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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생존-95화 (95/200)

95화.  < 한계 돌파 (2) >

‘나침반이 저곳을 가리키는 걸 보니 내가 가야하는 방향은 틀림없는데.’

본래라면 저런 정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면 반가워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기괴하게 뒤틀려버린 세상에서 저처럼 멀쩡한 도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재윤은 그 사이 자신의 뒤쪽에 선 채로 도시를 쳐다보고 있는 코인 나무 베르타에게 물었다.

“혹시 뭔가 고급 정보 나온 것 없나?”

“1000코인 짜리 고급 정보가 하나 있긴 한데.”

재윤은 놀랐다.

1000코인이나 드는 정보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비용을 아낄 재윤이 아니다.

“말해봐라.”

[1000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베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뒤바뀐 세계에서 그대가 그간 봐왔던 것들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그대와 동일한 환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각 지역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지.”

뭔가 모호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곳은 내가 있던 곳처럼 숲과 안개가 존재하고 괴물들이 득실거리지만, 어떤 곳은 그냥 본래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는 건가? 저 도시처럼?”

“본래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겉모습만 저럴 뿐 어차피 저 도시도 뒤바뀐 세계의 일부이니까.”

재윤은 베르타를 슥 노려봤다.

“그래서 결론은? 저 도시는 대체 뭐지?”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일단 들어가보면 또 다른 정보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운명의 힘도 내게 모든 걸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침반의 방향이 저곳을 향하고 있다면 그대가 들러야할 곳임은 분명하다.”

운명의 나침반을 다시 살펴봤지만 자침은 정확히 도시를 가리켰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로 재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재윤은 그냥 우연히 저 도시를 발견한 것이 아니다.

운명의 나침반이 알려준 방향으로 오다 발견한 도시다.

그 방향의 어딘가에 반드시 부모님이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이 저 도시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지 않을까?

“주인님, 여기 계셨군요.”

그 때 제칸 또한 200미터 높이의 절벽을 타고 올라왔다.

하긴 라이칸슬로프 로드이니 당연한 일.

게다가 현재 충성도도 Lv5.

제칸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저기 도시로 갈 것이다.”

안전 지대 천막은 재사용 대기 시간 중이라 근처의 바위에 앉아 쉬면서 암흑검의 내구도를 복구했다.

삼두적린사들과 싸우며 내구도가 많이 하락한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혹시 또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니 미리 든든하게 배를 채워두었다.

대왕 삼두적린사의 상자에서는 대량의 코인과 함께 공격력이 꽤 쓸만해보이는 Lv45 전설 등급 양손 도끼가 나왔다.

재윤의 근력이 충분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지만 그걸로는 검술을 펼칠 수 없는 터라 암흑검에 비하면 그냥 막대기에 불과했다.

아공간에 넣어뒀다.

* * *

잠시 후 재윤은 도시를 향해 이동했다.

봉우리 위쪽이어서 보였을 뿐이지 아래로 내려가자 높은 수풀들에 가려 도시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까지 가려면 적어도 십여 킬로미터는 이동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울퉁불퉁한 숲의 지형을 통과해야 하니 평지보다 오래걸릴 것은 당연한 사실.

물론 그거야 평범한 사람들 얘기일 것이다.

재윤과 제칸의 움직임은 바람과도 같아서 금세 숲을 거의 지나 도시로 접근 중이었다.

베르타가 뒤쳐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재윤의 속도에 보조를 맞춰 따라오기 때문이다.

숲에는 특별한 괴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30대 남녀.

바구니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이 숲에서 열매나 버섯 등을 채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멀쩡히 생존해 있는 사람들을 보자 재윤은 반가워 다가갔다.

그들이 놀라지 않게 제칸은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도시에 계시는 분들입니까?”

그러자 그들이 고개를 돌려 재윤을 쳐다봤다.

“예, 그렇습니다만.”

특이하게도 재윤을 보면서도 그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른 생존자를 발견했으면 놀라거나 혹은 경계하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할 텐데 그냥 왜 말을 걸었냐는 듯 오히려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저 도시에 생존자가 몇 명이나 되나요?”

“예? 그럼 설마 다른 곳에서 오신 분이오?”

그제야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나무 열매를 따고 있던 여자도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재윤을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재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이 온 방향을 가리키자 남자가 큭 웃더니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재윤을 노려봤다.

“젠장! 우리가 설마 그쪽이 어떤 곳인지 모를까봐 그런 소리를 해? 장난치지 말고 그만 가보시오. 우린 바쁘니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러게요.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면 차라리 믿겠네요.”

남녀는 재윤이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재윤이 생각해봐도 저런 반응이 이해가 가긴 했다.

그가 무심코 가리켰던 방향은 이 숲의 끝인 낭떠러지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거대 괴물들인 삼두적린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 너머에는 피 그림자의 재앙 지대가 있고 말이다.

