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뜻밖의 득템 (1) >
“도시 아르크스의 임시 관리자 에이미, 도시 연맹의 맹주이자 팔성기의 주인이신 강재윤 님을 뵈어요.”
에이미는 도시 샤인에서 봤을 때와 달리 매우 공손했다.
“그럼 지금 당신은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겁니까?”
재윤은 지금 앞에 있는 에이미가 본신이 아닌 분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로서는 분신 상태로 도시 관리를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미가 미소 지었다.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지금 분신이지만 본신과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고 이곳 도시를 관리할 수 있어요. 대신 오래도록 분신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 다른 관리자들과 교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다른 도시의 관리자들도 분신을 보내 에이미의 분신과 교대로 이곳을 관리한다는 뜻.
그런 번거로운 일이 없으려면 새로운 관리자를 발견해 이곳에 배치해야 할 것이다.
“관리자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나요?”
“어딘가 봉인된 채 잠들어 있던 관리자들이 알아서 이곳에 찾아오기도 해요. 그리고 도시가 사라져 거처를 잃어버린 관리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죠.”
“도시가 사라지기도 합니까?”
재윤이 놀라 묻자 에이미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가까운 곳으로 따지면 어젯밤 카테나라는 도시가 소멸되었어요. 이런 일은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도시 아르크스에서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 위치한 도시는 3개다.
하나는 재윤이 이미 지나온 도시 말리야.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도시 카테나와 바란이라는 곳인데, 그 중 카테나가 어젯밤 소멸되었다고 했다.
“도시가 소멸되는 대부분은 파투스 고갈 때문이죠. 재정 코인이 있으면 부족한 파투스를 어렵지 않게 충당할 수 있지만, 코인이 바닥 날 경우에는 꼼짝없이 무너지고 말아요.”
에이미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경우 이면 세계에 마인들이 있다면 순식간에 도시가 소멸되어 버리고요.”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도시를 다시 복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도시 카테나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럼 그런 도시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대부분은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아요. 소수의 각성자들만 생존한 채로 여러 도시에 정착하게 되겠죠.”
'후!'
안타까운 일이었다.
“참, 여기 있는 각성자 중 제가 찾는 분들이 있는지 살펴주시겠습니까?”
“이미 찾아봤습니다. 안타깝지만 없었습니다.”
에이미는 재윤이 부모님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아르크스의 관리자로 오자마자 그것부터 확인해봤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이곳 도시를 관리하는데 제가 도와줄 건 없나요?”
“이면 세계에 마인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동안은 위장을 위해 그들이 활동하지 않았는데, 오늘밤부터는 당장 활동을 개시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그놈들을 처치해야겠군요.”
마인들을 찾아다니는 재윤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마인들을 싸그리 몰살시키고 나면 이면 세계는 알아서 사라지게 되고, 이곳은 밤에도 안전한 도시가 될 것이다.
* * *
한편 베르타는 고민 중이었다.
벌써 2일째.
안전지대를 향해 거대 사마귀 괴물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키이이이!”
“키키키!”
다행히 안전지대 보호막 덕분에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식량도 재윤의 코인을 사용해 제공할 수 있으니 여기서 몇 년이건 버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다간 재윤과 다시 만나기 힘들게 된다.
‘어디든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
그는 도시의 지배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도시로 가면 그를 만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곧바로 그는 관리자 쥬크를 향해 물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
“카테나가 사라진 지금은 아르크스가 가장 가깝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바란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은 좀 더 멉니다.”
쥬크는 아르크스와 바란이 있는 방향을 각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베르타는 한숨이 나왔다.
그의 직감 상 양쪽 방향 다 괴물들이 적지않게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겠군.”
한편 그때 강두성이 에이든과 조다연을 향해 말했다.
“우리 이러고 멍하니 있을 게 아니라 저놈들과 싸워 조금씩이라도 레벨을 올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구나. 이런 기회도 흔치 않아."
보호막을 이용하면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게 가능하다.
도시의 보호막 근처로는 괴물들이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실제로 흔하지 않았다.
