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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103화 (103/200)

103화.  < 광렙이란 이런 거다 (2) >

[던전 1층에 진입합니다.]

자정이 지나 던전 1, 2층이 리셋되어 있어 이쪽부터 먼저 돌기로 했다.

3층에 들어가기 전 장예찬과 유선미의 레벨을 조금이라도 올려두는 게 좋을 테니까.

유선미는 B급 치유 특성에 A급 대사제의 정신이라는 특화능력을 가진 잠재력 좋은 힐러였다.

최재형의 독단적 행동에 질려 논현역 연합으로 이탈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강남역 연합의 메인 힐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찬아, 여기는 어떻게 하는지 알지?”

“물론이다. 가서 몰고 올 테니 기다려라. 유선미 씨도 여기서 대기해요.”

“네."

유선미는 과연 사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최재형이 크로거들을 새카맣게 몰고 오는 걸 보고 기겁했다.

“자, 잠깐! 맙소사! 저건 너무 많잖아요.”

언뜻 세어봐도 50마리가 넘었다.

저런 식의 무식한 몰이사냥은 풀파티 대여섯 개는 있어야 가능한 일.

그것도 광역기가 뛰어난 딜러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탱커가 순식간에 쓰러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파아아앗-

그러나 그녀는 재윤이 검 한 번 휘두르는 순간 크로거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재윤은 미소 지었다.

“놀라지만 말고 어서 토벌 임무서 새로 받아요. 보상 상자 챙기고요.”

“네."

크로거 토벌 임무서들은 어제 또 잔뜩 얻었다.

C급도 남아도는 판이라 유선미에게도 나눠줬다.

덕분에 그녀의 레벨도 얼마 가지 않아 상승했다.

-파티원 : 장예찬(Lv32)(↑1)

-파티원 : 유선미(Lv28)(↑1)

잠시 후 1층을 나왔을 때는 장예찬의 레벨도 32가 되었다.

“2층 갑니다.”

재윤은 어제 잔뜩 얻었던 좀비와 스켈레톤 C급 토벌 임무서들을 장예찬과 유선미에게 나눠줬다.

다행이 둘 다 그동안 2층을 많이 돌았던 터라 좀비와 스켈레톤 지식은 모두 C급을 보유하고 있었다.

[던전 2층에 진입했습니다.]

이곳 또한 필드형 던전으로 사방에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득실거렸다.

“방식은 똑같아, 예찬아. 그냥 잔뜩 몰아오면 돼.”

“오케이. 여긴 몹들이 더 많아 몰이가 훨씬 쉽다.”

장예찬은 금세 60마리를 모아왔다.

“어떻게 딱 60마리를 채워오냐?”

크로거 사냥 때도 그렇고 장예찬은 기막히게 숫자를 맞춰왔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의도한 것이다.

재윤이 신기한 듯 쳐다보자 장예찬이 씩 웃었다.

“한 마리라도 아깝잖아. 토벌 임무 보상이 딱 60명씩인데.”

“대단해! 그것도 기술이다!”

그때마다 재윤은 혈광파를 날려 모조리 해치웠다.

물론 그 역시 120마리를 해치우면 완수되는 B급 토벌 임무를 계속 받고 있어 경험치는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저기, 저는 아무 할 일이 없네요. 죄송해서 어쩌죠?”

유선미가 울상을 지었다.

재윤이 미소 지었다.

“죄송할 것 없어요. 앞으로 던전 상층으로 가게되면 할 일이 많아질 테니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있어도 됩니다.”

“그래도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유선미는 힐러로 각성한 이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런 던전에서 힐러는 탱커와 함께 가장 바쁜 존재였다.

탱커뿐 아니라 다른 각성자들의 생명력도 하락하기 일쑤여서 그들을 치료하느라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파투스도 금방 바닥이 나버려 던전 밖으로 나가 대기실에서 파투스를 채워오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멀뚱히 재윤의 뒤에 서 있다가 그가 괴물들을 쓰러드리면 막대한 경험치 보상만 거저 얻고 있었다.