저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재윤이 하는 말을 믿기가 어려울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재윤은 더 이상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헛소리가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레벨이 50이며 삼두적린사들을 몽땅 해치웠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

아마 그 말을 하면 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일단 이곳엔 생각보다 생존자가 많이 있는 게 분명해.’

남녀의 반응을 통해 몇 가지 유추할 수 있었다.

도시에 생존자가 별로 없다면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봤을 때 알아봤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남녀는 처음에 재윤이 말하기 전에는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으니까.

즉, 그들은 재윤이 도시에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생존자가 최소 몇 백 아니면, 어쩌면 천 명도 넘는 것 아닐까?’

혹은 그보다도 많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재윤은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방금 전 그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는 각성자가 아니었는데 숲에서 자유롭게 뭔가를 채취하면서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그저 고단해보이기만 했을 뿐.

이 숲에 뭔가 위험한 것이 나타난다면 저런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절벽 아래쪽과는 달리 이쪽은 괴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각성자들이나 혹은 어떤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괴물들을 모두 처치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괴물들이 나오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재윤은 도시 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숲 곳곳에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숲에 있는 사람만 수백 명은 되겠어.’

숲이 끝날 때까지 정확히 382명.

빠르게 그들을 눈으로 훑으며 얼굴을 모두 확인했다.

혹시 그들 중 부모님이 계실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다른 아는 사람이라도.

안타깝게도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널따란 아스팔트 도로가 끊어진 부분이 나타났다.

그 도로는 도시 안으로 이어졌다.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

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고층 빌딩들이 서있고, 그 뒤쪽으로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 연립주택 같은 것들도 보였다.

그리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여기는 설마?’

익숙한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지하철 역도 하나 눈에 띄었다.

‘강남역?’

재윤은 황당했다.

대체 어떻게 이곳에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출입구가 있다는 건가.

즉, 이곳 10차선 도로는 강남대로였다.

도로가 끊어진 위치는 강남역 교차로 부근.

강남역, 신논현역을 지나 논현역, 신사역까지 이어지는 부근만 보였다.

그리고 계속 지나면 한남대교가 나오겠지만, 신사역에 가기 전에 도로는 끊겨있었다.

‘정말 기막힌 일이네.’

재윤의 집은 광진구 자양동이었다.

안전 지대 혜미를 찾은 건 집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으니 광진구 어딘가 있던 주택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거리를 따져봐도 그간 재윤이 이동해온 거리는 최소 수백 킬로미터는 될 것이다.

정상적인 지형이었다면 진작에 바다가 나왔어야 한다. 북쪽으로 갔다면 북한이 나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바뀐 세상에서는 예전 지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갑자기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건물이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

그걸 알면서도 강남구와 서초구의 일부가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이곳에 멀쩡히 남아있는 걸 보니 황당했다.

‘여긴 지형 자체가 뒤죽박죽 되어버린 건가? 아니면 강남대로 일대가 통째로 이곳으로 날아온 걸까?’

물론 막상 도시로 들어와 보니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도로는 도처에 지진이 나듯 균열이 나있고, 건물들도 무너지거나 금이 가 있는 곳들이 많았다.

차량들은 도로 가득 난장판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대규모 전쟁이라도 터진 듯한 상황.

괴물들이 나타났던 흔적일 것이다.

다만 그런 것과는 아랑곳없이 도로를 중심으로 도처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도로 근처에 서성이는 이들만 1천여 명 가까웠다.

그들은 아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물건을 사고파는 듯 흥정을 하기도 했다.

재윤이 제칸과 함께 들어가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도시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수천 명 아니, 어쩌면 만 명도 넘을지 몰라.’

도로보다 건물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을 테니까.

재윤은 혹시나 싶어 나침반을 꺼내 확인해봤다.

‘나침반의 자침이 사라졌다.’

희망 성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현상.

그렇다면 이곳에서 재윤이 뭔가 할 일이 있음을 의미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이곳에 부모님이 계시는지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집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며 알아볼 수도 없는 일.

“코인을 받고 사람 찾아주는 일도 가능한가, 베르타?”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그러자 베르타는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코인 상점에는 없는 메뉴다. 하지만 원한다면 내가 직접 투명화 상태로 돌아보며 찾아볼 수는 있다.”

“정말 그게 가능해?”

“그대가 원하는 사람의 이미지와 이름을 떠올린 후 내게 말을 걸면 가능하다. 물론 지역은 이 도시에 한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꽤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일과 루팅은 병행이 불가능하다.”

기대 안하고 물어봤는데 가능할 줄이야.

그야말로 보물 코인 나무였다.

“루팅 따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마라. 시간이 얼마걸려도 좋으니 꼭 두 분을 찾아봐 줘. 만약 찾는다면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주마.”

