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마음을 모으다 (2) >

“가소로운 인간 놈!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가만두지 않으려 했다.”

거대한 덩치의 여왕개미가 돌진하며 달려들었다.

이 괴상한 세상에서는 보스 급 괴물들의 경우 재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왕개미도 그중의 하나였다.

“감히 나의 권속들을 죽인 죄과를 치르게 하리라!”

그냥 보통의 여왕개미가 거대해진 모습이 아니라 괴물화되며 변형된 것이다보니 그 공격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이 입을 벌리는 순간 수백 개의 촉수같은 것이 튀어나와 재윤을 공격했다.

촤아아악! 촥! 촤아악!

마치 히드라 보스의 머리에 있는 뱀들이 공격해오는 것처럼 끔찍한 장면.

그러나 재윤은 담담하게 제마검을 휘둘러 촉수들을 잘랐다.

은빛 검신이 번쩍일 때마다 그를 향해 접근했던 촉수들이 한 번에 10여 개씩 잘려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수백 개의 촉수 중 멀쩡한 건 하나도 없었다.

번쩍! 파팟-

재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달려나가 여왕개미의 몸체를 공격했다.

제마검이 스치는 곳마다 여왕개미의 단단한 껍질이 깨져나갔다.

“꾸으으윽! 가, 감히!”

여왕개미는 크게 분노한 듯 험학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것의 입에서 촉수가 아닌 독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거대 여왕개미가 마비독을 내뿜습니다. 중독되지 않게 주의하세요.]

곧바로 들리는 알림.

재윤이 그간 거대 개미에 대한 S급 지식을 터득한 덕분에 전술 파악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최근 S급 지식을 터득한 건 마인과 거대 개미의 두 종류.

S급 지식 영구 효과로 마인의 경우에는 마족에 대한 피해 증가를 얻었고, 거대 개미의 경우에는 민첩이 3 증가했다.

‘독 저항이 높긴 하지만 방심하지 말자.’

흑룡 데카투스의 저주로 인해 전투 능력 사용이 제한되다 보니 보호막을 펼치지 못한다.

직접적으로 독 피해가 생명력을 깎아먹게 되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가라! 나의 사랑스런 권속들아! 저 사악한 침입자를 징벌하라!”

독안개가 통하지 않자 여왕개미는 병정개미들을 진격시켰다.

그것의 눈빛이 뭔가 요사스러운 빛을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었는데, 그 빛을 받은 병정개미들 중 일부가 몸집이 서너 배로 커졌다.

[거대 여왕개미가 병정개미들을 광폭화시켰습니다.]

[광폭화된 병정개미들은 무적의 상태를 유지하니 주의하세요.]

“쿠오오!”

“크아아!”

광폭으로 광전사가 된 병정개미들.

이것이야말로 여왕개미가 가진 가장 무서운 능력이었다.

황당한 일이지만 병정개미들이 죽지 않았다.

대충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리던 저렙 괴물들이 Lv20 제마검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했다.

-기본 공격력 290

-추가 공격력 : <모든 스탯〉의 290%

-악마 계열의 적 추가 피해 : <모든 스탯>의 1900%

현재 Lv20 제마검의 경우 꾸준히 공격력이 상승해 악마 계열이 아닌 일반 괴물에게 주는 피해도 이미 암흑검을 능가한 상태다. 거기에 거대 개미에 대한 S급 지식으로 공격력이 대폭 증가한 상태에 약점 치명타까지 따지면 한 방에 2749포인트나 되는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상 무기가 주는 피해일 뿐 전쟁신의 검술(Lv69)이 발휘하는 추가 피해는 그 이상이었다.

병정개미들은 검격이 아닌 어깨치기 한 방에도 먼지로 변해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병정개미들이 광폭화로 인해 무적으로 변했다.

재윤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제마검에 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광폭 무적화 시간이 무제한은 아니었다.

한놈당 대략 30초.

그러나 병정개미들의 숫자가 많다보니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며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왕개미는 한 번에 모든 병정개미를 광폭화시키지 않았다.

선두열 병정개미들의 광폭화가 끝나면 그 후열의 병정개미들을 광폭화시키는 방식으로 재윤을 압박해왔다.

광폭 상태에서는 공격력도 세져서 포위되면 골치아플 것이다.

‘여왕개미! 꽤 피곤한 녀석이네.’

따라서 재윤도 일단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답이 안나왔다.

전투 능력을 쓸 수 있다면, 광역기인 혈광파(Lv2)를 펼쳐 광폭화가 아닌 상태의 병정개미들을 몰살시켜버리는 방식으로 손쉽게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재윤이 그간 보스 급 괴물과 싸우다 이런 식으로 후퇴한 건 처음이었다.

