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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12화 (112/200)

112화.  < 용사와의 동행 (1) >

콰앙! 드드드! 콰쾅!

콰아아앙!

바위들이 부서져 날아가고 일부는 녹아내렸다.

대체 뒤에서 뭐가 쏟아지기에 이런 엄청난 상황이 벌어지는지 재윤은 알 수 없었다.

무적기인 광혈의 의지를 펼친 후 공간 이동까지 써가며 빠르게 도주하는데도 시야조차 가려질 만큼 가공스러운 뭔가가 쏟아져내렸다.

재윤은 품에 안고 있는 용사 루니스의 몸을 최대한 몸으로 감쌌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피해를 덜 입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적 효과는 그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터라 루니스는 저 흑룡 데카토스란 놈이 쏟아내는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천만다행히도 루니스가 입고 있는 은빛의 갑옷에서 생겨난 신비한 보호막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갑옷이 없는 얼굴이나 머리 부분에도 그 보호막이 적용되는지 비교적 멀쩡했다.

쿵!

그렇게 재윤은 기적적으로 무적기의 보호막이 사라지기 직전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촤아아아아!

그 사이 검붉은 화염의 폭풍이 안전지대 주변의 모든 걸 태웠다.

천막을 가렸던 커다란 바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방은 시뻘건 화염만 가득했다.

불바다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후우!’

그러나 그런 가공스러운 열기도 안전지대 보호막에는 아무런 손상도 주지 못했다.

흑룡 데카토스는 이 상황이 기막힌 듯 앞에 내려선 채 재윤을 노려봤다.

“인간! 감히 나의 일을 방해하다니, 죽고 싶은가?”

우레같은 음성과 함께 데카토스의 두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공포심을 자극해 굴복시키려는 수작.

재윤은 놈과 눈이 마주쳐서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루니스를 안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밖이 보이지않도록 천막의 문을 닫았다.

‘네 시간 동안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루니스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안전지대의 천막을 펼치긴 했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앞으로 4시간 후에 보호막이 사라지면?

현재 재윤의 전투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흑룡 데카토스를 당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루니스부터 깨우자.’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녀가 이 안전지대를 이용해 흑룡과 싸우게 하는 것이다.

싸우다 불리하면 여기서 회복하고, 다시 나가 싸우는 식으로 말이다.

재윤은 생명력 물약을 꺼내 그녀의 부상 부위에 아낌없이 부었다.

이건 마셔도 되지만 발라도 효능을 발휘한다.

특히 부상이 심한 부위는 해당 부위에 물약을 바르면 좀 더 빠르게 아무는 효과도 있었다.

콸콸콸!

은빛 갑옷이 깨지고 부서진 부위마다 생명력 물약을 들이붓고, 그녀의 입으로도 조금씩 물약을 넣어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으으.......”

루니스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사이 그녀의 부상들은 눈에 띄게 회복되어 있었다.

재윤이 생명력 물약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덕분이었다.

“좀 괜찮아요?”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나침반 때문입니다.”

재윤은 로벨을 만나서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온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당신이 왔으니 그들이 굶어죽지는 않았겠군요.”

“그곳에 식량 상자 천 개를 놓고 왔으니 안심하세요.”

그러자 루니스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요.”

그녀는 면목없어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여유가 있다면 저에게도 한 상자만 주세요. 제가 굶지만 않았어도 저 따위 시커먼 도마뱀 따위에게 이 지경이 되도록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놈의 식량이 문제였나?

이 용맹한 여자 용사는 허기진 상태로 흑룡 데카투스와 싸우다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아공간은 없나요?”

식량을 아공간에 넣어 보관하면 도둑맞을 위험도 없을 것이다.

“이곳으로 소환되는 와중에 마법 아티팩트는 모두 부서졌어요. 제 손에 쥐고 있는 이 검과 몸에 입고 있는 갑옷이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루니스 역시 아공간을 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눈치였다.

"베르타! 삼계죽 한 그릇 부탁해.”

그러자 베르타는 인삼과 닭고기를 넣어 끓인 따끈따근한 죽 한 그릇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죠?”

“삼계죽이라는 음식입니다. 빈속에 빵이나 김밥을 먹는 것보다는 죽을 먹으면 속이 편하죠. 보양식이라 맛도 괜찮고 기운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냥 식량 보급품 상자 하나를 내줄 수도 있지만 흑룡 데카토스와 싸우게 하려면 잘 먹여야 한다.

