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 한계 돌파 (1) >
용사 루니스가 있는 숲을 떠나 재윤은 다시 피 그림자 지역을 이동했다.
그래도 잠깐 쉰 덕분에 체력은 거뜬해졌다.
제칸 또한 특유의 사기적인 회복력으로 생생해 보였다.
물론 녀석 혼자서 보급 박스 3개나 되는 많은 식량을 먹어치운 덕분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피 그림자 지역이 이쪽으로만 확장되는 것은 아닐 텐데.’
아마 희망 성이 있는 쪽으로도 계속 숲을 침식해나갈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안전 지대는 어쩌지 못할 테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조심하라고 해야겠군.’
곧바로 재윤은 성 관리자 오르도에게 피 그림자에 관해 알아낸 내용을 얘기해줬다.
조만간 그곳까지 피 그림자가 덮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이다.
‘관건은 내가 최대한 빨리 85레벨을 달성하는 건데.’
솔직히 요원한 일이긴 했다.
마왕의 마력구를 파괴할 수 있는 70레벨만 해도 멀게 느껴지는데, 85레벨이라니.
그래도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대략 한 나절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드디어 앞에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숲의 경계에는 피 그림자 괴수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딱 보니 숲을 갉아먹어 피 그림자 지역화시키는 중임이 분명했다.
“잘 걸렸다!”
재윤은 즉시 암흑검을 빼들고 돌진했다.
그러자 피 그림자 괴수들이 멀리서부터 움찔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질풍 이동! 바람 이동!’
그러나 재윤은 놈들이 흩어지기 직전 이미 그 중심에 도착해 있었다.
‘혈광파!’
반경 35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광역기!
파파! 팍! 파악!
연이어 혈검파를 펼친 후 비틀거리는 놈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그러자 30여 마리의 피 그림자 괴수들이 모두 흩어져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241코인을 얻었습니다.]
[289코인을 얻었습니다.]
[315코인을 얻었습니다.]
코인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용사 루니스의 숲에서 썼던 3000코인의 2배 이상 되는 코인을 순식간에 벌어들이는 재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코인 하나는 정말 많이 주는 놈들이야.’
문제는 개체수가 별로 없다는 것.
물론 실제로는 엄청난 숫자가 존재할 것이다.
재윤의 눈에 별로 안 띄어서 적게 보일 뿐.
‘이 숲은 조용하네.’
재윤은 숲으로 들어와 주변을 살폈다.
경계 근처라 그런지 별다른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잠시 쉬고 움직이겠다.”
재윤은 안전 지대 천막을 설치했다.
아까는 렙업을 닦달하는 용사에게 쫓겨나다시피 나오다보니 잠 한 숨도 제대로 못잤다.
체력적으로 버틸만은 했지만 그래도 잠시 잠은 자두는 게 좋을 것이다.
제칸 역시 환영하는 눈치였다.
* * *
2시간 정도 잠을 잔 후 재윤은 저절로 눈을 떴다.
높은 체력 스탯 덕분에 더 잠을 자고 싶어도 더 이상 수면이 필요하지가 않았다.
4일이 넘은 강행군으로의 누적된 피로도 모두 사라졌다.
‘근처에 괴물들이 있나 살펴보자.’
안전 지대의 유지 시간이 2시간 남았다.
괴물들이 많다면 파투스를 팍팍 써서 몰이사냥을 하고 안전 지대에서 파투스를 회복할 수 있으니 이처럼 편한 사냥이 없을 것이다. 물론 파투스 물약도 잔뜩 있지만 그건 안전 지대를 쓸 수 없을 때를 위해 예비해둬야 한다.
나가기 전 아공간에 처박아 둔 암흑의 상자들도 꺼냈다.
다크 엘프들을 해치우고 얻은 암흑의 상자들.
피 그림자가 빗발치는 영역에서는 미처 확인해 볼 여유가 없었다.
열어보니 대부분 반지나, 벨트 등으로 이미 있는 것들과 성능이 비슷하거나 낮았다.
그래도 다크 엘프 로드 파필리오를 해치우고 얻은 상자에서는 제법 쓸만한 장비가 나왔다.
* 암흑의 공간 망토
-등급 : 전설(★★★★)
-분류 : 파투스 장비
-내구도 : 400/400
-장착 효과 : 모든 스탯 +10, 최대 생명력 +500
-부가 효과 : 원거리 전투 능력 유효거리 +15m
-장착제한 : Lv40
이건 오크 로드 투르보를 해치우고 얻은 30레벨 망토보다 한 단계 상위의 장비였다.
‘유효거리가 오크 로드 망토보다 5미터 더 길어졌다.’
그 5미터가 어디인가.
덕분에 바람의 화살을 25미터 밖에서 10초에 한 번씩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검기파는 55미터, 질풍의 화살은 35미터!
혈검파 35미터, 혈광파 40미터!
바람 이동 25미터. 질풍 이동은 45미터로 모두 유효거리가 늘어나게 된다.
