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비밀을 풀어라 (1) >
고블린들을 처치하고 전진하니 오크들이 나타났다.
놈들 역시 보통의 오크들과 달리 어둠의 힘에 의해 강화된 녀석들이었지만, 재윤은 손쉽게 처치하고 전진했다.
그런식으로 계속 잡다한 괴물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 앞을 가로 막았지만 재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제법 긴 동굴이네.’
대체 이 동굴 안에는 뭐가 있기에 괴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일까?
사실 빠른 속도로 해치우긴 했지만, 그것은 그만큼 재윤이 강해서이지 괴물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레벨이 50대였다면 이곳에서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다.
그렇게 또 잠시 전진했을까?
동굴이 끝나고 널따란 광장과 같은 공간에 뭔가가 잔득 서 있었다.
‘저 놈들은 또 뭐지?’
흑색의 판금 갑옷에 헬멧을 눌러쓴 2미터 장신의 존재들.
놈들로부터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좀비나 스켈레톤들에게서 느껴지던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대는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구나.”
“금지에 침입한 자여! 죽음으로 그 죄과를 치르라!”
쇠를 가는 듯 거친 목소리.
생자(生者)가 아닌 망자(亡者)의 음성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언데드치곤 강해 보이는데?’
재윤은 차분하게 놈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빠르고 강하긴 하지만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은 아니었다.
문제는 놈들이 죽지 않는다는 것.
목을 베어내도 심지어 판금갑옷과 함께 허리를 동강내도 멀쩡하게 다시 살아났다.
몇 번을 죽여도 소용없었다.
‘이러다 끝이 없겠다.’
언데드 종류의 괴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간 상대해봤던 좀비나 스켈레톤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었다.
게다가 놈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한놈 한놈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숫자가 많아지니 놈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를 않으니 재윤도 지쳐갔다.
“죽음의 기사들입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를 찾아 죽여야 해요.”
그때 뒤쪽 멀리서 루니스의 음성이 들렸다.
흑룡 데카투스와 치열한 전투를 치른 덕분인지 그녀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눈빛만은 강렬하게 빛났다.
“안심해요. 흑룡 데카투스는 쫓아버렸어요.”
“다행이군요. 그런데 네크로맨서가 어디에 있죠?”
“안쪽에 있을 거예요. 제가 이놈들을 잡고 있을 테니 당신이 저기 통로 안으로 들어가 네크로맨서를 처치해주세요."
루니스가 손가락으로 검신을 몇 번 튕겼다.
그러자 재윤을 공격하던 죽음의 기사들이 일제히 루니스를 향해 몰려들었다.
덕분에 재윤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를 찾아야 한다.’
지체할 때가 아니었다.
무척이나 지쳐보이는 루니스가 죽음의 기사들의 공격을 한 몸에 받으며 버티고 있었으니까.
‘저놈인가?’
루니스가 알려준 통로로 잠시 달려가자 시커먼 타원형의 마법진 위에 서있는 괴인이 하나 보였다.
흑색의 후드를 눌러쓴 놈은 뭐라 정신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재윤이 나타나자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검기파!’
재윤은 놈이 피할 여유를 주지 않고 필살기를 날려보냈다.
검기파의 강력한 기운은 단번에 놈의 보호막을 파괴했다.
놈이 비틀거리며 뒤로 피하려 했지만 재윤이 잽싸게 이동해 암흑검으로 허리를 갈라버렸다.
“크아아악!”
네크로맨서가 맥없이 쓰러졌다.
놈이 조종하는 죽음의 기사들이 강력한 것뿐이지 네크로맨서 자체는 매우 약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루니스가 뒤쪽에서 외쳤다.
재윤이 달려가자 그녀가 힘겹게 미소 지었다.
“이제 이놈들을 죽일 수 있어요. 한 대씩 다 쳐두었으니 쉽게 죽일 수 있겠죠. 잠시 후면 모두 땅속으로 들어가버리니 서둘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 와중에도 그녀는 재윤을 챙겨주고 있었다.
재윤은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즉시 광역기를 펼쳤다.
‘혈광파!’
그러자 단 한 방에 죽음의 기사들이 일제히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64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기사에 대한 B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단번에 레벨이 올랐다.
동굴 안의 많은 괴물들을 처치하며 얻은 경험치와 지금 이 죽음의 기사들을 몰살시킨 경험치가 합쳐지며 재윤의 전투력을 한 단계 높여준 것이다.
“후우! 멋진 공격이었어요.”
죽음의 기사들을 한 번에 가루로 만들어버린 광역기를 보고는 루니스도 감탄한 듯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또 레벨이 올랐네요.”