그러자 흑인 청년 에이든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한 번에 대여섯 마리 정도는 어떻게 상대해보겠는데, 지금 백 마리가 넘어서요."
보호막 밖에서 일정 거리를 둔 채 거대 사마귀 괴물들이 빙 둘러 포위를 한 채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강두성이 말했다.
“그래서 일단 내가 저놈들을 한 번 분산시켜 보마.”
전술 약화는 적들이 모여있는 걸 흩어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지금껏 강두성은 그것을 펼칠 기회도 얻지 못했다.
도무지 파티에 끼워주지 않았으니까.
‘전술 약화!’
곧바로 강두성은 파투스를 소모해 전투 능력을 펼쳤다.
직접적인 공격 능력이 아닌 반면, 그 범위는 꽤 넓었다.
스슷.
순간 거대 사마귀들이 일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방에 있던 수십 마리의 사마귀들 중 태반이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근처에는 네 마리만 남아 있었다.
그때를 노려 조다연이 그것들을 향해 석화를 펼쳤다.
“지금이야, 에이든. 저놈들이 석화에서 풀리기 전에 잽싸게 잡아.”
“좋아!”
에이든은 설마 강두성의 전술 약화와 조다연의 석화가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내놓을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랐다.
그는 즉시 보호막 밖으로 달려가 한손 도끼로 괴물들을 마구 때려 잡았다.
그 사이 전술 약화가 풀린 거대 사마귀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때는 이미 에이든이 보호막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하하, 성공입니다!”
“수고했네! 덕분에 레벨이 올랐어.”
“멋져요!”
강두성은 단번에 레벨이 16으로 올랐다.
“그럼 또 전술 약화 부탁합니다.”
“좋아! 기다려보게.”
“저도 석화 대기중이에요.”
그렇게 강두성 등은 조금이라도 레벨을 올려 강해지기 위해 기를 썼다.
베르타는 그 모습을 안타깝다는 듯 지켜봤다.
저런 식으로 레벨을 올리는 거야 나쁘지 않지만, 저들만으로는 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이 숲의 괴물들을 뚫고 어느 도시로든 이동이 쉽지 않을 것이다.
거대 사마귀들은 언젠가 잡을지 몰라도 그보다 강한 괴물들이 나타난다면?
‘이대로는 안 돼. 아무래도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베르타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통해 한 명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녀가 나의 신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희망 성의 관리자 오르도.
‘만일 그녀가 각성했다면 명상을 통해 내 뜻을 들을 수 있겠지.’
베르타는 본래 희망 성 지하에 있던 코인 나무다.
그리고 오르도는 희망 성에 봉인되어 있던 관리자였다.
베르타는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 없지만, 그녀가 이 운명의 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임은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가 알고 있는 지식 내에서는 그 어떤 곳의 관리자라해도 그녀를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녀가 모든 봉인을 풀고 각성했다는 전제이지만.
* * *
안전지대 『희망성』
내성 관리자의 건물.
본래 정사면체 상태로 봉인되었던 관리자 오르도는 재윤의 명성이 오르면서 조금씩 본래의 형상을 찾아갔다.
그러다 얼마 전 재윤의 명성이 10레벨이 된 순간 그녀는 본래의 외모를 완벽하게 회복했다.
찬란한 백색의 날개.
그녀의 뒤로는 신비한 후광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발산되고 있었다.
조용히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돌연 눈을 떴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마치 우주 공간이라도 들어있듯 심오하게 빛났다.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베르타가 성주님의 부모님을 찾았다니.’
그녀는 베르타가 명상을 통해 보내온 뜻을 감지했다.
‘성주님은 새로운 도시들을 지배하며 점점 강해지고 계셔서 별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이 일은 뜻밖이야.’
분리된 세계이다 보니 관리자 통신이 불가능해 재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지만, 오르도는 재윤이 무사할 뿐 아니라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최근에 명성이 대거 증가한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로인해 각 안전지대들의 단계도 일제히 상승했다.