* * *

물론 재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후퇴하는 척하며 자신을 추격해온 병정개미들의 광폭화가 끝난 시점을 노려 그것들을 공격해 해치웠다.

그런 식으로 병정개미들의 숫자를 줄여나가면 여왕개미도 별 수 없이 직접 전투에 나서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병정개미들이 마치 꼭두각시처럼 여왕개미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들은 분노하면 광폭화가 끝난 상태에도 재윤을 쫓아왔다.

따라서 재윤은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놈들을 유인해 지속적으로 숫자를 줄여나갔다.

그러자 결국 여왕개미의 곁에는 수십 마리의 병정개미들만 남아 있었다.

“감히 나의 권속들을 다 죽이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여왕개미는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재윤을 공격해왔다.

그 사이 촉수들이 다 회복됐는지 입에서는 수백 개의 촉수들이 튀어나왔고, 각종 이상 상태를 주는 독 안개를 끝도 없이 뿜어냈다.

전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거리 전투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터라 근접 공격만으로 여왕개미를 상대해야 했지만, 그것의 전술과 약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재윤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쿠으으! 부, 분하다……"

지속적인 제마검의 공격에 피해가 누적되자 결국 여왕개미는 쓰러져 죽었다.

[12,000코인을 얻었습니다.]

[여왕개미의 촉수(전설)를 얻었습니다.]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대신 여왕개미의 촉수라는 괴상한 장비를 하나 얻었다.

* 여왕개미의 촉수

-등급 : 전설(★★★★)

-분류 : 파투스 장비

-설명 : 거대 여왕개미의 특별한 힘이 깃든 장갑으로 장착자의 의지에 따라 촉수가 생겨난다.

-촉수의 길이는 장착자의 레벨이 높을수록 증가한다.[레벨당 1m]

-촉수 파괴 시 재생성 시간 : 1시간

-장착 제한 : Lv50

‘이건 장갑이네.’

투명한 장갑.

왼손에 끼자 피부와 동화되어 장갑을 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의지에 따라 촉수가 생겨난다고?’

재윤은 왼손을 뻗으며 촉수를 생성시켜봤다.

촤악!

그러자 시커먼 색의 촉수가 손에서 튀어나왔다.

물론 손이 아닌 장갑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

촉수가 길게 뻗어나가는 순간 재윤은 신비한 체험을 했다.

촉수 주변의 지형이나 사물을 바로 지척에 있는 것처럼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재윤의 레벨은 69.

따라서 촉수를 무려 69미터의 길이로 늘릴 수 있다.

이 촉수를 이용하면 69미터 떨어진 곳 주변의 미세한 것들조차 살필 수 있다는 뜻.

시각 뿐 아니라 청각이나 촉각까지.

황당하지만 미각(味覺)도 존재했다.

물이나 열매를 비롯한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이 촉수를 통해 어떤 맛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독이 있는지도 말이다.

촉수가 중독된다고 재윤이 중독되는 건 아니다.

촉수는 언제든 잘라 버릴 수 있으며, 1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유용하겠는데.’

미각을 통한 독 감지 능력만 해도 대박이었다.

물론 재윤은 높은 독 저항 때문에 웬만한 독에는 끄떡없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어떤 무서운 독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촉수 자체에서 적을 마비 시키는 독안개를 내뿜을 수 있었다.

즉, 적을 독으로 마비시킨 후 촉수로 휘감아 끌고오는 것도 가능했다.

‘꼭 전투용으로만 쓸 게 아니라 멀리 있는 물건을 가져올 때도 편리하겠어.’

촉수가 좀 괴기스러운 모습이다보니 사람들 앞에서 펼치기는 좀 그렇지만, 혼자 있을 때는 실생활에서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했다. 높은 곳을 오를 때도 촉수를 날려 밀착시킨 후 촉수의 크기를 줄이면 손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재윤은 혹시 또 다른 여왕개미가 없나 주변의 개미굴들을 계속 뒤져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방금 전 해치운 녀석이 유일했다.

여왕개미의 촉수라는 유용한 장비를 얻어 마음이 뿌듯했지만, 문제는 레벨 업!

‘또 다시 사람들에게 그런 신세를 질 수 없어.’

수면부족으로 쓰러지는 사태가 오기 전 레벨을 올려야 한다.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마족의 정신 공격을 막아주긴 했지만, 또 그런 방법이 통할 지는 알 수 없으니까.

마족들은 매우 교활하기 때문이다.

