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전쟁신의 강림 (2) >
화악!
재윤의 두 눈에서 피어난 안광이 어둠을 뚫고 케사르나를 향했다.
이글거리는 푸른 불꽃과 같은 안광.
그것이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섬뜩한 기세를 뿜어냈다.
저 끝없이 확대되는 분노의 불꽃 앞에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으으! 저놈이 어떻게?’
그저 재윤과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케사르나는 상당한 혼란과 공포감을 느끼고 말았다.
어째서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 저러한 기세가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러나 그 순간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재윤의 몸에서부터 피어난 기운이 성 전체를 휘돌더니 점차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스스스-
그 형체는 성의 중심으로부터 탑처럼 솟아오르며 하나의 흐릿한 형상으로 변했다.
신장이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인 전사.
흐릿한 환영으로 되어 있어 정확한 얼굴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거인의 두 눈에서 피어나는 푸른 안광이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그 푸른 안광이 발하는 빛은 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짙은 용기와 투지가 솟아나게 했다.
반면에 괴물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괴물들은 무슨 천적이라도 만난 듯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괴물들의 거친 포효도, 심지어 시끄럽게 울어대던 밤벌레들의 소리조차 사라졌다.
“으으! 저놈이 어떻게 저런 능력을!”
마족의 환상 공격에 하찮은 인간이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데, 그것도 그녀를 두렵게 만들만큼 강한 기세를 뿜어낼 줄이야. 게다가 성안에 있던 환영이 왼손을 뻗자 그녀의 몸이 그대로 둥실 떠올라 그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가소로운 인간 놈! 내가 누군줄 알고 감히!”
그녀는 창을 휘두르며 맞섰다.
잠시 당황했지만 마왕의 군단장인 그녀가 이런 도전을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환영 거인의 검술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의 창을 노련하게 쳐내며 순식간에 파고들더니 단번에 그녀의 목을 잘라버렸다.
서걱!
환영이지만 진짜로 목이 잘리는 것같은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끄아아악!”
동시에 케사르나의 처참한 비명도 정적을 깨뜨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 순간 환영 거인이 잘라낸 케사르나의 머리를 다크엘프들이 있는 곳을 향해 집어던진 것이다.
쉬이이이! 콰아앙!
이 모든 것은 물론 환상이었다.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과 괴물들에게는 그 환상이 현실 그 자체였다.
그들이 그토록 신봉했던 상급 마족 케사르나가 비록 환상이지만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공포심을 주었다.
“쿠아아아악!”
“으아아악!”
다크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동요하자 괴물들도 전의를 상실했다.
사방이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 쥐죽은 듯 몸을 떨고 있던 괴물들이 앞다투어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급히 외쳤다.
이미 수습 불가였다.
이대로 싸우면 피해만 늘어나고 말 것이다.
“피, 피해라! 퇴각하라!”
케사르나의 머리에 이어 그녀의 토막난 몸체들이 그런 식으로 사방에 던져졌다.
콰아아앙! 콰아앙!
그 폭발의 환상에 휘말린 괴물들 중 일부는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비록 환상일 뿐이지만 전투력이 약한 일부 괴물들은 극도의 공포심에 심장이 멎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토록 완강하게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던 무수한 괴물들이 갑자기 성에서 생겨난 거대한 환영 하나에 의해 일제히 겁을 먹고 도주하고 있었다.
성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조차 도저히 믿기지 않은 신비한 기적!
이 상황이 너무도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지금 상황에 가장 놀란 것은 재윤이었다.
운명의 탑에 들어가 능력을 하나 얻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줄은 그도 몰랐기 때문이다.
* 전쟁신의 강림(Lv5)
-특화능력(등급 : 초월)
-시전자의 의지로 전쟁신의 환영을 만들어 아군에게는 용기를 주며 적에게는 강력한 공포와 함께 전의를 상실하게 한다.
-명성 레벨이 상승할수록 환영의 능력 및 공포 효과 상승한다.
-시전 제한 : 소유한 성 혹은 안전 지대에서만 발동 가능하다.
-재사용 시간 : 24시간
-예외 : 초월적 존재의 환상 공격을 받게 되면 장소 불문 발동 가능하다.
S급을 넘어서는 초월 등급의 특화 능력!