재윤은 즉각 이 망토로 바꿔 장착했다.
【레벨】 49
【명성】 Lv7
【생명력】 1230/1230(↑230)
【파투스】 193/193(↑12)
【스탯】
근력 53(↑3)
체력 43(↑3)
민첩 53(↑3)
지능 50(↑3)
【코인】 374,870
【특화 능력】 전쟁신의 검술(Lv49), 전쟁신의 강림(Lv7)
【전투 능력】 바람의 화살(Lv10), 바람 이동(Lv10), 광혈의 막(Lv10), 검기(Lv10), 혈검파(Lv10)
【극 전투 능력】 질풍의 화살(Lv2), 광혈의 의지(Lv2), 검기파(Lv3), 질풍 이동(Lv2), 혈광파(Lv1)
【생활 능력】 괴물혈액 채취(Lv21)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재윤은 암흑검을 쥐고 숲을 둘러봤다.
‘이 근처에는 괴물이 없는 것 같은데.’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 그림자들의 존재는 다크 엘프들처럼 마족들이 배후에서 뭔가 권능을 주지 않는 한 괴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즉, 피 그림자가 숲을 갉아먹으며 영역을 확대함으로 인해 숲에 소환되거나 살고 있던 괴물들은 대규모 이동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참을 더 이동하자 괴물들이 감지되었다.
‘역시 저 안쪽에 꽤 많이 있군.’
이제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꽤 멀리 있는 괴물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레벨과 스탯이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감각 중 하나.
잠시 이동하자 머리가 세 개 달린 거대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재윤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그것들은 즉각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쿠아아아!"
"콰우우우!”
몸 전체가 붉은 비늘로 뒤덮였고 그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괴물들.
‘혈광파! 혈검파!’
붉은 검파가 파동처럼 퍼져나가 뱀들의 몸체를 가격했다.
계속해서 11개의 검파를 전방으로 날려보냈다.
그런데도 뱀들은 죽지 않고 버텼다.
‘인면지주나 미노타우루스들보다 강한 놈들이네.’
그것은 그만큼 경험치가 높다는 뜻.
코인 나무 베르타의 말대로 운명의 나침반이 재윤의 레벨에 맞는 괴물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준 것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해볼까?’
재윤은 암흑검에 검기를 생성해 휘두르며 놈들에게 돌진했다.
파투스가 아무리 남아돌아도 이런 일반 괴물들을 향해 단일 대상 필살기를 쓰는 건 아까운 일.
암흑검으로 직접 놈들을 상대하다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때마다 광역기를 날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리라.
촤악! 촥!
이미 두 번의 광역기에 피해를 입어서인지 암흑검으로 몇 번 베자 놈들은 무력하게 쓰러졌다.
[삼두적린사(三頭赤齡能)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재윤은 계속해서 놈들을 해치워 나갔다.
한 때는 이 숲을 지배했던 최상위 포식자였을 삼두적린사들이 지금은 재윤의 경험치 먹잇감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재윤의 예상대로 삼두적린사들은 이 인근 숲의 최상위 포식자들이었지만, 피 그림자의 영역 확장으로 위협을 느껴 점점 숲 안쪽으로 쫓겨들어왔다.
그러다 머문 곳이 지금 재윤이 찾은 곳이다.
거대한 절벽으로 앞이 가로막혀 올라가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천적이 나타난 것이다.
한때 최상위 포식자였던 만큼 재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10여 마리의 삼두적린사들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
나머지 녀석들이 재윤을 멀리서 포위한 채 지속적으로 독구름을 쏘아냈다.
그러나 맹독형 괴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독이 재윤에게 거의 통하지 않으니 삼두적린사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땅굴 속에서 곤히 자고 있던 대왕 삼두적린사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쿠우우우우우!”
세 개의 거대한 머리에 몸체의 길이만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말 그대로 전설의 용을 방불케하는 위압적인 외모.
콰르릉! 파지지직!
보스 급 괴물답게 놈은 눈에서 시퍼런 번갯불 같은 걸 날리기도 하고, 독의 위력도 매우 강력해 히드라 보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재윤의 전투는 길어졌다.
이미 천막의 안전 지대 지속시간은 끝났다.
천막은 자동 철거되어 베르타가 재윤의 아공간에 넣어둔 상태였다.
제칸은 독안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리서 대기 중이었고, 재윤은 대왕 삼두적린사의 공격을 피하며 먼저 일반 삼두적린사들을 죽여 지식 등급을 높여나가는 작전을 펼쳤다.
아쉬운 점은 삼두적린사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다 합쳐도 백 수십 마리밖에 안 되다 보니 간신히 C급 지식을 획득한 것이 다였다.
그래도 약점 파악이 가능한 C급 지식 덕분에 대왕 삼두적린사를 좀 더 쉽게 공략해 나갔고 결국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50이 되었습니다.]
[대왕 삼두적린사의 상자를 얻었습니다.]
