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 용사와의 만남 (1) >
“크아아악!"
“으아악!”
그 사이 멀리까지 도주했던 다크 엘프들이 제칸에게 모두 죽었다.
이로써 다크 엘프 로드 파필리오를 비롯한 모든 다크 엘프들이 죽은 것이다.
‘정말 지긋지긋한 놈들이었다.’
재윤은 습관적으로 혈액 채취 도구를 꺼내 다크 엘프들의 피도 뽑았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래봤자 괴물들이다.
피뽑는 걸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이놈들의 피도 어딘가 쓸데가 있겠지.’
재윤은 빠르게 파필리오의 혈액부터 채취했다.
[다크 엘프의 피(전설) 1병을 얻었습니다.]
[다크 엘프의 피(영웅) 1병을 얻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다크 엘프들의 피도 채취한 후 서둘러 이동했다.
빗발치듯 날뛰는 피 그림자의 공세가 재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광폭화 후유증으로 약해진 제칸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얼마를 이동했는지 모른다.
재윤은 계속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전히 피 그림자들은 날뛰고 있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제칸은 광폭화 후유증에서는 벗어났지만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힘드냐, 제칸?”
“괜찮습니다, 주인님.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제칸은 씩씩하게 외쳤지만 재윤이 볼 때는 아니었다.
안전 지대 천막이라도 펼치고 싶지만 피 그림자 지대에서는 불가능했다.
천막이 자동 설치되는 3분 동안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게 되면 설치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틈틈이 생명력 물약이라도 마셔라. 그리고 이건 초코바라는 거다.”
“생명력 물약은 없어도 됩니다. 먹을 거면 충분합니다.”
제칸은 음식만 먹어도 하락한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체질이라 했다.
그래서 재윤은 피 그림자들을 피하면서 빠르게 먹기 편한 초코바나 사탕, 과자와 같은 것들을 제칸에게 건네줬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주인님.”
제칸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그러자 옆에서 말없이 걷던 베르타가 재윤을 슥 노려보며 말했다.
“이봐, 인간. 이건 약속이 틀리지 않으냐?”
“무슨 약속?”
“그대들이 뭐든 먹으면 내게도 그것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나는 내가 아는 정보를 기꺼이 팔겠다고 한 것 같은데 말이야."
결국 왜 먹을 것을 제칸에게만 주고 자신에게는 주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재윤은 알았다는 듯 아공간에서 그것들을 꺼내 건넸다.
“이제 됐나?”
그러자 베르타는 초코바를 오물거리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맛이 아주 훌륭하구나. 이것도 인간들이 먹는 걸 보기만 했는데.”
“실컷 먹어라. 난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으로는 차별 안하니까.”
“고맙다. 뭐든 새로운 정보가 떠오르면 아끼지 않고 알려주마.”
그 말에 재윤은 문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나는 과연 이 나침반이 제대로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지 의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운명이고 어쩌고 나는 부모님을 찾는 게 우선이야. 그런데 계속 엉뚱한 곳으로만 안내하는 것 같아서.”
그러자 베르타가 초코바를 입에서 빼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운명의 나침반은 그대를 절대로 엉뚱한 장소로 인도하지 않으니 걱정마라. 나침반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그대가 원하는 장소로 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즉각 가고 싶다. 잡다한 재앙을 파괴하는 건 그 후에 해도 충분하지 않나?”
베르타는 고개를 흔들었다.
“운명의 나침반이 이끄는 방향은 사실 어느 정도 그대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다.”
“날 보호한다고? 그게 무슨 뜻인가?”
“그대는 지금 간절히 만나길 바라는 이들이 있는 그 방향으로 나침반이 즉각 안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최단 거리로 말이야.”
“물론이다.”
재윤은 끄덕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그 최단거리로 이동하는 그 중간에 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면 어쩔 셈인가? 그대의 능력으로 무슨 수를 써도 죽일 수 없는 강력한 괴물이 있다면?”
"......."
재윤은 잠시 침묵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 나침반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 내게 방향을 알려준다는 건가?”
“물론이다. 운명의 나침반은 그대를 가능한 죽음으로 내몰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현재 그대의 능력에서 감당 가능한 괴물이 있는 곳으로만 이끌어 그대의 능력을 높여가며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재윤의 레벨이나 전투력에 맞는 괴물이 있는 곳으로만 안내한다는 뜻이었다.
30레벨이 되면 30레벨 사냥터로, 40레벨이 되면 40레벨 사냥터로!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리일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혹은 나나 성 관리자 오르도처럼 그대가 만났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이가 있는 곳을 경유하기도 하지.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대는 나침반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가는 기계가 아니니까. 특히 지금 그대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재앙과 관련된 물건을 얻은 일은 나침반이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침반은 재윤을 이곳 피 그림자 지대로 안내하긴 했지만, 지하 세계가 있는 곳은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데아의 의지를 얻기 원했다면 그 동굴로 처음부터 안내했어야 했겠지만, 정작 그곳을 찾은 것은 제칸이었으니까.
