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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44화 (144/200)

144화.  < 제자가 되다 (1) >

재윤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친구?’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일까?

그가 최근에 아무리 동맹을 제의해 왔다지만, 재윤은 아직 수락한 적이 없었다.

특히나 데카투스는 마왕과 결별하며 자신의 살길을 찾기 위해 재윤을 이용하려 하는 것뿐이지, 그가 갑자기 선량한 존재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재윤은 데카투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데카투스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라니!

게다가 지금 표정을 보니 재윤을 향해 제발 친구인 걸 맞다고 해달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때 노인이 힐끗 데카투스를 한 번 노려보다 다시 재윤을 쳐다봤다.

“날개까지 빌려준 친한 사이라고 해서 안 죽였는데, 혹시 너의 친구가 아니었더냐?”

순간 재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원래는 죽이려고 했지만 내 친구라고 해서 살려주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황당한 상황인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런데 만약 이 상황에서 재윤이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면 바로 이 자리가 흑룡 데카투스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재윤은 일단 대답했다.

“제 친구 맞습니다.”

노인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큼 친한 사이라고 해도 날개를 떼어 빌려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로 많이 친한 사이인 게로구나."

“예. 나머지 날개도 한쪽 더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오늘 마침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데카투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재윤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그가 여기서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 데카투스는 노인에게 맞아죽을 것이다.

즉, 살려주는 대가로 날개를 요구했을 뿐이다.

물론 날개 때문에 살려준 건 아니다.

날개야 어차피 데카투스가 노인에게 죽으면 덤으로 얻게 될 아이템.

그보다는 데카투스가 왠지 노인의 정체를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일단 살려놓은 것이다.

한편 데카투스는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제길!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다만.’

그러나 그런 내색조차 할 수가 없었다.

노인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주지 않고 무엇 하느냐? 설마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것이냐?”

흠칫 놀란 데카투스는 최대한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바로 주려고 했습니다.”

곧바로 그의 몸이 거대한 용의 본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왼쪽에 남아 있던 날개를 툭 끊어냈다.

‘크윽! 내손으로 날개를 끊어 인간에게 바치다니!’

곧바로 그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대했던 날개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더니 그의 손에 쥘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용의 날개 크기는 장착 대상에 맞게 조정 되게 된다.

“받아라, 친구. 빌려주는 것이니 나중에 꼭 돌려줘라.”

재윤에게 날개를 건네는 그의 손이 떨렸다.

그는 나중에 꼭 돌려달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고맙다. 잘 쓰고 나중에 돌려주마.”

재윤은 즉시 날개를 받았다.

[흑룡의 왼쪽 날개(신화)를 얻었습니다.]

이로써 신화 등급의 날개 세트인 흑룡의 날개를 모두 얻었다.

귀룡에게 장착시키면 이동 속도가 대폭 빨라질 것이다.

Lv90이 되면 직접 장착하고 창공을 마음대로 누빌 수도 있으리라.

그때 노인이 재윤을 쳐다봤다.

“그럼 그 문제는 됐고, 이제 네가 선택할 순간이구나.”

“무슨 선택을 말씀하시는지요.”

“나의 제자가 되어 마경을 전수받겠느냐?”

재윤은 고민하지 않았다.

노인이 그를 향해서는 비교적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만약 제자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재윤이 먼저 마경의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던 터라,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꾼다는 건 노인을 우습게 만드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젠 이분이 천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제자가 되기를 거절하면 안 될 것이다.

장차 천마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의 무공을 전수받아야 할 테니까.

“제자 강재윤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재윤은 아무래도 절을 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엎드리려 했다.

구배지례(九拜之禮)라는 것도 들어본 적 있으니까.

그러나 그는 엎드릴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되었다. 나는 그 따위 형식은 경멸한다. 네 입으로 한 말이면 충분하니라.”

“예, 사부님.”

“일단 나는 잠시 잠을 자야겠으니 어디든 빈 방 하나만 내주겠느냐?”

노인은 그 말과 함께 귀룡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본 재윤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안전지대 보호막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간 절대적인 보호막이라 여겨지던 안전지대 보호막을 노인은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버린 것이다.

재윤이 허락하지 않으면 본래 누구도 진입이 불가능했다.

아루넬은 마왕이라고 해도 안전지대 보호막을 통과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사실 재윤은 비록 노인의 제자가 되긴 했지만, 그를 귀룡 성으로 들여보내도 될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귀룡 성에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거처는 이쪽입니다.”

재윤은 베르타에게 말해 최대한 부모님이 계신 공간과 떨어진 정원의 반대편에 큼직한 저택을 하나 새로 세웠다.

그렇게 집이 순식간에 생겨나자 노인도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순식간에 집을 만들다니 기괴한 일이로군.”

그러나 그렇게 신기한 표정을 짓는 것은 아주 잠시일 뿐.

그는 저택의 방 중 하나로 들어가더니 침대에 들어가 그대로 누워 잠들어버렸다.

그 또한 괴상한 일이었다.

‘후우!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재윤은 사부의 저택에서 나온 후 가장 먼저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려드렸다.

가능하면 앞으로는 집안에만 계시고 정원에는 나오지 말라고.

‘최대한 빨리 도시들을 연결해서 두 분을 희망 성이나 초승달 쪽에 모셔야겠구나.’

사부가 혈마라면 상관없겠지만 천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재윤은 부모님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강두성이 재윤의 그런 걱정을 눈치채고는 씩 웃었다.