[삼두적린사에 대한 지식이 C급에서 B급으로 상승합니다.]
‘후! 드디어 해치웠군.’
처음에는 가볍게 워밍 업을 한다는 기분으로 들어왔다가 결국 사력을 다해 싸우고 말았다.
그래도 덕분에 한 단계 레벨이 올릴 수 있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온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이더니 뜻밖의 알림이 들려왔다.
[당신은 각성자로서 고된 시련을 극복하고 레벨 50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은 운명이 정한 한계를 돌파했습니다.]
[더 이상 파투스의 장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이 말들이 대체 무슨 뜻일까?
다행히 설명 창이 갱신되며 관련 설명이 쭉 나와 있었다.
그것을 읽어본 재윤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이제 파투스 무기가 아니어도 괴물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에는 전투 능력을 펼치는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파투스 무기로 적을 가격해야 적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재윤이 그냥 주먹이나 평범한 망치로 괴물을 후려쳐도 괴물에게 타격을 줄 수 있게 된다는 뜻.
‘이러면 전투가 좀 더 편해지겠지.’
검을 휘두르다 발로 적을 차기도 하고, 어깨치기로 균형을 무너뜨릴 때도 데미지를 줄 수 있다.
특히 검만이 아닌 신체의 많은 부위를 무기로 사용해 전투를 펼치는 전쟁신의 검술(Lv50)이 이제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놈의 피를 뽑아야겠군.’
보스 급 괴물의 피는 꾸준히 뽑아두기로 했다.
언젠가 쓸데가 있을 테니까.
한편 그렇게 재윤이 대왕 삼두적린사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짙은 잿빛의 후드를 머리에 눌러쓴 3미터 장신의 괴인.
그의 표정은 후드의 음영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놀라움에 물들어 있었다.
‘대왕 삼두적린사를 단신으로 상대해 쓰러뜨리다니! 파필리오가 당한 것이 이해가 가는군.’
그러던 괴인은 돌연 흠칫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서 재윤이 그의 존재를 간파하고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군. 저 거리에서 어찌.’
작정하고 쳐다보려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장소였다.
그런데도 이 위치를 정확히 보고 있다는 건 시각이 아닌 기감으로 그의 존재를 간파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곧바로 괴인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피어났다.
‘역시 대단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그래봤자 이곳이야말로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대왕 삼두적린사의 혈액 채취를 마친 재윤이 절벽 쪽으로 슥 접근했다.
그는 아까부터 저 위에서 시선이 느껴져 거슬린 터였다.
절벽의 높이는 대략 200미터 정도.
깎아지른 듯 가파르게 되어 있었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장벽이 되지 못했다.
‘바람 이동! 질풍 이동!’
바람 이동을 통해 허공으로 이동한 상태에서 그 즉시 질풍 이동을 펼쳐 재이동!
이런 식의 이동은 전투 중에도 수시로 써먹을 만큼 익숙해졌다.
그런 식으로 단번에 70미터를 날아오른 재윤은 절벽의 돌출된 부분을 양 손으로 지탱하며 빠르게 기어올랐다.
사실 돌출된 부분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 부분이 파였으니까.
보너스 스탯을 근력으로 분배해 54.
거기에 민첩은 53이다.
힘과 민첩성이 인간의 한계를 몇 번이고 벗어난 그에게 절벽타기는 장난과도 같은 일.
굳이 파투스를 소모하지 않고 밑에서부터 기어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위에 있는 놈이 도주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공간 이동기도 펼친 것이다.
‘바람 이동!’
마치 거미처럼 빠르게 절벽을 기어오르다 10초가 지난 후 다시 공간 이동 25미터, 그런 식으로 그는 불과 수십 초만에 절벽 위로 올라오는데 성공했다.
‘사라졌군.’
절벽 위에 오른 재윤은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졌던 불쾌한 시선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재윤이 절벽을 타고 오르는 사이 어디론가 도주한 것이다.
혹시 실체가 아닌 환영이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사방이 트여있는데 이토록 순식간에 사라질 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저건 또 뭐야?’
절벽 위로 올라오니 아래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
현재 재윤이 있는 절벽 위쪽은 피 그림자 지대가 있는 방향으로는 절벽이지만 반대편으로는 완만한 봉우리의 정상과 같은 곳이었다. 봉우리 아래로 숲은 계속 펼쳐져 있었다.
다만 시야를 가리는 안개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명하게 시야가 트여 있었는데, 숲 저 멀리 수많은 고층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보였던 것이다.
‘대체 저건 또 뭐지?’
재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지금껏 건물들이야 숱하게 봐왔다.
숲을 이동하다보면 종종 눈에 띄는 것이 폐허가 된 건물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처음 재윤의 집에서부터 그랬듯 하나의 건물이 있고 그 주변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안개로 인해 다른 건물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기 보이는 도시는 멀리서 볼 땐 마치 지구가 이상하게 변하기 전의 멀쩡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