경험치가 올라 기쁘면서도 미안한 것은 당연했다.

“재윤아! 보스들이 쫓아온다!”

그때 한참동안 몹몰이를 안정적으로 하던 장예찬이 다급히 외쳤다.

그의 뒤로 스켈레톤 백부장 두 마리가 거대한 도끼를 번쩍 쳐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그 순간 재윤의 검에서 검기파(Lv3)가 쏘아져나갔다.

콰아앙!

단 한 방에 스켈레톤 백부장 하나가 그대로 허물어져버렸다.

연이어 날아간 질풍의 화살과 혈광파에 또 하나의 스켈레톤 백부장이 쓰러졌고, 함께 오던 좀비들과 스켈레톤들이 그대로 동강이 났다.

“미친! 어떻게 보스가 한 방이냐?”

“저렙 보스라서 그래. 고렙 보스들은 나도 꽤 고전해야 해치운다.”

“와아! 진짜 여긴 신세계네요. 벌써 2층도 거의 정리가 끝났어요.”

유선미는 논현역 던전의 2층을 매일 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쉽게 끝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파티원 : 장예찬(Lv33)(↑1)

-파티원 : 유선미(Lv29)(↑1)

그렇게 2층이 종료되었을 때 장예찬은 Lv33으로, 유선미는 Lv29로 각각 레벨이 상승했다.

1시간도 안 되어 둘 다 레벨이 2단계씩 오른 것이다.

“하하, 재윤아! 나 진짜 꿈꾸는 것 같다. 어제까지 30레벨이었는데 벌써 33이라니.”

“저는 아까까지 27이었는데 벌써 29예요! 이게 말이 되는 일인지.”

이곳 던전은 말이 던전이지 각 층마다 방대한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 명도 넘게 들어가서 사냥을 하는 대형 사냥터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사냥을 해도 20랩을 넘어가면 하루에 1레벨 올리기가 어려운 것이 던전 사냥이었다.

그런 곳을 재윤과 함께 단 셋이서 싹쓸이 했으니 엄청난 경험치를 얻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토벌 임무서에서 오는 경험치가 컸다.

그러나 재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상해. 본래라면 더 올라야 정상인데.”

재윤이야 워낙 고렙이라 B급 토벌 임무서를 완수해도 경험치가 쥐꼬리만큼 오를 뿐이다.

그런데 장예찬과 유선미는 다르다.

던전 1층보다 2층의 괴물들이 몇 배 많아 경험치를 몇 배 더 먹었는데도 한 단계씩만 상승한 것이 이상해서였다.

그러자 장예찬이 말했다.

“깜빡 잊고 말 안해줬구나. 여기 한 층에서 레벨이 한 단계라도 오르면 그 다음 날 리셋되기 전까지 같은 층에서는 더 이상 경험치는 못 먹는다. 심지어 강남역 1층 던전에서 레벨이 오르면 논현역 1층 던전에서도 그 날은 경험치를 못먹어. 이건 각성자들이 이미 몇 번이고 확인한 사실이야.”

“그런 것도 있다니!”

유선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가지만 사실이에요. 물론 코인이나 드롭템은 먹을 수 있죠.”

“그럼 토벌 임무서도 마찬가지겠군요.”

“네. 그래도 토벌 보상으로 코인과 운명의 상자를 얻을 수 있으니 경험치를 못 먹어도 손해는 아니에요.”

재윤은 그제야 이해했다.

희망 성에 그가 직접 건설했던 루나티쿠스 던전은 하루에 입장 제한은 있을 지언정 레벨 업 제한은 없었는데 여기는 달랐다.

왜 그런지를 따지는 건 의미없는 일.

이 뒤바뀐 세상에서는 던전이라고 다 같은 방식이 아닌 것이다.

여기가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이해를 하고 거기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사냥을 하면 된다.

“그럼 이제 3층 갑니다.”

오늘 드디어 3층이 개방된다.