‘마인들도 요즘 숫자가 줄어서 도무지 경험치를 얻을 수가 없으니 문제야.’

어젯밤의 경우만 해도 도시 샤인의 이면 공간에 출몰하는 마인들은 거의 없었다.

‘분명 부활했을 텐데 어디에 웅크려들 있는지 찾을 수가 없으니.’

아마도 마궁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 밤에는 꼭 마궁을 찾아보자.’

제마검의 레벨도 20까지 높여놓았으니 마궁에 있는 웬만큼 강한 녀석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 *

날이 어둑해지자 재윤은 즉각 귀룡을 소환해 호수 중앙에 있는 마인의 숲으로 이동했다.

아루넬의 말에 의하면 이 방대한 숲의 어딘가에 분명 마궁이 있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제대로 샅샅이 뒤져보자.’

어딘가 마궁으로 통하는 길이나 문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귀룡을 타고 숲 전체를 누벼봤지만 마궁은커녕 그 흔한 건물 하나도 없었다.

마인들도 어디에 숨었는지 한 놈도 안 보였다.

‘역시 지하에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어디엔가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야 정상이었다.

눈으로 쉽게 발견하기 힘든 장소에 말이다.

‘촉수를 이용해볼까?’

촉수를 이용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주변의 미세한 것들까지 감지할 수 있다.

재윤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장소에서도 촉수라면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

촤아아악-!

재윤은 곧바로 촉수를 쭉 늘려 숲을 훑었다.

확실히 감각 자체가 새로웠다.

그냥 눈으로만 살펴볼 때는 안보였던 수풀 사이의 모든 것들이 감각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스슥. 스스슥.

재윤은 반경 60여 미터의 한 구간을 살펴본 후 다른 구간으로 이동해 다시 촉수로 숲을 살펴보는 식으로 이동했다.

그러기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재윤은 커다란 바위 뒤의 공간에 은밀히 숨겨진 알 수 없는 기의 흐름을 발견했다.

그것은 투명한 결계 비슷한 것으로 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직접 그 앞에 가서 기의 흐름을 느껴야 수상함을 눈치챌 수 있는 것으로, 촉수가 아니었다면 쉽게 발견하기 힘든 장소였다.

‘뭐가 있는지 볼까?’

먼저 촉수를 그 결계 안으로 밀어넣어보았다.

그 순간 촉수를 통해 재윤은 그곳이 동굴의 입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

알고 보니 그 바위에 보이지 않는 문이 존재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동굴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이래서 내가 못찾았던 거군.’

여왕개미의 촉수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숲을 헤매고만 있었을 것이다.

‘여기가 마궁의 입구겠지.’

재윤은 제마검을 쥐고 바위로 위장된 동굴의 입구로 들어섰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앞을 마인들이 가로막았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오는 거냐?”

“침입자다! 죽여라!”

수십여 명의 마인들이 달려들었지만 재윤은 이제 마인들을 상대하는 데는 이력이 난 터였다.

지식도 S급인 데다 제마검의 레벨도 20이나 된다.

마인들의 천적이자 포식자와 같은 존재가 재윤인 것이다.

입구를 지키던 마인들을 가볍게 처치한 후 동굴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이동하면서 촉수를 미리 보내 뭐가 있는지 감지할 수 있어 편했다.

어디에 마인들이 숨어있는지, 심지어 숨겨진 문이 있는지조차 촉수는 귀신처럼 파악했으니까.

그로인해 재윤은 미로처럼 복잡한 마궁의 외부 동굴에서 그 중심에 있는 마궁의 입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동굴의 폭과 높이가 갑자기 몇 배로 확대되더니 흡사 지옥의 입구처럼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나오는 거대한 문이 나타났고, 그 앞에는 마인들이 수백 명도 넘게 우글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마인들은 재윤에게 위협적인 존재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것들의 중앙에 있는 거대 괴물.

신장은 대략 10미터.

놈은 전신에 흑색의 오러가 휘돌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두 개의 휘어진 뿔이 박혀 있고 두 눈은 붉은 화염처럼 이글거렸다.

또한 어깨 뒤로는 흑색의 거대한 날개도 보였다.

말 그대로 악마 형상의 괴물이었다.

“심히 무모한 놈이로군.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들어왔는가?”

멀리서 놈을 살피던 촉수가 먼지가 되어 부서졌다.

우르르르!

동시에 재윤이 있던 동굴이 무너지며 입구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버렸다.

재윤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니까.

“모조리 죽여주지.”

곧바로 재윤은 앞을 가로막는 마인들을 처치하며 거대 괴물을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괴물 가까이 가는 순간.

제마검의 은빛 검신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