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광렙이란 이런 거다 (1) >
통유리창문을 깨뜨리고 들어온 존재는 거대한 라이칸슬로프였다.
이에 깜짝 놀란 최재형이 위스키잔을 놈에게 던진 후 아공간에서 검을 빼들었지만, 그 순간 라이칸슬로프가 그의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에 찍었다.
쾅!
“커억!”
머리가 깨지는 것과 같은 고통.
전투 능력을 쓸 틈도 없었다.
어느새 검은 저 멀리 날아가 있었고 그의 팔은 꺾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우두둑! 크지직 ! 콰자작!
두 팔이 부러지고 무릎뼈가 으깨졌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가공스러운 뭔가에 의해 찢겨지는 듯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는 상상도 못할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아......."
이윤지는 상상도 못할 광경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전신을 오들오들 떨었다.
라이칸슬로프가 그녀를 슥 노려봤다.
“염려마라, 인간. 아직 이놈은 죽지 않았으니까.”
라이칸슬로프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오늘 일은 그저 경고일 뿐이다. 또 다시 오늘과 같은 일을 벌이면 그때는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부디 분수를 알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겠다. 내 말을 그대로 이놈이 깨어나면 전해라. ”
“으으.......”
라이칸슬로프의 섬뜩한 눈빛 앞에 기가 질린 이윤지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라이칸슬로프는 물론 제칸이었다.
그는 재윤의 명령대로 최재형에게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죽이라는 명령은 따로 없었기에 죽기 직전까지만 만들어 놓았다.
엉망이 된 상태지만 생명력 물약을 이용하면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오늘의 후유증에 시달리겠지만 말이다.
팟-
제칸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울먹이고 있던 이윤지는 그제야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급히 힐러 조영훈을 불렀다.
그가 가장 가까운 숙소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급해! 어서! 대표님이 기습을 당했어!”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조영훈이 경악한 표정으로 달려와 최재형을 치료했다.
불가사의한 치유의 빛이 가진 회복력으로 최재형의 몸은 말끔한 상태로 돌아왔지만 그의 정신은 아니었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으으.......”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가 다시 실신했다.
힐러 조영훈이 이윤지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괴물이 나타났어.”
“무슨 괴물이 이곳에?”
그러나 조영훈은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거실과 깨진 통유리창을 보고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했다.
그 또한 최재형의 심복 중 하나이며 최상위 랭커였다.
이윤지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그에게 그대로 설명했다.
그러자 조영훈은 안색을 굳혔다.
“그럼 대표님만 당한 게 아니야. 이승준과 오재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그들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겠지. 어쩌면 죽었을 지도 몰라.”
“일단 윤지 너는 대표님을 보살피고 있어. 난 각성자들과 그들을 찾아보겠다.”
자칫하면 강남역 연합의 핵심 멤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영훈은 다급히 움직였다.
그러다 그는 신논현역 외곽 폐건물에서 만신창이 상태로 쓰러져 있는 두 명을 발견했다.
“다행이 늦지 않았군. 조금만 이대로 뒀으면 둘 다 죽었을 거다.”
조영훈은 즉각 그들을 치료했다.
그들 또한 금세 몸은 멀쩡하게 돌아왔지만 정신적 타격이 큰지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이들을 옮겨주세요. 돌아갑니다.”
“예."
각성자들이 이승준과 오재구를 각각 들쳐 매고 강남역 쪽으로 향했다.
* * *
한편 재윤은 반나절이 넘도록 거대 식충식물들과 전투를 벌였다.
특히 다른 괴물들과 달리 보스급 괴물이 땅속으로 숨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터라 그놈을 찾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집요하게 놈을 찾아냈고 결국 해치우는데 성공했다.
‘아쉽지만 레벨이 안올랐다.’
점점 레벨이 상승하면서 요구 경험치가 많아지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
물론 오늘 거대 각갑충들을 해치워 레벨을 한 단계 올리긴 했으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웬만큼 경험치를 채워놨으니 내일 3층이 열리면 한 단계는 올릴 수 있겠지.’
이제 던전 외에는 이곳에서 레벨을 올릴 방법이 없었다.
던전 사냥에만 몰두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잠시 후 재윤이 신논현역으로 돌아오자 제칸이 달려와서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수고했다.”
역시나 최재형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미리 대비만 했을 뿐인데 장예찬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장예찬도 재윤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재윤아! 돌아왔냐?”
“그래. 강남역 연합의 습격을 받았다고?”
“습격은 무슨. 네 부하가 순식간에 처리해줘서 난 멀쩡해. 그놈들이 불쌍하게 됐지. 그보다 넌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한 거야?”
재윤은 끄덕였다.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랐는데 안타까운 일이지.”
“덕분에 내가 살았잖아. 고맙다, 친구야.”
“어서 레벨을 올리자! 더 이상 그런 놈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해.”
"그래."