재윤이 즉시 3만 코인을 투자해 3층을 열려하자 장예찬과 유선미가 다급히 말했다.

“재윤아! 혼자서 다 내려면 너무 부담스럽잖아. 나도 5천 코인 정도는 보태겠다.”

“저도요.”

보통 새로운 던전을 열 때는 최소 수십 명의 각성자가 나눠서 내는 편이었다.

한 명이 몇 만 코인을 보유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설령 있다고 해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괜찮아. 그거 아껴뒀다가 능력 강화할 때 써. 유선미 씨도요.”

재윤은 B급 토벌 임무 보상으로 막대한 코인을 쓸어담고 있었다.

3만 코인을 내고 던전을 열어도 한두 번만 돌면 그 비용은 회수될 것이다.

[3층에 진입합니다.]

던전 3층은 흡혈귀 소굴이었다.

마찬가지로 필드 형 던전으로 흡혈귀의 성으로 들어가 흡혈귀를 모두 해치워야 했다.

그러나 이곳엔 보스 급 흡혈귀들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녀 그것들의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통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논현역 연합은 여전히 이 3층을 못깨고 있었다.

“그럼 가서 몰아올게.”

“좋아! 수고해라.”

흡혈귀들은 재윤만 보면 도망치는 터라 장예찬이 멀리까지 가서 몰아와야 했다.

장예찬은 3층도 익숙한 편이라 빠르게 흡혈귀들을 몰아왔다.

다만 2층까지와 달리 생명력이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치유의 빛!”

유선미는 드디어 자신이 활약할 때가 왔다며 활기찬 표정을 지었다.

몰려든 흡혈귀들을 재윤은 혈광파나 혈검파를 펼쳐 계속 쓸어버렸다.

[비어있는 혈액병을 얻었습니다.]

[비어있는 혈액병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빈병도 계속 들어왔다.

‘잘됐어. 흡혈귀 피를 여기서 보충하면 되겠네.’

광혈의 막과 혈광파 등은 모두 흡혈귀의 피가 필요하다.

재윤에게 던전 3층은 매우 훌륭한 보급 창고라 할 수 있었다.

“재윤아! 저기 보스들이 온다!”

루나티쿠스를 연상케 하는 창백하면서도 강력한 기세를 풍기는 흡혈귀 2명.

그들이 이곳 3층의 보스들이며 각성자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였다.

“저놈은 내게 맡겨.”

보스급 괴물의 전투력은 루나티쿠스 어려움 수준.

재윤에게는 싱거울 뿐이었다.

검기파를 쏘아보내고 몇 방 치니까 죽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저게 저런 식으로도 죽는구나.”

“정말 보면서도 믿기지 않네요.”

흡혈귀 보스도 재윤에게는 불과 10초도 버티지 못했다.

재윤은 그놈들을 해치우고 주변의 흡혈귀를 쓸어버린 후 유유히 피를 뽑았다.

[흡혈귀의 피(영웅) 1병을 얻었습니다.]

‘오! 던전에서도 영웅 등급이 나오네.’

전설 등급 피는 기대도 안했다.

희귀 등급만 나올 줄 알았는데 영웅 등급이 나오는 걸 보니 희망 성의 루나티쿠스 던전과는 또 달랐다.

[던전 3층의 모든 괴물을 토벌했습니다.]

[던전에서 나갑니다.]

-파티장 : 강재윤(Lv55)(↑1)

-파티원 : 장예찬(Lv34)(↑1)

-파티원 : 유선미(Lv30)(↑1)

이번에는 재윤도 레벨이 올랐다.

3층의 경험치도 쓸만했지만, 그보다는 낮에 거대 식충식물들을 해치우고 얻은 경험치 덕분이었다.

이로써 재윤은 또 하루만에 신논현역 던전의 새로운 층을 뚫었다.

던전 3층 통과!

동시에 신논현역 일대가 논현역 일대보다 건물들의 외양은 물론 편의 시설들이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모든 각성자들의 관심이 신논혁역 던전에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3층을 하루만에 통과하다니!

