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 레벨 업! 레벨 업! (1) >
[던전 1층에 진입했습니다.]
[1층에 있는 모든 괴물들을 처치해야 2층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나타난 공간은 뜻밖에도 초원 지대였다.
던전이라고 하기에 시커먼 동굴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이른바 필드형 던전이었다.
[1층의 괴물들은 매일 초기화되니 하루 안에 1층을 통과해야 2층이 개방됩니다.]
매일 초기화까지 되어 주다니!
재윤은 왠지 어이가 없었다.
‘여긴 진짜 레벨 업을 위한 최상의 지역이네.’
재윤이 이런 곳에 있었으면 훨씬 레벨 업이 빨랐을 것이다.
정말 험난하게 괴물들을 찾아다니고 레벨을 올렸던 자신과는 달리 이곳 도시에 있는 각성자들은 처음부터 다수가 뭉쳐 숲의 괴물들을 정리했다.
게다가 각 지하철역 던전의 입구는 파투스 회복 지대라는 것.
코인으로 던전을 개방하지 않더라도 일단 그 입구에 있으면 소모된 파투스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편하게 레벨을 올렸겠는가.
그런데도 재윤이 이들보다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필사적인 노력도 있지만, 역시나 지식 획득 특성 때문일 것이다. 대량의 경험치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토벌 임무서가 큰 역할을 했다.
‘B급 임무서가 아직도 꽤 있는데 여기서 쓰면 되겠다.’
문제는 크로거 자체가 워낙 저랩 괴물이라 B급 토벌 보상이라고 해도 과연 50레벨인 지금 얼마나 경험치가 채워질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A급이나 S급 토벌 임무서는 획득하지 못했다.
“쿠아아!”
“크아아아!”
크로거들은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필드 곳곳에 그룹을 지어 있었다.
한 그룹에 적게는 대여섯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
따라서 저레벨 각성자들인 경우 이곳은 다수의 파티로 몰려와 사냥을 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다.
‘혈광파!’
저레벨 괴물에게 쓰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능력이었지만 시간 절약을 위해서 광역기를 날렸다.
파아아아-
검파가 반경 40미터 이내에 있는 크로거들을 휩쓸었다.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쓰러지니 120마리를 처치하는 B급 토벌임무를 완수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문제는 드롭템들.
생명력 물약과 토벌 임무서를 비롯한 각종 잡템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럴 때 베르타가 없으니 아쉽네.’
루팅 일꾼 베르타가 없으니 그 자리는 제칸이 대신해야 했다.
제칸은 베르타처럼 아이템을 곧바로 재윤의 아공간에 넣어주는 능력이 없는 터라 품에 가득 주워 한쪽에 쌓아놓았다.
그러면 재윤이 한 번씩 아공간에 집어넣으면 되었다.
그렇게 이동하다보니 큼직한 요새가 하나 나왔다.
그곳에는 크로거들이 백여 마리 모여 있고, 또한 4미터 신장의 중간 보스급 크로거가 2마리 포진하고 있었다.
‘저기가 마지막인가 보군.’
대단해 보이는 위용이었지만 혈광파 한 번에 중간 보스급 크로거들도 모두 쓰러졌다.
암흑검의 데미지와 재윤의 스탯이 워낙 높은데다 피해량 증가 버프까지 받은 상태이니 굳이 흡혈귀의 피를 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당신은 1층 던전의 모든 괴물을 토벌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생존의 서를 얻었습니다.]
들어온 지 30분도 되지 않아 1층 토벌 완료.
보상은 토벌 임무 보상들과 합치니 그럭저럭 투자한 1만 코인은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크로거들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터라 재윤은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던전 층수가 올라가면 좀 더 상위의 괴물들이 나올 거라 기대 중이었다.
‘생존의 서는 뭐지?’
펼쳐보니 도시의 지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피 그림자 재앙에 대해 적혀 있었다.
또한 10층까지 던전을 통과하면 안전지대가 형성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김우식이 각성자들에게 들었다던 내용들.
각성자들은 1층 통과 보상으로 얻은 이 생존의 서를 통해 그것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정이 지나면 되면 던전 1층이 초기화 되어 재진입할 수 있습니다.]
[던전 2층도 자정 이후에 개방할 수 있으며 2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던전에서 나갑니다.]
환한 빛과 함께 던전 1층의 필드가 사라지더니 재윤과 제칸은 신논현역 지하 던전 입구로 돌아왔다.
