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 아들의 부하들을 만나다 (1) >
* 흑룡의 오른쪽 날개
-등급 : 신화(★)
-설명 : 흑룡 데카투스의 오른쪽 날개로 장착 시 비행 속도가 상승하며 각종 특수 공역(空域) 비행 시 속도 저하 효과를 받지 않는다. 흑룡의 왼쪽 날개를 마저 장착할 경우 비행 속도 대폭 상승.
-탑승물 장착 제한 : 신화 등급 탑승물
-개인 장착 제한 : Lv90
이 날개는 재윤이 직접 장착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은 레벨 제한에 걸리니 일단은 귀룡에게 줬다가 나중에 Lv90이 된 이후에 장착하기로 했다.
그때가 되면 용사 루니스처럼 공중 전투를 자유자재로 펼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귀룡이 흑룡의 오른쪽 날개(신화)를 장착했습니다.]
[귀룡의 비행 속도가 상승합니다.]
[날개는 언제든 장착 해제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루니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대단해요!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네요.”
재윤은 미소 지었다.
“그냥 흑룡 놈을 기겁하게 만들어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상당히 운이 좋았습니다.”
“한쪽 날개가 사라진 이상 놈은 더 이상 지금처럼 날뛰지 못할 거예요. 그동안처럼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 도발해오는 일도 없겠죠.”
루니스와 데카투스의 전투력은 용호상박이라 불릴만큼 서로 비등비등했다.
물론 장기전으로 가면 배고픔과 같은 신체 조건의 한계로 루니스가 불리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날개 한쪽을 잃은 흑룡은 더 이상 루니스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그놈이 뭐든 사사건건 방해를 해서 어떤 식으로든 본떼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잘 된 일입니다.”
재윤도 흑룡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그동안 흑룡에게 죽을 뻔했던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레벨 업을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궁의 재앙을 파괴하는 것도 그놈 때문에 실패했다.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존재!
다행히 이번에 귀룡 덕분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줬다.
곧바로 재윤은 귀룡을 타고 새로운 도시 바란으로 향했다.
도시 아르크스의 이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마인들을 몰살시켰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 * *
한편 한쪽 날개를 잃은 흑룡 데카투스는 그의 거점 중 한곳으로 간신히 복귀해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크윽!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용으로서 살며 오늘처럼 치욕적인 날이 있었던가.
이보다 더 강한 적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더 험난한 상황에 처해보기도 했지만, 날개를 잃어버리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체 귀룡의 봉인이 어디까지 풀린 것인가?’
그는 인간 따위에게 고대의 귀룡을 얻게한 운명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한낱 인간 놈에게 그런 강력한 힘을 주다니, 정말 갈데까지 가보자는 건가.’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의 앞에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이었다.
무섭도록 오연한 기세를 가진 여성의 환영.
그녀를 본 데카투스는 흠칫 몸을 떨었다.
“데사오 님이 어찌?”
그렇다.
그녀가 바로 마왕 데사오였다.
비록 환영이지만 마왕으로서의 가공스러운 기세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심한 놈! 그깟 인간 하나 없애지 못하고 날개까지 떼어 달아주다니! 참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구나.”
“그게……."
“너 때문에 그 인간 놈을 처치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이곳 도시들이 그놈의 손에 들어가는 건 시간 문제야.”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빌어먹을 운명의 힘이 계속 그 인간 놈에게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데사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놈을 얕보지 마라.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운명의 힘이 그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너는 그놈에게 날개까지 달아주었다.”
“다음에는 기필코 그놈을 죽여 없애겠습니다.”
“다음은 없다. 이곳은 다른 녀석에게 맡길 생각이니까. 이제 넌 이곳의 일에서 손을 떼고 아르데아에게 가서 그의 지시를 따라라.”
그러자 데카투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저더러 어찌 용사 놈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르데아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라 나의 수족이다.”
“그래봤자 놈이 용사였던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뒤통수를 맞게 되실 겁니다.”
“나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데사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한 번 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제게 그 인간 놈을 제압할 계책이 있습니다.”
“계책이라고?”
“놈이 가진 약점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데카투스는 재윤의 부모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미 크시라에게 지시를 내려뒀습니다. 마인들이 모든 도시를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조만간 찾아낼 겁니다.”
그러자 데사오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또 다시 날 실망시키면 그때는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할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데사오의 환영이 사라졌다.
데카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인간 놈! 가만 두지 않겠다!’
이제 그는 자신이 살기위해서라도 이 일을 해내야 했다.
곧바로 그는 크시라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데카투스 님?”
백발에 붉은 눈을 가진 여성이 나타나 부복했다.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도시 카테나에 있던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카테나?”
“불과 하루 전에 사라진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도주하던 녀석들 중 일부가 마인이 되었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 있던 카테나 거주자들 중에 그 인간 놈의 부모가 있었습니다.”
순간 데카투스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그렇다면 카테나 근처의 숲을 뒤져보면 되는 일이겠구나.”
“이미 다수의 마인들을 보내서 숲을 뒤지고 있으니 조만간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실 겁니다.”
“마인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네가 직접 가서 진두지휘해라. 나 또한 부상을 치료하는 대로 그곳에 가보겠다."
“예, 데카투스 님.”
크시라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귀룡은 도시 바란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흑룡의 오른쪽 날개를 장착한 덕분에 상공에서 쾌속비행을 하면서도 동력이 그리 많이 소모되지 않았다.
[안전지대 비용으로 200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들리는 알림.
'또?'
벌써 몇 번째였다.
주기적으로 베르타가 코인을 쓰고 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삼계탕에 이어 설렁탕, 비범밥, 그리고 기타 생필품 상자 등을 구입하고 코인을 지불했다는 알림도 있었다.
‘베르타가 대체 누구를 도와주고 있는 건가?’