물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사악한 용과 싸우다 굶주림에 지친 용사에게 따뜻한 죽을 건네는 걸 아낄 만큼 야박하지 않았다.

“그럼 염치없지만 잘 먹을게요.”

“눈치보지 말고 많이 드세요. 부족하면 몇 그릇이든 더 드릴게요.”

그러자 재윤을 바라보는 루니스의 눈빛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변했다.

“이 신세 꼭 갚겠습니다.”

"별 말씀을."

죽 한 그릇으로 용사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이처럼 남는 장사가 없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갑자기 왜 저 무식한 흑룡과 싸우게 된 거죠?”

“당신이 남겨주고 간 많은 식량을 저놈이 훔쳐갔으니까요.”

“용이 식량을 훔쳐요?”

“저를 방해하려는 수작이죠. 식량이 떨어지면 제가 흑화 용사 아르데아와의 전투에서 밀리니까요.”

“그럼 데카토스와 아르데아가 한패란 얘기군요.”

“그렇죠. 엄밀히 말하면 그 둘을 조종해 이곳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배후의 존재가 있어요.”

용과 흑화 용사를 조종하는 배후의 존재라면?

“설마 마왕입니까?”

“저도 추정 중이에요. 어떤 마왕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혹시 마왕 데사오가 아닐까요?”

“데사오를 알고 있나요?”

루니스가 놀란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재윤은 끄덕이고는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마왕 데사오가 이곳 세계에 간섭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흑룡 데카토스와 흑화 용사 아르데아의 뒤에 마왕 데사오가 있다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군요.”

“데사오라는 놈이 그렇게 무서운 마왕입니까?”

“모든 마왕이 그렇듯 정말 간교하기 이를데 없죠. 당신이 지금껏 데사오의 마력구를 가지고도 용케 그것을 내주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곧바로 루니스는 재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데사오의 환영이 나타나 유혹을 해오지 않았나요?”

“한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마력구를 꺼내지 않고 있죠. 70레벨을 달성해 그것을 파괴할 때만 꺼낼 생각입니다.”

그러자 루니스가 재윤을 다시 봤다는 듯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명의 힘이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알겠군요. 비록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라지만 데사오의 유혹을 견뎌냈다는 건 보통의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번은 자신없어요. 마왕의 유혹이 그렇게 무서운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재윤은 솔직하게 말했다.

루니스가 끄덕이고는 물었다.

“지금 레벨이 몇이죠?”

순간 재윤은 움찔했다.

레벨이 몇이냐?

각성자들 앞에서는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지만 이 여자 용사 앞에서는 뭔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62입니다.”

“그럼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를 파괴하려면 8레벨이 남았군요.”

“그렇죠.”

왜 아직도 그 레벨이냐는 듯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루니스는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마 그 마력구가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면 지금부터 상상을 초월한 방해가 시작될 거예요. 그리고 가장 무서운 위기는 당신이 70레벨을 달성했을 때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요.”

“70레벨이 되자마자 마력구를 파괴할 생각입니다만.”

“그래야죠.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어요. 절대 혼자서 마력구를 꺼내지 말고 반드시 그때 저에게 와주세요. 아니 지금부터 저의 곁을 떠나지 마세요. 일단 70레벨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재윤은 미소 지었다.

“당신이 옆에 있어 준다면 저야 든든하죠.”

정말로 엄청나게 배가 고팠는지 루니스는 재윤과 말을 하면서도 순식간에 삼계죽 한 그릇을 비웠다.

그녀가 민망하지 않게 재윤은 굳이 물어보지 않고 삼계죽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루니스는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빠르게 비운 후 말했다.

“이제 충분히 배가 부르네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벌써 두 번째나 저의 생명을 구해주셨으니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할지 모르겠군요.”

재윤은 미소 지었다.

“당신을 도울 수 있어서 저로서도 기쁩니다. 그보다 지금은 밖에 있는 흑룡 데카토스라는 놈을 쫓아버리는 게 시급해요. 이 안전지대의 효과가 이제 세 시간 남짓 남았거든요.”

재윤은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러니 당신은 흑룡과 싸우다 불리하면 잽싸게 이곳으로 돌아와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나가 싸우면 됩니다.”

“좋은 방법이군요.”

그 사이 그녀의 모습은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듯 말끔하게 바뀌었다.

봉두난발된 머리카락은 빗으로 빗은 듯 깔끔하고 단정하게 변했고, 피부는 목욕이라도 한 듯 깨끗해졌다.