그렇다 해도 그들은 재윤이 던전 4층을 깨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다.

강남역 연합에서 3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던 거대 히드라 보스를 소수의 각성자들로 공략하기란 불가능하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재윤은 다시 장예찬과 유선미를 데리고 들어가 1, 2, 3층을 돌고 계속해서 던전 4층을 가볍게 돌파했다.

히드라 보스는 재윤이 40레벨이 되기 전에 혼자서 잡았던 녀석이다.

이곳 보스는 그때 잡았던 녀석보다 좀 더 강력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그에게는 손쉬운 상대였다.

-파티장 : 강재윤(Lv55)

-파티원 : 장예찬(Lv37)(↑3)

-파티원 : 유선미(Lv34)(↑4)

재윤은 레벨이 오르지 않았지만, 장예찬과 유선미 등은 그야말로 광렙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재윤은 차분히 4층까지 던전을 돈 이후 새로운 던전 5층에 도전했다.

이곳은 히드라뿐 아니라 철갑 독지네, 맹독 슬라임까지 총동원되는 곳으로 강력한 독 저항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곳이었다.

4층에서 독 저항의 비약을 잔뜩 챙겨두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

물론 재윤은 히드라 로드의 정수와 각종 독 괴물들의 S급 지식 효과로 데미지를 거의 받지 않았다.

장예찬은 탱커 특유의 사기적인 저항력으로 그럭저럭 버렸다.

문제는 유선미.

그녀는 독 저항의 비약을 먹고도 힘들어했다.

계속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해야 했고 그로인해 파투스 소모가 막대했다.

그것은 장예찬에게도 위기였다.

그가 아무리 저항력이 좋아도 생명력은 하락하는 터라 지속적으로 회복을 받아야 한다.

생명력 물약으로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힐러가 무력화 상태면 끝장이었다.

결국 그들은 던전 초입에서 대기했고, 재윤 혼자 5층을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경험치를 얻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5층부터는 난이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당분간은 나 혼자 돌아야겠다.”

“그래. 그게 좋겠다. 유선미 씨가 해독과 치유를 계속 해주지 않으면 나도 못 버티는 곳이야.”

“죄송합니다. 저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아직 저에게 5층은 무리 같아요.”

운좋게 히드라 로드의 정수라도 나와 먹지 않는한 장예찬과 유선미에게 5층은 넘사벽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히드라 로드의 정수는 매번 보스 히드라를 잡는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운이 따라줘야 한다.

그건 재윤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파티장 : 강재윤(Lv56)(↑1)

-파티원 : 장예찬(Lv39)(↑2)

-파티원 : 유선미(Lv37)(↑3)

오늘은 재윤도 레벨이 올랐다.

또한 비록 5층에서는 경험치를 얻지 못했지만 4층까지 돌며 장예찬과 유선미의 레벨은 계속 올랐다.

이렇게 재윤과 함께 파티사냥을 한지 단 며칠만에 장예찬과 유선미는 강남역 연합의 최상위 랭커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레벨로 올라선 것이다.

신논현역 던전 5층 통과!

불과 5일 전만 해도 폐공사장처럼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신논현역 일대가 이제 강남역 일대보다 훨씬 화려하고 멋진 곳으로 바뀌었다.

지저분했던 도로도 깨끗하게 정비되었고, 부서지거나 금이 간 폐건물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던전 5층 통과는 그동안 숨 죽인 채 신논현역 던전을 주시하던 다른 각성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논현역 연합은 물론이고 강남역 연합의 각성자들조차 앞다투어 신논현역 던전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은 신논현역 연합의 대표로 재윤을 추대했다.

부대표는 장예찬.

참모는 유선미.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과 같았다.

최재형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강남역 연합에는 최재형과 그에게 충성하는 최상위 랭커들만 남았다.

그리고 논현역 연합은 사실상 와해되다시피 했다.