재윤은 부모님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는 말에 베르타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 잊지마라. 그럼 일을 마친 후 돌아오도록 하지.”

베르타의 모습이 홀연하게 사라졌다.

너무 자연스럽게 사라져 주변의 누구도 그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제발 이곳에 계시기를.’

재윤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훑어봤다.

대로를 살펴보고 이면도로 쪽으로도 들어갔다.

술집과 음식점, 카페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친구들과 간혹 와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하던 장소라 눈에 익숙했다.

물론 그냥 간판만 달려있을 뿐 영업을 하는 집은 없었다.

아니, 몇 군데 있긴 했다.

이 와중에도 음식을 팔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저기요, 아저씨 혹시 각성자신가요?”

그때 누군가 재윤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10대 초반의 소녀가 바구니에 열매를 잔뜩 들고 선 채로 서 있었다.

“그건 왜 묻지?”

“각성자시면 이것 좀 사주시면 안 될까요? 엄마가 아픈데 약을 사려면 코인이 필요해서요. 이 열매 다 합쳐 1코인이면 돼요.”

“1코인으로 약을 살 수 있어?”

“네. 구급약 상자 1코인에 저기 편의점에서 팔잖아요. 저는 코인을 가질 수 없으니 아저씨가 대신 사주셔야 해요.”

그러고 보니 소녀가 가리킨 곳에는 편의점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케라드 열매 10개, 거뜨 열매 10개로 보급품 의복 상자 하나 구해봅니다.”

“숲에서 채취한 나물 한 바구니당 1코인 팔아요!”

“각종 식용버섯 한 바구니에 1코인 혹은 분유 한 통과 교환원해요! 아이가 분유가 없어요. 제발 좀 팔아주세요!”

대부분 비각성자들!

그들은 코인을 거래할 수 없으니 각성자들에게 뭔가를 팔고 그 대가로 코인으로만 얻을 수 있는 물품들을 대리구매하는 식이었다.

‘여기도 코인 상점이 있었구나.’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이 도시의 사람들은 벌써 굶어죽었을 것이다.

그때 소녀가 재윤의 옷을 붙잡았다.

“아저씨, 제발요. 엄마가 많이 아파요! 진통제가 필요해요.”

“그래. 사주마.”

“정말요?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재윤은 편의점의 코인 상점에 어떤 메뉴가 있는지 살펴볼겸 소녀와 거래를 하기로 했다.

편의점에는 점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자판기들이 몇 대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 식이었다.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리자 재윤의 차례가 왔다.

스크린 터치 방식으로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코인은 인식기에 손바닥을 대면 알아서 차감되는 식이었다.

‘편리하게 되어 있네.’

다만, 코인 나무 베르타처럼 메뉴가 다양하지는 못했다.

베르타가 대형 마트라면 여긴 소형 마트나 편의점 수준.

그래도 웬만한 있을 건 다 있어 코인만 있으면 먹고 살만 할 것 같았다.

[구급의약품 상자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의 보유 코인 중에서 1코인이 지급되었습니다.]

곧바로 자그만 상자 하나가 재윤의 앞에 나타났다.

“이거면 됐지?”

그것을 받아 건네주자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소녀는 열매 바구니를 재윤에게 건네주려 했지만 재윤은 받지 않았다.

“괜찮으니 그건 가져가서 엄마랑 같이 먹어.”

“아니에요.”

소녀는 그럴 수 없다는 듯 열매 바구니를 재윤의 손에 쥐어주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그래. 잘 먹겠다. 그럼 이것도 가져가.”

재윤이 보급품 식량 상자도 하나 주자 소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소녀는 두 개의 상자를 품에 안아 들고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소녀가 골목길로 들어가자 그 뛰를 따라가는 남자들이 몇 있었다.

딱 봐도 불량해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흐흐, 수고했다. 연기를 아주 잘 했어. 불쌍해 보여야 이런 식으로 가끔 보너스를 주는 호구 새끼들이 있거든. 상자들은 이리내고 또 가서 다른 각성자 놈들에게 부탁해봐.”

남자들은 다른 열매 바구니 하나를 소녀에게 건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소녀를 이용해 코인 물품 앵벌이를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얻은 물품을 다시 비각성자들에게 매우 비싸게 팔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명 높은 패거리였다.

소녀가 울먹였다.

“오늘은 그만하면 안 돼요? 엄마가 진짜 아파요.”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야지. 이 진통제 안 필요해?”

“필요해요.”

“한 번만 더 하자. 그럼 이 진통제 한 알 줄게. 알았지?”

인상 사나운 남자의 말에 소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린 소녀의 두 눈이 돌연 커졌다.

“아저 씨……"

골목길의 입구에 재윤이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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