 정말 나를 귀찮게 하는군.”
아르데아는 루니스와 데카투스의 합공으로 이틀 전 죽임을 당했다.
그러다 오늘 부활했는데, 그때를 맞춰 루니스와 데카투스가 또 나타난 것이다.
“데카투스! 네놈이 감히 데사오 님을 배신하다니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데카투스가 그를 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때 용사였던 녀석이 그 따위 말을 하다니 한심하구나. 마왕 데사오의 하수인이 된 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건가?”
“아르데아! 당신은 모든 용사들의 수치다.”
루니스 또한 분개한 기색이었다.
아르데아는 냉소를 흘렸다.
“너희들이 나의 분노를 아느냐? 모든 걸 대륙에 바쳤지만 정작 내게 온 것은 배신 뿐. 나는 용사로서의 나의 삶을 후회한다. 배은망덕한 인간들에게 돌려줄 건 오직 파멸 뿐이다. 데사오 님은 나에게 그 힘을 주신 고마운 분이다.”
루니스가 코웃음 쳤다.
“라넨 대륙은 당신을 배신했다 쳐. 그런데 이곳 지구의 인간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이려는 거지?”
“어느 세계나 모든 인간은 다 똑같다. 없어져야 할 버러지에 불과할 뿐.”
“흥! 마왕의 하수인이 되더니 생각도 마왕과 똑같아졌구나!”
그녀는 곧바로 아르데아를 공격했다.
아르데아가 반격했지만 데카투스가 루니스를 지원하자 이내 궁지에 몰렸다.
데카투스가 아무리 두 날개가 없는 상태라지만 지금처럼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마법 공격을 펼치는 경우에는 본래의 전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루니스와 데카투스 모두 아르데아와 필적할 만한 존재들.
이 둘의 합공 앞에서 아르데아는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두고 보자! 기필코 너희들을……"
결국 아르데아는 분노에 치를 떨더니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피 그림자의 재앙 지역 어딘가에서 또 부활할 것이다.
“이제는 저놈을 죽이는 것도 지겹구나. 죽여도 죽여도 또 살아나니.”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강재윤 님이 그를 소멸시킬 때까지 우리는 계속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
“알고 있다. 그나저나 지금쯤 데사오가 우리에게 꽤나 이를 갈고 있겠군.”
데카투스는 사실 마왕 데사오와 싸우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부담 따위는 없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천마가 자신들의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 루니스는 방대하게 뒤덮인 피 그림자 지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르데아를 쓰러뜨려도 재앙의 지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어.’
이제는 아르데아가 부활해도 그 위치를 바로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자신의 위치를 숨기며 피 그림자 괴수들을 조종해 영역을 넓히기 때문이다.
물론 데카투스가 비교적 빠르게 그 위치를 찾아내긴 하지만, 그 사이 수많은 피 그림자 괴수들이 숲을 갉아먹으며 재앙의 영역을 넓히고 있으니 문제였다.
‘그가 어서 레벨을 올려 아르데아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여기도 태반은 재앙에 뒤덮이고 말 텐데.’
재윤이 천마의 제자가 되어 무공 수련을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난 터였다.
언제까지 무공 수련에만 몰두하고 있을지 그녀는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재윤이 강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능하면 레벨 업도 병행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보다 천마 그 자의 속셈은 대체 뭘까?’
다른 모든 재앙을 파괴한다고 해도 천마가 있는 한 세상은 어찌 될지 안심할 수 없는 일.
루니스는 자신의 힘으로는 천마와 대적할 수 없는 터라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루니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셈이냐? 귀룡 성으로 돌아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
“당신이나 많이 마셔라. 난 술 생각 없으니까.”
“쯧, 때론 쉴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너는 항상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이 문제야.”
“아무튼 난 술 생각이 없으니 혼자서 실컷 마셔.”
“그럼 그 녀석들과 마시자고 해야겠군.”
데카투스는 최근에 술에 맛이 들렸다.
강두성이 간혹 대작을 권하면 흔쾌히 응했고, 이제는 그가 먼저 술을 마시자고 할 정도다.
그러나 강두성도 매일 술을 마시지는 않는 터라 데카투스는 혼술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조다연이나 에이든이 와서 함께 술을 마셔주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최근 들어 그는 그들과 꽤 친해졌다.