‘바로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었군.’
하루에 1층씩 추가로 개방이 가능한 것이다.
다행히 이미 초저녁이 지난 터라 몇 시간 후면 자정이 될 것이다.
그때 2층을 개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층도 또 돌 수 있다.
‘이렇게 매일 돌면 아무리 1층이라고 해도 경험치를 무시할 수 없지. 꾸준히만 돌면 여기서도 꽤 레벨이 오를지 몰라.’
85레벨까지는 몰라도 이곳 도시에서 70레벨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 중이었다.
‘자정이 되려면 몇 시간 남았으니 잠시 나갔다 올까?’
던전 1층을 통과했으니 신논현역 주변도 뭔가 생겨났을 것이다.
파투스를 모두 회복한 후 입구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작동되네.’
이것이 가장 먼저 생긴 변화였다.
지저분한 상태로 멈춰있던 에스컬레이터가 말끔한 상태로 변했고, 재윤이 앞에 서자 센서가 작동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어둑하기만 했던 신논현역 일대에 가로등이 몇 군데 생겨났다.
또한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편의점도 대로변 쪽에 한 군데 보였다.
그 뿐이 아니라 건물들 중 전등이 들어온 곳도 생겼다.
“저기 편의점부터 가보자.”
들어가 보니 자판기가 한 대 보였다.
메뉴는 10여개 정도.
식량 보급품 상자와 구급약 상자, 위생용품 상자와 같은 생필품들이었다.
“우리가 만든 편의점이다. 기념으로 한 상자씩 먹자, 제칸.”
“좋은 생각입니다, 주인님.”
재윤은 제칸과 함께 편의점 내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식량 보급품 상자 2박스를 구매한 후 그 안에 있는 빵과 우유, 김밥 등을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멀리서 그들이 있는 편의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최재형을 비롯한 강남역 연합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혹시나 싶어 그들은 신논현역 쪽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이곳에 가로등이 생기고 편의점까지 생겨나자 깜짝 놀라 달려왔다.
“어떻게 둘이서 1층 던전을! 그것도 단 30분 만에.”
“30분도 안 걸렸어요.”
“말도 안 돼요!”
모두들 믿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특히 최재형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라고 하면 못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빠르게 돌려면 자신을 보조해줄 힐러 한 명과 탱커 한 명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30분은 무리였다.
‘저들은 30분도 안 걸렸다. 생각보다 대단한 자들이야.’
재윤과 제칸을 향해 호의를 보이던 최재형의 눈매가 조금은 차가워졌다.
그는 강한 각성자를 원하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남역 연합의 대표이자 이 도시의 최강 각성자라는 명예를 갑자기 밖에서 굴러들어온 돌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강한 놈들인 줄 알았는데.’
그는 질투심이 유독 강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간 질투를 느낄 만한 대상이 없어서 그런 그의 내면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재윤을 반드시 강남역 던전으로 들어가게 만들라는 명령조차 잊고 말았다.
그럴 시간에 자신의 레벨을 하나라도 더 올리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다들 이러고 감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우리도 어서 던전으로 돌아간다.”
곧바로 그는 각성자들을 닦달해 강남역 던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
한편 최재형 등이 사라진 반대편에서 신논현역에 새로 생긴 편의점을 주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논현역 연합의 리더인 허승우를 비롯한 10여 명의 각성자들.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허승우는 이 도시의 각성자들 중 두 번째로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물론 강남역 연합의 최재형.
허승우는 그 다음이었다.
“신논현역 던전이 열렸군요. 그것도 외부에서 온 각성자에 의해서.”
“대체 누굴까요? 어떻게 밖에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지 상상이 안 되는군요.”
허승우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인 김규원이 의문의 눈초리로 편의점을 노려봤다.
그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강남역 연합에 저들이 합류하면 우리로선 여러모로 피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재형이 지금이야 던전에만 처박혀 있지만 10층을 통과하면 이 도시를 손에 넣으려 할 게 분명합니다.”
허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크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최재형의 성격상 저들과는 절대 함께 가지 못합니다. 그 자는 자기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은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맞아요. 최재형은 자기가 무조건 최고여야 하는 사람이죠. 처음엔 부드럽고 자상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점점 그 성격이 드러나죠. 그는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요. 저도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왔어요.”
부드러운 인상에 뿔테 안경을 쓴 힐러 유선미의 말이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대표님께서 가시면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으니 일단은 제가 가서 저들에게 우리의 뜻을 보이고 오겠어요.”