소모된 파투스는 물론이고 컨디션도 최상으로 회복됐다.
재윤은 고마움의 표시로 생명력 물약과 함께 초코바 하나를 루니스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데카투스 녀석과 싸우느라 출출해 졌거든요.”
루니스는 생명력 물약을 음료수 삼아 마신 후 초코바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식량 보급품 상자에 들어있던 거라 그녀도 몇 번 맛을 봐서인지 초코바를 먹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초코바는 잔뜩 있으니 먹고 싶으면 언제든 얘기해요.”
재윤은 초코바 하나를 더 건네며 미소 지었다.
루니스 덕분에 벌써 레벨이 2단계나 올랐다.
게다가 죽음의 기사 등을 해치우며 대량의 코인과 드롭템들도 아공간에 잔뜩 쌓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건 뭐든 다 사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재윤은 루니스와 함께 새롭게 이어진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네크로맨서와 죽음의 기사들을 해치운 이후로는 별다른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동굴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거북이 형상의 석상 하나만 존재했다.
“잠깐만요 저 석상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요.”
루니스가 석상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곧바로 그녀는 석상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위협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뭔가 특별한 힘이 이 석상에 있는 건 분명해요.”
재윤 역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나침반의 자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뭐야? 왜 여기서 나침반의 자침이 사라진 거지?’
대체 이 거북이 형상의 석상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아니면 뭔가 다른 거라도 있나?’
재윤은 석상뿐 아니라 주변을 면밀히 살펴봤다.
그러나 특별한 건 없었다.
“베르타, 혹시 고급 정보는?”
“아쉽게도 없다, 인간.”
베르타는 고개를 흔들었다.
루니스가 다가와 말했다.
“운명의 힘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윤은 거북 석상의 위쪽으로도 올라가봤다.
평평하게 만들어진 거북이의 등은 수백 명의 사람들도 올라올 수 있을 만큼 넓었다.
‘특별한 게 없는데 대체 뭘까?’
그때 거북 석상의 머리 위로 올라가 살펴보던 루니스가 말했다.
“여기 뭔가를 끼울 수 있는 작은 틈이 있어요.”
재윤은 즉각 그곳으로 이동했다.
루니스의 말대로 그곳엔 원형의 작은 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원형의 크기가 딱 나침반의 크기와 일치했다.
심지어 원형 틈 안의 문양은 나침반처럼 방위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설마 이 나침반을 끼우면 거북 석상이 움직이기라도 하는 건가?’
엉뚱한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봐야할 것이다.
착.
재윤은 나침반을 틈새에 끼워봤다.
그 순간 나침반에 환한 빛이 일어나더니 그대로 석상과 동화되어버렸다.
원형의 틈새가 그대로 메워져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놀랄 틈도 없이 더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화아악! 확! 화아악!
아무것도 없이 백색의 돌로만 이루어진 거북 석상의 등에서 온갖 찬란한 빛이 생성되었다.
그 빛들은 서로 뒤엉키더니 소용돌이처럼 나선형을 이루어 휘돌았다.
그러다 이내 검은 바탕에 작은 빛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있는, 마치 우주 공간을 보는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재윤이 묻자 루니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나침반이 이 거북 석상이 가진 비밀의 힘을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 건 분명해요.”
그녀의 말대로 운명의 나침반이 뭔가 특별한 작용을 한 건 틀림없었다.
문제는 이 다음에 뭘 어떻게 하라는 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인간, 5000코인 짜리 고급 정보가 하나 생겨났다.”
바로 그때 베르타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5000코인 짜리 정보라고?”
“그렇다, 인간.”
지금껏 가장 비싼 정보가 3000코인짜리다.
그리고 그 정보가 도시 초승달을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2000코인이나 비싼 정보가 생겨난 것이다.
“당장 살 테니 말해봐.”
그러자 베르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이번 정보는 좀 특이하다.”
“특이하다고?”
“이 또한 마왕과 같은 사악한 존재가 이곳 세계에 간섭을 하게 되자 운명의 힘이 그에 맞서는 세력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특별한 안배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특별한 안배?”
“그렇다, 인간. 그런데 그 안배를 얻지 못하도록 흑룡 데카투스가 방해를 했고, 그것을 다시 운명의 힘이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변형시켜놓은 게 지금 상태이다.”
“결국 흑룡 데카투스가 문제였군.”
“어쨌든 안배를 얻기 위해서는 그대는 비밀을 풀어내야 한다.”
“비밀을 어떻게 풀라는 거지?”
“그에 대한 설명은 나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그냥 생겨난 그대로 읽어주마.”