‘그 분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다니 안타깝구나.’
지금도 가는 곳마다 부모님의 생사부터 알아보고 있을 재윤을 생각하자 그녀는 어떻게든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으로는 불가능해.’
그러던 오르도는 고심 끝에 결국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베르타가 명상을 통해 뜻을 보내온 덕분에 대략적으로나마 그의 위치를 알 수 있으니까.
‘일단 그 쪽으로 지원군을 보내는 게 좋겠어.’
대량의 코인과 적지않은 파투스가 소모되긴 하지만 게이트를 열어 베르타가 있는 곳으로 소수의 인원을 보낼 수는 있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한 도움이 되겠지.’
그녀가 이 임무에 가장 적합하다 여긴 이들은 라이칸슬로프 제칸과 고블린 세붐, 그리고 엘프 로사엔이었다.
곧바로 그들을 불러들여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러자 그들 모두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주인님의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이라면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런 일에 제가 빠질 수는 없지요. 저도 보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겠어요.”
오르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게이트를 열겠습니다. 정확한 좌표를 알 수가 없어서 베르타가 있는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 무작위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물론 숲의 엘프인 로사엔, 당신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를 찾아가겠죠.”
“물론입니다. 맡겨주세요.”
츠으으읏!
잠시 후 게이트가 열렸고, 제칸 등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 * *
츠으읏!
어딘지 모를 숲의 한 곳.
환한 게이트가 생성되더니 그안에서 제칸과 세붐, 로사엔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나오자 게이트는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기가 주인님이 계신 세계인가 보군.”
제칸의 말에 로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오르도 님의 명대로 베르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숲의 나무들과 잠시 대화를 해보겠다.”
“부탁한다, 엘프.”
제칸은 조용히 근처의 바위에 앉아 대기했다.
숲에서 뭔가를 찾는 일은 로사엔을 따를 수 없으니 그녀에게 맡기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블린 세붐은 숲의 생태를 면밀히 살폈다.
풀이나 나무, 그리고 곤충들까지.
세붐에게는 숲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은 없지만, 잡다한 흔적을 통해 숲에 뭐가 존재하는 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거대 사마귀 괴물인 맨티스 놈들의 흔적이고, 요건 음…… 이곳 지하에 동굴이 있구나. 입구는 저쪽일 거고."
세붐은 수풀을 헤치고 근처의 바위 밑을 슥슥 훑었다.
그러자 숨겨진 문이 나타났다.
“역시.”
그러자 제칸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대체 어떻게 그런 걸 찾아내는 거냐, 고블린?”
“예전에는 불가능했지. 그러나 충성도가 높아지며 생겨난 능력이다”
“충성도?”
“주인님께 충성하는 마음이 늘어나면 생기는 거란다. 네 녀석은 아직 충성도가 낮아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세붐의 말에 제칸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충성도가 더 강해지는 능력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게 높을 것이다.”
제칸은 잡술 따위는 관심없었다.
오직 전투력으로 모든 걸 승부한다.
그는 자신이 처음 재윤을 만났을 때에 비해 몇 배는 강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충성도가 상승해서임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자 세붐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 능력을 발휘해봐라. 요 안에 좀 귀찮은 녀석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라면 내게 맡겨라. 그런데 굳이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가 있나?”
“주인님의 부모님을 뵙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으냐? 이런 곳에는 보물 상자가 있기 마련이지.”
그 말과 함께 그는 동굴의 입구를 열었다.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그것을 여는 건 장난과도 같은 일.
그런데 그 순간 안에서 길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뱀이 튀어나왔다.
흙으로 만들어진 뱀.
골렘의 일종이다
제칸이 그것과 나뒹굴며 전투를 벌이는 사이 세붐은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황금빛 상자 하나를 챙겼다.
‘내가 열 수 없는 물건인걸 보니 각성자들 전용 보물이 분명해.’
봉인된 황금빛 보물 상자.
세붐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그의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사이 제칸은 흙골렘 거대 뱀을 처치한 후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툭툭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