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죽음의 그림자 지대 (2) >
희망 성을 떠난지 대략 1시간.
울창한 숲만 펼쳐져 있을 뿐 별다른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재윤이 나침반의 방향을 알려주면 로사엔이 선두에서 길을 안내했고, 그 뒤를 재윤, 세붐, 제칸의 순서로 따라갔다.
그런데 묵묵히 걸어오던 소년 제칸이 갑자기 재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주인님, 슬슬 배가 고프지 않으신가요?”
“전혀.”
“그러시군요. 저는 이미 배가 꺼진지 오래입니다.”
1시간 전 희망 성에서 든든하게 먹고 출발했는데 벌써 배가 꺼졌다니.
그러자 세붐이 어이없다는 듯 제칸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식충이 늑대 녀석 같으니! 방금 전 배고프다고 하기에 특별히 아끼던 걸 줬는데 벌써 배가 꺼진 거냐?”
“그 애벌레 말린 건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고블린.”
“내 일주일치 간식이다, 이놈아. 그걸 한입에 삼켜놓고 간에 기별이 안 가?”
“그래도 배고픈 데 어쩌란 말이냐?”
제칸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기죽은 고양이같은 얼굴.
이럴 때 보면 어딜 봐도 늑대 괴수 라이칸슬로프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좀 너무하긴 했다.
고작 1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일주일은 굶주린 듯 풀죽은 표정이라니.
그러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야 녀석이 인간 소년의 모습이지만, 라이칸슬로프의 본체로 돌아가면 몇 배는 커지기 때문이다.
그 덩치를 유지하려면 많이 먹어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이런 것도 혹시 먹냐?”
재윤은 아공간에 있던 김밥을 한 줄 꺼내 줘봤다.
그러자 제칸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한입에 넣어 씹었다.
“맛있습니다.”
“고기만 먹는 줄 알았더니 김밥도 잘 먹네.”
“예, 저는 고기든 곡물이든 뭐든 가리지 않습니다. 고기는 날 것도 좋고 익힌 것도 잘 먹습니다.”
육식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잡식성 괴물이었던 것이다.
제칸은 김밥 한 줄을 꿀꺽 삼키고 아쉬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 없냐는 듯한 표정.
“한 줄 더 먹어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주인님.”
녀석은 재윤이 김밥 한 줄을 더 주자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그럼 또 가자.”
“예, 주인님."
로사엔이 앞장 서서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숲은 계속 이어졌다.
한참 걷다가 잠시 멈춰서 뭔가를 먹거나 쉬고, 다시 걷는 것을 반복한지 대략 하루가 지났을 무렵.
차분히 앞에서 길안내를 하던 로사엔이 돌연 멈춰서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저 앞의 안개가 심상치 않아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는 방대한 붉은 색의 안개가 피어 있었다.
마치 피로 만들어진 안개 같았다.
그런데 그저 단순히 안개의 색만 꺼림칙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느껴졌다.
“저 안에 괴물들이 있는 것 같다.”
나침반의 방향이 저곳을 가리키고 있어 어쨌든 저길 통과해야 한다.
재윤이 앞장 서려하자 뒤따라오던 제칸이 다급히 말했다.
“저기는 피 그림자 지대입니다, 주인님.”
“피 그림자?”
“진짜 피는 아니고 피처럼 붉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마구 날아듭니다.”
“그런 괴물도 있어?”
“괴물처럼 보이지만 괴물이 아니고 그냥 좀 괴상한 자연 현상입니다. 죽일 수 없고 그냥 피하거나 버텨내야 하죠. 제가 한 번 들어가 봤는데 꽤 피곤한 곳입니다.”
제칸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 못지 않는 전투력을 지닌 제칸을 긴장하게 할 정도라니.
그렇다면 만만치 않은 곳임이 분명했다.
“모두 조심해라.”
괴물이 아닌 자연 현상이라는 말에 재윤은 일단 진입해보기로 했다.