자정이 되려면 아직 몇 시간 남았다.
재윤은 장예찬을 무사히 지켜준 제칸의 공을 칭찬도 할겸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뭐가 먹고 싶냐, 제칸?”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제칸은 재윤이 맛있는 음식을 사주려는 걸 단번에 눈치채고는 즉시 대답했다.
“예찬이 너는?”
“나? 나도 고기라면 좋지.”
“소갈비? 아니면 돼지고기 삼겹살?”
“너 내가 삼겹살 귀신인 거 잊었냐? 근데 그거 가능한 얘기야?”
장예찬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는 돼지고기 삼겹살이라면 환장을 했다.
오죽하면 삼겹살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그 별명을 붙인 건 재윤이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삼겹살 먹어본지 오래됐구나. 친구도 만났는데 모처럼 삼겹살 파티나 하자. 베르타! 가능하겠지?”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베르타가 빙긋 웃었다.
“코인만 내면 물론 가능하다, 인간.”
“일단 세팅해라. 고기는 뭐든 달라고 하는 대로 줘. 코인은 나중에 후불로 알아서 가져가고.”
“그러지.”
그가 손을 휘젓자 식탁과 그릴, 그리고 통삼겹살과 야채 등이 나타났다.
4명이 먹을 수 있도록 의자도 네 개가 나타났다.
재윤과 장예찬, 제칸 그리고 베르타 그 자신의 것까지.
지글지글.
곧바로 통삼겹살이 구워지고 잠시 후 노릇노릇해지자 베르타는 매우 익숙한 솜씨로 집게와 가위로 고기를 적당하게 잘랐다.
재윤이 그것을 보며 물었다.
“고기 자르는 건 언제 배웠냐?”
“코인 상점 메뉴에 있는 건 다 할 수 있다. 이건 서비스니 부담갖지 마라.”
“편해서 좋군.”
그런 모습에 장예찬의 두 눈은 휘둥그레 커져 있었다.
“진짜 대박!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던전을 통과해 생겨난 편의점의 코인 상점에서 이같은 메뉴는 상상도 해볼 수 없었다.
게다가 고기까지 먹기 좋게 잘라주는 서비스까지!
장예찬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예전 세상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 뒤바뀐 세상에서 이런 건 상상도 못했으니까.
“삼겹살에는 소주지. 한 잔씩 해라.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 많이는 마시지 말고.”
재윤은 소주도 한 병 주문해 모두에게 한 잔씩 따라줬다.
장예찬이 반색하며 잔을 받고는 재윤에게도 한 잔 따랐다.
“고맙다, 친구야. 널 만나니 정말 살 것 같다. 그동안 정말 지옥같았거든.”
“나도 널 만나니 뭔가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 예찬아.”
그것은 재윤의 진심이었다.
이곳에서 부모님을 찾지 못해 무척 우울했던 그에게 친구 장예찬의 존재는 무척이나 위로가 되어준 것이다.
“카아! 진짜 소주 맛 기막히다. 역시 소주는 삼겹살에 먹어야 최고라니까.”
장예찬이 소주 한 잔을 입에 넘기고 몸을 부르르 떨며 좋아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세상 이렇게 되고 술 마셔보기는 처음이다. 민철이 형이 옆에 있었으면 진짜 좋아했을 텐데.”
“민철이 형도 삼겹살 귀신이잖아. 다음에 형 만나면 우리 또 한 잔 하자.”
“그래야지.”
그때 제칸은 소주 맛이 마음에 드는지 소주병을 들어 잔에 따르려했다.
그러자 장예찬이 잽싸게 병을 들어 따라주며 말했다.
"제칸 님, 오늘 고마웠습니다.”
“아닙니다. 주인님의 친구분인데 제가 마땅히 지켜야죠.”
제칸은 삼겹살 구이라는 새로운 고기 요리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지난 번 소갈비찜도 그렇고!
주인 재윤이 알고 있는 메뉴는 그에게 신세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지하철역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뿔테 안경을 쓴 늘씬한 체형의 여성.
논현역 연합의 유선미였다.
그녀는 재윤이 이곳에 있지 않나 해서 찾아왔다가 삼겹살 냄새를 맡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이 냄새는?”
그러자 장예찬이 그녀를 보고 아는 체했다.
“유선미 씨! 오랜만이네요. 여긴 웬일이세요?”
예전에 각성자들이 두 개 연합으로 갈라지기 전에 함께 파티도 해봤던 적 있어 둘은 잘 아는 편이었다.
“아, 장예찬 씨. 그렇지 않아도 소식 들었어요.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무슨 소식이요?”
“강남역 연합의 오재구와 이승준이 당신을 건드렸다가 박살났다는 소식이요.”
“그걸 또 어떻게?”
“벌써 소문 다 났어요. 이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감춘다고 감출 수 없는 일이죠.”
“하긴 그렇죠.”
장예찬도 사실 그럴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오늘 일은 강남역 연합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다.