대표인 허승우와 그의 오른팔인 김규원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체면상 머뭇거리고 있을 뿐 분위기를 보니 그들도 신논현역 연합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

강남역 던전 입구.

최재형을 향해 이윤지가 말했다.

“대표님, 우리도 이제 뭔가 결단을 내려야하지 않을까요?”

“무슨 결단?”

“각성자들이 다 나가버려 이대로라면 우린 5층 도전은 불가능해요.”

“불가능이라니! 모두 레벨만 좀 올리면 우리끼리도 충분해. 그놈이 혼자서도 5층을 깼는데 우린 10명이 넘는다."

이승준이 동조했다.

“저도 대표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놈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이윤지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거야 시간만 충분하다면 가능한 일이겠죠. 이러다 피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으면요?”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 이윤지?”

최재형이 이윤지를 노려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윤지는 그의 말이라면 팥을 콩이라고 해도 무조건 믿어주었다.

그에게 먼저 다가와 애인처럼 굴기도 했다.

그래서 괴인이 준 알약도 나눠주고 최상위 랭커가 되게 해줬는데, 그때 일 이후로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그쪽에 어떻게든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전 지대가 생겨나도 우린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나보고 지금 신논현 연합에 기어들어가라는 거냐?”

“자존심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그들은 못이겨요. 그때의 일을 정중히 사죄하고 어떻게든……!”

짝!

순간 최재형이 이윤지의 뺨을 때렸다.

“아악!”

이윤지가 뒤로 나가 떨어졌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흥! 그런 비위를 맞춰준 건 당신이 가장 강했을 때의 얘기지. 강재윤의 부하 하나도 못이기는 주제에!”

“이윤지! 너 진짜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러자 조영훈이 다급히 말렸다.

“형님! 참으십시오. 이제 우리만 남았는데 우리끼리 싸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윤지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뭐야? 영훈이 너까지 지금 나에게 대드는 거냐?”

“그게 아닙니다. 저의 직감이지만 그 강재윤이라는 놈은 이곳에 계속 남아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안전 지대를 만들고 떠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왜 그런 확신을 하지?”

“밖에서 왔으니까요. 그놈은 여기 말고도 갈곳이 많다는 뜻이죠. 우린 조용히 그놈 밑에 있다가 그놈이 떠나면 안전 지대를 접수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윤지가 일어나 말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어차피 그놈만 사라지면 다들 알아서 모두 대표님께 설설 기게 될 걸요. 안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만들면 되는 일이잖아요. 그전에 한 번 머리 좀 숙이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러자 최재형이 잠시 고심에 잠겼다.

생각해보니 이윤지와 조영훈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분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대체 그는 어디로 간 건가?’

최재형은 지난 며칠 동안 수시로 괴인이 서 있던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봤다.

항상 그 자리에서 그에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은 며칠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다. 내가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가 분명해.’

강재윤을 강남역 던전으로 들어가게 하라는 명령.

내키지 않아서 따르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을 어긴 것이 가장 큰 실책 같았다.

‘그 분만 나에게 돌아와주면 그놈을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러려면 그 명령을 따라야 한다.

심복들에게도 말하지 않는 최재형의 속셈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려면 그놈에게 일단 허리를 굽히는 수밖에 없겠지.’

그냥 뜬금없이 가서 강남역 던전을 돌아달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잠시 그렇게 속으로 고민하며 결심을 굳힌 최재형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굽혀야 한다는 그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지금 당장 그놈에게 갈 테니 모두 나를 따라와라.”

그는 즉시 강남역 연합의 남은 각성자들을 데리고 신논현역 던전 입구로 이동했다.

넓게 확장된 그곳엔 각성자들이 바글바글했다.

최재형이 나타나자 그들은 즉각 재윤에게 보고했다.

재윤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최재형이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일전의 일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 저의 진심을 보이는 의미로 강남역 던전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받아주시면 당신을 도와 이 도시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윤지, 조영훈을 비롯한 최재형의 심복들도 정중히 재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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