갑옷도 깨지거나 부서진 부분이 완벽히 복구되어 새것처럼 변했다.

“그 갑옷 정말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요.”

“신성력이 깃든 특별한 장비로 저와 일체화되어 있어요. 제 숨이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면 갑옷이 아무리 망가져도 금세 원상복구됩니다.”

재윤은 감탄했다.

그 역시 저런 방어구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위험하니 당신은 보호막 밖으로 나오지 말아요.”

루니스는 푸른빛 검을 빼들고 보호막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 흉악한 기세로 안전 지대 앞에 버티고 있던 흑룡 데카토스가 흠칫 놀랐다.

다 죽어 초죽음이 되어 있던 루니스가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기운이 팔팔한 상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흑룡 데카토스! 감히 식량을 훔쳐간 것도 모자라 마왕의 주구가 되어 나를 공격했으니 용서하지 않겠다. 라넨 대륙의 용사 루니스의 이름으로 널 이 땅에서 영원히 소멸시킬 것이다.”

방금 전 재윤의 앞에서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분위기였던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기세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흑룡 데카토스는 가소롭다는 듯 입을 쩍 벌려 불을 토했다.

콰르르르!

사방이 다시 화염의 바다로 변했지만 루니스는 허공을 차고 돌진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악!

흑룡의 몸체에 푸른빛의 사선이 생겨났다.

순간 가격된 부위가 갈라지며 혈액인지 검은 기운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나왔다.

“쿠아아아아!”

흑룡이 분노하며 포효하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나온 시퍼런 번개가 루니스를 그대로 후려쳤다.

파지직!

“으으윽!"

서로 한 대씩 치고 받고.

그야말로 난투전이었다.

다행히 아까 처음 봤을 때처럼 일방적으로 루니스가 밀리지는 않고 거의 대등하게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다시 시간이 지나자 루니스가 결국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은 어디 한군데라도 성해보이는 곳이 없었다.

흑룡 데카토스 또한 날개가 찢어져 너덜거리고 목줄기에는 수십 군데의 자상을 입은 터였다.

그래도 루니스가 밀리는 듯하자 데카토스는 더욱 강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루니스 님!”

재윤은 루니스를 불렀다.

그만 돌아와서 회복한 후 다시 나가라는 것 .

루니스는 재윤의 말대로 했다.

안전지대로 들어온 후 느긋하게 생명력 물약을 마시며 몸을 충분히 회복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흑룡 역시 스스로의 마법으로 몸을 치료했지만, 루니스까지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자 기막혀했다.

“각오해라, 데카토스!”

안전지대 덕분에 최상의 상태로 몸을 회복한 루니스는 전력을 다해 데카토스를 공격했다.

바로 뒤에 안전하게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하자 굳이 기운을 비축하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공격은 더욱 과감해졌다.

그로인해 이번에는 데카토스가 뒤로 밀려났다.

그러다 다시 루니스가 안전지대로 들어와 상태를 회복하자 데카토스는 두고보자는 듯 원독어린 눈빛을 재윤에게 한 번 보내고는 멀리 날아가버렸다.

날개를 펴고 까마득한 상공으로 사라지는 흑룡을 보면서도 루니스는 한동안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흑룡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하자 안전지대로 돌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재윤은 안도했다.

루니스가 흑룡을 쫒아버렸으니 일단 안전지대의 보호막이 사라진 이후에도 살아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제 돌아갈 방법을 찾아봐야합니다.”

그러자 루니스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게이트가 사라진 이상 쉽지가 않아요.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가 없어요.”

“변화된 세계의 어딘가이겠죠. 이 나침반이 알려주는 방향대로 이동하다보면 돌아갈 방법이 있을 겁니다.’

재윤은 운명의 나침반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곳의 자침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루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을 알 수 없어 막연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근심이 풀리는군요.”

“아직 한 시간 남짓 안전지대 보호막이 유지되니 그때까지 잠시 눈이라도 붙이세요.”

재윤은 천막 안의 해먹을 가리키며 말했다.

루니스가 반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염치불구하고 잠시만 잘게요.”

재윤 역시 수면이 필요했다.

나침반의 자침이 급박한 신호를 보내온 탓에 밤을 꼬박 세우며 피 그림자 지대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베르타! 보호막이 사라지기 10분 전 깨워라.”

“그러지.”

코인 나무 베르타는 따로 수면이 필요없으니 이런 식으로 활용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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