그들의 부탁으로 던전을 돌며 레벨을 올려줄 정도였으니까.
“그럼 이만 귀룡으로 돌아가겠다.”
데카투스가 귀룡 근처로 이동하는 마법진을 그리자 루니스도 그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츠으으읏!
마법진을 통해 그들은 귀룡 근처로 귀환했다.
데카투스는 곧장 귀룡 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루니스는 귀룡의 머리가 있는 쪽으로 올라섰다.
《 귀룡, 이제 가까운 도시로 이동하자. 》
재윤은 자신이 무공 수련을 하는 동안 귀룡에게 루니스의 지시를 따르라고 해두었다.
그로인해 루니스는 귀룡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흑화 용사 아르데아와 싸울 때를 제외하고는 귀룡을 움직여 재윤이 기존에 연결해 놓은 도시들을 돌며 교역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재윤의 부탁이었으니까.
잠시 후 도시 아르크스.
교역은 각 도시의 관리자를 만나면 베르타가 알아서 코인을 지불하고 교역품을 매입하거나 판매하는 터라 그녀가 따로 신경쓸 건 없었다.
다만 이렇게 도시에 도착하면 강두성과 김지현이 산책을 나오기도 했다.
안전 지대 보호막 내부라서 위험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로사엔, 세붐, 제칸이 항시 그들을 호위하고 있었다.
루니스 또한 다른 볼일이 없으면 그들 부부와 동행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 생겨났다.
‘저자는?’
그녀는 도시에서 낯익은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는 마법사 로벨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있지?’
그들이 있던 숲은 이곳과 다른 분리된 세계에 위치해 있다.
그때 그 여성 역시 루니스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루니스 님 아니세요?”
“서아람 님이시군요. 어떻게 이곳으로 오신 거죠?”
“로벨 님이 이곳 세계에 루니스 님이 계실 거라며 게이트를 통해 이동해 왔어요.”
그 말에 그녀는 반색했다.
“로벨은 어디에 있죠?”
“루니스 님을 찾는다고 바란이라는 도시로 떠나셨어요. 저희들에게는 이곳 도시에서 지내라고 하셨고요. 세상에! 이런 꿈같은 도시가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서아람은 피 그림자로 둘러싸인 섬 같은 숲에서만 지냈다.
지구가 다 그런 식으로만 변해 있는 줄 알았다가 이곳 도시로 왔으니 꿈같다고 표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루니스는 미소 지었다.
“이곳엔 이런 도시들만 수십 개가 넘어요. 그렇지 않아도 숲에 남겨두고 와서 걱정했는데 정말 잘됐네요.”
그녀는 서아람과 잠시 더 대화를 나눈 후 곧바로 귀룡에 탑승했다.
그리고 강두성 김지현 부부가 귀환하기를 기다렸다가 귀룡을 도시 바란으로 이동시켰다.
잠시 후 도시 바란.
흑룡의 양쪽 날개를 장착한 귀룡의 속도는 상공에서 쾌속질주를 제한없이 펼칠 수 있는 터라 불과 10여 분만에 아르크스에서 바란에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도시간 교역을 통한 코인 수입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루니스는 코인이 얼마 들어오고 나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건 베르타가 알아서 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재윤의 소유 코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만 할 뿐이었다.
“도시 바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용사 루니스 님. 대량의 교역품을 싣고 오셨군요.”
바란의 관리자 이레인이 루니스를 반갑게 맞았다.
“최근 교역을 활발하게 해주셔서 도시의 재정이 매우 좋아졌답니다. 대신 교역품의 시세는 떨어졌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루니스는 끄덕였다.
“교역은 저기 있는 베르타 님이 담당하실 거예요. 그보다 사람을 하나 찾고 있는데 혹시 이곳에 로벨이라는 자가 와 있나요?”
“네. 그렇지 않아도 로벨이라는 분이 와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이곳에 있으라 말씀드렸죠. 당신이 곧 이곳을 방문하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덕분에 루니스는 로벨과 길이 엇갈리지 않을 수 있었다.
“루니스 님!”