방금 전 운명의 탑에서 이 능력을 얻었을 때 재윤은 고작 환영을 만들어 적에게 공포를 준다는 내용에 적지않게 실망했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데미지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성을 방어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겁이란 걸 모르는 괴물들을 패닉상태에 빠뜨려 철수시키는 건 아군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그것을 환영 공격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전쟁신의 강림인 것이다.
명성 레벨이 높을수록 위력이 증가하며 하루에 한 번 펼칠 수 있지만, 그 한 번의 시전으로 잘하면 적의 전쟁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이 무적은 아니었다.
현재 명성 레벨로 대적할 수 없는 존재가 환상 공격을 펼쳐온다면 전쟁신의 강림으로도 물리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상급 마족 케사르나의 환영 정도는 Lv5의 명성으로 충분히 상대했지만, 그 이상의 존재들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만약 마왕 데사오라는 놈이 나타나 환상 공격을 해온다면 당해낼 수 있을까?
상급 마족과 마왕은 차원이 다른 존재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그런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으니, 앞으로는 성주로서의 명성 레벨을 올리는 것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
명성 레벨을 올리는 최고의 방법은 재앙을 파괴하는 것!
각종 전쟁에서 승리해도 명성이 오르긴 하지만, 재앙을 파괴하는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당신은 성을 포위한 대규모 적을 격퇴하여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명성이 상승했지만 아직 명성 레벨은 Lv5 그대로였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
전쟁신의 환영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사방으로 괴물들이 달아나는 중이었다.
[321코인을 얻었습니다.]
[53코인을 얻었습니다.]
[151코인을 얻었습니다.]
그 사이 코인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비록 환상 공격이었지만 극도의 공포로 인해 심장이 멎어 즉사한 괴물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중급 생명력 물약을 얻었습니다.]
[거대 식충식물의 촉수(희귀)를 얻었습니다.]
[철갑 독지네의 중갑(희귀)을 얻었습니다.]
[맹독 슬라임의 지팡이(희귀)를 얻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충실한 루팅 일꾼인 베르타가 부지런히 사방을 누비며 드롭템들을 줍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공포에 빠져 도주하는 괴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 기회!
재윤은 즉각 광혈검을 번쩍 쳐들고 보호막 밖으로 나갔다.
아쉽게도 다크 엘프들은 안 보였다.
또한 보스 급 괴물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보스 급답게 그것들은 공포로 인한 혼란 상태에서 빠르게 벗어나 전력으로 도주한 것이다.
그러던 재윤의 눈에 철갑 독지네 보스 한 마리가 도망치는 모습이 들어왔다.
‘질풍 이동! 검기파! 질풍의 화살!’
곧바로 놈을 따라붙으며 필살기를 연속으로 퍼부었다.
광혈검 앞에 철갑은 종이처럼 베어졌다.
철갑 독지네 보스는 제대로 대항도 못해보고 쓰러졌다.
[4000코인을 얻었습니다.]
[철갑 독지네에 대한 지식이 B급에서 A급으로 상승합니다.]
[철갑 독지네의 상자를 얻었습니다.]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대량의 코인과 지식을 얻었다.
아쉽게도 더 이상의 보스 급 괴물은 없었다.
[철갑 독지네의 피(전설) 1병을 얻었습니다.]
[철갑 독지네의 피(영웅) 1병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보스 급 괴물이니 피는 채취해야 할 것이다.
혈액을 채취한 후 주변에 있는 일반 괴물들을 쓸어버렸다.
보스 급 괴물과 달리 보통의 괴물들은 여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도주조차 못하고 있는 녀석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그때.
특이한 녀석들이 보였다.
얼굴은 늑대,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괴물 수백여 마리가 도주하지 않고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칸슬로프들이었다.
‘저놈들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다른 괴물들처럼 공포에 질려 있는 건 비슷했지만, 그렇다고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없었다.
대략 백여 마리가 오와 열을 맞춘 상태 그대로 있다가 재윤이 다가가자 즉각 엎드렸다.
“항복을 받아주십시오!”
“부디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이칸슬로프들은 늑대인간들이다.
보통 땐 인간과 다름없다가 전투를 벌이면 늑대 괴수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재윤이 다가가자 그들은 모두 인간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괴수 특유의 기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중 가장 강한 녀석은 선두에 있는 1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소년.