제칸은 이미 들어가봤다고 했고, 세붐과 로사엔은 민첩성이 높으니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 그림자 지대에 들어선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정말로 핏빛의 그림자 같은 것들이 칼날처럼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파파파! 파파팟-
이런 게 자연 현상이라니!
그 속도가 워낙 빨라 재윤도 다 피할 수가 없었다.
일부는 맞고 버텨야 하는데, 보호막의 내구도가 빠르게 깎여나갔다.
“아아악!”
“크악!”
그러다 보니 로사엔과 세붐에게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재윤은 바로 앞에서 피범벅이 된 채 비틀거리는 로사엔을 안고 뒤로 빠져나갔다.
“제칸, 세붐을 데리고 나와.”
그 사이 라이칸슬로프의 본체로 변신한 제칸은 피 그림자에 맞고도 큰 타격이 없는 듯 멀쩡했다.
그는 세붐을 한쪽 팔에 안고는 피 그림자들의 공세를 몸으로 받아내며 빠져나왔다.
재윤은 곧장 생명력 물약을 이용해 세붐과 로사엔을 치료했다.
그들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심려를 끼쳐 죄송해요, 마스터.”
세붐과 로사엔은 결코 약하지 않다.
특히 세붐은 처음에 비해 몇 배는 강해졌고, 몸에 보호막도 두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가공스러운 피 그림자의 공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로사엔에게는 더더욱 재앙과도 같았다.
피 그림자 지대는 숲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숲의 힘을 빌릴 수도 없는데다, 오직 그녀의 민첩성만 의존해서 피해야 하는 상황.
재윤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로사엔은 이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희망 성으로 돌아가서 대기하는 게 좋겠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침반이 저곳을 가리키고 있으니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 지역이 방대해 빙 돌아서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로사엔과 세붐은 전투력을 떠나 각자가 가진 특유의 능력으로 길을 찾거나 괴물들을 감지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들이 없으면 재윤도 적지않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주인님, 저의 능력이 부족해 죄송합니다.”
“마스터께 정말 면목이 없군요.”
세붐과 로사엔이 풀 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재윤은 미소 지으며 그들을 격려해줬다.
“건너편에서 안전 지대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연결해서 너희를 부를 테니 그동안 푹 쉬고 있도록 해.”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인님.”
“부디 조심하세요, 마스터.”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제칸, 가자!”
“예, 주인님."
제칸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세붐 등을 향해서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은 내가 잘 모실 테니 염려마. 그럼 다음에 보자고!”
“주인님을 잘 부탁한다.”
세붐은 가방에서 애벌레 간식을 잔뜩 꺼내 제칸에게 건냈다.
제칸의 표정이 환해졌다.
“고맙다, 고블린. 잘 먹겠다.”
제칸은 그것들을 한입에 털어놓고는 곧바로 재윤을 따라갔다.
세붐과 로사엔은 재윤 등이 다시 피 그림자 지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 * *
재윤은 차분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끝없이 날아드는 피 그림자들의 공세 앞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긴 불가능했다.
보호막의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10여분 정도는 버텼다.
재사용 시간이 1분 30초이니 보호막을 펼치지 못해 곤란할 일은 없을 것이다.
희망 성의 루나티쿠스 던전에서 흡혈귀의 혈액도 잔뜩 뽑아둔 터라 피가 부족할 일도 없었다.
“지금 보니 피 그림자가 다 똑같은 게 아니다. 어떤 건 강하고 어떤 건 상대적으로 약해. 강하게 날아드는 것만 피하면 받는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어.”
“예, 주인님.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런 걸 가려내서 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칸 정도는 되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일 뿐.
세붐과 로사엔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제칸은 이미 몸이 알아서 본능적으로 강한 피 그림자를 피해내고 있었다.
거기에 불가사의한 맷집과 회복력으로 인해 상태도 멀쩡했다.
먹을 것을 많이 밝혀서 그렇지 확실히 전투력에 있어서는 세붐과 로사엔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주인님! 저쪽에 안전한 장소가 있습니다.”