“마왕의 마력구와 아르데아의 의지가 정말 그런 거라면 차라리 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거야 그대가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경유야 어떻든 그대의 운명 안에 들어온 일들을 회피한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큰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모든 지혜와 힘을 다해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베르타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내가 아는 지식의 한도내에서 추측한 것일 뿐, 솔직히 나 또한 나침반의 정확한 의도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대가 찾는 이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당장 내일이라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야.”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군.”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이미 비슷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하고 베르타에게 한 번 물어봤을 뿐이다.
질문을 해야 나오는 얘기도 있으니까.
‘어쨌든 계속 가보자.’
무작정 아무 곳이나 돌아다닌다고 부모님을 찾을 방법은 없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믿을 건 이 나침반 뿐이니까.
* * *
나침반을 따라 다시 이동한지 대략 3일이 지났다.
여전히 피 그림자 지대는 계속 이어졌다.
‘정말 끝도 없네.’
아무리 재윤이 불가사의한 체력의 소유자라지만 3일을 연속으로 잠도 자지 않고 걸었으니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칸 또한 이제 한계가 온 듯 발걸음이 무거워보였다.
재윤이 수시로 먹을 것을 준 덕분에 지금까지 어떻게 버티고는 있지만, 최대한 빨리 휴식이 필요했다.
‘이런 게 지구 전역을 뒤덮는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긴 하겠구나.’
공연히 재앙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재윤이 레벨 85가 된다면 이 재앙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었다.
“주인님! 앞쪽에 인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예, 틀림없습니다.”
제칸이 후각으로 감지한 것이라면 분명할 것이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피 그림자 지대가 끝나는 건가?”
“숲의 냄새도 느껴지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제칸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었다.
재윤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흉측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숲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피 그림자 지대만 아니라면 어디든 환영이었다.
그렇게 잠시 갔을까?
핏빛의 안개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가 사라지자 더 이상 피 그림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앞에 숲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드디어 숲입니다, 주인님!”
제칸은 라이칸슬로프 상태에서 즉각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고생 많았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구나.”
재윤은 당장이라도 안전 지대의 천막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피 그림자와 이 숲의 경계에서는 괴상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제칸의 말대로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보였던 것이다.
대략 10여 명의 사람들.
남녀노소가 섞여 있었는데 행색들이 말이 아니었다.
다들 피골이 상접해 있었으니까.
며칠은 굶은 듯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몸 상태에서도 랜턴을 각각 손에 쥐고 빛을 쏘아내고 있었는데, 그 대상은 다름아닌 피 그림자 괴수들이었다.
‘뭐 하는 거지?’
더욱 황당한 일은 사람들이 랜턴으로 쏘는 그 빛을 피 그림자 괴수들이 싫어하는 듯 뒤로 연신 밀려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크르르르!"
“크으으으!"
도합 4마리의 피 그림자 괴수들.
그것들은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지만 랜턴의 빛을 계속 비추자 결국 숲에서 방향을 돌려버렸다.
그러다보니 재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사람들이 그제야 재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앗, 괴물이 갑니다. 조심해요!”
재윤은 암흑검을 휘둘러 피 그림자 괴수들을 가볍게 처치했다.
[201코인을 얻었습니다.]
[182코인을 얻었습니다.]
현재 피 그림자에 대한 지식은 C급까지 터득한 상태다.
오면서 간혹 마주쳤는데 그 숫자가 많지 않았고, 멀리서부터 도망가는 경우가 많아 작정하고 쫓지 않으면 잡기가 힘들었다.
방금 전에는 말 그대로 얻어걸린 격.
녀석들을 해치우면 코인 수입이 제법 쏠쏠한 편이었다.
한편 사람들은 피 그림자 괴수들을 재윤이 가볍게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걸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저런!”
“맙소사! 어떻게 저게 가능해?”
사람들은 재윤을 무슨 귀신보듯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그때 웬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 대기하세요. 저 분으로부터 사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으니 제가 가서 얘기해보겠습니다.”
그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백색의 특이한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그 청년 역시 피골이 상접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눈빛은 무척이나 맑았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는 재윤을 향해 뭔가 격동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 위험합니다, 마법사님.”
“저 자가 사람이 맞는지도 확인해 봐야 합니다. 공격이라도 해오면 어떻게 해요?”
“맞아요. 용사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사람들이 그 청년을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젓고는 재윤을 향해 다가왔다.
“저는 라넨 대륙의 용사 루니스 님의 수석 마법사 로벨입니다.”