코인이 아까운 건 아니다.
베르타가 실컷 먹고 싶어서 먹었다고 해도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루팅 일꾼이라기 보다는 동료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봐도 베르타의 성격 상 혼자서 뭔가를 먹을 리는 거의 없었다.
그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다.
그가 뭔가를 먹을 때는 재윤이 먹는 걸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일 뿐인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안전지대가 필요 없었다.
즉,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봐야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재윤이 알고 있는 베르타는 사람들에게 그리 동정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코인을 받고 뭔가를 팔 수는 있을지언정 재윤의 코인을 소모해가며 생판 모르는 남을 도울 성격이 아닌 것이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것은 계약 위반이고,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베르타이니까.
그게 가능한 경우는 오직 하나 뿐이다.
‘나와 관계된 자라면 모를까.’
순간 재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베르타가 돕는 자는 재윤 그 자신과 관계된 자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누굴까? 내 주변에서 안전지대까지 펼쳐야 할만큼 위급한 지경에 있는 자들이.’
갑자기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혹시?’
재윤은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 초승달에서 베르타에게 부모님을 찾는 임무를 맡겼던 것을 말이다.
즉, 베르타는 재윤의 부모님 모습을 알고 있다.
그가 만약 두 분을 발견했다면?
‘틀림없어.’
너무 생각이 앞서나간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재윤은 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 베르타가 바로 자신의 부모님을 지키고 있다고 말이다.
‘안전지대를 펼친다는 건 주변에 위협적인 상황이 있다는 뜻이야.’
즉, 안전지대가 형성된 도시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생각을 하자 재윤은 다른 아무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위기에 처해 있는 판국에 지금 새로운 도시들을 연결하는 게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어디냐? 베르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그렇게 재윤이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루니스가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재윤은 자신이 추측한 것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루니스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베르타 님의 위치를 찾는 게 시급하겠군요. 일단 도시의 관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재윤은 끄덕였다.
무작정 찾아돌아다닐 수도 없는 일.
그는 도시 바란을 향해 이동하던 귀룡의 방향을 다시 도시 아르크스로 돌렸다.
* * *
한편 숲의 안전지대.
여전히 보호막 밖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어 보호막을 거두고 이동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베르타는 강두성과 김지현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그들을 돕는 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대들의 아들인 강재윤의 루팅 일꾼이다. 동시에 그대들을 찾는 임무도 수행하고 있지. 처음부터 이 말을 하면 믿지 않을 것 같아 잠시 시간을 두고 얘기한 것이다.”
강두성과 김지현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베르타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다.
인간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그가 왜 자신들을 돕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아들의 이름이 나왔다.
그들을 돕기 위해 아들이 보낸 존재라니!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지금 뭐라 하셨소? 누구라고요?”
“그대들의 아들 강재윤이다.”
그 말과 함께 베르타는 수십 장의 사진들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말로만 해서는 안 믿을 것 같아 재윤의 모습을 사진으로 생성했다.
코인이 드는 일이지만 이 또한 재윤을 위한 일이니 상관없으리라.
“여긴 희망 성이라는 곳이고, 강재윤이 이곳의 성주다. 그리고 이곳은 초승달이란 도시인데, 그가 이곳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대들을 찾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그대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재윤이가! 정말로 재윤이가 살아있는 거요?”
“여, 여보! 이 사진 우리 재윤이가 맞아요. 재윤이가 살아 있었어요.”
강두성과 김지현은 재윤이 희망 성의 성주가 되었다는 말이나 거대한 도시의 주인이 되었다는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이 중요했다.
“세상에! 이런 기적이!”
“흐흑! 재윤아! 네가 살아있었니?”
강두성과 김지현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축하해요, 아저씨, 아주머니.”
“정말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정말 부럽습니다.”
옆에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이들도 그제야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강두성이 베르타의 딱딱한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고 말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베르타 님.”
“고마워할 것 없다. 나는 그저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꾼일 뿐이다.”
그가 아무 이유없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철저히 계약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코인 나무이니까.
강두성은 베르타의 그런 태도를 잘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가 정말 고마웠다.
그가 아들 재윤의 소식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재윤이는 어디에 있나요?”
이번에는 김지현이 물었다.
"그것은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곧 그대들을 그에게로 이끌어줄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다시 얘기해주세요. 우리 재윤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부탁합니다.”
“그건 어렵지 않다.”
베르타는 희망 성에서 처음 재윤을 만났을 때부터의 일을 간략하게 말해줬다.
모두가 듣고 있는 터라 각종 비밀스러운 얘기는 뺐다.
희망 성의 성주이자 도시 초승달의 지배자!
동시에 최강의 각성자로 그간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들을 보호해주었을 뿐 아니라 일부는 가족들도 만나게 해줬다는 얘기 정도만 했다.
보다 깊은 얘기는 재윤이 직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정말로 재윤이가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까?”
“물론이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각성자가 된 것만도 놀라운데 정말 믿기지 않네요.”
강두성과 김지현은 마치 꿈을 꾸는 듯 베르타의 얘기를 들었다.
조다연과 에이든을 비롯한 이들도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베르타의 말에 몰두했다.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았다.
저 말대로라면 세상에 영웅이 따로 없었으니까.
마치 꾸며낸 얘기처럼 허황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게 재윤의 활약에 대해 말을 해주던 베르타가 돌연 입을 닫고는 주변을 노려봤다.
갑자기 안전지대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뭔가에 놀란 듯 후다닥 흩어짐과 동시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 이곳에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30대 남자.
조다연이 그를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니콜라스?”
도시 카테나 최강 각성자 그룹의 리더 니콜라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니콜라스와 함께 그 그룹을 이끌던 상위 멤버들의 모습도 보였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서 나타난 자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 모두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