더 이상 강남역 연합이 최강 각성자 집단이 아니라는 것!
그동안 엄청난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남역 연합에 남아있던 각성자들에게 오늘 일은 상상도 못했던 충격일 테니까.
어쩌면 당장 오늘부터 이탈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그건 그런데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뭐가요?”
장예찬이 묻자 유선미는 그들이 먹고 있는 식탁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릴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통삼겹살.
그러자 장예찬이 픽 웃었다.
그녀는 재윤이 어떻게 오재구와 이승준을 쓰러뜨렸냐가 아니라 어떻게 삼겹살을 먹고 있느냐가 더 궁금한 눈치였던 것이다.
“제 친구의 동료 능력이죠.”
“친구라면?”
“여기 재윤이 저와 친구입니다.”
“정말이세요?”
그러자 재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예찬이 말대로입니다.”
순간 유선미의 두 눈이 다시 커졌다.
그녀는 장예찬이 재윤의 밑으로 들어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둘이 친구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구나.’
이제야 그녀는 최재형 일당이 왜 장예찬을 건드렸다가 당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고 친구를 건드린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미 논현역 연합에서는 재윤의 전투력이 최재형을 능가한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던전 1층에 이어 2층까지 하루만에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의 관심사는 과연 재윤이 던전 3층을 통과할 수 있을 지였다.
유선미는 그런 동정도 살펴볼겸 이곳에 왔다.
논현역 연합은 아직 3층을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태라서 더더욱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장예찬이 말했다.
“그보다 유선미 씨도 기왕 오셨으니 삼겹살에 한 잔 해요. 괜찮지, 재윤아?”
“물론이지.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걸로 사람 서운하게 하는 건 나쁜 짓이야.”
그러자 유선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삼겹살 구워지는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만큼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정말 그래도 될까요?”
“부담갖지 말아요. 베르타, 한 자리 더 세팅해줘.”
“그러지.”
베르타가 손을 휘젓자 의자가 하나 더 생겨나고 각종 식기와 젓가락 등이 식탁 위에 한 세트 나타났다.
베르타는 집게로 막 구워진 고기를 잘라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려주기도 했다.
“와! 세상에! 내가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부담갖지 말고 많이 드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소주도 한 잔.”
“우와! 저 논현역 연합 탈퇴하고 여기로 들어올까 봐요.”
재윤이 술을 따라주자 유선미는 감동한 표정으로 받으며 말했다.
그러자 재윤이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힐러가 한 명 있었으면 했는데 오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정말이세요?”
“어차피 거긴 소속같은 거 안 따진다면서요.”
“네.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예요. 구속 같은 것도 안하고 그냥 상부상조하자며 뭉쳤을 뿐이라서요. 다만 그러다보니 강제성이 없어서 다들 대충대충 하게 되고 몸을 사려서 레벨 업이 느리다는 문제가 있어요.”
유선미는 솔직하게 논현역 연합의 단점을 얘기했다.
재윤은 끄덕였다.
“그럼 잠시 후 3층에 들어갈 건데 오신 김에 같이 파티해요.”
“끼워주신다면 저야 환영이죠.”
장예찬도 반색했다.
“재윤아! 유선미 씨 아주 괜찮은 힐러야. 탱커인 내가 보장한다.”
“그런 느낌이 왔어. 척 보면 알 거든.”
재윤은 미소 지었다.
사실 그는 굳이 힐러가 필요없었다.
다만 친구 장예찬을 위해 3층부터는 힐러가 한 명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마침 안면이 있는 유선미가 찾아왔기에 말해본 것이다.
유선미는 흔쾌히 승낙했고 곧바로 파티가 결성되었다.
[각성자 강재윤의 파티]
-파티장 : 강재윤(Lv54)
-파티원 : 장예찬(Lv31)
-파티원 : 유선미(Lv27)
현재 충성도 Lv7인 제칸은 전투에 참여하기 보다는 장예찬과 유선미의 곁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임무였다.
유선미의 두 눈이 다시 휘둥그레 커졌다.
“맙소사! 54레벨! 제 눈이 잘못된 거 아니죠?”
장예찬이 웃으며 끄덕였다.
“저도 처음에 제 눈이 잘 못된 줄 알았어요.”
“세상에!”
재윤이 씩 웃었다.
“그만 놀라고 고기 좀 드세요. 12시 되면 바로 던전 들어갈 테니 그때 가서 더 먹겠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 네. 먹을게요.”
그 말에 놀란 것은 유선미뿐이 아니었다.
장예찬 또한 무서운 속도로 삼겹살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제칸은 말조차 아끼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자정이 지났다.
그 사이 모두 배불리 먹고 전투 준비를 갖춘 터였다.
재윤이 말했다.
“그럼 시작합니다.”
“그래. 난 준비됐어, 재윤아.”
“저도 준비됐어요.”
모두들 재윤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