놀랍게도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 못지 않은 기세였다.
그리고 그 바로 뒤쪽에 엎드려 있는 사내 두 명.
그들 또한 다크 엘프들에 못지 않은 기세를 풍기는 보스 급 괴물들.
딱 봐도 저 셋이 라이칸슬로프들을 이끄는 우두머리들이었다.
서열은 소년이 가장 높은 것 같았다.
푸른 색의 짙은 장발을 가진 소년의 눈빛 또한 짙은 청색이었다.
앳되어 보이지만 강인한 인상.
그러나 재윤을 바라보는 표정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소년은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저희 푸른 달의 라이칸슬로프들은 고대부터 전신을 섬기는 종족입니다. 사악한 다크 엘프 놈들에게 속아 감히 전신의 화신이신 당신의 성을 공격하는 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전신?”
“그렇습니다, 전신의 화신이시여!”
재윤이 환영으로 보여준 전쟁신의 환영을 보고 라이칸슬로프들은 그들이 섬기던 전신이라 생각한 듯했다.
사실 전쟁신이나 전신(戰神)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호칭이긴 하지만.
“그래서 항복하겠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대적할 생각없으니 부디 용서해주세요. 용서를 비는 의미로 제가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 순간 고블린 세붐 때와 같은 알림이 떴다.
[푸른 달의 라이칸슬로프 로드 제칸을 당신의 노예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역시나 소년이 라이칸슬로프들의 로드였다.
[괴물을 노예로 받으면 대상을 죽인 것의 절반에 해당하는 보상과 경험치를 얻습니다.]
[괴물 노예는 주인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괴물 노예는 언제든 죽일 수 있으며 그때 나머지 절반의 보상과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때 재윤의 옆으로 아름다운 엘프 하나가 새처럼 날아와 내려섰다.
로사엔이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마스터, 푸른 달의 라이칸슬로프들이라면 믿을 수 있는 종족이에요. 저들은 인간들을 절대 해치지 않으며 특히 저희 세마르 숲의 엘프들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죠. 어쩌다 다크 엘프들에게 속았는지 모르지만 용서해주시면 마스터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로사엔이 그 말을 하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이칸슬로프들이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고는 호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특히 로드 제칸은 로사엔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세마르 숲의 현자 엘프 로사엔! 그대가 이 분 옆에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오랜만이구나, 제칸 ”
로사엔이 미소 지었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노예로 받아들이면 무조건 부릴 수 있게 된다.
제칸을 비롯해 그의 부하들도 모두 재윤의 노예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로사엔이 보증하는 녀석들이라면 더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 받아주마.”
재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푸른 달의 라이칸슬로프 로드 제칸이 당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3000코인을 얻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푸른 달의 보물 상자를 얻었습니다.]
[라이칸슬로프에 대한 지식이 D급에서 A급으로 상승합니다.]
세붐을 노예로 받았을 때처럼 제칸을 해치웠을 때 얻을 보상의 절반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데 그에 때맞춰.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43이 되었습니다.]
오늘 환영 공격에 즉사한 괴물들의 경험치에 철갑 독지네 보스, 그리고 제칸에게서 얻은 경험치가 합쳐져 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재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제칸의 상태 창을 살펴봤다.
【노예】 세붐(충성도 Lv15), 제칸(충성도 Lv1)
노예 창에 제칸이 추가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녀석은 노예가 된 순간 이미 복종심이 100이었다.
* 노예 제칸
-주인 : 강재윤
-종족 : 라이칸슬로프
-복종심 : 100/100
-충성도 : 1단계
-특수능력 : 광폭화, 피의 폭풍, 혈랑 질주
-권속 : 라이칸슬로프 113
그렇게 재윤이 노예로 받아주자 제칸을 비롯한 라이칸슬로프들이 일제히 재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제칸이 눈을 강인하게 빛내며 말했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다크 엘프 놈들을 처치하는데 제가 선봉이 되겠습니다.”
“기대하겠다, 제칸.”
세붐은 협박을 통해 복종심을 올렸는데 이 녀석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전쟁신의 환영을 본 순간 이미 절대 복종심을 갖췄으니까.