잠시 후 이레인의 안내를 받은 마법사 로벨이 루니스를 향해 달려왔다.
“로벨 !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루니스님?”
“난 괜찮아. 고생은 네가 한 것 같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이곳 세계로 아르데아가 건너온 것 같더군요.”
"오늘도 해치우고 오는 중이야.”
루니스는 그간 있던 일을 간략하게 얘기해줬다.
“이미 강재윤 님께 허락을 받아두었어. 이제부터 너 또한 귀룡 성의 일원이야.”
“저야 환영입니다.”
이로써 라넨 대륙 최강의 마법사이자 용사 루니스의 참모인 로벨이 귀룡 성에 합류했다.
* * *
한편 재윤은 천마의 가르침 아래 마경의 심법 수련에 매진 중이었다.
수많은 환상 속의 유혹을 이겨내고, 고통을 참아냈다.
남들에게는 한 달이지만 그에게는 몇 년과도 같은 시간.
그 덕분에 그의 몸에는 드디어 심법이 형성한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은 순간 갑자기 알림이 떴던 것이다.
[당신은 새로운 특화 능력 마경 심법(S)을 터득했습니다.]
[당신의 마경 심법이 Lv76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내공이 대폭 증가합니다.]
갑자기 마경 심법이 S급 특화 능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현재 레벨에 맞게 심법의 레벨도 상승했고, 그와 동시에 내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흐읍! 이건.......'
갑자기 엄청난 내공이 생겨나자 재윤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재윤을 지켜보고 있던 천마에게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재윤으로부터 꽤 오랜 세월 동안 마경 심법을 꾸준히 펼쳐야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양의 내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기막힌 일이로구나. 일단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마경 심법을 펼치도록 해라.”
급작스럽게 늘어난 내공은 폭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만다.
다행히 재윤은 어렵지 않게 내공의 폭주를 진정시켰다.
그냥 내공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마경 심법의 레벨도 올랐기 때문이다.
“후우!"
재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일어나자 천마 또한 비로소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느냐?”
“내공이 저의 레벨에 맞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재윤은 최대한 천마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레벨과 특화 능력의 개념을 설명하고, 마경의 내공 심법이 특화 능력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말이다.
“특화 능력은 각성자의 레벨이 높을수록 강력해지는데, 마경 심법이 저의 레벨과 맞춰지다보니 내공이 늘어난 게 분명합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힘든 일이지만, 대충 보니 운명의 힘이 작용한 것 같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법 수련은 더 이상 무의미한 일이다. 너는 앞으로 레벨이라는 것만 올리면 심법의 경지는 물론이고 내공도 증가하게 될테니 말이야.”
천마는 다음 단계 수련을 시작하기 앞서 재윤의 내공을 시험해봤다.
“먼저 파투스의 힘이 아닌 내공을 검에 주입해보아라.”
“알겠습니다.”
내공을 검에 주입하는 방법은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재윤은 마경 심법이 Lv76이 된 순간 자연스럽게 그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츠으읏!
곧바로 그가 쥔 제마검의 검신에 붉은 검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파투스 전투 능력인 검기(Lv10)를 펼쳐야 생성되는 검기가 내공의 힘만으로 생성되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검기가 점점 더 짙어지더니 검신 전체에 찬란한 광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화아악!
그러나 그 광채는 이내 생겨났다 싶은 순간 이내 힘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천마의 두 눈이 커졌다.
“방금 검강을 생성시키려던 것이었느냐?”
“아직은 저의 깨달음이 못미쳐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마는 기가 막힌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아무리 운명의 힘이 작용했다지만 마경 심법을 익힌지 불과 한 달만에 검강을 생성시키는 단계까지 이를 줄이야.
“깨달음은 부족하지 않는 듯하다만.”
깨달음이 없었다면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이 검강.
레벨이 오른 것만으로 그런 상승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얻게 되다니.
심지어 천마는 재윤의 내공이 절정 직전의 수준에 이렀음을 간파했다.
아직 그가 원하는 수준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지만 그래도 매우 놀라운 일.
“이는 도저히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네가 레벨이라는 것으로 인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아마도 레벨을 더 올린다면 검강을 보다 수월하게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천마가 재윤의 레벨 업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