“그래. 어서 읽어봐라.”
재윤이 끄덕이자 곧바로 베르타는 설명 부분을 읽었다.
“푸른 숲에 해가 뜨니 아홉 마리 붉은 새가 운다. 설원(雪原)에 해가 지니 하나의 하늘에 어둠이 밀려온다. 흩어진 다섯 개의 조각이 모이면 잠자던 고대의 힘이 깨어나나니! 오직 전설의 피로만 그 비밀을 볼 수 있으리라.”
베르타는 거기까지 말한 후 입을 닫았다.
재윤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혹시 또 무슨 재앙에 대한 얘기인가?”
“나도 모른다, 인간.”
베르타는 고개를 흔들었다.
재윤이 루니스를 쳐다보자 그녀 또한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조각 다섯 개를 모으면 고대의 힘이 깨어난다는 말만 이해했어요.”
“잠깐! 지금 조각이라고 했나요?”
“흩어진 다섯 개의 조각이 모이면 잠자던 고대의 힘이 깨어나나니, 라는 대목이 있었잖아요.”
"......!"
재윤은 순간 짚이는 바가 있어 아공간 인벤토리를 살펴봤다.
황금석 거대 골렘의 조각
청금석 거대 골렘의 조각
홍옥석 거대 골렘의 조각
금강석 거대 골렘의 조각
흑옥석 거대 골렘의 조각
아까 골렘 소굴에서 얻은 골렘의 조각들.
각 종류의 골렘들로부터 오직 하나의 조각만 얻었다.
용도 불명으로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이 조각들의 숫자는 도합 5개.
재윤은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보이며 말했다.
“혹시 이 다섯 개의 조각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루니스의 눈이 커졌다.
“맞는 것 같아요. 절대 우연일 리가 없어요.”
다른 곳도 아닌 이 근처에서 얻은 조각들이었다.
숫자가 일치하니 흩어진 다섯 개의 조각들은 분명 이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전설의 피로만 비밀을 볼 수 있으리라고 했죠.”
재윤은 그 말과 함께 혈액병 인벤토리에서 전설 등급 혈액 1병을 꺼냈다.
그동안 꾸준히 뽑아둔 전설 등급 혈액은 수십 병이 넘었다.
그 중 다크 엘프의 피가 가장 많아 그것들 중 하나를 꺼낸 것이었다.
“이 피를 어딘가 부으면 비밀을 볼 수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자 루니스뿐 아니라 베르타도 그럴 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다, 인간. 아마도 이 우주 공간처럼 보이는 거북 석상의 등에 그 혈액을 뿌리면 뭔가 비밀이 드러날 것 같구나."
“맞아. 바로 그거다.”
재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다크 엘프의 피 (전설)를 거북 석상의 등에 쏟았다.
주르륵.
순간 우주 공간처럼 검게 빛나던 거북 석상의 등에 변화가 생겼다.
화악! 확! 화아악-!
다시 수많은 빛들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재윤의 귀에 알림이 들려왔다.
[전설의 피가 비밀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거북 석상 등의 검은 바탕이 9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각 구역은 공백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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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루니스가 눈을 빛냈다.
“다섯 개의 조각을 저 중 다섯 곳에 배치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제 생각도 그래요.”
그런데 그때 다시 알림이 들려왔다.
[조각 배치에 실패하면 조각이 모두 사라지니 주의하세요.]
역시 거북 석상 등에 나타난 9개의 칸 중 5곳에 골렘 조각을 하나씩 배치해야한다는 뜻이었다.
“한 번의 기회밖에 없습니다. 실패하면 이 조각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는군요. 제 생각에는 설명의 앞부분에 힌트가 있는 것 같은데.”
재윤이 알림에서 들은 내용을 알려주자 루니스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쉽네요. 마법사 로벨이 있었으면 이런 건 쉽게 풀었을 텐데. 저는 이렇게 머리쓰는 일은 도무지 적성이 안맞아서.”
“저도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푸른 숲에 해가 뜨니 아홉 마리 붉은 새가 운다.
설원에 해가 지니 하나의 하늘에 어둠이 밀려온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봐도 무슨 얘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전설 등급 피 한 병을 더 꺼내봤다.
전설의 피가 비밀을 드러내게 한다고 했으니까.
‘아까워할 것 없어. 이런 때 쓰려고 그동안 뽑아둔 거라 생각하자.’
재윤은 9개의 칸 중 한 곳에 피를 부어봤다.
순간 들려오는 알림.
[전설의 피가 비밀을 드러냅니다.]
그와 함께 그 칸에 4개의 빛이 나타나 반짝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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