허승우가 미소지었다.
유선미는 친화력이 좋아 이런 일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럼 선미 씨 부탁합니다.”
곧바로 유선미는 신논현역 사거리 근처에 새로 생긴 편의점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그녀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논현역 연합 소속 유선미라고 합니다.”
“강재윤입니다.”
“우선 신논현역 던전을 개방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재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선미는 캐리어에 담아온 시원한 아이스라떼를 재윤과 제칸에게 한 잔씩 건넸다.
“일단 별거 아니지만 시원하게 드세요.”
그건 던전 2층을 깨야 코인 상점에 나타나는 메뉴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저희 논현역 연합은 소속을 강요하지 않아요. 오시면 언제든 편하게 저희와 함께 던전을 도실 수 있고요. 또한 원하시면 저희 쪽도 이쪽 던전에 지원을 올 수 있죠.”
“원하던 바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그쪽에도 가보겠습니다.”
솔직히 재윤은 지원은 바라지 않았다.
그거야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그러나 던전의 입장이 하루에 제한되어 있는만큼 다른 지하철역 던전도 돌 수 있으면 레벨을 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선미가 미소 지었다.
“성격이 화통하시네요. 앞으로 함께 잘 지내봐요. 이 험한 세상에서는 뜻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윤이 그렇게 말하자 유선미는 기뻐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최재형 쪽에서는 의외로 조용하네.’
재윤은 사실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이곳의 각성자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아까 고층 빌딩 옥상에서 해치운 마족의 분신과 한패가 이곳에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강남역 연합일까? 아니면 논현역 연합?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마족의 분신이 강남역 연합의 구역에 있었다고 무조건 최재형 등을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아무도 연관되어 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적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람은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연관되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마각을 드러내겠지. 일단은 레벨 업에 집중하자.’
그때 재윤의 앞에 베르타가 허탈해하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인간, 미안하다.”
그 말을 들은 재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났다.
“이 도시엔 안계셨나 보군.”
“그래. 모두 살펴봤지만 그대가 원하는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게 됐구나.”
“어쩔 수 없지. 수고 많았다, 베르타.”
꽤 오래 걸릴거라고 해서 며칠은 소요될 줄 알았는데 벌써 이 도시를 다 돌아봤다니 대단했다.
‘후! 대체 어디에 계시는 걸까?’
재윤은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실망한 터였다.
부모님들이 이 도시 어딘가에 계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레벨을 올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물론 던전 10층을 다 깨고 신논현역 일대를 안전지대로 만든 후에야 떠날 것이다.
무작정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아마 나침반의 자침도 그때쯤에야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 중이었다.
아직 자정이 되려면 몇 시간 남은 터라 재윤은 그 사이 도시 밖 낭떠러지 아래의 괴물들을 처치하기로 했다.
“제칸! 넌 이곳에 남아 있어라.”
삼두적린사처럼 독을 쏘아대는 괴물들이라면 제칸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제칸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자정 전에 돌아올 테니 쉬고 있어.”
“예, 주인님.”
재윤은 제칸이 심심하지 않게 간식 상자를 몇 박스 내려놓은 후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곧바로 숲으로 이동해 지난번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가다보니 운명의 탑으로 보이는 익숙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싶어 운명의 탑 문을 열어봤더니 놀랍게도 들어가졌다.
“어서오세요, 각성자님.”
천사같은 외모의 아루넬이 환하게 웃으며 재윤을 맞이했다.
역시나 어느 운명의 탑을 통해 들어와도 아루넬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기대 안하고 혹시나 문을 열어봤는데 들어와졌습니다. 제가 또 뭔가 얻을 게 있습니까?”
“물론이죠. 각성자님은 최초로 한계 레벨을 돌파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되실 거예요."
“오! 그렇군요.”
재윤은 반색했다.
50레벨이 되며 운명이 정한 한계를 돌파했다는 알림을 듣기는 했다.
이제는 파투스 무기가 아니어도 괴물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운명이 정한 한계 레벨을 최초로 돌파한 그대에게 고대 전쟁신이 특별한 은총을 베풉니다.]
[고대 전쟁신의 수련장에 입장합니다.]
아루넬의 모습이 사라지고 곧바로 들려온 알림.
‘고대 전쟁신의 수련장?’
여긴 또 어딜까?
어느새 주변은 아루넬이 있던 빛의 공간에서 거친 황야와 같은 곳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