“너무 걱정말아라. 그리고 그런 대단한 분이 이 성에 오셨다면 우리도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겠지. 이런 일은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 말씀이 옳아, 재윤아. 이 일은 우리에게 맡겨두렴.”

“그래도 당분간은 집에만 계세요.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 제가 좀 알아본 후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재윤은 부모님이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운명의 탑에 있는 아루넬을 찾아가 상황 설명을 했다.

“스스로 결계를 벗어났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군요.”

예상대로 아루넬은 경악했다.

재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전지대 보호막도 그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의 제자가 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모르겠군요.”

“저 또한 당황스럽군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운명의 힘은 당신을 돕고 있어요. 부디 그가 천마가 아니길 바랄 뿐이지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 또한 운명이에요. 당신만이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재윤은 운명의 탑을 나왔다.

안타깝지만 아루넬로부터도 별다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 흑룡을 만나봐야겠군.’

데카투스는 보호막 바깥에 여전히 서 있었다.

그는 앞쪽에 있는 루니스의 눈치를 보며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루니스가 그를 노려보며 금세라도 죽일 듯한 태세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사실 루니스야말로 지금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토록 믿었던 재윤이 어쩌면 천마일지도 모르는 존재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마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악마 중의 악마!

모든 마왕들이 두려워떠는 악마의 왕.

그 천마가 지금 재윤의 스승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의 힘으로 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그녀는 용사로서 처음으로 아득한 절망감을 맛보았다.

자신보다 강한 마왕을 상대로도 오히려 투지를 불태웠던 그녀였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강한 적들과 맞서 싸웠던 그녀에게 천마로 추정되는 그 자는 눈빛 한 번으로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루니스 님 이곳에 계셨군요.”

그때 재윤이 나타났다.

그는 루니스의 침통한 표정을 보고 그녀가 무슨 심정일지 짐작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잘 수습해보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루니스는 끄덕였다.

“저의 당신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답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일단 이 녀석부터 처리하는 게 어떨까요?”

그녀는 데카투스를 살려두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터였다.

지금이야 날개까지 다 내어주고 모든 일에 협력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언제 뒤통수를 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데카투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쩍였다.

《 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는 순간 한 가지 물건이 누군가에게 이동하도록 마법을 걸어뒀거든. 큭큭! 나만 죽을 수는 없지. 그땐 다 죽는 거다. 모조리! 》

그의 음성이 육성이 아닌 뜻으로 재윤과 루니스에게 전해졌다.

《 놀랄 것 없다. 우리가 아무리 조용하게 말해도 그의 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번거롭지만 심어(心語)로 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너희 또한 내게 심어로 전할 수 있게 했으니 쓸데없이 혀를 놀리지마라. 그자의 귀에 들어가면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

《 그게 무슨 소리냐? 》

재윤이 묻자 데카투스가 큭 웃었다.

《 너는 지금 네가 누구의 제자가 되었는지 짐작이나 하고 있느냐? 》

《 그렇지 않아도 그걸 묻고 싶었다. 》

《 그는 천마다. 》

데카투스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재윤이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래야 그 역시 재윤과 협상할 여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 뭐라고? 》

《 지금 뭐라 했지? 》

재윤과 루니스는 깜짝 놀랐다.

재윤은 설마했지만 데카투스의 입에서 사부가 천마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루니스는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되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 그가 천마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

재윤이 데카투스를 노려보며 물었다.

《 나는 그가 잃어버린 기억의 봉인을 풀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 그 물건에 글자가 두 개 새겨져 있지. 하나는 천(天), 다른 하나는 마(魔)다. 》

《 그럼 설마 아까 마법을 걸었다는 게? 》

《 물론이다. 나를 죽이면 그 즉시 그에게 그 구슬이 전송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희들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저 말대로라면 천마가 기억을 되찾는 순간 아루넬이 말한 초유의 재앙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데카투스가 가진 물건이 천마에게 들어가면 안 될 것이다.

‘하필이면 그것이 흑룡에게.’

재윤 또한 난감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흑룡이 그것을 빌미로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니스 또한 같은 생각인지 코웃음을 날렸다.

《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

《 큭! 못 믿겠으면 날 죽여보면 알게 되지 않겠느냐? 강재윤! 네놈은 일단 날개부터 내게 다시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꼴로 사느니 차라리 천마의 기억을 돌아오게 만들어 다 같이 죽게 만들 것이다. 》

이 와중에 으름장을 놓다니!

데카투스야말로 배짱으로 나왔다.

재윤이 못 죽일 것을 알고 하는 말 같았다.

그러자 루니스는 대뜸 검을 그의 목에 대고 재윤을 쳐다봤다.

《 설마 이 따위 녀석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죠? 》

《 사실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저야 어차피 그의 제자가 되었는데 뭐 별일 있겠습니까? 막타는 제가 칠 수 있게 완전히 죽이지는 마세요. 》

재윤은 제룡검을 꺼내 쥐며 말했다.

흑룡이 정말로 죽겠다면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그를 죽여버리는 게 낫다.

천마의 재앙을 막겠다고 사악한 흑룡에게 끌려다니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르는 일.

《 흑룡 데카투스! 오늘 이날만 기다렸다. 네 사악한 용생의 종지부를 찍어주마. 》

루니스는 망설임없이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그러자 데카투스가 당황해 외쳤다.

《 자, 잠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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