재윤은 순간 황당했다.
용사 루니스?
그리고 수석 마법사라니!
각성자는 아닌 것 같았다.
저 뒤의 사람들과 달리 이 로벨이라는 자는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로벨은 물었다.
“피 그림자는 저는 물론이고 용사 루니스 님도 소멸시키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분명 방금 전 피 그림자 괴수들을 소멸시켰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의 눈빛에는 재윤에 대한 경계심보다는 뭔가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재윤은 대답했다.
“저는 강재윤이라고 합니다.”
“강재윤? 그럼 당신도 저분들처럼 이곳 지구라는 세계에 살고 계신 분이군요.”
“그렇습니다.”
재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벨은 돌연 허리를 숙였다.
“그럼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죄송하다니요?”
“갑자기 세상이 이상하게 뒤바뀌며 라넨 대륙에 있던 재앙이 이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재앙이요?”
“저 피 그림자들은 천 년 전 라넨 대륙의 용사였던 아르데아가 흑화하며 만들어낸 대재앙입니다. 저희 대륙에 있던 재앙을 해결하지 못해 지구에 폐를 끼치게 되었으니 당연히 죄송한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라넨 대륙이라면?
흑화의 용사 아르데아가 바로 라넨 대륙의 용사라고 재윤도 듣긴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앞의 로벨은 바로 그 라넨 대륙이라는 이세계에서 온 존재인 것이다.
“저 뿐만 아니라 라넨 대륙의 당대 용사이신 루니스님도 함께 오셨죠. 그 분은 어떻게든 그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중이십니다.”
“용사까지 왔다는 말입니까?”
“네. 잠시 후면 그 분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재윤은 황당하긴 했다.
그러나 만약 로벨의 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든든한 아군이 생긴 셈이었다.
말로만 듣던 용사라면 매우 강한 존재일 테니 말이다.
콰아아앙!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렸다.
콰르르릉! 콰콰아아앙!
연이어 계속 들리는 엄청난 굉음!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피 그림자 지대의 안개를 뚫고 붉은 색의 거대한 용오름이 형성되어 있었다.
‘저건 또 뭐지?’
그동안 3일이 넘게 피 그림자 지대를 횡단해오며 저런 용오름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끼칠 정도의 거대한 규모.
저런 용오름이 이곳 숲으로 온다면 나무고 사람이고 남아날 것이 없을 것이다.
“모두 일단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재윤이 다급히 외치자 로벨이 미소 지었다.
“안심하세요. 저 흑화한 용사는 피 그림자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저 용오름이 흑화한 용사라고요?”
“네."
재윤은 기막혔다.
‘정말 저게 용오름이 아니라 인간이 낸 기운이라는 건가?’
흑화한 용사 아르데아가 만들어낸 기운.
붉은 기운으로 뒤덮여 있어 그 아르데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 용오름은 이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초부터 그곳에 용오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쪽은 다시 붉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 로벨이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지금 용사 루니스 님이 흑화한 용사 아르데아와 전투를 벌이다 돌아오셨습니다. 아, 정확히 말씀드리면 쫓겨오셨지만요.”
그곳엔 웬 봉두난발 상태의 여성 하나가 나타나 비틀거리고 있었다.
외모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붉은 머리에 두 눈의 홍채도 붉은 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빛이 강해 여성이지만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하아! 죽을 뻔했다.”
그녀는 푸른 검신의 멋들어진 검을 의지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찢기고 깨지고 멍들고 만신창이 상태.
그런데도 눈빛만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로벨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루니스 님 괜찮으십니까?”
“이 모습이 괜찮아 보여? 죽을 것 같아. 어서 치료 좀.”
“아시다시피 마나가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포션도 다 떨어졌고요.”
“그래서 날 이꼴로 그냥 놔두겠다고? 너무하잖아.”
“어차피 루니스 님은 잠깐 쉬면 회복되시잖아요. 저의 이 마나는 숲을 지키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로벨의 말에 루니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의 마나가 다 떨어지면 이 숲도 끝장이겠지. 내가 굶지만 않았어도 아르데아에게 일방적으로 밀릴 일은 없었을 텐데."
그녀는 배를 만지며 괴로워했다.
부상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괴롭다는 표정이었다.
“으으! 저도 괴롭습니다. 저도 굶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마나가 바닥을 기고 있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로벨 또한 배를 만지작거리며 한탄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혹시 음식을 구해오셨습니까?”
루니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못 구했어.”
“큰일이군요. 매일 조금 생겨나는 열매들로만 사람들이 버티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만.”
그때 루니스가 돌연 재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방금 전에 이 숲에 도착하셨지요. 강재윤이라는 분으로 피 그림자를 소멸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루니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재윤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