게다가 피 그림자 지대 내에서 피 그림자들이 없는 장소를 귀신처럼 찾아냈다.
지면이 움푹 파인 공간.
그 안쪽의 큼직한 동굴.
놀랍게도 그쪽에는 피 그림자들이 날뛰지 않았다.
보호막이 존재하는 안전 지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피 그림자 지대 내부에서는 안전 지대와 다름 없는 곳. 이런 장소를 멀리서도 감지하다니 놀라운 능력이었다.
“잘됐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가자.”
피 그림자 지대에서만 2시간 가까이 이동한 상태라 잠깐 쉬기로 했다.
동굴의 입구는 제법 넓었다.
안쪽으로도 길게 이어져 있는 것 같았는데, 갈수록 비좁아지는 걸로 보아 막혀 있는 듯했다.
잠시 쉬었다 갈 것이니 굳이 안쪽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윤은 아공간에서 주먹밥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는 추가로 멧돼지 고깃덩이 하나를 꺼내 제칸에게 내밀었다.
지금쯤 배가 고플 때가 됐을 테니까.
“고맙습니다, 주인님.”
역시나 제칸은 신이 난 표정으로 고깃덩이를 뜯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열댓 명이 먹어도 배부를만한 고깃덩이인데 그것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다니.
그러나 식량이 떨어져 굶을 걱정은 없었다.
언제든 코인 나무 베르타를 소환해 코인을 주고 음식을 사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당분간은 아공간에 잔뜩 있는 식량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적당히 쉰 것 같으니 그만 출발하자.”
“예, 주인님."
잠깐의 휴식과 충분한 음식 섭취로 컨디션은 최상으로 돌아왔다.
재윤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동안 이동했다.
그런데 제칸이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한쪽을 노려보며 다급히 외쳤다.
“주인님! 뭔가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뭐지? 이런 곳을 떠도는 괴물이 있는 건가?”
피 그림자가 몰아치는 험지를 떠돌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한 괴물임을 의미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전투 준비를 해라.”
“예, 주인님."
재윤은 광혈검을 빼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윤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사라진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였다.
“파필리오! 그렇지 않아도 널 찾고 있었는데 알아서 나타나줬구나.”
“사악한 다크 엘프 놈! 날 속여 감히 주인님께 대항하게 만들었겠다. 용서 못해!”
제칸도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자 파필리오가 두 눈에서 붉은 혈광을 번뜩이며 차갑게 웃었다.
“가소로운 놈들! 내가 여기서 네놈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모르는가.”
특이하게도 피 그림자들이 그의 몸 근처에서 증발되듯 사라지고 있었다.
보호막으로는 불가능한 일.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파필리오의 뒤에 있는 거대한 괴수들.
그것은 수많은 피 그림자들이 뭉쳐있는 것과 같은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형상이었다.
각각의 괴수들은 두 개의 안광이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는데 마치 악마의 눈을 보는 듯했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네놈이 가지고 있는 마왕의 마력구를 내놓으면 살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면 바로 여기가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재윤은 차갑게 웃었다.
“대체 마왕의 마력구가 뭐라고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그것은 알 바 없고 너는 그저 내게 내주기만 한다. 그러면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으마.”
“내 대답은 이거다.”
재윤은 그 즉시 검기파(Lv3)를 날렸다.
심상치 않은 괴수들이 있는 이상 길게 끌 것 없이 선공을 날려 파필리오부터 해치워버리는 것이 상책인 것이다.
그리고 제칸 역시 재윤의 검기파가 날아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손에서 뭔가를 쏟아냈다.
쿠아아아앙!
마치 맹수의 포효와 같은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의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일어나 파필리오의 몸을 덮쳤다.
제칸의 필살기 중 하나인 피의 폭풍이었다.
“크으으윽!”
파필리오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는지 뒤로 쭉 밀려가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시커먼 구름같은 것이 이내 그의 몸을 휘돌더니 금세 멀쩡해져버렸다.
“가소로운 놈들! 여기서 내게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게 해주마!”
곧바로 그의 뒤쪽에 있던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재윤은 즉각 필살기를 펼쳐 놈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바람의 화살에 질풍의 화살까지 적중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돌진해 광혈검으로 마구 가격해봐도 흠집조차 없었다.
제칸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 이놈들은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놈들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피 그림자와 동일한 것이다보니 반격은 불가능하고 그저 공격을 피해야만 하는 상황.
“어딘가 약점이 있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 눈을 가격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파필리오가 괴수들을 조종할 거라 생각해 주변을 살폈지만 그 사이 놈은 종적을 감춰버린 후였다.
결국 재윤과 제칸은 수십 마리의 괴수들에 둘러싸여 난전을 벌여야 했다.
괴수들 자체의 움직임은 그리 대단할 것 없었다.
문제는 도무지 공격이 통하지 않는데다 놈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놈들의 공격을 피하다 보니 피 그림자들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적지않은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안 되겠다. 아까 그 동굴로 돌아간다, 제칸.”
“저를 따라오십시오, 주인님!”
제칸은 괴수들을 따돌리고 동굴 쪽으로 뛰었다.
방향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곳이라 제칸이 아니라면 그 동굴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저깁니다, 주인님.”
잠시 후 제칸은 동굴을 정확히 찾아냈다.
그 사이 제칸은 전신이 만신창이 상태였다.
집요하게 쫓아오는 괴수들의 공격을 피하느라 피 그림자들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받아서였다.
그런데 괴상하게도 동굴로 들어오는 순간 괴수들이 입구 앞에 멈춰섰다.
그저 섬뜩한 눈빛으로 노려보고만 있을 뿐 들어오지 않았다.
“저놈들이 여긴 못들어오는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다.”
이상한 일이었다.
괴수들 뿐 아니라 피 그림자의 폭풍도 이곳만은 침범하지 않는 걸 보면 이 동굴이 뭔가 특별한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혹시 여기 안전 지대인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안전 지대.
그러나 만약 그런 곳이라면 뭔가 시스템 알림 같은 것이 떠야 정상이었다.
“그 안에서 언제까지 버틸 것 같으냐? 살고 싶다면 마왕의 마력구를 내놓아라, 인간 놈!”
파필리오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이미 동굴 밖은 수백 마리의 괴수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그 괴수들 사이에서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의 모습이 보였지만, 괴수들을 뚫고 그 놈을 처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굴 안쪽에 들어가보자.”
아까는 막혀 있다고 생각해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굴은 생각보다 길었다.
아까 봤던 대로 폭이 좁아지긴 했지만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각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폭이 너무 좁아져 제칸은 라이칸슬로프의 본체에서 인간 소년의 형태로 변신해야 했다.
“주인님! 다크 엘프 놈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숫자가 스물이 넘습니다! 그런데 전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된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제칸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 비좁은 동굴에서 거대한 라이칸슬로프로 변신하면 지형에 끼어버릴 테니까.
설마 이런 황당한 상황이 올 줄이야.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은 내가 처치하면서 갈테니 넌 일단 앞으로 빨리 이동해.”
재윤은 그렇지 않아도 다크 엘프들이 추격해 올거라 예상했다.
피 그림자 괴수들이야 무엇 때문이지 동굴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다크 엘프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파필리오 뿐 아니라 다크 엘프들이 모두 이곳에서 나를 노리고 있었던 건가? 특이한 일이군. 대체 그놈들은 내가 이곳으로 올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정작 재윤조차 어제 흑요정의 시험이 끝난 이후에야 나침반의 자침을 통해 이동 방향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다크 엘프들은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특이한 일.
‘어쨌든 날 쫓아 들어온 건 너희들의 실수다.’
지금처럼 비좁은 공간이라면 포위가 불가능한 상황.
흑요정의 시험에서 파필리오와 비슷한 전투력의 다크 엘프를 셋까지 상대해 승리했던 재윤이었다.
하물며 1대 1로만 붙는다면 다크 엘프들이 아무리 몰려와도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